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박정희 이럴수가 --충격 그자체입니다.

제목:  박정희

 

박정희 집권기간 중에서 초기 5년만 다루겠습니다 (1961년~65년)



이승만 정권이 4.19로 무너집니다. 그게 1960년입니다. 4월에 4.19가 일어나고, 새로 선거가 치뤄지고 8월에 장면 정부가 들어섭니다. 장면 정부는 5달뒤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데(1961.2), 이게 나중에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됩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경제개발을 하려해도 돈이 있어야 뭘 하지요. 장면 정부는 돈 나올 곳을 찾아 고민했는 데 불과 3달뒤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끝납니다.(1961.5.16)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장면정부가 무능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서였다 라는 것은, 사실 구라가 좀 섞인 것입니다. 정부가 수립되고 9개월만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는 데, 부패할 겨를이나 있었습니까.박정희가 말한 사회혼란은 4.19를 의미하는 거죠. 4.19터진 후에 이승만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고, 노동자들이 억눌렸던 게 풀려나면서 몇달 동안 데모가 많았었습니다. 장면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 줄어들었습니다만, 그 몇달동안의 데모를 갖고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정권 잡은 다음에 사회 곳곳을 장악하는 데2년을 보냅니다.
5.16후 이틀만에 국가재건최고회의 라는 것을 설치하고 자기는 의장이 아니라 뒤에 실세로 앉습니다. 두달뒤(7월) 의장으로 앉혔던 장도영을 숙청하고 자신이 의장이 됩니다.

 

이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게 어떤 곳이냐 하면,걔네들이 발표한 국가재건최고회의법에 따르면,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재판이 필요없이 자신들이 잡아들여 사형 이라고 판정하면 사형집행 되는 겁니다.
이러이러하게 한다 라고 회의에서 결정하면 그게 법이 되는 거구요.
뭐 뭐 해 라고 말하면 행정명령이 되는 겁니다.

어떤 건지 감이 오시죠.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뭘 했느냐.  부자들 잡아다 가두고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등을 강제로 뜯어냅니다. 이걸 뜯어낸 부하인 신직수는 상으로 검찰총장을 시켜주고요, 경찰, 군대를 장악합니다. 인사명령을 내려서 싹쓸이로 사람을 갈아치우죠.

그리고 1963년 선거를 치릅니다. 박정희가 국민 선거로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뭔가 이상한 거 못느끼십니까?  체육관 선거가 아니라 일반 국민 선거를 치른 겁니다. 전두환도 일반 선거로 하면 자신이 떨어질까봐 자신이 지정한 2,500명만 투표할 수 있다고 정해놓고 걔들을 체육관에 모아다가 99.9%득표율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용자는 있었는지 반대표 1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


그런데 박정희는 국민 선거를 치뤘습니다.  어떻게? 떨어지면 어쩔려구?
주목해야될 게,박정희는 이승만 정부의 자유당을 없애고 스스로 당을 창당했다는 점입니다. 민주공화당을 급조해서 창당하고 자신이 총재가 되어 선거에 나왔습니다. 생소한 당을 만들어 나온 군인이 바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게 민주적으로 되었으리라 믿는다면 당신은 순진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부정선거 의혹이 엄청났습니다. 쿠데타로 장악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는 데, 박정희의 개혁정책에 감동받은 국민들이 밀어줘서 박빙의 차로 윤보선을 이기고 대통령이 되었다... 이걸 믿는 분들을 볼때면 저는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런 드라마 스토리를 어떻게 믿을 수가.. ^^;;;

