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민족주의자 김일성과 박정희-용미용북론 해설과 보편적 민족주의를 향해서. 박정희

우선 1950 소련파의 허가이와 연안파(중국파)의 김무정이 제거된다. 그리고 51년에는 박헌영과 이승엽의 남로당 계열이 쿠데타 음모를 시도했다는 혐의로 대대적으로 숙청된다.(55년 박헌형이 사형당하므로써 한국의 토착 공산주의 세력은 완전히 제거된다.)

1956년 8월의 반종파투쟁에서 김일성의 갑산파(항일빨치산파=국내파)는 소련파와 연안파(중국파)를 숙청하고 독재기반을 다지게 된다. 여기서 이 종파투쟁이 단순한 권력투쟁만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즉 북한의 정치경제 노선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경제적으로는 김일성의 갑산파는 중공업우선과 경공업 농업의 동시발전을 주장했고 소련파와 연안파는 인민의 생활향상을 위한 소비재공업과 경공업 그리고 농업의 발전을 더 중시했다. 정치적으로는 김일성의 갑산파는 스탈린과 같은 단일지도체제를 주장했고 소련파와 연안파는 호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에 영향을 받아 집단지도체제를 주장했다.

아무튼 연안파의 최창익 윤공흠 서휘등이 제거되고 소련파의 박창옥 이상조등이 제가된다. 연안파의 대부 김두봉 역시 제거됨으로써 사실상 김일성과 갑산파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김일성은 이른바 강력한 반외세 민족주의를 자신의 독재구축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족주의가 악용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의 긍정적 측면을 살리지 못하고 그것을 독재구축을 위해 이용해 먹었다는 점이 북한 정치의 비극이었다. 그 이후 김일성 주체사상은 중소분쟁과정에서 소련의 후르시초프로 대변되는 반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또 중국 모택동의 내정간섭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좋은 무기로 써먹게 된다. 그리고 67년 과도한 국방비지출과 경제정책을 비판한 갑산파의 박금철 이효순등을 숙청하면서 김일성 1인 지배체제가 완성되게 된다. 이 이후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가 전면화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일성이 내세운 민족주의는 사실은 폐쇄적 독자주의에 가까웠다.

결국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으로 대표되는 독재자들이 사회주의 정권을 좌지우지 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그에 비해 식민지 지배체제하에서 3.1운동을 이끌어내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지만 그들의 민족주의는 근대화나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 보편적 민족주의였다. 신간회와 같은 좌우합작모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북한의 김일성도 처음에는 소련의 지원을 얻고 정권을 잡은 외세주의자였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정권을 잡자 이제 반외세주의를 내세우며 경쟁 정파를 무참히 숙청해버리고 1인 지배체제를 형성해갔다. 결국 그가 주장한 민족주의니 주체사상이니 허울만 좋은 개뿔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남한은 어떠할까?

박정희의 유신체제시에 남한도 북한과 비슷한 길을 걸으려 했지만 정면정권기와 박정희 사후 남한은 정반대의 역사를 걸었다.

일단 이승만이 3.15부정선거를 통해 장기독재체제를 구축하려 할때 4.19혁명이 일어나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남한의 민족주의는 오히려 친일파와 결합된 이승만 독재체제를 타도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초기에 수행한다. 동시에 남한의 민족주의는 친미를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용미에 가까웠다. 친미가 용미가 될 수 있는 것은 민족주의가 가세해야 가능하다. 여기서도 민족주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과도한 친미사대주의를 용미로 순화시키는 역할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주의의 긍정적인 성향을 변질시킨 것은 바로 박정희가 주창한 민족주의였다. 박정희가 주창한 민족주의는 일단 민주주의를 부정했다. 그리고 동시에 친미 친일을 제어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거세당한다. 나아가 박정희의 민족주의는 반북 반공하에 북한과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한 독재괴물로 변질된다. 즉 변질된 민족주의는 남한 내 독재의 이념적 뿌리가 되었고 기실 그것은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국가주의이데올로기라고 하는게 더 맞을 듯 싶다. 다만 외피만 민족주의로 포장했을 뿐이고 말이다. 즉 독재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가 박정희가 주장했던 민족주의였다.
 
