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유신시대의 비참한 최후와 "서울의 봄" 김대중

4편까지 "만화 김대중" 그리고 개인블러거 등 자료들을 참고로 글을올리고 있습니다.


좀 딱딱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민주정부10년이 지나고 이명박이 집권하면서 이승만의
자유당시절과 박정희의 유신...그리고 살인마 전두환의 반민주적 통치등이

계속되서 오바랩되는건 저뿐만의 생각은 아닐겁니다.



더욱 더 야비하게 국민들의 숨통을 짓누르는,

온갖 부정부패가 판을치고 친일매국이 당당히 고개를 드는,

인권을 무시하며 2010년판 독재가 판을치는,
또한 미친 개독들까지 나대는 꼴이 너무나 토나와..

이렇게 저또한 학습할 겸 해서 글을 올립니다.

 

비록 무개념의 글이지만 많은 관심바랍니다.



주요참고 서적..시대의 창 "만화 김대중"을 몇번씩 읽으면서 울컥 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네요.
우리 자식들에게 다시는 암울한 대한민국을 답습시키지 말고 사람사는세상을 위하여
보잘것 민초 손까락질좀 하겠습니다..

꾸벅

 

4편. 김대중 납치살해기도 사건과 박정희!!!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437013

 

5편. 유신시대의 몰락과 서울의 봄

 

1976년 3월 1일 저녁 서울 명동성당 3.1운동 57주년 기념 기도회

 

신부 김승훈
"오늘 기도회 마지막 순서입니다."

 

전 서울여대 교수 이우정

 


처음으로 박정희의 퇴진을 요구산 이른바 "민주구국선언"

"정치활동 금지자" 김대중이 총대를 메고 나선것은 유신체제 반대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할 신민당이 위기에 처한 게 주된 이유였다.

 

"선명야당"의 기치를 들고 나왔던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는 "비밀회담"으로 불려진
박정희와의 청와대 회동으로 인해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박정희와 김영삼의 독대현장...청와대

박정희
"(악어의 눈물을 훔치며) 처가 없으니 꼭 이 집이 절간같이 느껴져요.
청와대 생활이 외롭고 답답합니다. 김총재도 앞으로 겪어보면 알겠지만
대통령의 자리는 대단히 힘들고 외롭습니다. (흠짓 놀라는 김영삼)
김총재, 나 욕심 없습니다.

여편네는 공산당 총에 맞아 죽고, 이런 절간 같은데서 죽기 살기로 오래할
생각은 없습니다.

김총재, 날 믿으십시오. 민주주의 꼭 할 겁니다. 내가 대통령을 언제까지 하겠소?
하지만 김대중이 될 수는 없어요.
그래도 김 총재가 영남인 중에서는 제일 낫지 않소."

 

김영삼
"(김대중은 이제 끝났데이~~~~~~)"

 

독배였다. 개헌투쟁을 약화시키려는 박정희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김영삼은
주저없이 그 독배를 마시고 말았다.

 

금품수수 의혹까지 나올 정도로 온건노선으로 선회한 김영삼은 신뢰에 치명상을 입었다.
김영삼은 이전에 같은 당의 남장처녀의원인 김옥선이 유신체제를 신랄하게 비난한 뒤
공화당에 의해 의원직 사퇴에 몰리자 이를 외면, 국회에서 쫒겨나는 파동까지 빚은상태다.

 

결국 김대중이 나서 3.1 구국선언문을 초안하고 여기에 문익환의 선언문을 절충한
새 선언문이 나온 가운데 윤보선, 함석헌, 정일형 등이 의기투합해 민주구국선언을
터뜨리게 된 것이다.

 

7일뒤인 3월8일 새벽 동교동....결국 김대중은 대통령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 체포된다.

 

법정에 선 김대중, 문익환 목사, 함세웅 신부등

서울지검 검사 서장각
"이번 사건의 주동자인 구 정치인과 재야 일부 인사들은 오랜 동안 정권쟁취를 책동해왔으나
유신체제의 공고화로 국내 정국이 안정되고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이루어져 목적 달성이
어려워 지자..........................................."

 

검찰이 구속 기소한 후 8월 28일 판결공판...최후 진술

김대중
"한마디로 말하면 오늘의 유신체제는 통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안보나 반공을 위해서도
아니요, 박정희 한 사람의 영구집권을 위한 것입니다.



유신헌법은 오직 그러기 위한 수단이며 다만 그것을 향하여 내용이 구성되어 있을 뿐 입니다."
이 사실은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과 같이 명백합니다.
이 체제 아래서는 민주주의 인권과 자유의 보장은 불가능해요.
민주주의와 유신체제는 물과 기름처럼 상극입니다."

 

박정희 또한 청화대에서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생생히 듣고있었다.

 

"피고 김대중!! 징역 8년에 자격정지 8년을 선고한다"

"피고 문익환 징역8년, 피고 함세웅 징역5년, 피고 문동환 징역4년, 피고 안병무 징역5년,
피고 이해동 징역 3년을 선고한다"
"땅땅땅" "땅땅땅"

 

상고심에서 징역5년, 자격정지 5년이라는 가장 무거운 형을 선고받은 김대중은
1977년 4월 14일 진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같은 무렵인 1977년 6월 22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산하소위원회 일명 "프에이저청문회"

박정희의 로비스트 박동선이 미국의 의원들이나 정부 고관들에게 막대한 돈을 뿌렸다는
코리아게이트 사건.