공화당을 창당하기 위해 박정희는 돈이 필요했었습니다.
1963년 증권조작을 크게 저지릅니다.
이것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 직접 대규모 증권조작을 벌인다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는 데, 실제로 이루어졌고 나중에 일이 들통나자 밑에 간부들을 잡아넣은 후, 김종필은 관여는 했으나 도의적 책임이 있을 뿐 법적으로 무죄... 라고 기소중지 처리합니다. 기소중지 처리를 한 사람은 신직수 였습니다. 공화당 4대 의혹 사건이라는 게 있는 데, 그중에 하나가 이 '증권파동' 입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4389.html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 된 이후,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런데 역시 문제는 돈.
종잣돈이 없는 데 경제개발이 될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1년만에 나선 것이 한일수교입니다(1964). 일본과 외교를 맺는 데 돈이 왜 나오는가.
일본에게  징용/징병 끌려간 사람들 월급하고 목숨값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었으니 미안해서 돈을 준거다. 내지는 단절된 외교관계를 복구하는 댓가로 돈을 받은 거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 데,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일본은 자신들이 한국 점령했던 것을 미안해 하지 않는 나라이고, 그때는 제국주의 시대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일본이 했다는 사과는 '유감이다' 이지 '미안하다'가 아닙니다.일본이 우리에게 한일수교로 준 돈은, 미안하다고 준 돈이 아니라, 끌려간 한국 사람들 월급하고 목숨값이었습니다.
일본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직접 지급하겠다고 하자, 박정희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한국정부가 받아서 대신 지급하겠다고 하고 돈을 받아갔습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이런 사실을 감추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가 미안해서 '한국 정부'에게 준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박통은 이 돈을 징용간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채서 쓸 생각이었습니다.
이 돈이 징용 월급과 목숨값이라고 알려지면, 징용갔던 사람들에게 돈을 줘야 합니다. 박정희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경제개발계획에 쓸려고 받아낸 돈인 데, 왜 나눠줍니까.


박정희가 한 발표를 우리 국민들은 믿었고, 이 거짓말은 이후 40년간 유지됩니다.2005년 43년만에 공문서가 공개되자 진실이 알려졌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신 나서서 뒤집어씁니다. 국가의 잘못이니, 징용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하겠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이 죽고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2&aid=0000089570&


당시는 일본에 끌려갔다 돌아온 국민들이 생존해있던 시기입니다. 일본과 외교를 맺는다고 하자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습니다.박정희는 계엄령을 내리고 전국 학교에 휴교령을 내립니다. 이명박이 자신도 한 때 운동권이었다 라고 말하는 게 이 것으로, 학생들이 한일수교 반대 데모할 때 자신도 한 몫 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의 반대는 군경으로 진압하면서, 박정희는 한일수교를 강행합니다. 다음해(1965. 8)에 협정이 맺어지고, 이에 따라 일본 차관이 들어오게 됩니다.
일본은 배상금이라는 단어를 거부하고 차관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3억 달러는 무상으로 그냥 받기로 했고, 차관으로 2억 달러가 들어왔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민간차관 1억 불이 들어옵니다.

자, 그럼 무엇이 문제인지 아실 것입니다. 박정희는 남이 받을 채무를 가로채서 자신이 쓴 것입니다.  징용끌려간 국민이 받을 돈을 국가가 가로채서 쓰고, 그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가난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수십년동안 우리 국민들은 일본법정에 가서 징용 월급 내놓으라고 숱하게 재판을 걸었습니다. 그때마다 한일협정으로 일본의 책임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누가 이미 그 돈을 받아다 써버린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있습니다.
징용간 국민들이 직접 받은 것은 아니지만, 경제개발에 쓰인 돈이다. 나라를 위해 쓰인 돈이고, 경제개발의 혜택을 전 국민이 받았으니 간접적으로 돌려받은 것이다.

죄송하지만, 이 논리를 타파하는 증거가 있습니다.박통이 이 돈을 재벌들에게 나눠주고, 뇌물을 받아먹었던 것입니다
.  =_=

1965년 우리나라 1년 예산이 3.5억달러이던 시절에 6억 달라가 들어왔습니다. (무상 3억, 차관 2억, 민간차관 2억)
엄청난 돈입니다. 당시 일본의 외환보유고가 9억달라 였다고 하는 데, 일본으로서도 자신의 외환보유고를 탈탈 털어 우리나라에 징용값을 치른 것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은행금리는 매우 높았습니다. 지금도 동남아 국가들 가보면 은행금리가 우리나라보다 쎄지만,당시 우리나라는 일년에 대출 금리가 17~25%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일본에게 이자 3.5%로 돈을 빌려와 7~8%에 기업들에게 빌려줬습니다. 은행, 재벌, 기업 할 것 없이 이 차관만 받으면 은행이자와 차익만도 엄청났기 때문에 미친듯이 몰려들었습니다. 

