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지도자(마오, 호메이니, 박정희)의 경제리더쉽 평가 박정희

권위주의 지도자(마오, 호메이니, 박정희)의 경제리더쉽 평가


"박정희 시대에 이러저러한 경제적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게 곧 박정희 혼자서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지만 한 회사가 잘 된다는 것은 그 공장의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모두가 희생하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잘 된 것이지만, 실제로 회사를 굴려본 사람이나 유사한 일머리를 아는 사람은 그때 누가 나서서 하느냐에 따라서 그 성과가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박정희가 어떤 면에서 굉장히 유능한 CEO였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백낙청, 오마이인터뷰 "박정희 향수는 끔찍한 후유증, 업적도 인정해야 치유할 수 있다" 중


한국경제의 발전에서 박정희의 경제리더쉽은 얼마나 큰 역할을 했을까?  미국의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했다든가, 토지개혁, 높은 교육열은 경제성장을 결정지을 수 있는 구조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국가지도자의 개인기는 말그대로  개인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구조적인 요인은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거나 변동하지 않지만 (교육열이 갑자기 끓었다가 식지는 않는 것처럼!),  지도자는 사정에 따라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재미있는 자연실험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데, 만약 국가지도자가  사고로 급사할 경우 그 시점을 전후로 경제성적표를 비교해 보면 그 지도자의 경제리더쉽을 평가해 볼 수 있게 된다.  

오늘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한다고 해서 제도나 구조적 요인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대신 딱 하나 바뀌는 것이 있다면 내일은 새로운 리더가 국가를 경영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사망한 대통령이 정말 경제개인기가 뛰어났다면, 사망후 경제성적이 뚝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잘 나가던 경제가 갑작스런 국가지도자의 사망 이후 죽을 쑨다면 그건 어떤 구조적 요인이 바뀌어서라기 보다는 그 지도자의 경제리더쉽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사례1)  중국의 마오쩌뚱의 경우

마오는 1976년 파킨슨병으로 사망하고 그 뒤를 덩 샤오핑이 잇는데, 그림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듯이 마오 사망 이후 중국경제는 저성장에서 고성장으로 흐름이 달라진다. 마오 사망 직후 경제성장이 약간 하락하지만, 이런 충격파는 매우 짧고 대신 덩 샤오핑의 리더쉽이 발휘되면서 중국경제는 고속성장의 궤도로 진입한다. 

결론: 마오는 탁월한 혁명가였지만 경제리더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덩 샤오핑은 경제성장의 추세선을 바꾼 능력을 인정해줘야 한다.  


(사례 2~4) 모잠비크, 기니아, 이란의 경우

공히 독재자가 사망하자 경제가 반등해서 성장세를 탄다. 집권내내 하락세였던 경제성장률이 독재자가 죽자마자 언제그랬냐는듯이 상승세로 반전된다. 

결론: 이란의 호메이니 등은 경제리더로서 완전 낙제감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희의 경제리더쉽은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앞서 전개한 논리를 한국사례에 적용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른다.  앞서 사례로 제시한 권위주의적 리더들이 자연사나 사고사로 random하게 사망한 반면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맞는 사고를 당했는데  이는  우발적(random)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자연실험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엄밀하게 말할 수 있는데, 적어도 김재규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 경제문제 때문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약한 의미에서 우발적인 지도자 교체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같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박정희 사망 전후 경제성장의 변화 추이를 점검해 보자.


박정희 사망 직후 1980년에 경제성장세가 바로 꺾이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프에서 보여지듯이 이렇게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한 경우는 1997년 IMF 사태 정도밖에 없다.  12.12사태와 518 광주항쟁을 생각해 보면, 경제성장세가 꺾일만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락세는 잠깐에 그쳤고, 다시 GDP는 이전의 성장세로 빠르게 돌아간다.

이걸 보면 박정희의 개인기보다는 상대적으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요인들 (ex. 높은 교육열)이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더 큰 역할을 했다는 추론이 보다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반대로 해석해서, 박정희의 경제개인기도 뛰어났고 그 뒤를 이은 전두환의 경제개인기도 뛰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1960년대 이후로 줄기차게 성장해온 한국현대사를 떠올린다면 굳이 박정희만 유독 대단한 경제지도자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것은 위 그림을 가지고 박정희가 경제지도자로서 별볼일 없었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분명히 박정희시대에  한국은 고속성장을 경험했다.  다만 그러한 고속성장은 국가지도자의 개인기보다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동력을 통해 달성됐다고 보는 견해가 보다 타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운이 좋게 박정희 이래로 계속 유능한 경제지도자를 만났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분석의 논리는 Jones와 Olken의 아이디어를 따른 것이다.  이들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시스템이 작동하기에 지도자가 급사하더라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반면,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집권자의 개인기가 경제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박정희가 호메이니가 아니었던 것은 어쨋든 국가적으로 다행스런 일이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의 업적도 인정해야 되지 않겠냐는 백낙청의 말도 일리가 있다.



