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학공업은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는가?(박정희시기 중화학공업이 도입된 경위) 박정희

1. 많은 사람들이 잘못아는 것 중의 하나가. 70년대 당시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주도적"으로 하여 현재의 한국이 먹고산다는 생각인데요.

사실은 세계은행의 주도하에  벌어진 전 지구적 현상이었습니다.[추가:1973년 미국 닉슨행정부에서 주한미군 2개사단을 일방적으로 철수한것도 하나의 동기부여가 되었음. 그 뒤 카터도 대선공약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 따라서 한국은 (우선은 방위산업위주겠지만) 중화학공업을 시작할 충분한 동인이 주어진 상태.]

70년대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선진각국에서 산업구조 전환이 필요하게 되자, 미국은 남미에다가, 일본은 한국에다가 자국의 대형 중후장대 산업들을 이전합니다. 이것이, 한국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이라는 미명하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프로그램은 세계은행과 IMF가 작성 실행한 것이고 한국정부는 그에 맞추어 충실히 집행했을 뿐입니다. 한국이 1959년 이후 IMF의 정책간섭에서 벗어난것은 제가 알기로 1980년대 후반이던가 1990년대 초반으로 알고 있거든요.

한국과 남미 제 국가들의 이른바 중화학공업 육성책은 정말 너무나 똑 같습니다.

2. 한국은 성공(?) 하고 남미는 실패한 이유...

그런데 1978년을 계기로 한국과 남미는 똑 같이 경제불황에 빠져들고 이윽고 1979년을 거쳐 1980년이 되었을 때는 대규모 공황으로 발전했습니다.

대규모 플랜트가 들어오는 당시에는 플랜트의 건설과 이에 따르는 대규모 프로젝트 자금의 제공등에 의해 국가경제가 아주 잘 돌아갑니다. 문제는 플랜트 완공 이후입니다.

처음에는 가격 경쟁력을 가진 신흥공업국의 제품들이지만 곧, 기술개발력의 부족과 대형 플랜트 사업의 경영 노우하우 미비등에 의해서 곧 바로 이윤율이 급격히 하락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구미 선진국에서 자본재 투자가 끝나면, 총요소 생산성이 늘어나는데 반하여...)

그런데 대형 플랜트의 금융비용은 거의 국가적 사업이므로 신흥공업국이 감당하기에는 절대 금액이 너무 크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스템은 크게 취약해지고 작은 외란에도 경제가 크게 무너질 만큼의 상황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보통 신흥공업국가 정부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의존하여 (이른바 특별융자 형식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지만, 보통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지요..

그 결과가 바로 남미의 주기적 경제위기입니다.

한국도 1980년과 1984~1985년에 똑같은 위기를 당할 뻔 했습니다.
물론 보도통제등에 의해 일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모르지만...
매우 1980년 위기는 일단 정부의 채무보증과 채권탕감 및 구제금융 제공으로 일단 모면하지만 1984~5년간의 위기는 정말 매우 심각했습니다.
1997년 상황과 매우 유사하게 흘러갔습니다.

그 상황을 반전 시킨 것은 일본 금융의 60억달러 긴급차관이었습니다.(실제는 40억)

반면 남미의 경우는 미국 금융계가 그 당시 허약해져 있어서 채권회수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고요...

쉽게 말하면 한국은 "운"이 좋았을 뿐 그 어떤 정책적 타당성도..국민의 근면함도 위기를 넘기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국민이 근면했지만 그, 근면함을 제대로 조직하는데에는 젬병이었기 때문에 사상된 항이 된 것이지요...)

따라서, 한국의 대규모 기업집단 지원정책은 실패한 정책인데,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것 뿐입니다.

그런 "운"은 완전한 Brownian Motion이므로 예측불가지만..그런것 꺼정 고려하여 잘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이미 경제분석이 아니라 "신앙"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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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티조선의 SDE님


보론>

1.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시초를 논할때 빠지지 않는 것이 울산공업단지의 건설과 우리나라 최초의 정유공장건설, 포항종합제철 건설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서 중화학공업이란 철강, 조선, 기계 산업등의 중공업에 화학공업을 덧붙인 공업을 말하는데, 중화학공업이 이루어지는데 있어 공업단지의 조성은 필수적입니다.