이 열풍 속에서 박정희는 기업들에게 누구 누구 에게 이 차관을 빌려줄지 뇌물을 먹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커미션으로 4~10%씩 뗐습니다. 대일차관은 10년에 걸쳐 들어왔기 때문에,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 있었습니다.

http://mahru.servebbs.com/zbxe/Board_Free/7403
http://www.coo2.net/bbs/zboard.php?id=bo_5&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39
http://mahru.servebbs.com/zbxe/?mid=Board_Free&doc-ument_srl=7403&page=1&search_target=regdate&search_keyword=200812


이 업무를 맡았던 것이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입니다. SK로 불리며 공화당 실세 4인방으로 꼽히던 김성곤은 기업들에게 차관을 배정하고 커미션을 떼어 박정희의 정치자금을 마련했습니다.박정희가 밑에 국회의원들에게 나눠주는 돈,  공화당 지부에 내려보내는 돈,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뿌리는 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김성곤은 나중에 박정희가 2인자 만들지 않기 위해 숙청작업할 때 숙청되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차관은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 데에도 쓰였고, 포항제철 만드는 데에도 쓰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적은 이 모든 것들을 아신다면 박정희의 공이라 해 주기 뭣합니다. 그 돈은 징용끌려갔던 국민들이 받았어야 하는 돈인 데 박정희가 가로챈 것이었고, 국가 경제개발에 투입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는 기업들에게 커미션을 받아 자신이 썼기 때문입니다.

 

 정치자금으로 썼을 뿐, 개인이 축재를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넘겨준 정수장학회나 육영재단 등은 엄연히 부정축재한 것입니다. 민간인을 잡아다 짜내어 강제헌납받고 자신의 가족에게 넘긴 것입니다. 박근혜의 재산은 얼마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MBC의 자산을 약 3조원으로 잡고, 정수장학회가 그 30%지분을 갖고 있으므로 1조원이라 칩시다.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16/2009011601181.html

정수장학회 자체 기금은 200억 정도라고 합니다. 이것만 해도 1조를 넘습니다 . 참고로 포브스 지에 등재된 한국의 부자들 순위를 보면, 이 금액은 10위 정도에 해당합니다. 삼성 이건희, 현대 정몽구 보다는 적고, LG 구본무 회장(1.45billion)과 SK최태원 회장(0.99billion)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니 박정희는 청렴했다는 소리는 제발 안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탈해서 딸에게 물려준 게 LG 재벌 급인 데, 어떻게 개인축재는 안했다. 청렴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의 정수장학회, 어떻게 돌아가는 조직인가  

밑에 글에서 정수장학회를 박정희가 강탈했다고는하지만 장학사업이라는 좋은 일 하는 곳이 아니냐. 개인재산으로 착복한 것처럼 말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 글을 씁니다.


많은 분들이 정수장학회가 공익재단인 데, 왜 그걸 강탈했다고 하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정수장학회는 일년에 3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 돈은 MBC로부터 20억을 받고, 부산일보로부터 8억을 받아 장학생들에게 재지급한 것입니다.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으로 쓴 돈은 1년에 2억뿐입니다(2007년 기준).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14748.ht★l

그런데 박근혜는 정수장학회에서 봉급을 연 2억5천씩 받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6055

다른 이사들과 직원들도 봉급을 받습니다.

어떻게 돌아가는 조직인지 감이 오시죠.
결국 이건 장학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재단을 만들어 세금을 면제받고,
장학금으로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박근혜와 그 밑에 사람들에게 돈 주는 걸로 쓰이는 조직입니다.



