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북한의 경제 개혁과 후퇴 국제

소넷님

"그리고, 북한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고, 어느쪽이 득세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고 대외환경에 따라 강경, 온건이 득세하게 되죠."라는 문구와 관련하여 대외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더라고 대외환경의 영향성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북한의 김일성은 부시한테 주한미군 철수 안해도 좋으니 제발 수교만 해달라고 사정을 했어요. 그런데 부시가 그거 거부하니까 바로 핵만들기 시작했고 김영삼시절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까지 가잖아요.

그리고 2000년 이후 남북화해분위가 무르익으면서 북한의 김일성도 그것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아 박봉주 등 6.3그루빠들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구요. 물론 중간에 2차 북핵기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각에게 계속 힘을 줄 수 있었던 이유가 남한의 경우 정권재창출도 하면서 남북화해기조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거라는 가능성이 보이던 시기였어요.

그러나 2005년 후반기부터 남북화해기조의 노무현정부가 국내정치에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나아가 부시정부도 강경한 입장을 계속 유지하면서 폭력의 전초기지니 BDA니 하면서 압박하던 시기였고 그 결과 북한 내부의 힘겨루기에서 김정일도 군부쪽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거든요.

그 결과 박남주로 상징되는 5.4 그루빠들이 서서히 힘을 키우기 시작하고 국내에서도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한나라당과 이명박쪽에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 높아지면서 점점 군부가 완벽히 내각을 제압해가는 과정의 흐름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그리고 그 박남주는 얼마전에 화폐개혁에 실패해서  숙청당했더군요. 그러나 여전히 군부쪽 영향력이 더 강한 것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구요.

그러니까 이런 과정을 볼때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외변수가 전혀 없다는 것도 조금 무리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명박정부하에서 어떻게 될지 좀 더 지켜보면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 해요. 이명박정부하에서 북한에 과거 박봉주와 같은 케이스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저의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죠.
즉 이명박정부하에서 북한은 과거 개혁조차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보고 다만 중국과의 특구와 관련된 개방의 확대는 계속되리라고 봅니다.

참고로 2000년대 이후 북한의 개혁과 후퇴는 다음 글에 잘 나와 있더라구요. 박봉주가 했던 개혁과 박남주가 보여준 개혁의 후퇴도요. http://e-nkfocus.co.kr/bbs/board.php?bo_table=info&wr_id=18

그리고 개혁과 개방 그리고 특구와 관련된 트랙백(http://sonnet.egloos.com/4392047)을 주셨는데 고마웠습니다. 전에 대충 읽어봤던 것인데 이번에 다시 자세히 정독해 봤습니다.

위 글에서 소넷님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 말할 경우, 그 초점은 개혁에 맞춰져 있는 것이지 개방에 맞춰진 것은 아니다. 이는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을 둘러싼 그간의 수많은 학술적 연구들을 살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좋게 말해서 개방은 개혁을 위해 해야 하는 많은 업무목록 중 한 가지일 뿐이다.

두번째 문제는 개방이 실질적으로는 특구라는 뜻으로만 쓰이면서 한층 더 좁게 규정된다는 것이다. 특구는 나머지 대부분의 사회의 비개방을 함축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라고 하셨는데 개혁과 개방 특구의 삼자간의 관계에 대해서 개혁이 중심이고 설사 특구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특구로 인해 다른 사회의 비개방만 가속화하기 때문에 개방으로써의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신 듯 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시면서 북한의 2000년도의 개혁은
시장경제를 향한 개혁이 아니라 체제 내의 개선이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부분개혁’은 이미 1960년대 소련 및 동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었던 것이며, 1978~79년 중국의 조치도 이러한 체제유형에의 이행이라 간주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1979년이후의 본격적인 중국식 개혁개방의 모습은 아니라는 말씀이신 듯 합니다.

일단 개혁에 대해서는 소넷님 주장에 동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솔직히 제가 잘 모르니까) 하지만 이 부분도 박봉주의 개혁이 조금만 발전하면 80년대 중국식 개혁으로 가는 길목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80년대 중국식 개혁에 대해서 제가 좀 더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특구와 관련하여 특구가 나머지 대부분의 사회의 비개방을 함축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개성 해주 신의주로 이어지는 특구간의 연결이 이어지고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고 특구 외 지역의 인력들이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특구 안으로 들어온다면 특구가 단순히 나머지 사회의 비개방만을 의미하는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들꽃향기님과의 글을 통해 개성공단이 아직 완벽한 궤도에 오르지는 못했고 여러가지 추가적인 조치가 많이 필요한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이런 공단들이 느리지만 꾸준히 확대된다면 북한의 개방수준이나 그로 인한 의식변화가 꾸준히 개선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아무튼 소넷님이 트랙백을 해주셔서 다시 공부하면서 저도 몇자 적어봤습니다. 여러가지 고급스런 정보 감사드리면 앞으로도 건필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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