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몰표는 이미 67년,71년부터 시작. 지역주의

<표 2> 여-야 대통령 후보의 지역별 득표비 (단위: %)        

        

        

         

서울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부산        

경북        

경남        

제주        

전국        

67년 대선        

(박정희:윤보선)        


47 : 53
        


44 : 56
        


55 : 45
        


52 : 48
        


49 : 51
        


46 : 54
        


49 : 51
        


67 : 33
        


71 : 29
        


75 : 25
        


64 : 36
        


55 : 45
        

71년 대선        

(박정희:김대중)        


40 : 60
        


50 : 50
        


61 : 39
        


58 : 42
        


55 : 45
        


37 : 63
        


35 : 65
        


56 : 44
        


76 : 24
        


74 : 26
        


58 : 42
        


54 : 46
        


출처 박상훈 책

1. 영남몰표는 이미 67년,71년부터 시작.


지역투표에 있어서 DJ는 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하던 사람이지만 호남지역이 87년이전까지는 어떠한 몰표도 없었답니다. 그러나 영남지역은 이미 71년 대선당시 대구경북지역의 73%라는 몰표(타지역 유입 인구포함) 로 30년 전부터 몰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보면 67년도의 경우도 경남 경북 부산 모두 60프로 이상의 준몰표가 있었습니다.

호남에서의 87년이후 몰표는 당시 전두환의 오른팔 노태우가 대선에 출마하던 시기였으며 또한 5.18의 진실이 조금씩 알려지던 시기였습니다. 거기에 DJ와 김영삼의 후보단일화 실패등으로 영호남지역감정이 더 노골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렇게 87년 시의 호남의 몰표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5.18의 진실을 전라도민 전체가 알게 되었을때 이미 호남의 몰표는 돌아올수 없는 강이 되어버린것이지요. 사실  80년대 당시 호남에서 살았던 사람들 중에도 광주 5.18을 좌익폭동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호남에서 광주 분들 사이에서도 그 말은 너무도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너무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진실을 알게 된 것이죠.

김대중 그사람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사람이고  70년대 박정희보다 여론에서 앞섰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71년 대선에서도 박정희는 수도권에서 김대중에게 한참을 밀렸었고 다른 지역들도 차이가 크지 않는 정도였습니다. 만약 김대중이 호남에서만 지지를 받았다면 정말  호남이 문제일 수 있지만 나름대로 호남사람들도 .5.18등의 복합적인 요소에다 김대중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그런 몰표가 가능했던 것 뿐입니다.

지여감정은 제발 사라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들은 진실을 받아드릴 자세가 되어야하고 진실을 알기위해 노력해야하고 특정지역 분들이 특정지역의 아픔을 이해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특정지역의 정치인들이 정말 호남에 사죄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2. 영남패권의 실체와 박정희의 지역주의조장.


조선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지역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핵심이 영호남간의 갈등이나 차별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심각한 것은 기호와 서북의 대립(경기도와 평안도) 이었는데, 그 역시 분단으로 서북세력이 지역기반을 상실함으로써 1950년대에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20세기에 들어 일본의 식민정책, 냉전과 분단, 중국의 공산화, 그리고 일제치하에서의 경부선철도와 한국전쟁 등과 같은 지정학적 요인들 때문에 의도치 않게 경인 및 영남지역은 호남을 비롯한 여타 지역에 비해 우월한 경제력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정치.사회적인 문제로서 영호남 지역갈등이 등장한 것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였습니다. 그것은 1980년 광주학살을 거치면서 호남인들에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으며, 전두환 정권 하에서 그 상처는 더욱 곪아갔습니다. 20세기초부터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의도치 않게 생겨났던 지역간의 경제력 격차가 박정희 정권 하에서부터 영호남간의 문제로 좁혀져 의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당시 집권세력이 엘리트 충원과 지역개발 면에서 의도적 차별을 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정계,재계,금융,언론,군장성 출신들은 적게는 4~50%에서 많게는 80%까지 영남출신들로 채워졌습니다. (5공정권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모든 주요기관들 역시 반이상이 영남출신들로 채워졌으며, 영남정권 40여년동안의 기록을 보면 영남출신 재벌들이 그 당시 전체 기업 금융대출의 58%를 독식하였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는 이북출신이 받던 대출을 제외하면 서울,경기,충청,전라,강원,제주 출신 기업인들은 고작 20~25%의 기업대출을 서로 나눠먹는 정도로 영남정권 당시 영남을 제외한 전지역 출신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을 격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역감정조장이 아주 노골화된 것은 역시 3선 개헌 이후 치러진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부터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선거는 각각 영남과 호남에 연고를 둔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결이었습니다. 이미 3선 개헌이란 무리수를 둔 박정희로서는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젊은 야당 후보를 맞아 힘겨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의 세력은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선거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쌀밥에 뉘가 섞이듯 경상도에서 반대표가 나오면 안된다. 경상도 사람 치고 박대통령 안찍는 자는 미친 놈'(「조선일보」 1971. 4. 18.)이라든지 '야당 후보가 이번 선거를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라고 해서 전라도 사람들이 똘똘 뭉쳤으니, 우리도 똘똘 뭉치자. 그러면 154만 표 이긴다'(「중앙일보」 1971. 4. 22.)는 등의 여과되지 않은 발언들이 유세과정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실 정확히는 이미 63년도 선거에서부터 이효상등에 의해 신리임금을 뽑자는 식의 지역패권적 수법이 사용되었습니다.

