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변호인단의 변명(펌글) 정치

5.18 신화와 양민학살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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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가 지만원씨,신군부 집단의 변호인단의 논리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무명씨 말 마따나 저는 그리 똑똑하거나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니라 오히려 공격할 빌미를 주는거 같기도 하긴 하네요. 대충 그 논리들에 대한 반박을 내세워 보죠.

1. 공수부대 파견에 대해

어떤 공수부대를 투입할 지는 군의 내규에 따라 배치되었고, 한미작전권에 구애 받지 않는 부대가 공수부대라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수부대는 신군부의 정권 장악 계획 '시국수습방안'에 따라 비상계엄이 전국확대 시행되면서 투입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된다.

신군부는 '시국수습방안'의 전제 조건으로 시위대에 대해 군을 이용한 '과감한 타격'을 들었고, 내규와 관계없이 5월 초 부터 강원도의 11공수,양평의 20사단을 서울로 이동 하는 등 사전 이동 배치를 하고 있었다.

2. 광주재진입작전

27일 파견 경위야 어쨌든 공수부대는 광주에 수 천명이 와있는 상태이고 외곽도로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1만여발을 쏘면서 그 대로 작전을 시행한다면 27일 도청에는 수 백명의 시민이 남아있어 필연적으로 사상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태.

작전권과 관련이 없다지만 미국과 최소한 도청 재진입 작전 전에 대한 협의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군부는 21일부터 광주를 재진입할 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23일 현지 사령관 소준열 장군은 독자적인 재진입 작전을 실행한다고 계엄사령관에게 보고했지만 계엄 사령관은 거절했다. 그 이유는 시민들의 피해가 아니라 24일 한미간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진입 작전 내용 중 계엄군 측에서 사태 해결 방법으로 고려했다는 1,2,3번 항목을 들고 있는데 궤변이라고 생각함. 재진입 작전 내용을 보면 23일을 고비로 이성을 되찾아 가는 징후가 보인다고 평가하면서도 애초부터 '폭도가 광적'이라 평화적으로 사태 수습 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못 박아 두고 있는데 계엄군에서 굉장히 큰 선심이라도 쓴 듯이 말하는가? 신군부 측은 시민들과 협상하거나 요구 조건을 일부분이라도 들어주려고 않은 채 강경한 입장만 내보이고 있었고, 시민들을 이간질 하는 공작을 하면서 폭도와 양민이 분리될 때에 작전에 돌입한다고 결정하였다.

26일 오후 강온파의 갈등이 일어나고, 강경파가 장악하자 계엄사 측에서 피해를 줄기 위하여 도청에 재진입 했다고 주장도있다. 단순히 계엄군 측은 강온파 대립 한 가지 때문에 작전을 실행한 것인가? 그와 관계 없이 26일 새벽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워 전진하다 수습대책위의 반대로 광주 시민에게 하루 정도 시한을 주고 작전 실행 시간을 미루었다. 하루 정도 시간을 벌었다고 해도 계엄군은 1~2일 내로 무력으로 점거하려고 했다는 점은 확실히 경고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광주 시민 입장에서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끝까지 항쟁하는 사람들만 남아서 도청을 지킨 것이다.

또한 육본 측의 작전이 만들어졌다는 25일은 커녕 그 이전부터 신군부 세력은 강경 진압 주문을 하고 있었다.23일 전두환이 현지 지휘관에게 피해가 있더라도 조속하게 진압해달라고 주문한 것이나, 21일 황영시가 정식 지휘계통을 넘어서 직접 작전까지 짜서 전차로 밀고 들어가라고 내린 명령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시점에서 국내에 신군부에 위협적인 유일한 세력은 광주 시민들이기 때문에 신군부 핵심 세력들이 광주 시민들의 저항을 조속히 제거하려고 생각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3. 무기 반납 증언한 경찰

전남 경찰국 주상섭 통신과장 / 글에 적었음.


4. 삐라가 뿌려진 시점 

3공수의 광주역 발포 후 광주 지역 문화운동단체들이 범시민민주투쟁위원회라는 유령단체 명의로 21일 새벽, 21일 아침 뿌림. 그렇지만 곧바로 계엄군에 저항할 만한 규모의 무기 탈취는 안 이루어졌다. 20사단이 광주공단에 시위 진압을 나가는 과정에서 20사단 지휘차량이 피탈되고 무기 극소량이 탈취되었다고 하나, 그 사건에서 광주 시민들은 시위 진압에 저항한 것이였지, 애초에 의도적으로 무기를 목적으로 차량을 급습한 것은 아니다.

(20사단 충정작전보고 - ◇08:00 광주시 공단 입구 일원으로 소요 진압 차 61연대 출동했으나 소요 군중의 과열된 소요로 진압 작전 불가 복귀(인원 82/1413명, 차량 40대 ◇08:10 지휘 차량 육로 이동 광주시 공단 입구 도착 시 차량 1/4톤 14대 피탈, 인원 2명 부상, 1명 실종, 잔류 25명 12:00시경 탈출 복귀. 실종자 1명 이후 생존 확인(62연대 상병 박윤수))

상무대가 계엄군 본진인데 그곳이 점거 당하고 무기가 탈취되었다는게 말도 안된다는 것 정도는 잘 아시고 계실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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