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반체제 개혁세력은 없나? 국제

북한체제의 특성은 수령유일지배 체제라는 점이다. 주체사상의 정수도 바로 '혁명적 수령관'이다. 수령은 절대적 권위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을 통치한다. 다만 수령과 주민 사이에 '인전대(引傳帶)' 역할을 하는 조선노동당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조선노동당이라 함은 조직과 당원을 의미한다. 조선노동당 당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략 200만~3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숫자에는 일반당원과 고급당원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관심은 수령의 위임을 받아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고급당원일 수밖에 없다. 소위 파워엘리트(power elite)인 고급당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보호 하에 이념·정치·경제·군사·외교·대남·사회 등 각 분야에서 수령체제 유지를 위해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제1인자가 됐다. ⓒ EPA

  물론 수령후계자 김정일 위원장은 이들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보장해 주고, 많은 혜택을 준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선발과정이나 자격요건이 까다롭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충성심)'이다. 이 충실성 문제로 인해 북한정치사는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다.
  
  역시 가장 큰 격변은 1950년대부터 본격화된 수령체제 수립과정에서 나타났다. 수령 김일성은 수많은 정적과의 투쟁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였고, 이 과정에서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명멸해 갔다. 흔히 우리는 김일성 주석이 소련의 비호 하에 최고지위를 장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본인 스스로 수많은 권모술수를 동원해 권력을 쟁취한 측면도 있다.
  
  이러한 논리는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통용된다. 단지 수령 김일성의 장자라는 이유로만 후계자가 된 것은 아니고, 자신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제1인자가 된 것이다. 북한이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정치학원론적 차원에서만 보자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소수엘리트들이 '사탕과 채찍'을 적절히 잘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파워엘리트의 헌신적인 봉사, 북한체제 유지의 주된 축
  
  한편 북한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를 들자면 주민들의 수령 김일성에 대한 절대충성과 김정일 위원장의 용병술 외에도 파워엘리트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와 1995년부터 시작된 자연재해로 인해 북한은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았고, 체제붕괴 직전까지 갔지만 '고난의 행군'을 통해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기사회생했다. 여기에는 관료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뒤따랐다. 경제난 때문에 수백만 명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죽어가고, 수십만 명의 탈북자들이 생겼지만 북한에서는 이렇다 할 쿠데타나 궁정혁명, 심지어 주민폭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일부 증언자들은 군의 쿠데타 기도나 김정일 저격미수사건, 군중소요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설사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사전에 발각되거나 무위에 그쳤다는 것은 그만큼 그 체제가 체제유지에 필요한 연계망을 잘 구축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어떻든 북한 파워그룹들은 주민과 함께 난관을 헤쳐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고, 그것은 주민들의 동의를 얻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일하는 관료조직들이야말로 북한체제 유지의 근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북한 하부관료들의 부패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다. 예전 같았으면 사형에 처할 만한 죄에 해당하는 탈북자들도 북한땅에 다시 들어가고 재탈북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하위관료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료들은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북한엔 개혁새력이 없을까?'…'이견' 있으나 '파벌'은 없는 북한사회
  
  최근 들어 심심찮게 등장하는 질문이 북한에는 개혁세력이 없는가 라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김정일 위원장을 대체할 만한 대안세력이 없는가라는 암시가 내재되 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북한 정치사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수많은 파벌 투쟁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김일성 수령이었기에 북한 내에는 어떤 파벌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 EPA

  1945년 8월 해방이 되었을 때 우리 민족 중 누구도 한반도가 분단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 상황을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이미 강대국들은 한반도 분할을 논의하고 있었다. 특히 소련은 한반도의 쏘비에트화를 꿈꾸고 있었고, 이를 위해 '김일성 장군'을 전위정권의 책임자로 선정했다. 김일성 자신은 국내에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었지만 소련이라는 거대한 힘은 김일성을 영웅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김일성은 자신의 세력화를 위해 민족주의자, 소련파, 연안파 심지어 자신과 함께 싸운 갑산파까지 처절하게 제거해 나갔다. 권력은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김일성에게 대적하는 어떤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 동안 김일성 수령에게 정치적 도전을 했다가 패배의 쓴잔을 맛본 파워엘리트들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다. 다만 대표적인 엘리트들만 열거하면 오기섭, 현준혁, 장시우, 무정, 조만식, 박헌영, 허가이, 박창옥, 남일, 최창익, 김창봉, 김창만, 이상조 등이다.
  
