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영남출신 정치군인' 육성 박정희

여러 책들이 김재춘은 친위 쿠데타를 꾸민 육사 11기들을 비호하다가 중앙정보부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타당할지언정, 그것만으론 진실의 모든 실체를 다 드러내진 않는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을지언정 7.6친위쿠데타 시도에서 드러난 11기들의 공격적인 정치지향성은 박정희가 평소 부추겨 온 거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김재춘의 요청대로 11기를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김재춘이 옹호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박정희는 결코 11기들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육사 8기가 육사 5기를 쳐 성공을 거둔 이상, 육사 8기의 독주를 무슨 수로 견제할 것인가? 박정희는 그걸 견제할 또 다른 친위 세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8기 세력이 커지자, 그들보다 더 어려 믿을 만하고 4년제 육사를 나온 영남출신 중심의 11기 몇 명을 충복처럼 귀여워하며 그들을 '정치 군인'으로 키웠다.1) 박정희의 귀여움을 가장 많이 받은 11기는 전두환이었다. 훗날 전두환은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옜날에 박정희 대통령이 최고회의 의장 할 때 나보고 국회의원 나가라고 하는 걸 안나갔어요. 장도영 사건이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떄인데 사무실에 오라고 해서 갔어요. 나보고  '전 대위, 국회의원에 한번 출마 안 하겠나?'고 그래. 내가 깜짝 놀라 '제가 어떻게 국회의원을 합니까?' 하자 '하면 하는 거지 왜 못해' 하더군. 그래서 나는 '아닙니다. 저는 군대에 있는게 더 좋습니다.'했어 '군인하려고 사관학교에 갔지. 국회의원 하려고 간 게 아닙니다'라고 했지. 박 대통령은 거듭 '자네가 필요하다'고 하더군. 나는 시간을 조금 주시면 의논도 해봐야겠다고 했더니 '남자가 하는 일에 상의는 무슨.....' 하더니 이틀 후 다시 오라고 해서 윤필용 비서실장과 의논도 했지. 그 후 박대통령과 다시 독대하는 자리에서 '저는 돈도 없고. 군대에서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했는데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는 거야. 가끔 내가 어디를 가 있어도 골치 아픈 일이 있으면 부르곤 하셨지. 아마 국회의원 출마를 거절한  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고 참신한 육사 출신우로 본 것 같아"2)

11기인 이상훈은 61년 8월 미 육군고등군사반의 1년 교육 과정을 수료한 뒤 62년 7월에귀국해 다시 최고회의 경호실에 근무하였는데, 이때 이미 하나회가 결성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내가 미국에서 돌아와 최고회의 경호실에 근무하면서 전두환 대위와 다시 만나 그가 근무하는 비서실에 자주 놀러가기로 했다. 어느 날 하나회를 결성했다는 애기를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영남출신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우려를 표명했다. 전체의 육사 단결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러자 전 대위는 '국가든 조직이든 어차피 소수의 엘리트가 움직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엘리트 그룹을 형성해야 된다'고 강조를 했는데 나와는 견해가 좀 달랐다."3)

63년 2월 18일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가 민정 불참 선언을 한 직후 원대복귀를 만류키 위해 전두환 노태우 권익현 손영길 박갑룡 등이 의장 공관을 찾아갔을 때, 박정희는 그들에게 앞으로 자신을 도와달라며 사실상 조직 결성을 지시하였다."4)

그렇게 해서 결성된 조직인 하나회가 4대 의혹 사건이 사실상 박정희의 작품인 걸 모르고(알았다 하더라도 박정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책임을 묻고자 공화당 요인 40명을 제거하는 7.6쿠데타를 시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니 박정희로선 내심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겠는가 말이다.

