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 김영삼과 후보단일화를 안했던 것이 백번 옳았다. 김대중

흔히 민주개혁진영 인사 중에도 김대중의 실수를 나열할 때 6.29 후 김영삼과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여 노태우에게 정권을 헌납한 사실을 지적하는 분들이 많다. 김삼웅 선생은 김대중을 가장 잘 이해하는 문필가인데도 상기 인터부에서 부분적으로 이런 인식을 다소나마 엿보게 하는 감이 있어 한마디 해 둔다.

거두절미 그때 후보단일화는 안한 것이 백번 옳았으며, 했다면 천추의 한이 되었을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 왜?
 
첫째 김영삼은 진정한 의미의 민주개혁진영 인사가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을 보라, 그의 본래의 영혼과 철학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은가? 한나라당에 넘어가 그러고 있으니 망정이지 민주연합세력 대통령이 되어 저런 행동 해댈 때 뒷감당 어찌할 뻔 했는가?

둘째, 그가 김대중의 지지 속에 야권 단일후보로 대통령이 되어 IMF를 맞았다면 민주세력은 국민들에게 도매금으로 몰매 맞고 매장되었을 것이다. 전두환,노태우를 감옥에 넣고 단죄할 경우에도 그 역풍은 고스란히 민주개혁세력 전반에 돌아갔을 것이다. 북한과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초강경 발언을 서슴치 않던 김영삼에게 민주개혁세력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을 것이다. 자기들이 지지한 사람이 그러니까 누구를 탓할 것인가?

다행히 김영삼이 한나라당에 갔으므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민주개혁세력도 자기 본래 노선을 적으나마 실천할 수 있었다고 본다. 김영삼이 가는 곳은 항상 말썽이 있고 분열이 있게 마련이다. 독불장군에 만인이 자기를 주시해야 속이 차는 스타기질 등이 필연코 초래하는 정치환경이다. 과연 난공불락같던 보수진영이 김영삼이 들어가자 갈갈이 찢어졌다. 전두환 노태우가 감옥에 가고 한나라당을 총괄 기획했던 박철언과 앙숙이 되고 후일 그 또한 감옥에 들게 되었으며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 김윤환도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3당 합당의 또하나의 주역 김종필은 도저히 못참겠다 하고 김대중에게로 넘어올 정도가 되어 비로소 민주개혁진영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상식적 관점을 대문필가, 대정치가들이 놓치는 이유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김대중에 대한 한국 제도권 언론의 부정적 언급이 국민들에게 다소 세뇌화되어 공정하게 접근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립서비스 차원에서 조금 건드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김대중을 이 시대의 거인으로 보고 존경하나 물론 그에게도 약점은 느낀다. 그러나 그 약점은 상기와 같은 종류는 아니다. 몇가지 생각하는 바 있으나 댓글 영역인 여기서는 약한다. 그리고 설령 그에게 불만과 약점이 있다 해도 그의 장점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크고 우람하며, 이 시대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을 가장 대표적 인물의 하나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덧글

  • 쌍창워라 2009/07/24 19:12 # 삭제 답글

    퍼갑니다
    어떤 대구놈이 이걸 트집잡아서
    제가 좀 당했거든요
    그간 제가 김대중대통령을 존경할 줄 만 알았지
    아무 것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아서
    엊그제 정동영기사에서 소울28이란 놈이 이걸 물고 늘어졌을 때
    적절한 답변을 할 수가 없었어요

    무슨 뜻이 있으셨겠거니
    하고 100% 믿음을 갖고 있었으므로
    아무것도 알아보려 하지 않은 제 탓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 ㅇㅇ 2010/04/16 09:13 # 삭제 답글

    강준만 교수가 썼던 '김영삼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보면
    김대중이 왜 김영삼을 신뢰하지 않았는지
    납득할만한 이유가 나옵니다.
    상기하신 김영삼의 독불장군 스타일 이런거 말고도 많습니다.
    저도 결과적으로 보면 그 때 단일화하지 않은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뭐 그 때 단일화했다면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니...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했으니 그건 이 정도로 넘어가고
    암튼 당시 단일화 불발에 대한 김대중의 변은 충분히 납득이 갈만하다고 생각되네요...
  • persona 2015/10/09 14:38 # 삭제 답글

    1987년 대선에서 김영삼과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자 비난의 화살은 김대중에게 쏟아졌다. 김대중은 “당시 여론은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나에게만 돌렸다.”라고 괴로워했다. (2009년 8월 24일, 시사인 내용 중)
    http://www.sisain.kr/news/articleView.html?idxno=5112

    1987년 후보 단일화 실패의 책임은 전적으로 김대중 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면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당시 추진위원회 대표의 한 사람이던 장을병 전 민주당 대표는 이렇게 술회했다.

    이번만은 김대중 씨가 양보를 하라는 쪽으로 계속 설득했고, 마침내 김대중 씨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김영삼 씨가 대선 후보를, 김대중 씨가 당권을 맡는다는 합의가 이뤄져 기자회견만 앞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영삼 씨가 딴소리를 하고 나왔다. 1971년 선거 때 대선 후보는 김대중, 당권은 유진산이라는 식으로 분리하다 보니 당과 선대위(선거대책위원회) 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더라. 그러니까 후보도 당권도 자신이 전부 가져가겠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씨가 승복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더러 발가벗고 무조건 항복하라는 거냐?’ 그렇게 단일화는 성사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무산되고 말았다.” (2010년 4월1일, 한겨레21 내용 중)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7042.html


    결론 : 블로그 본문 논점과 좀 다른 주제이지만, 후보 단일화 실패의 책임은, 대선 후보와 당권까지 독식하려고 한 김영삼이 더 크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메모장

Yahoo! blog ba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