덧글

  • 단멸교주 2010/07/15 18:38 # 답글

    높은 교육열을 유지했던 것 자체도 박정희의 업적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 높은 교육열이 있었던 것은 본질적으론 가족주의에 바탕을 하고 있으며 자식을 통한 신분상승, 권력세습, 부의 세습을 도모하려는 욕망이 높은 교육열로 나타났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주의는 부계혈통에 대한 신뢰라던가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더욱 강고하게 나타났고 이러한 토대를 마련한 이가 박정희라고 봅니다. 그 이후의 모든 지도자들은 이러한 박정희의 토대를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보이고요...

    만약 박정희 시대에 벌써 포르노가 표현의 자유로써 한국에서 전면적으로 개방됐다고 했다면 가족주의는 물론 민족주의(한국여성이 흑인, 백인, 미군, 일본남성과 섹스하는 포르노가 대대적으로 유통됐다고 가정한다면 민족주의는 남아나지 못했겠죠)도 파탄이 났을 거라고 봅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한국의 기본적인 사회구조 자체가 유지되기 힘들었을테고요.

    물론 이러한 가족주의 등은 원래 한국에 내재한 유교의 영향이라고 볼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유교적인 도덕율을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여 유지토록 한 사람은 분명 박정희의 공이었다고 봐야될 것 같습니다....
  • 콜트레인 2010/07/15 19:54 #

    제가 보기에 제일 중요한 사실은 1950 년대 말이 되면 신규노동력의 명목교육수준이 이탈리아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은 유교의 영향일 수 있겠지만 그게 박정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단멸교주 2010/07/15 23:26 #

    1950년대에 한국의 명목교육수준이 이탈리아 수준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한국인들이 그렇게 교육열이 높았는지 그 '욕망'의 동기가 중요한 것이며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식을 통한 신분상승욕망(저는 이것을 유사 신데렐라 욕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권력과 부의 세습욕망 등이 기본이며 또한 자식을 통해 이러한 신분상승과 부/권력의 세습을 달성하기 위해 강력한 부계혈통성을 기본으로 한 가족주의, 도덕주의, 민족주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을 실현시켜 줄 사회체제를 일종의 동도서기로서 확고히 자리잡은 사람이 박정희였고요...

    만약 당시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의 일환으로 포르노라도 허용되고 한국여자들이 미군, 백인, 흑인, 일본인과 무차별적으로 섹스를 하는 것이 대중에게 그대로 노출된다면.... 또한 그리하여 부계혈통성에 대한 신뢰가 깨져 가족주의가 무너지고 민족주의, 도덕주의까지 다 무너졌다면 애초에 가정이 형성되기가 힘들었을테고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탐욕적인 교육열은 발붙일 곳이 없었겠죠.

    박정희는 대중의 이러한 모든 욕망을 충실히 실현시켜주었고 또한 그것은 고도성장으로도 이어졌을 겁니다.(만약 가족주의가 깨져 그 많은 복지비용을 가정이 아니라 국가가 부담해야 했다면 그야말로 재앙이었겠죠)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의 어떤 지도자도 이러한 도식을 깨뜨리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사후 수십년이 지났건만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이 허용하는 포르노도 여전히 허용하지 못함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죠.

    박정희가 캬바레와 미니스커트를 단속한 것 자체가 이미 단순한 탄압이 아니었다고 봐야겠죠.
  • 콜트레인 2010/07/16 00:44 #

    박정희야 말로 한국의 성윤리를 타락시킨 주범인데요.

    박정희의 엽색행각
    http://tesada.egloos.com/2956813
  • 단멸교주 2010/07/16 00:54 # 답글

    그 개인의 엽색행각과 그가 제공한 사회체제적인 도덕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입지요. 그렇게보면 세종대왕도 똑같은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걸요? 아마 세종대왕은 대놓고 첩실에다 배다른 자식들을 줄줄이 낳으셨죠?