암튼 박정희는 60년 후반부터 북한의 주체사상과 같은 자주니 민족이니 자립이니 주체를 강조하면서 북한과는 적대적 공존관계를 구축한다. 7.4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유신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박정희나 김일성이나 모두 민족주의를 내세워 독재체제를 구축했던 것이다.

김일성의 천리마운동이나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은 비슷한 측면이 있고 또 김일성도 말년에 핵개발에 몰두했듯이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것은 김일성은 94년에야 죽었지만 박정희는 79년에 일찍 죽은 점이 다르다. 한가지 더 있다면 박정희는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김일성이 반외세 민족주의 즉  주체사상을 가지고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했음에 비해 박정희는 막판에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점이 그렇다.

즉 박정희 말년 남한은 민족주의가 독재에 악용되고 반미로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똑같아 지려고 했는데 박정희가 일찍 죽어버려서 그게 완성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박정희의 독재체제가 10년만 더 지속되었어도 한국은 북한과 같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핵개발로 반미노선을 노골화했을 것이고 나아가 민족주의와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독재체제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박정희 사후 남한의 독재세력은 미국의 영향력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고 오히려 굴종하는 모습까지 못이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집권과정이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의 승인이 절대적으로 정권유지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민족주의는 사멸하고 친미 친일의 극치로 흘러가게 된다. 전두환은 독재체제였지만 민족주의를 독재에 이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즉 전두환독재체제가 박정희 독재체제와 다른 점이 바록 그 부분에 있다. 박정희는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를 변질시켜 변질된 민족주의를 가지고 그것을 악용해서 독재체제를 구축했고 거기다 영남의 지역패권주의를 기미시켰을 뿐이다.(그런 의미에서 영남의 지역패권주의는 보편주의에서 멀어진 폐쇄적 유사민족주의거나 지역적 부족주의라 할 것이다.) 

그 결과 전두환의 독재체제는 그 기반이 튼튼하지 못했다. 기껏 전두환이 포섭한 곳은 남한의 전체 민족이 아니고 경북의 지역패권주의 뿐이었다. 김종필의 충청 김영삼의 경남 김대중의 호남이 그들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살아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반미가 불가능했고 오히려 친미굴종을 해야 살아남는 독재였다. 따라서 87년 6월 항쟁이 전국적으로 번졌을때 전두환은 그걸 총칼로 밀어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80년 광주의 경우 아직 박정희의 독재유산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즉 박정희 유산이 남아있던 80년에는 광주를 맘대로 유린할 수 있었지만(물론 친미굴종이라서 미국으로부터 허가를 얻어야 했다.) 그 이후 김종필의 충청 김영삼의 경남 김대중의 호남이 살아나면서 87년에는 그게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역주의에 크게 의존한 셈이다. 지역주의가 민족주의적 독재를 막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나아가 영남패권주의라는 희안한 바이러스를 막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남한은 어떻한가?

지금 남한의 민족주의는 별로 인기가 없다. 민족주의를 악용하는 세력이나 사례를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민족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남북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긍정적 가치가 있고 그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의 통제하에 있다면 긍정적인 역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이게 박정희때 보듯이 통일분위기를 고조시켜놓고 남북이 서로 적대적 공생관계로 나아가면서 독재와 결합했던 전처를 밟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민주주의에 의한 통제된 민족주의를 통해 용북으로 가자는 것이다. 민족주의만 내세우면 친북이나 종북이 되어 버리고 민족주의를 버리면 반북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하게 될때 또 한가지 긍적적인 것은 친미굴종이나 반미가 아닌 용미가 가능하게 하는 점이다. 용미를 통해 미국의 긍정적인 측면을 살리면서도 과거 미국 일방주의에는 반대할 수 있게 되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결국 반외세 민족주의가 아니라 외국의 것이라도 보편적인 가치는 수용하는 보편적 민족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편적 민족주의하에서는 민족주의가 독재로 악용되거나 또는 편협한 이데올로기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게 된다.

보편적 민족주의하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용미를 통해 화합 친선으로 나아가고 더욱 민주주의적 가치를 발전시키고 경제공동체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보편적 민족주의는 여전히 살아있는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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