여기에 영남 지역주의가 가세했다. 박정희는 7.6쿠데타 사건시 자신의 전속 부관이 11기 대위 손영길이 11기를 옹호하자 "그들이 그렇게 혁명에 적극적인?"라고 물었다. 하신기기에 따르면,

"'내 영남 출신자는 각하의 향토의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전두환 그룹은 향토의식이 강했고, 전부 영남 출신이었다. 8기생은 충청도 출신인 김종필을 비롯하여 영남출신이 거의 없어 그것도 그들 그룹이 8기생에게 적대의식을 가진 하나의 요인이었다. '알았다. 그들에게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임무에 전념하도록 하라고 전하시오.'이후 부정의혹에 대한 수사도 7.6음모에 대한 조사도 중지되었다."5)

이런 묘사를 그대로 다 믿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박정희가 영남 연고 중심으로 '정치 군인'을 육성한 건 결과로 입증된다. 11기 하나회는 이때 익힌 쿠데타 음모 솜씨를 16년 후인 79년에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그게 바로 12.12 쿠데타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12.12쿠데타는 박정희를 위한 친위 쿠데타였다. 16년 전 11기의 쿠데타 음모 사건을 수사했던 방첩대장 정승화는 이때엔 그들의 제거 대상이 된다. 

나아가 하나회는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소속 장교들이 일부 구속되는 등 시련을 겪었지만, 하나회의 회장이었던 전두환 등이 박정희의 배려를 받아 예편을 면했기 때문에 1979년까지 비밀리에 조직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6)


출처

1) 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이 부장들>(동아일보사 1992, 76쪽) ; 박보균 <청와대 비서실 3>(중앙일보사 1994, 105쪽)

2) 이 발언은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87년 4월 12일 수석 비서관들과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김문 <장군의 비망록 2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장군들의 이야기>(별방 1998, 66쪽)

3) 김문 <장군의 비망록 2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장군들의 이야기>(별방 1998, 68쪽)

4) 한용원 <한국의 군부정치>(대왕사 1993, 323쪽)

5) 하신기, 강태훈/이광주 역 <박정희 ; 한국을 강국으로 이끈 대통령>(세경사 1997, 245쪽)

6) 서창녕 <한국정치의 인맥 사조직 연구>(서울대학원신문 1993년 3월 16일)


보론>

전두환의 '하나회' 인맥              

서창녕 <한국정치의 인맥 사조직 연구>(서울대학원신문 1993년 3월 16일)

1980년대 전반기의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한 정치인맥은 전두환의 하나회 인맥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정호용 등 육사 11기생들이 주축이 되어 1963년에 결성한 군 내 비밀사조직인 '하나회'(一心會)는 이후 제5공화국 창출의 모태가 됨으로써 현대 한국정치사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였다. 물론 박정희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군 출신의 김종필, 차지철, 박종규 등을 등용하였지만, 그것은 개인적 친분에 의한 것이었지 하나회와 같이 수십년간 유지되어온 조직적 관계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회의 뿌리는 전두환이 육사생도 시절에 결성한 오성회(五星會)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성회는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백운택의 다섯 사람이 장래 장군이 되기를 꿈꾸며 만든 20세 청년들의 친목써클이었다. 그후 오성회는 정호용 등 5인이 더 가입하여 텐 멤버(ten member)로 발전하고, 이들 10명이 주축이 되어 육사 11기에서 20기까지 매기수별로 10명씩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총100여명을 망라한 하나회로 발전하였다. 하나회는 단순한 친목단체일 뿐이라는 관련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하나회 소속 장교들은 입회시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했으며 목숨을 걸고 조직의 명령에 따르며 절대 비밀을 지킬 것을 서약하였다고 한다. 하나회 소속 장교들은 이른바 '하나회식 의리'를 바탕으로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형성하고 승진과 보직 등에서 서로 밀고 당겨 주면서 군 요직으로 진출하였다. 하나회가 군부 내에서 급격히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육사 8기인 김종필이 군부 내에서 충청도 출신 장교들로 세력을 확장하자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육사 11기인 전두환, 노태우 등을 불러 경상도 출신 장교들의 단합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회는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소속 장교들이 일부 구속되는 등 시련을 겪었지만, 하나회의 회장이었던 전두환 등이 박정희의 배려를 받아 예편을 면했기 때문에 1979년까지 비밀리에 조직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1979년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하나회 출신 인사들은 대거 정계로 진출하여 정치인맥을 형성하고 권력의 요직을 차지하였다. 1980년 5월 27일 광주항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약칭 국보위)를 설치하고 과거 유신체제하의 정치세력과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이른바 '3김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했다. 국보위는 유신치하 권력의 핵심이었던 중앙정보부의 기구를 축소하고 요원 3백명을 숙청했으며, 2급 이상 공무원 2백 34명, 3급 이하 공무원 5천 237명, 정부산하단체 및 국영기업체 임원 1백 76명 등을 숙청했다. 이러한 숙청작업은 군부, 경찰, 법조계, 정계, 언론계, 학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제4공화국이 제5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정권교체의 과정은 박정희 인맥이 전두환의 하나회 인맥으로 교체되는 인맥교체의 과정이기도 했다.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하고, 8월 27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뒤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사회 각 분야에서 요직을 장악했다. 특히 정보기관, 국방부, 육군참모총장, 검찰 등 권력의 핵심부에는 대부분 하나회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군 출신 인사들이 등용되었다.