박근혜는 이제 정수장학회 이사장에서 물러나 평이사로 있습니다. 박대통령 비서관이었던 최필립이 이사장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박근혜 대표를 안믿는 것은, 정수장학회 조직같은 경우 넘어간지 30년이 넘었습니다. 이사장부터 신입까지 전부 박근혜 대표가 뽑은 사람들로 채워진 겁니다. 이사장에서 평이사로직함을 바꿔봤자 정수장학회는 박근혜꺼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래는 부패 박정희 정권....일부............

 

1. 증권파동 :

공화당 창당 자금 마련을 위해 증금주( 현 증권거래소 )를 200배 이상 조작하여 매각 - 그 여파로 증시가 유일무이하게 정부에 의해 강제 폐장되고 상하한가 제도 생김. 또 결제부족 충당을 위해 다음해 예산의 약 18%를 전용함( 현재 예산 약 130조원 )

2. 사카린 밀수 :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의 증언에 의하면 독립군소탕한Okamoto박정희가 주범임.
김두한이 국회에서 비판하자 정보부에 강제 연행하여 고문. 또 장준하가 ''''밀수왕초는 독립군소탕한Okamoto박정희''''라고 비판하자 투옥시킴.

3. 3분 폭리 사건 :

부정선거용으로 밀가루, 시멘트, 설탕을 차입하여 살포하고 그 후 가격조작(약 5배)하여 폭리를 취하게 함.

4. 차관 리베이트 :

정부가 외채를 도입하여 정경유착에 의해 약 5-10%의 리베이트를 받고 업자에게 나누어 줌 - 그 후 60% 이상이 도산하여 8.3 조치에 의해 회사채를 동결시켜 재벌들에게 천문학적인 특혜를 주고 그 결과 재벌들의 대마불사, 차입과다의 문제점 잉태.

5. 건설 리베이트 :

각종 공사를 5-10% 리베이트 받고 발주 - 원전, 지하철, 와우 아파트 붕괴, 성수대교 등 전국적인 부실 건축물 양산.

6. 박영복 부정 대출 사건 :

박정희의 종친으로 알려진 박영복이 정보부 간부와 함께 은행장에게 압력을 넣어 약 80억을 부정대출 - 단순 사기사건으로 처리.

7. 71년 대선 자금 700억사용( 당시 1년 예산의 40%로 현재가치로 약 50조원 ).
그리고 70년대의 경우 1년에 2회( 추석, 연말 ) 각각 200억원을 측근 등 약 3000명에게 촌지로 줌
(정주영씨의 증언에 의하면 현대의 경우 각각 20억씩 상납 )

8. 친인척 및 측근의 축재 :

동양철관 ( 장조카 박재홍 ), 설악산 케이블카( 맏사위 한병기 ), 김종필( 운정재단 명의의 서산농장 300만평, 제주도 감귤농장, 골동품 )등 친인척과 이후락 등의 천문학적인 축재.

9. 대우사태 :

김우중의 부친이 대구사범 은사인 관계로 대우중공업, 대우차 등을 김우중에게 헐값에 주고 종자돈까지 지원하여 재벌로 육성 - 99년 약 90조원대의 "세계 경제사의 최대 부도 사건"을 초래케 함.

10. 농협 비료 부정 사건 :

예비역 대령 출신인 백승빈이 약 50억원( 현재가 수천억원 )의 농협비료를 강탈함. - 단순사기 사건으로 처리.


11. 월남전 사상자 보상금 12억 불의 행방은 오리무중 

 

12. 박정희의 축재 :

현재도 정수재단 ( 박정희, 육영수 ) 명의로 대부분 보유
* MBC, 부산일보 ; 지학순 주교 및 三和( 60년대 10대 재벌 ) 사주의 증언에 의하면

  원주MBC, 부산MBC,   부산일보 등을 강제로 빼앗김.
* 영남대, 정수기능대, 영남종금. 경향신문 (사후에 한화에서 인수),  어린이 대공원.
* 스위스 비밀계좌 60억불설 ; 70년대말 미국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증거물 ( 1계좌에 9900만

   불 ) 공개됨.

