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 사태와 박정희 엽색행각 정치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2861

특히 고인이 김모 씨의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을 즈음인 2007년 10월 이후 편지에는 '술접대'와 '성상납'을 강요 받았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고인은 100번 넘게 접대에 끌려나갔다고 썼다.

고인은 자신이 접대한 상대가 31명이라며 이들의 직업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연예기획사와 제작사 관계자 뿐 아니라 대기업, 금융기관, 언론사 관계자까지 열거돼 있다.

고인은 "접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서 자신이 죽은 뒤 "복수해달라"고까지 호소했다. 접대를 받으러 나온 남성들을 '악마'로 표현했다.

"새 옷으로 바뀔 때면, 또 다른 악마들을 만나야 한다."

고인은 또 서울 강남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수원에 있는 가라오케와 룸살롱까지 가서 접대를 했다고 기록했다. 고인은 부모님 제삿날에도 접대 자리로 내몰렸다.

벗어나려고 해도 기획사 대표는 거액의 위약금을 내라며 발목을 잡았다고 썼다.

...


그런데 이런 연예인들이 정치인들 언론인들의 접대에 활용되는 정치문화를 만든게 바로 박정희였다. 고 장자연의 접대명부 31명은 박정희 시절 박정희와 정인권의 노리개가 되었던 정인숙 사망시 정인숙 수첩에서 나온 33장의 명함을 연상시킨다.

그 결과 정인숙 아들이 박정희 씨냐 아니면 정인권 씨냐가 논란이 되었고, 박정희는 중정을 통해 언론통제로 보도를 막았었다. 하지만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고 그 결과 그 당시 "강변3로, 오빠조심, 명함조심"이라는 유행어가 펴졌고 나아가 "정인숙의 수첩에 오르지 못하면 유명인사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떠돌았다.

나아가 그 당시 유행했던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가사를 다음과 같이 바꿔 부르기도 했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만약에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영원히 우리만 알았을 걸/죽고 보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성일이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고관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아요/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그렇게 모두가 밉지는 않았을 걸/죽고 나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물론 박정희 정권시절 박정희 기생정치로 유린한 여배우는 부지기수다.

관련 포스팅을 링크한다.

박정희와 기생파티

박정희의 엽색행각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메모장

Yahoo! blog ba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