예를들어 포항제철의 경우 제철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제철공장에서 배출되는 코크스, 타르, 이외의 탄화수소 분급물은 그대로 폐기처리되지 않은채 여러가지 공정을 접목시킨 처리 공장을 요구하게 됩니다.

현재 동양제철화학의 계열사인 제철화학이 대표적인데, 포항제철에서 나오는 콜타르를 원료로하여 카본 블랙, 카보머공정을 통한 점도증가제의 생산, 무수프탈산 공정을 통한 가소제와 수지원료의 생산, 피치를 이용하여 알루미늄제련과 연마제의 생산, 증류공정을 통한 나프탈렌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즉, 당연히 제철화학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무기화학산업의 원료로 사용되기에 주위에 감가삼각비를 고려한 공단의 조성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공단의 기조는 포항제철에서 제련공정에 이용하는 코크스공장에서 나오는 콜타르를 이용하므로 석탄화학공단으로 간주하게되며, 이를 두고 콤비나트(Kombinat)라고 합니다.

포항제철의 철강 생산능력이 늘수록 콜타르 처리공정은 더욱 커지게 되며, 이에따라 공정은 더욱 복잡해지게되며, 장치는 더욱 규모가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울산공단을 예로 들 경우,(울산에는 우리나라 최대정유공장인SK 와 울주쪽에 S-oil이 입주하고 있음) 파라핀 화합물을 위주로하여, 정유공정, 합성공정을 통하여 주위에 석유화학공단들의 입주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정말 박정희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에틸렌 생산을 위한 나프타 분해공장을 필두로 9개의 화학지원공장의 건설로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주변의 합성섬유공단등의 화학관련 공단등의 건설로 규모면으로 최대의 공업도시를 이루게 됩니다.

이 석유화학단지를 일컫어 컴플렉스(Complex)라고 합니다.

콤비나트의 건설의 경우 우리나라 제철산업의 자주성과 더불어 한국에서 공업이 성장하는 원자재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철강의 자급화를 이루었다는 통상적인 평가를 넘어, 우리나라 무기화학산업에 일대혁명을 가져오게 되었음을 감안할 수 있어야합니다.

컴플렉스의 건설은 우리나라가 유류행정의 독립을 확보하고, 외국유류판매업자및 정제업자들의 가격담합등의 횡포에서 벗어나 원활한 에너지와 화학원료의 공급을 이루었다는데 큰 가치를 둘 수 있습니다.

컴플렉스와 콤비나트는 장치계공업의 결정판입니다.

노동집약적인 면을 떠나 장치집약적인 산업으로 넘어감으로 애초 만들어질때부터 노동보다는 장치의 비용과 컴플렉스의 경우 가장 기초 원료가 되는 유가변동의 가능성을 충분히 감안해야 하므로, 아무리 오일쇼크가 닥쳤다고 해도 그만큼의 타격을 간단히 담합이나, 국제관계, 이란,이라크 전쟁등을 통한 유가의 급속한 상승에만 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집중 육성의 가장 큰 문제는 유가의 상승으로 컴플렉스의 에너지 수급문제로 야기되는 물가의 변동 뿐만아니라, 석유화학산업의 원가의 상승으로 중화학공업 전반의 타격을 입혔다는데 있습니다.