    그가 제공한 사회체제를 보라는 거지 그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라는 게 아닙니다.

    ps 1: 또 그럼에도 엄격히 따지면 그의 엽색행각이 가족주의나 민족주의에 영향을 줄 정도까지도 아니었다고 봐야죠. 어쨌거나 효율적으로 은폐를 잘했으니까요.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이 섹스중독증에 걸려있음에도 포르노를 금지하여 명목상으로는 깨끗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위선을 떨어 가족주의를 유지하듯이 말입니다...

    제 블로그를 보시면 알겠지만 박정희는 포르노를 금지시키고 캬바레와 같은 여성의 성적 문란을 단속함으로써 여성은 성욕을 가지지 않은 존재라고 주입하여 어머니에 대한 모성신화를 극대화시켰다고 보여집니다. 이건 나름대로 참신한(?) 발상이며 이는 지금까지도 한국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뼈대이기도 하죠. 일본 AV에 한국여자들 몇 명이 한복 입고 나와서 일본남자들이랑 무차별적으로 섹스 좀 했다고 나라가 발칵 뒤집혀지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ps 2: 어쨌거나 박정희를 극복하자고 외치는 세력들은 한국여자가 일본 AV, 미국 포르노에 수탈당하여 일본남자, 백인남자, 흑인남자랑 마구 섹스하는 것이 한국남성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한국여성의 그 모성신화가 아작이 나고 가족주의와 민족주의가 박살이 나 국가 차원의 복지를 가족이 모두 분담하여 복지비용을 경제개발로 돌렸던, 그리고 민족주의로서 돈 한푼 안주고(아 요즘엔 10만원은 준다고 하더군요) 국가안보를 달성했던 모든 이득들이 박살이 나더라도 결국 포르노를 허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근데 요상하게도 이 부분에선 반 박정희든 친 박정희든 똑같더군요....^^
  • 콜트레인 2010/07/16 00:57 #

    박정희는 한국의 부정부패를 극단화시켰고 각종 요정과 룸싸롱이 부패장소로 악용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걸 보고 공부하고 잡겠습니까? 결국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와 상관없이 한국민족자체가 교육열이 높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 단멸교주 2010/07/16 01:01 #

    각종 요정과 룸싸롱이 부패장소로 악용되게 만들었습니다

    ---> 그래서 이것들이 가족주의가 해체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거죠? 그런식으로 본다면 세종대왕도 예외는 아니라니깐요. 따지고보면 세종대왕을 비롯 역대 왕들은 아예 자신들의 궁전을 하렘으로 만든 타락의 장본인들 아닙니까?

    그들이 타락을 했든 안했든 그들이 제공한 사회체제, 이념, 이데올로기 등이 가족주의, 민족주의, 도덕주의를 유지하는데 굉장히 효율적이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논리학을 집요하게 적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인신공격의 오류에서는 벗어나셨으면 합니다.
  • 콜트레인 2010/07/16 01:10 #

    그리고 박정희는 근대화과정에서 가족주의를 파괴시켰습니다. 민족주의라고 하는데 지역차별로 민족분열을 고착화했구요. 도덕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힘이 있으면 장땡인 세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실력보다는 줄과 빽이 통하는 사회 말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공부하고 잡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열은 식지 않았습니다.
  • 단멸교주 2010/07/16 01:18 #

    박정희가 어떻게 가족주의를 파괴시켰는지 근거를 대시기 바랍니다.

    민족주의도 단순히 지역분열이 곧 민족분열로까지 이어졌다는 근거를 대시기 바랍니다. 민족 내에서도 계층분열, 지역분열은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곧 민족적 분열이라는 논리적 근거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박정희 시절부터 줄과 빽도 중요시는 되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진짜 아무 실력없는 무지랭이가 고위급을 차지하지는 못했겠죠. 이왕이면 같은 서울대라면 자기한테 좀 가까운 쪽 사람을 기용하는 정도일 겁니다. 이걸 줄과 빽만이 판친 사회로 만들었다고 보기엔 힘들며 진짜 줄과 빽이 판치고 매관매직이 판쳤던(심지어 왕까지 매관매직을 해먹었던) 조선시대에 비하면 한 1억배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음도 분명할 겁니다.
  • 콜트레인 2010/07/16 01:30 #

    박정희가 방탕한 엽기섹스가 얼마마 많은 가정을 파괴했는지 모르시나요? 여대생도 많이 유린했음. 정인숙사건이나 기타 가정있는 여배우등등

    그리고 고문등으로가족구성원을 죽이면서 가족들 힘들게 했고요. 또 농촌출신들이 먹고 살게 없어도회자로 나와여 해서 핵가족화가 가속화되었음, 그리고 가족계획인가 먼가 한 부분도 알아보심

    신라임금을 뽑자면 지역주의조장해서 지금의 망국적 지역분열이 단초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박정희가 영남만 개발하면서 영남지역주의가 시작되었구요. 우리 민족은 후진민족이고 등신같은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과거 일본들이 한국을 깔보던 식으로 한국민족성이 후지고 더럽고 게으르고 발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민족은 깡패가 패듯 패야한다면서 우리민족을 그렇게 다룹니다. 반민족주의자입니다.