[ 하나회 출신의 주요 인사들 ]

육사11기전두환(12대 대통령), 노태우(13대 대통령), 김복동(전 민자당 의원, 국민당 입당), 정호용(전 무소속 의원, 민자당 입당), 손영길(전 수경사 참모장), 권익현(민자당 의원), 노정기(전 필리핀 대사), 최성택(전 석유개발공사 사장), 백운택, 박갑용
육사12기박희도(전 육군참모총장), 박준병(민자당 의원), 박세직(민자당 의원), 안필용, 정동철(산업안전공단 이사장)
육사13기최세창(국방부 장관), 김우재(전 체신부 장관), 오한구(민자당 의원), 신재기(민자당 의원), 정동호(민자당 의원)
육사14기이종구(전 국방부 장관), 안무혁(전 안기부장, 민자당 의원), 이춘구(민자당 의원), 배명국(민자당 의원), 박정기(전 한국전력사장), 장기하(진로사장), 정도영(전 사회정화위원)
육사15기고명승(전 3군사령관), 민병돈(전 육사교장), 이진삼(체육청소년부 장관), 김상구(민자당 의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서)
육사16기장세동(전 안기부장), 신말업(전 군사령관), 최평욱(산림청장), 정순덕(민자당 의원)
육사17기김진영(육군참모총장), 안현태(전 경호실장), 허화평, 허삼수(민자당 의원)
육사18기이학봉(13대 민자당 의원), 정봉화(윤필용 전 수경사령관의 비서실장)

제5공화국은 군부독재라고 비판받아 왔다. 정권의 요직을 육사 출신의 군인들이 장악했다는 점에서 제5공화국은 군사정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 보면 제5공화국은 군부 중에서도 '하나회'라는 특정 비밀사조직에 기반을 둔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군 출신이면서도 하나회 회원이 아니었던 이종찬(육사 16기)은 민정당 창당의 주역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인사들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당해야 했다. 하나회 인사들은 1988년 5공청산의 국민적 요구에 밀려 전두환(백담사), 정호용(외유), 장세동(구속) 등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하나회 인맥은 제6공화국에서도 노태우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정치세력을 유지해 왔다. 또한 강창성(前 보안사령관)의 증언에 따르면, 하나회 인맥은 군 내부에서도 하나회(육사 11기-20기), 만나회(21기-32기), 알자회(33기-43기)로 여전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있다고 한다. 제5공화국 창건의 주역을 담당한 하나회 인맥은 1980년대 전후반에 걸쳐 한국정치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문민정권이 출범한 1993년까지도 현역 국회의원 중 10여명이 존재하는 등 하나회 인맥은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추가보론>

박정희정권시절 보안사령관이었던 강창성의 조사결과, 하나회는 대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밝혀졌다 "하나회는 1) 정규육사출신을 매기별로 정원제를 유지하여 가입시키되 약 5프로수준인 10여명 내외로 하고 2) 회원의 다수는 영남출신이 점하고, 여타지역출신은 상징적으로 가입시키며 3) 비밀 점조직방식으로 조직하되, 가입시 '조직에 신명을 바쳐 충성할 것을 맹세케 하고 4) 고위층으로부터 활동비를 지급받거나 재벌로부터 자금을 수령하며 5) 회원이 누릴 수 잇는 혜택은 진급 및 보직상의 특혜라고 하는데, 당시 육군에는 인사 정체가 심화되어 정규육사출신들은 의무복무기간 5년이 끝나고 장기복무에 들어가게 되면 매기별 현역 총원의 1/2씩만 상위계급으로 승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회에의 가입은 군부 내에서의 출세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덧글

  • 기사 2010/07/11 10:08 # 답글

    지역감정을 고취시킨건 박정희가 시초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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