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민주화 열기.... 정치

신현확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전국 모든 대학교의 요구사항이었다. 5.18 광주항쟁이 일어나기 직전 대학교수가 앞서고 대학생들이 뒤따르는 평화시위 모습이다  
ⓒ 5.18재단

 

▲ 80년 5월 16일, 서울은 <서울역 회군>을 했지만 광주는 인구 5만이 모여 집회를 이어갔다. 전두환, 노태우의 살육의 음모를 모른 채...........

 

▲ 옛 전남도청 앞 분수광장, 아직도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날 가장 많이 불러졌던 노래가 ‘아침이슬’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었다고 한다.

 

▲ 성난 민심, 거대한 횃불이 타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빨갱이도 아니요, 정치집단도 아니요, 그저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때 그날 광주는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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