    부정부패와 도덕적 타락 배신등은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장도영과 같이 쿠데타했다가 나중에 장도영도 배신때리고 김동희가도 배신떄리고 그랬구요, 자기 형의 친구도 배신했고 남로당가입해서 빨갱이짓 하다가 들통났는데 지만 살라고 싸그리 다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김형욱도 닭분쇄기에 죽이라고 하고 난리도 아닙니다. 나중에 김종필도 결국 박정희에게 팽당합니다. 고관도 실력보다는 박정희 개인에 대한 충성이 절대적 기준이었습니다.
  • 단멸교주 2010/07/16 01:40 #

    박정희가 방탕한 엽기섹스가 얼마마 많은 가정을 파괴했는지 모르시나요? 여대생도 많이 유린했음. 정인숙사건이나 기타 가정있는 여배우등등

    ---> 인신공격의 오류에서 벗어나시라니깐요. 지금 우리는 '사회체제를 만들어낸 사상, 이념'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자리이지 그가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괴했는지는 우리의 논의와 관련이 없는 사안입니다. 그가 대중에게 가족주의를 위한 어떤 이념을 제공했는지만 보시기 바랍니다. 계속 동어반복을 하게 되는데 님의 방식으로 보면 세종대왕도 같은 비난에서 예외일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배신이 왜 비도덕적입니까? '도덕'의 정의가 뭔데요?

    타락이요? 물론 그에게 타락이 아주 없었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근데 그래서요? 그당시 한국사회의 타락지수로 보았을때 다른 사람이 했다고 예외였을까요? 김대중씨가 했으면 정말 예외가 되었을까요? 그나마 우리는 그 이전의 시대(조선시대, 이승만 정권 시절 등등)에 비해 한걸음 진보했고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야 하며 그것은 분명 박정희의 공이라고 봅니다.

    타락이라는 것을 너무 절대적 기준으로 보아 세균하나 없는 깨끗한 1급수 물로 보지만 말으셨으면 합니다. 다른 물들과 비교를 해야 하며 한민족들은 대대로 박정희보다도 못한 도덕지수를 가진 민족 아니었습니까? 이미 북조선만 봐도 여실히 드러나지 않나요?
  • 콜트레인 2010/07/16 11:10 #

    딘멸교주님 선데이서울이 언제 만들어진지 아시나요? 박정희때입니다. 성의 상품화말입니다.

    박정희의 부정부패는 그의 독재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상상의 초월한 부정부패였고 제도적 부패였습니다. 민주화이후 부패는 박정희 전두환이 부패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승만의 부패도 박정희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박정희는 71년 대선에서 국가예산의 10프로를 선거자금을 썼을 정도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입니다. 한나라당 차떼기에 비해 몇십배이상의 많은 돈입니다.
  • 단멸교주 2010/07/17 10:22 #

    조선시대 춘화만도 못한 선데이 서울을 성의 상품화 운운하며 거론하기엔 너무 조촐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그런 부정부패 좀 해먹으면 뭐가 어떻습니까? 예전에 중국에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정부패를 저지른 공무원이 붙잡힌 경우를 봤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공무원이 그 부정부패로 취득한 부당이득을 가난한 사람에게 다 썼다고 합니다. 이 공무원은 비도덕주의자일까요?

    또한 배트맨 다크나이트란 영화를 보시면 배트맨은 사실상 불법적인 행위, 부정행위를 통해 범죄자들을 소탕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결국 경찰에 쫒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트맨을 비도덕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박정희도 결국 같은 경우라도 봅니다. 자신을 잡으라던 배트맨, 그리고 자기의 무덤에 침을 뱉으라던 박정희.... 박정희는 결국 이 시대의 다크나이트가 아닐까요?
  • 콜트레인 2010/07/17 11:25 #

    그건 그냥 합리화일 뿐이죠. 그런 식이면 이 세상에 모든게 다 합리화가 가능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메모장

Yahoo! blog ba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