호남차별의 반대편에는 TK의 권력독점이 있었습니다. 61년부터 92년까지 30년 동안 한 지역의 인맥이 권력을 독점했다는 것은 “빽”이라는 차원으로 지역 하층민에게까지 그 혜택이 어느 정도 돌아가는 수준으로 “특혜의 지역주의”를 형성했고 이는 경남, 충청, 때로는 강원 등 모든 지역에서 “우리도 한 번” 하는 식의 지역주의적 열망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호남의 경우 오래 동안 피해를 받은 만큼 이런 “특혜의 지역주의”적 열망이 무시할 수 없었고 이는 김대중 재임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호남의 투표성향을 타 지역의 지역주의와 동일하게 파악하는 것은 이면의 중요한 맥락을 놓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남지역의 몰표 성향이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닐뿐더러 분명 호남지역은 광주를 중심으로 잊을 수 없는 피해를 겪었습니다. 또한 일부지역 사람들이 끊임없이 심어주는 전라도에 대한 편견과 과거 영남정권시절 방송언론과 신문기사의 묻지마식으로 보도 방송되는 지역감정 부추기기는 전라도 사람들을 끝없이 자극하였고 이는 반 한나라당 정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영남의 타지역인구유입비율을 놓고 따져볼때 5.18의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대선후보로 대선을 치루던 87년부터 약 15년동안의 호남의 몰표 92%는 영남이 과거 몇십년간 줄곳 지켜왔던 65%~80%에 이르는 영남몰표와 따져볼때 그 차이도 없으며, 오히려 차별과 학살과같은 피해를 격지않은 영남지역에서 나오는 몰표가 더 심각함을 알 수 있습니다.


3. 영호남의 투표율 비교로 본 지역주의.


박정희가 5.16군사 쿠데타를 일으켜서 처음 윤보선과 대통령선거를 치룰때에 전라도는 박정희를 지지했습니다. 이때의 투표형태는 서울등 중부권역은 윤보선씨를 영호남등 남부권역은 박정희씨를 지지하였죠. 한마디로 여촌야도 (당시 여당을 공화당이라고 볼때)입니다. 서울 경기 부산(영남이라하더라도 대도시인 부산) 및 충청 강원까지 모두 윤보선씨가 앞섰습니다.

호남= 박정희 (49.9%) > 윤보선 (33.8%) (전남 52%로 경북 50%보다 많았음)
영남= 박정희 (53.3%) > 윤보선 (30.5%)
부산= 박정희 (45.6%) > 윤보선 (44.9%)
서울= 박정희 (28.6%) < 윤보선 (61.8%)
경기= 박정희 (25.8%) < 윤보선 (51.7%)
강원= 박정희 (35.6%) < 윤보선 (44.1%)
충청= 박정희 (36.1%) < 윤보선 (43.9%)

도시와 중부지방은 윤보선씨를 밀고 영호남은 박정희씨를 지지하였죠. 그 결과 박정희가 겨우 10만표의 차이로 어렵사리 이겼습니다. (물론 엄청난 부정투표가 기인한 것이므로 실제로는 윤보선씨의 승리라고 봅니다) 자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때 영호남 지역감정이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러던 것이 71년 9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의 3선개헌을 비판하며 민주세력의 결집으로 신민당 김대중후보가 등장하였습니다. 초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김대중후보를 꺽을 방법을 찾던차 선거 3일전 박정희측은 영남지방에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삐라를 뿌려대며 영호남 대결구도로 몰아갔습니다.