때마침 미국에 망명 중인 전 정보부장 김형욱이 이 사건과 관련, 증언대에 선 것인데
박정희를 궁지에 몰아넣는 증언이 터지고 말았다.

 

김형욱
"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두려워 한 존재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대항 후보였던
김대중 씨와 미국의회였습니다.
만약 1971년의 선거에서 부정과 조직적 방해가 없었다면 김대중 씨는 한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입니다.
또 1973년 8월 도쿄에서 김대중 씨를 납치해 투옥시키는 비양심적 폭군 전제적 행위를 서슴없이
실행했습니다.
이 납치 작전의 지휘자는 바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입니다."

 

박정희
"네~~~~~~~~이노~~~~~~~~~~~~~~옴!!!!!"

 

김형욱은 이 증언 뒤 숱한 의혹을 불러 일으킨 채 실종되고 말았다.

 

1977년 12월 19일 새벽 김대중은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생활은 진주교도소보다 더 열악했다.



일체의 접견은 차단되고 창문마저 봉쇄했으며 편지는 물론 운동마저 금지했다.
철저한 눈속임..마치 인도적인 조치처럼 병원으로 이감시켜놓고 김대중만 빼고
민주구국선언문사건 관련자들은 전원 석방했다.

 

1978년 7월 6일 박정희는 다섯번째 연임으로 9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단독 입후보에 득표율은 99.9퍼센트였다.

 

김대중이 서울대병원에서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것은 1978년 12월 27일
수형생활 2년 10개월 만이었다.
박정희는 제 9대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김대중을 특별사면 조치한것이다.

 

1979년 8월 9일 YH무역 여성노동자 170여명이 회사운영 정상화와 근로자의 생존권보장을
요구하면서 마포 신민당사 4층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농성 3일째인 11일 새벽2시 경찰 1,000여명이 난입하여 172명을 강제해산시키고
신민당 의원과 취재기자들을 폭행하는 과정에서 여공 김경숙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발생.

이른바 "YH사건" 유신체제의몰락을 알리는 서곡이였다.

 

신민당은 의원, 당직자 등이 당사에서 철야농성을 벌여 강경투쟁에 나서면서
정국의 긴장은 증폭되었다.

 

김영삼
"폭력정권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1979년 10월 4일 국회에서는 김영삼 의원에 대한 징계동의안을 상정하고있었다.

 

공화당의원 징계동의안 제안설명
"신민당 총재 김영삼 의원은 지난 달 15일 "뉴욕 타임스"와 기자회견을 하면서
"미국 카터 행정부는 박정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야한다" 고 말했는데, 이는 명백한
사대주의적 발상일 뿐만 아니라 외국의 내정간섭을 자초한 것으로 제명해야 마땅합니다."

 

결국 출석의원 159명에 찬성 159표, 반대 무 이로써 김영삼 의원의 제명안은 가결된다.

 

김영삼 한마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옵니다~!!!"

 

10여일 뒤인 10월16일 부산과 마산에서 박정희 정권의 조종을 울리는 절규가 터져나왔다.
이른바

부마항쟁


"김영삼 제명 철회하라! 유신철폐하라! 언론자유 보장하라!"

 

18일 자정을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4시 김대중 집
"따르르르~~~~릉.....여보..로스앤젤레스래요.."

 

전화목소리
"박정희씨가 암살되었다는 뉴스가 있는데 알고 있습니까?"

김대중
"아니 그게 무슨말이오? 아직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런식으로 끝날 일은 아닙니다."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박정희
"김부장!! 왜..왜이래??"

탕....탕....탕

 

향년 62세 박정희의 18년 독재정치는 부하의 총탄에 막을 내린다.

유신철권시대의 비참한 몰락이였다.



다음날인 12월27일 새벽 4시를 기해 국무총리 최규하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데 이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단독 입후보하여
제10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최규하는 박정희의 남은 임기인 1984년까지 재임할 수 있으나 11월10일 특별담화를 발표
잔여임기를 채우지 않겠다고 밝힌다. 정권을 넘겨주는 과도정부였다.
최규하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일에 대해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ㅜㅜ

 

쓰러진 유신 철권의 시대, 이제 "서울의 봄"이 오고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인두껍을 쓴 살인마가 버티고 있었으니............

 

뱀발

이렇게 박정희의 죽음으로 유신철권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사건을 한번 다루겠습니다.
이런 유신시대의 박정희를 기리는 자들이 현시대에 넘친다는것에 분노합니다.
유신의 공주에게 또다시 정권을 주려하는 그런 자들이 넘친다는것에 분노합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전두환, 이런자를 추종하는 자들이 넘친다는것에 분노합니다.
현 대한민국의 이명박과 여당인 한나라당 대부분의 종자들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추종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범죄자를 역사적 대통령으로 왜곡한다는것에 분노합니다.

언제끝날지 모르는 시리즈이지만....힘 닿는데까지 올리겠습니다.
에고 손꾸락아..ㅋㅋㅋ(베껴쓰는 수준이라..)

 

다음편에는 전두환의 화려한 등장과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꾸벅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축이다.

 


 

대한민국 제 1 대 대통령 김 대 중

 

 

대한민국 제 2 대 대통령 노 무 현

 

 

 

 반만년 역사이래

 

주군을 위해 희생한 신하와 백성은 있었어도

 

그 신하와 백성을 위해 희생한 주군은 없었다 


 

 


백원우 : 개바긔는 그 더런 아과리를 닥치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438379



 
//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메모장

Yahoo! blog ba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