상기에 기술한 사례는 공개된 사건의 일부분입니다.

60 - 70년대는 철권통치로 해방후 가장 암흑기여서 많은 사건들이 은폐 조작되었습니다.
일례로 공개된 사건인 "1. 21 사태"도 31명 중 29명 사살, 1명 자폭, 1명 생포로 발표되고 지금까지 통설로 되고 있으나, 90년대 중반 문민정부에 의해, 실제는 약 10여명이 북한으로 도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by 콜트레인 | 2009/08/30 20:45 | 정치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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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깊은우주 at 2009/09/26 19:55
1960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4위 중국 GDP 6백 1십억달러.
5위 일본 GDP 4백 4십억달러.
19위 필리핀 GDP 6십 9억달러.
29위 한국 GDP 3십 9억달러.
42위 홍콩 GDP 1십 3억달러.
57위 싱가포르 GDP 6억 4천만달러.


1965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4위 일본 GDP 9백억달러.
5위 중국 GDP 6백 9십억달러.
27위 필리핀 GDP 6십억달러.
39위 한국 GDP 3십억달러.
44위 홍콩 GDP 2십 4억달러.
60위 싱가포르 GDP 9억 6천만달러.


1970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2천억달러.
6위 중국 GDP 9백 1십억달러.
32위 한국 GDP 8십 9억달러.
38위 필리핀 GDP 6십 6억달러.
50위 홍콩 GDP 3십 8억달러.
59위 싱가포르 GDP 1십 8억달러.


1975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5천억달러.
8위 중국 GDP 1천 6백억달러.
31위 한국 GDP 2백 1십억달러.
37위 필리핀 GDP 1백 5십억달러.
48위 홍콩 GDP 1백억달러.
56위 싱가포르 GDP 5십 6억달러.


1980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1조달러.
11위 중국 GDP 1천 9백억달러.
28위 한국 GDP 6백 3십억달러.
36위 필리핀 GDP 3백 2십억달러.
40위 홍콩 GDP 2백 8십억달러.
58위 싱가포르 GDP 1백 2십억달러.


1987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2조 4천억달러.
11위 중국 GDP 2천 7백억달러.
18위 한국 GDP 1천 4백억달러.
34위 홍콩 GDP 5백억달러.
45위 필리핀 GDP 3백 3십억달러.
59위 싱가포르 GDP 2백억달러.


1992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3조 7천 6백억달러.
10위 중국 GDP 4천 2백억달러.
14위 한국 GDP 3천 3백억달러.
30위 홍콩 GDP 1천 4십억달러.
39위 필리핀 GDP 5백 2십억달러.
40위 싱가포르 GDP 5백억달러.


1998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3조 8천억달러.
7위 중국 GDP 1조달러.
15위 한국 GDP 3천 4백억달러.
25위 홍콩 GDP 1천 6백 6십억달러.
40위 싱가포르 GDP 8백 2십억달러.
43위 필리핀 GDP 6백 5십억달러.


2002년 세계 GDP 순위 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3조 9천억달러.
6위 중국 GDP 1조 4천 5백억달러.
11위 한국 GDP 5천 4백억달러.
28위 홍콩 GDP 1천 6백억달러.
40위 싱가포르 8백 8십억달러.
43위 필리핀 GDP 7백 6십억달러.


2006년 세계 GDP 순위 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4조 3천억달러.
4위 중국 GDP 2조 9천억달러.
13위 한국 GDP 8천 9백억달러.
34위 홍콩 GDP 1천 9백억달러.
40위 싱가포르 1천 3백억달러.
43위 필리핀 GDP 1천 2백억달러.

자료출처
http://www.nationmaster.com/time.php?stat=eco_gdp-economy-gdp&country=ks-korea-south
이 주소의 사이트로 가서 1960년도를 클릭하면 그해의 세계 GDP순위가 쭉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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