  오늘날 북한에 '파벌'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수많은 파벌 투쟁을 통해 김일성 수령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전위조직에게 도전할 만한 파벌의 맹아가 대체로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감히 현재 북한내에는 어떤 파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만 정책방향을 두고 당·군간, 당·당간, 군·군간 이견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이나 경의선 복원 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여지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처럼 일단 김정일 위원장이 결단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북한이다.
  
  숙청 후 복권된 파워엘리트, 장성택
  
  1994년 김일성 사후 북한에서는 체제유지의 근간인 파워엘리트들의 부침이 많았다. 그 이유는 크게 자연사, 사고사, 숙청, 망명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사는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오진우·최광과 김광진, 연형묵 등이, 사고사는 김용순 등이, 숙청은 서관히, 김정우, 한시해, 최룡해(후에 복권) 등이, 망명은 황장엽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 중의 하나는 '숙청후 복권'된 파워엘리트들이다. 김정일의 관료정책은 충성심이 강한 자중에서 능력이 있는 자를 뽑되 체제나 정권에 도전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평생직장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만일 업무수행 중에 누군가 잘못을 범한다면 '당적 지도'를 통해 잠시 1-2년 지방 기업소나 농장에 내려가 수양한 후 다시 복권된다. 물론 이것은 폐단이 많은 제도임에 틀림없다. 신진사류들의 등용문이 막히고, 일단 고급관료가 되면 무사안일에 빠지게 된다. 김정일도 이러한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2001년부터는 '실력론'을 강조하고, 젊은 관료들을 등용하여 실전에 배치하는 등의 노력은 하고 있지만 관료주의를 타파하지는 못하고 있다.
  
  '숙청 후 복권'된 가장 유력한 파워엘리트는 역시 장성택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시대부터 수많은 최고급 엘리트들의 숙청이 있었고, 숙청 후 복권된 엘리트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일성의 친동생인 김영주였다. 최고권력자 자리를 지근거리에 놔두고 조카인 김정일 현 국방위원장에게 밀려 숙청되었으나 1993년에 복권되었다. 아마 이 이후 최대의 숙청 후 복권사건은 장성택이 아닐까 생각된다.
  
▲ 김정일의 '오른팔'이었던 장성택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 연합뉴스

  장성택은 자타가 인정하는 '제2인자'였다. 김정일의 친매제이고,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었던 장성택은 김정일의 '오른팔'이었으며, 당·정·군 엘리트들을 총괄지휘하고 감시·통제하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숙청당했다는 것도 놀랄만하지만 그렇게도 빨리 복권된 것도 놀랄 일이다. 따라서 장성택의 숙청은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이 아닌 어떤 정책적 잘못에 대한 '희생양'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은 장성택을 다시 필요로 하게 되었고, 장성택은 또 다시 중요한 책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아마 그는 향후 본격화될 개혁·개방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준비하는 직책을 맡게 될 것이다. 비록 '선군정치'를 통해 군이 체제유지의 첨병으로 서 있기는 하지만 군은 역시 국방에 전념해야 될 것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장차 체제정비의 정상화 차원에서 개혁·개방과 함께 제7차 당대회와 당조직 복원 및 후계자 문제에 대한 준비를 장성택에게 맡겼을 것으로 추론된다.
  
  결론적으로 북한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김정일의 조직장악력이다. 그는 조직장악을 위해 숙청이라는 강제와 지위 및 식품공급이라는 설득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절대적 지도자가 사라졌을 때를 대비하여 북한은 나름대로 후계자를 준비하고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개혁파'는 아니면서도 '우리 식 사회주의'를 살리기 위한 '허가받은 반대자들(royal opponent)'가 존재한다는 점에도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용어해설>
  
  인전대(引傳帶, Transmission Belt)
  
  사전적 의미로는 동력을 전달하는 벨트를 뜻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당과 대중을 연결시키는 당 외각의 각급 조직들을 비유적으로 통칭하는 말이다. 또 북한에서는 조선노동당 자체가 수령과 인민을 연결하는 인전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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