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차별의 기원과 그 의미변화에 대해서.(일제와 이승만 박정희의 전라도 차별) 정치

아래 어떤 개쌍도꼴통이 58년도 여론조사랍시고 "전라도는 간사하다"라는 편견(진짜 편견)이 있어서 전라도차별이 개쌍도하고는 무관하다고 하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몇마디 할께.

일단 이승만이 전라도를 차별한 것과 박정희가 전라도를 차별한 것은 조금은 차이는 있어. 이승만은 전라도가 싫었다기 보다는 전라도에서 강력한 좌파세력이 존재했었기 때문이었지.

여순사건이나 제주도4.3 민주화운동등이 이승만 집권시기에 있었거든. 그때 이승만은 철저하게 반민족적 작태를 저질럿고 말야. 그런 결과 이승만은 전라도사람에 대해 그 유명한 하와이 발언을 했지.

그리고 이승만의 경우 주요내각과 관료에 극도로 호남사람을 쓰지 않았어.(아마 5프로정도였을 거다.) 그런데 말야. 재미있는게 그 이승만정부를 타도한 장면정부에서는 호남사람들이 무려 20프로나 차지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 만틈 이승만 정부와 전라도(특히 지식인)과는 대립전선이 있었던 거지.

물론 역사적으로 일제에서 부터 전라도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봉이 되었어. 대표적으로 갑오농민전쟁의 시발점이 전라도였고 또 전봉준이었잖아.

그리고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이후 벌어진 정미의병에서 호남지방의 의병활동이 폭발적으로 고양되.(이건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책에 나오는 말이야.) 그 당시 대표적인 의병장이 임실의 전해산 이석용, 함평 장흥의 심남일, 보성의 안규홍, 장성의 기우만 기삼연, 구례의 고광순등이 나오지. 그래서 일제는 아에 호남의병 토벌작전으로 3광작전까지 벌였어. 그 결과 호남쪽 항일투쟁가들이 간도나 연해주쪽으로 많이 이동하게 되었고 그들은 주로 무장투쟁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이승만의 외교론과 대립하게 되. 이승만이 파리강화회의에서 윌슨에게 우리를 위임통치해달라는 미친 소리를 했다가 임정에서 쫒겨난것은 다 알거야.

사실 전라도에 대한 마타도어는 일본 식민지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자행이 되었지. 일제의 경우 과거 임진왜란때 호남지방에서 이순신에게 당했던 아픈 기억이 있거든. 게다가 반봉건 반제국주의운동이 갑오농민전쟁이 또 호남에서 일어났고 그 때 일제는 갑오농민전쟁을 우금치전투에서 제압하고 호남인 학살을 자행할 정도였지. 아마 이게 얼마전에 다큐멘타리로도 나왔을 거야.

아무튼 일본제국주의는 그렇게 특히나 반호남적이었지. 거기다 이승만 역시 사회주의세력이 상당부분 득세하고 있었던 호남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었던 거지.(참고 지금은 사회주의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사회주의는 반제국주의 이념의 탑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래. 그리고 한국의 사회주의에 대해 나중에 한번 쓸 기회가 있겠지만 그 당시 한국에 사회주의가 유행했던 것은 민족독립수단으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이른바 신간회등으로 대표되는 좌우합작이 빈번히 가능했던 거야. 비타협적 민족주의좌파와 사회주의간의 연대는 비일비재했어.)

아무튼 그 당시만 해도  해도 전라도쪽이 가장 사회주의세력이 가장 많이 득세를 했거든. 사실 5.16쿠데타 이후 윤보선하고 박정희가 붙었을때 전라도쪽은 박정희를 오히려 더 많이 밀었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박정희가 과거 남노당출신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을 정도이니까 말이야.