호남 = 김대중(58.7%) > 박정희(32.7%) (서울에서도 김대중은 호남과 비슷하게 58%가 나왔음)
부산 = 김대중(42.6%) < 박정희(54.4%)
영남 = 김대중(23.3%) < 박정희(71.9%) (경북은 이미 이당시부터 73%몰표 시작)

호남은 김대중에게 몰표를 하지 않았지만 부산을 제외한 영남은 박정희에게 몰표를 보냈습니다. 이때 호남은 90%가까운 지지율로 김대중을 지지하지 않은 점이 눈에 띄죠. (호남의 김대중에 대한 맹목적 지지율이 90%를 공산당투표라고 욕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광주와 호남 차별이 낳은 비극입니다. 보시다시피 호남이 처음부터 김대중을 90%지지한것이 아니니깐요. 오히려 박정희를 30%넘게 지지했습니다.)

이런 투표결과가 나온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김대중이 집권하면 호남이 영남 다 죽인다하고 지역감정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부산같이 깨어있는 도시에서는 별로 약발이 안먹혔지만 부산을 제외한 영남에서는 유언비어가 퍼져서 결국 일거에 전세를 역전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쪽수가 많은 영남을 잡으면 이긴다는 아주 간단한 선거전략입니다.


4. 신라 임금을 뽑자.


4 · 27 대선은 지역주의, 특히 영남 지역주의가 강하게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박정희는 경북에서 92만 표(박 133만, 김 41만 표), 경남에서 58만 표(박 89만, 김 31만 표)를 이겼는데, 영남 지역 승리는 전체 승리 득표 94만 표보다 56만 표나 많은 것이었습니다. 반면 김대중은 박정희를 전북에서 23만 표(박 30만, 김 53만 표), 전남에서 40만 표(박 47만, 김 87만 표), 그리고 서울에서 39만 표(박 80만, 김 119만 표)를 이겼읍니다. 박정희는 이미 1967년 대선에서 윤보선에 비해 영남표만 1백36만 표를 앞섰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박정희가 이긴 116만 표보다 20만 표나 웃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영남 몰표는 부정선거와 더불어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적극적으로 부추긴 결과였읍니다.

1971년 대선에선 특히 국회의장 이효상의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그는 1963년 대선에서도 9월 10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열린 공화당 유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는 지역 분열주의자였습니다.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 후보는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이효상은 1963년 대선에서 재미를 본 수법을 또 써먹은 것입니다. 그는 선거 유세 때마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라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숱한 망언을 양산해냈습니다. 그 밖에도 공화당 정치인들은 영남 지역 유세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들을 쏟아냈습니다.

"박 대통령은 경상도 대통령 아이가."

"문둥이가 문둥이 안 찍으면 어쩔끼고."

"경상도 사람 쳐놓고 박 후보 안 찍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

"1천만 명에 가까운 경상도가 주동이 되고 단결만 하면 선거에 조금도 질 염려가 없다."

"경상도에서는 쌀밥에 뉘 섞이듯 야당표가 섞여 나오면 곤란하니 여당표 일색으로 통일하자."

"우리 지역이 단합하여 몰표를 밀어주지 않으면 저편에서 쏟아져 나올 상대방의 몰표를 당해낼 수 없다."

공화당과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김대중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경상도 전역에 피의 보복이 있을 거라는 인간의 원초적 공포심을 자극하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아울러 '우리가 똘똘 뭉쳐 몰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 서울이고 경기도고 전라도고 우리 표를 빼낼 곳이 없다. 우리가 몰표를 던짐으로써 우리의 지도자,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건져내야 한다'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경상도 지역의 공무원들에겐 '김대중이가 만약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아울러 공화당원과 경찰,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서울에서 영남 지역으로 내려온 참관인들에게 '이 전라도놈(김대중 후보를 지칭) 앞잡이들아, 모두 꺼져버려라!'라고 스피커를 동원해 대대적으로 협박하고는 공명선거 감시단 참관인들을 모조리 쫓아버리곤 했다. 이 때문에 영남 지역에는 참관인들이 아예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또한 영남 지역 야당 인사들에게는 '이 선거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싸움인데 당신은 왜 전라도놈 앞잡이 노릇을 하고 다니느냐?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이 마을에서 없어져라!' 하면서 여럿이 떼로 몰려와 구타 · 협박하였다. 혹은 술과 밥과  돈으로 매수하여, 투표 당일 야당 참관인으로 참석 못하게끔 했다. 설령 참석한다 해도 그들이 어떠한 선거부정을 저질러도 찍소리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덧글

  • 2010/07/18 21: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콜트레인 2010/07/18 21:54 #

    그러게요.
  • 블루드림 2010/07/19 08:56 # 답글

    지역감정이 오래전부터 있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다르죠. 박통이 조장하고 전대갈이 부채질했다고 할까...
    아무튼 답답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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