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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양축을 진단한다면 어떨까요?

한국에서 제대로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보장된 것은 87년 직선제 개헌, 그리고 지방자치제도가 실현되면서입니다. 이는 2공화국 당시에 아주 잠시 있었지만 이후 철저하게 중앙집권적으로 통치되었죠.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립된 것은 87년입니다만은 이것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은 문민정부의 출범부터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김영삼은 비록...

무엇이 진정 북한 민주화를 위한 길인가?

북한인권을 말하는 자(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센터의 문을 열다 )들은 대부분 박정희를 지지하는 출신들이 많다.(박정희에게 김일성의 이미지를 씌우려는 것인가? ) 조갑제부터가 대표적이다. 여기 백범님을 비롯한 소위 수꼴들도 대부분 박정희에 환장하면서 북한인권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소리쳐 외친다. 나아가 위 포스트에서 북한인권을 목놓아 ...

"우리는 아직 김대중의 '진가'를 모르고 있다"

"DJ는 이미 1987년에 강력한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처음 뵌 것은 1967년 서울 수유리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였다.돌아가신 강원룡 목사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후에 독일 대통령이 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박사를 초대해 당시 소장 국회의원으로 정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김대중 의원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이보다 3년 전인 1964년, 김대중 의원은 김준연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 ...

김대중 뉴욕타임즈 발언에 대해.

거침없는 무애자님이 http://soakaeofh.egloos.com/4939450 에서 김대중이 1973년 뉴욕타임즈에 올린 글을 가지고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그 당시 했던 말과 모순이라는 주장을 하신다하지만 실제 그런가?김대중이 했던 말을 보면 미국은 아시아의 남한에 있는 민주화세력을 도와주려 하는 좋은 국가인데 당신이 준 돈과 무기가 지금 ...

정권을 훔친 박정희

'40대 기수들'의 도전1970년 1월 26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유진산이 유진오의 뒤를 이어 새 당수로 뽑혔다. 그러나 그것이 곧 1971년 대선후보의 보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40대 기수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에 김영삼은 42세, 김대중은 44세, 이철승은 ...

한국 외교와 국방을 위기로 몰아갔던 박정희 [부제-닉슨 독트린과 대미외교]

박재규 전 통일부장관 "햇볕정책이 옳다"

박재규 전 통일부장관 "햇볕정책이 옳다"신년을 맞아 우리 경남지역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신년토론' '신년인터뷰' '신년대담'이라는 이름으로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잇따라 만나고 있다.그러나 경남도민일보는 김두관 도지사를 인터뷰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도지사는 굳이 '신년'이 아니더라도 항상 뉴스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수시로 기자들 앞에 나서 ...

김대중때와 달리 구제역 초기대응 실패로 세금 9700억 날려

▲ 해를 넘겨 번지고 있는 이번 구제역(口蹄疫)으로 인한 피해는, 66년 만에 다시 구제역이 발생한 2000년 이후 4차례의 구제역을 합친 피해액(5970억원)의 2배에 육박한다. 6일 현재 97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정부는 이 엄청난 돈을 재해 관련 예비비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구제역이 아니었다면 다른 분야에 사용됐을 국민의...

우리 예수님과 김대중-김대중을 만나 주신 예수님

DJ "MB, 외교사상 최악의 실패 되풀이"  2. 죽음 직전에 예수님을 만나다 (1973년 납치 사건) ‘물속에서 쇳덩이를 벗길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바닷속이니 몇 분이면 모든 것이 끝날 거야. 고통도 사라지겠지. 그러면 내 고단한 삶도 끝이 날 거야. 어떤가, 이 정도 살았으면 된 것 아닌가.’ 그러자 다른 생각이 떠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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