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야당의 탄생 :1대대(민정당) 2중대(민한당) 3소대(국민당) 1980년대 역사

'관제야당'의 설립

5공은 정치권을 떡 주무르듯이 하기 위해 '관제야당'의 설립을 꿈꾸었다. 그런 음모의 일환으로 1980년 11월 12일 국보위는 10대 국회의원 835명을 정치규제 대상자로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 569명이 재심을 청구했고 그 가운데 268명이 구제됐다. 정치인들이 재심을 청구해 구제대상에서 풀린다는 건 곧 5공에 협조를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신군부의 이런 조치는 관제야당 창당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전두환은 1981년 1월 15일 자신을 총재로 한 민주정의당(민정당)을 창당하였으며, 이로부터 2일 뒤 유치송을 총재로 한 민주한국당, 그리고 1월 23일 김종철을 총재로 '공화당 이념을 계승'한 한국국민당을 창당했다. 아니 정권이 야당을 창당하다니!

그러나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민한당과 국민당은 '관제야당'이었기 때문에, 정가에서는 '1대대(민정당) 2중대(민한당) 3소대(국민당)'이라는 말이 떠돌았다.1)

참으로 희한한 발상이었다. 희대의 독재자라 할 박정희조차 야당공작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본격적으로 야당 창당까지 대행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김호진은 이렇게 말한다.

"민주정의당은 보안사가, 야당인 민한당과 국민당은 중앙정보부가 창당작업을 실제적으로 주관했다. 5.16 직후에도 군부가 기성정치인들의 발을 묶어놓고 자기네들끼리 민주공화당을 사전조직했지만 야당까지 손을 대지는 않았다. 그러나 80년대 신군부세력은 야당까지 자기네들 손으로 조직했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집권당이 들러리정당(위성정당)을 결성해서 다당제의 외양을 갖추는 것과 유사한 수법이었다. 민한당과 국민당은 관제야당답게 충성야당으로 기능하면서 전두환정권에 협조했기 때문에 여야 정당은 밀월관계를 유지했었다."2)

'사회주의 국가'보다 '파시즘 국가'와 비교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 실제로 5공은 구색 맞추기를 위해 사회주의 색깔을 표방한 정당까지 손수 창당해주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 의미에서 5공은 파시스트체제였다. 그 체제하에서 정치를 할 수 있는 길은 그렇게 타협하고 굴종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정치인들의 처량한 몰골

'관제야당' 정치인들은 꼭 그렇게 해서라도 정치를 해야만 했던 걸까? 우문일 게다. 전두환과 신군부 핵심인사들은 처음엔 군인들의 정권에 민간인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건 곧 기우임이 밝혀졌다. 전두환은 후일(1986년) 이렇게 말했다.

"결과를 보니 내가 정치를 너무 몰랐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전을 펴놓으니 구름같이 모여 솎아내기 바빴어요. 의회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정치풍토가 흐려집니다."

전두환은 그렇게 큰소리 칠 만도 했다.  5공으로부터 '정치허가증'을 받기 위해 구 정치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5공은 해금 이전 정치규제에서 제외시킬 인사들에게 5공헌법에 대한 찬성을 글을 각 언론사에 게재토록 충성도 검사까지 하였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 검사를 통과했다.4) 이를 반영하는 한영수의 증언을 들어보자.

"당시 규제에 묶이지 않기 위해 거의 모든 의원들이 줄을 찾아 뛰었다. 줄에는 학연 지연 혈연등이 망라되었으며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은 거의 전부가 동원되었다. 일부는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도 불사하는 등 좋지 못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 안기부와 야당담당 일선 요원만 알고 있기만 한 것도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 정도였다.'5)

한 의원의 증언이다.

"10대 야당의원 60여 명이 모두 열심히 해금을 위해 뛰었다. 해금 이후 정치활동을 재개한 야당출신 의원들은 대부분이 입을 다물고 있지만 해금을 위한 발버둥은 그야말로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때 우리들은 롯데 코리아나 서린 뉴서울 엠파이어 호텔 등 시내 중심가 호텔의 커피솝에서 계보별로 만나 해금대책을 논의하고 누가 풀릴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계보별로 모이다 보니 딴 계보의원들과의 경쟁의식이 생겨 정보조차 교환하지 않았으며 해금일이 가까워지자 같은 계보 내에서도 가까운 의원들끼리 만나 동원가능한 자구책을 논의했기 때문에 계보의원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쟁이 벌어지곤 했다."6)

전두환의 통 큰 '돈 정치'

그런 신청자들 가운데 선택된 사람들은 안기부 등 공안기관들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그런 '지도원'들은 야당에 직접 참여하였는데, 민한당의 경우 20여명에 이르렀다. 이들을 '오더조(組)라고 불렀다. 민한당 창당발기인 48명에 그런 '오더조'들이 많이 들어가 민한당은 '쌀보다 돌이 많은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민한당은 이밖에도 '면허 정당' '들러리 정당' '온실 정당' 등등 여러 재미있는 별명을 달고 다녔다. 7)

민한당 총재 유치송의 말이다.

