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박정희정권의 함경도출신 기업가숙청 1960년대 역사

개발독재 체제하의 시장은 새로운 전장이었다. 공정하고 법이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었다 폭력과 협박과 온갖 권모술수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강력한 권력을 중심으로 연고와 정실이 난무했다. 빽과 줄이 총동원되곤 했다.

62년 3월에 이루어진 군부의 '알래스카파'(함경도출신)숙청과 함꼐 백남일, 함창희, 조성철, 이용범 등 재계의 알래스카파 역시 몰락했다. 60년 12월 국내 도급순위 1위에 오른 현대건설은 그 '알래스카 토벌'시에 한꺼번에 휩쓸려 현대건설까지 존폐의 기로에 서기까지 했다. 현대건설의 사주인 정주영은 강원도 출신인데도 '토벌'대상에 오른 건 건설업계의 정치 싸움 때문이었다.1)

아마도 정주영은 '범 이북파'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이미 자유당 시절부터 권모술수에 찌든 재계에 5.16쿠데타는 한 수 더 높은 권모술수를 가르쳐준 것이다. 이제 박정희의 고향인 영남 연고 재벌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정주영은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처세술의 비범을 터득하게 된다.

심지어 노동자들의 취업에도 빽과 줄이 필수였다. 62년 국영기업체에로 출발한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의 경우 "'어머니가 아는 사람', '동네 아저씨', '아버지', '사촌형', '고교동창', '형님이 아는 사람' 등등 다양한 연줄이 동원되어야 채용이 될 수 있었고, 더구나 임시공과 본공(혹은 전공)의 구별이 있는 상황에서 본공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연줄' 혹은 '뇌물'이 힘을 발휘하는 상황이었다."2)

세상이 공적영역은 온갖 불신으로 가득 찬 반면, 사적인 줄과 뺵만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거야 과거부터 물려받은 것이지 박정권만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악화의 책임은 물을 수 있었다. 공적불신과 사적신뢰라고 하는 이 2중구조는 박정희 통치체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이었고, 또 이는 그 2중구조를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출처

1)
박동철 <1960년 기업집단의 형성고 구조; 기업집단의 형성 메카니즘의 구축을 중심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1960년대 한국의 공업화와 경제구조>(백산서당 1999, 150쪽)

백승열 <재벌그룹.재벌총수들>(문원 1995,341쪽)

2)
신원철 <경쟁양식과 노동자 정체성;1960~1970년대 기계사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아종구 외<1960~1970년대의 하국의 산업화와 노동자 정체성>(한울아카데미 2004,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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