싸게 만들어 싸게 대량으로 판다는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의거, 중화학공업의 장치집약이라는 특성을 무시한채 과도하게 육성시킴으로 그 피해가 오히려 더 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비싼 장치와 기술을 들여 건설한 공장...더불어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나날이 규모와 숫자가 늘어난데다 납득할 수 없는 재벌육성정책등으로 우리나라는 과도한 중화학공업의 중첩을 이루며, 심각한 타격을 입어야 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증시변동에 따른 각 기업의 환위험방치책과 추세예측과도 이치가 같습니다. 유가의 변동과 판로의 개척, 환율의 변동등은 중화학공업을 육성시킴으로 어느정도 특성을 예측하여 균형있게 육성해야 했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중화학공업의 호황기가 물린 탓에 정밀화학제품 등의 제품의 다변화보다 오로지 대량생산에만 치중한 나머지 화는 더 커졌으며, 이는 전두환 대통령의 집권시기 중화학공업의 재조정과 수정이 불가피 했던 부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기 대량생산을 위주로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싼 값에 대량으로 팔아 재미를 톡톡히 보기도 했습니다만, 그동안 미국, 서유럽, 일본등의 전통적인 화학강국들과의 가격경쟁에서의 승리가 사우디아라비아등의 걸프만 연안국가들의 화학 컴플렉스 건설, 캐나다, 멕시코, 베네주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등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 국가들의 잇단 부상으로 부가가치가 나날이 떨어지는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원유가 생산되는 걸프만 연안 국가들의 컴플렉스 건설만 해도 중화학공업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며, 그들의 육성으로 유가는 어떠한 곡선을 그리게 되며, OPEC는 이에따라 어떠한 행로를 취하게 될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사실이었음에도 초반의 과도한 중복투자와 사태가 나날이 악화됨에도 이를 무시한채 지속적으로 추진한 수출드라이브 정책.

외형적 장치의 발달(공장의 잇단 설립과 그에따른 인프라 건설)과 수출의 증가만이 경제의 건실함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시절 경제규모가 커지고 수출이 증대됨에도 나날이 적자가 늘어난 현상으로 해석가능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중화학공업은 장치집약적이고 자본집약적입니다.
거대한 규모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제조하고, 가공할 수 있으며, 막대한 양의 선적이나 운반이 가능한 제품등을 생산하는 산업입니다.

비용은 용량의 3분의 2승에 달하게 되는 제곱-세제곱의 법칙이 적용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시장참여가 자유로운 대신 강력한 규제가 존재하며, 상황에 따른 변동에 민감해야하는 산업입니다.

중화학공업의 육성은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건설한 비료공장으로 이룬 식량의 원활한 조달의 목적을 넘어, 원자재와 에너지의 조달과 고부가가치의 산업을 육성시켜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이 있음은 분명 평가받아야합니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도하게 이를 집중육성하고, 중복투자를 감행한데다, 상황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음에도 이를 간과하였으므로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기형적발전은 오히려 산업구조를 기형화시키고, 이후 두고두고 교란시킨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2.

1978년부터 중화학공업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79년 박정희는 ‘중화학공업이 중복 투자로 문제가 많다’라는 지적을 확인하기 위해 창원공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측근에게 ‘이제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어’라고 했다고 한다. 군사작전식으로 밀어붙인 경제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었다.

 

중화학공업 투자에 수반되는 위험 부담을 국가가 대신해 줄 것으로 믿은 대기업들이 예상 수익률을 고려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중화학 부문에 과잉 중복투자한 결과, 당시까지만 해도 비교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노동집약적 경공업 수출 산업에 대한 투자기금이 고갈되었고, 중화학공업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으로 인해 경공업 부문 노동력의 공급이 부족하게 되었다. 해외 시장에서의 소비를 주목적으로 한 중화학공업은 국제석유파동으로 해외수요가 급격히 감소하여 과잉 생산의 위기를 맞게 되었으나, 독점자본에 대한 구조적 자율성을 상실한 국가는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중화학 부문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경제안정화 정책을 시행하려고 했으나 대기업들의 반발로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결국 경제적으로 약한 집단, 즉 중소 자본가, 봉급 생활자, 농민, 노동자들에게 경제안정화의 비용을 부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부산의 경우 1979년 시민들이 낸 세금은 3,880억으로 78년에 비해 32%나 늘어났다. 박정희는 의도적으로 재벌들을 키웠지만, 이제는 박정희의 손을 벗어난 거대한 공룡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이미 1977년에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하였으나, 수출 및 중화학공업 위주의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1970년대 말에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1979년 초 이란의 석유 생산량이 감소되면서 원유가격이 4배로 상승하면서 한국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물가고는 극심하였고, 79년 GNP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으며, 경상수지는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실제로 10.26 사태가 일어난 후 경제장관들은 박정희 정권의 성장 및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의 폐해가 10.26에 원인 중 하나였음을 시인하였다. 중화학공업 정책과 자원의 편중지원으로 인한 산업간 불균형, 고물가, 국제수지 적자, 계층간 빈부격차, 물자 부족, 부동산 폭등 등 경제정책의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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