"창당 후 야당총재들이 전두환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조찬을 한 적이 있다. 전씨 앞에서는 '야당'이라는 용어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대화 중에 '야당총재와'라는 말을 무심코 썼더니 전씨가 '야당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1.2.3 당이지요.'라고 정색을 했다. 전씨의 이 말에 아무런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고 또 그러는 야당총재도 없었다."8)

물론 관제야당들에겐 돈이 건내졌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한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비서실장 함병춘이 전두환의 명을 받들어 야당총재들에 한 장소에서 시간 간격을 달리해 정치자금을 건네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9) 

전두환의 돈 씀씀이가 워낙 컸기 때문에 그러한 돈의 규모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전두환으로부터 억대의 촌지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하나 둘이 아니다. 장관을 하다 물러나는 사람들에게 전별금으로 5억원을 주었다. 나중에 노태우는 전별금으로 5천만 원을 주고서도 '짜다'라는 욕을 먹었지만, 전두환으로부타 그렇게 큰 돈을 받은 사람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두환 칭찬에 열을 올렸다.10)

전두환은 그야말로 통 큰 '돈 정치'만큼은 유감없이 구사했다. 그게 그의 '탁월한' 리더쉽이고 용인술의 한 비결이었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그런 류의 리더쉽과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는 걸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출처

1)한국일보 정치부 <빼앗긴 서울의 봄>(한국문원 1994, 286쪽)

2)김호진 <한국정치체제론>(박영사 1997 수정7판, 310쪽)

3)노재현 <청와대 비서실 2>(중앙일보 1994년, 328쪽에서 재인용)

4)한국일보 정치부 <빼앗긴 서울의 봄>(한국문원 1994, 322쪽)

5)한국일보 정치부 위의 책 318쪽. 1980년 12 19일 중앙정보부의 명칭이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뀌고, 유학성이 첫 안기부장이 되었다. 이름을 바꿀 떄 전두환은 '복지부'라는 이름을 제안하기도 했다. ; 박보균 <청와대 비서실 3>)(중앙일보 1994년, 372쪽)

6)한국일보 정치부 <빼앗긴 서울의 봄>(한국문원 1994, 323~324쪽에서 재인용)

7)한국일보 정치부 위의 책, 293~294, 300쪽

8)한국일보 정치부 위의 책, 320쪽 재인용

9)함성득 <대통령 비서실장론>(나남 2002, 159쪽)

10)손광식 <한국의 이너서클:대기자 취재파일>(충심 2002, 227~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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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천지화랑 2010/07/15 09:44 # 답글

    역시 전두환은 북조선 지원으로 쿠데타 일으킨 모양입니다.
  • 콜트레인 2010/07/15 11:06 #

    후후
  • 기사 2010/07/15 10:14 # 답글

    관제 야당들만 넘치는 상황이었으니 사람들이 제대로 투표할맛이 나겠습니까.
    이러니 호남에서도 민정당이 득세할수 밖에 없는 판국이었죠. 덤으로 그 당시에는 중대선거구제였으니 낙선하는게 불가능한 판국이었고.......
  • 콜트레인 2010/07/15 11:07 #

    사실 무명이가 헛소리많이 했죠 ㅎㅎ
  • 기사 2010/07/15 12:16 #

    무명이라는 종자는 대충 옛날에 듣기로는 은행원이라는데 대가리가 그렇게 딸리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은행원 해쳐먹고 있는지 이해가 안감
  • ㅇㅇ 2010/07/15 17:33 # 삭제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이 주민들의 99% 지지를 받고 있죠. 북한에는 천도교청우회,사회민주당도 있는데 그렇거든요. 수꼴들 보면 북한에도 야당 있는데 조선노동당이 지지를 많이 받으니까 김일성,김정일이 잘 한다는 북한식 억지 논리가 생각나네요.
  • 2010/07/15 17:4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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