결국 아래 58년 이진숙의 논문에 나온 "전라도는 간사하다"라는 남한사회의 편견은 남한 내부의 극우독재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었다는거지.(일단 북한은 내비두고 남한내에서 유독 전라도만 사회주의 세력이 강하다면 이승만과 같은 극우꽅통눈에는 전라도가 간사해 보였겠지. 언제라도 친일독재세력타도의 선봉장으로 전라도가 뜰 수 있으니까 말이야. 실제 여순이나 제주등에서 그런 조짐이 있었고. 마치 개쌍도새끼들이 영남독재패권을 타도하는 최선봉에 섰던 전라도를 깡패범죄자로 몰아갔듯이 말이야.) 더구나 장면정부하에 호남인사들이 대폭 등용된 것을 볼때 이승만독재정권타도로 전라도차별은 어느정도 일단락이 되었던 거지.

그런데 이런 일제시대와 이승만정권하에 생겼던 전라도차별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 박정희라는 것이지. 물론 이제 그 의미는 상당히 달라.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듯 5.16쿠데타이후 첫 선거에서 전라도 사람이 박정희를 사회주의자로 착각해 상당히 많은 표를 주었음에도 박정희는 전라도차별을 했었기 때문이지. 거기에는 전라도차별의 기재가 반공이데올로기에서 영남패권이데올로기로 이동됨을 의미하는 거지.

구체적으로 박정희는 장면정부하에 대폭적으로 등용되었던 호남인사들을 상당히 줄이고 대신 영남인사들을 과거 장면정부때보다 더 많이 등용을 하게 되지. 정확하게 호남이 8프로정도 줄고 영남이 8프로정도 늘어나게 되지.(이갑윤 김만흠 자료참조) 그리고 원래 박정희가 보여주었던 변절의 역사를 다시 한번 반복하게 되게되. 그러니까 박정희는 과거 친일군인-남로당입당-여순반란사건배신-다시 극우로전향의 변절의 역사를 걸어갔던 거지. 동시에 경상도패권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재구축을 하게 되고 말야. 그 결과 71년 대선 즉 김대중과 맞붙기 전에 윤보선과의 대결에서 부터 경상도패권주의를 자극하게 되. 즉 이미 63년 대선에서부터 이른바 "신라임금을 뽑자"라는 구호를 가지고 선거운동을 하게 되지. 대표적으로 박정희정권때 국사교과서에서 신라를 띄우고 백제를 깎아내리는 짓을 하지. 지금의 뉴라이또가 하는 짓이랑 비슷한 짓을 그때 박정희도 했던 거야.

거기다 정계,재계,금융,언론,군장성 출신들은 적게는 4~50%에서 많게는 80%까지 영남출신들로 채워져.(5공정권에서 절정을 이루었지) 동시에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모든 주요기관들 역시 반이상이 영남출신들로 채워졌고, 영남정권 40여년동안의 기록을 보면 영남출신 재벌들이 그 당시 전체 기업 금융대출의 58%를 독식하게 됨을 알 수 있지. 이는 이북출신이 받던 대출을 제외하면 서울,경기,충청,전라,강원,제주 출신 기업인들은 고작 20~25%의 기업대출을 서로 나눠먹는 정도로 영남정권 당시 영남을 제외한 전지역 출신들이 사실상 차별을 받은 것을 의미하지.(-이 부분은 책에서 발췌-) 물론 상대적으로 전라도출신들이 그 중에서 가장 차별을 많이 이 받게 돼. 왜냐하면 김대중이 이끄는 민주화세력과 호남이 최선봉에서 영남독재정권과 싸웠기 때문이지. 문제는 영남패권세력은 그들의 추잡한 패권주의를 감추기 위해 지역주의문제에서 영호남대결구도니 지역주의양비론이니 하면서 이른바 물타기를 해왔다는 거야. 영남패권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 전라도차별을 실컷 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추잡한 작태를 감추기 위해 지역주의양비론을 펼치는 꼴이라니. 특히 일제와 이승만정권하에부터 부분적으로 생긴 편견을 아에 정권차원에 확대재생산해 내고 각종 방송과 언론을 통해 전라도사람=깡패범죄자사기꾼 구도를 고착해 갔던 거야. 이것이야말로 작금의 지역주의논의의 핵심이라는 거야. 그리고 민주당대선후보로 당선되어 놓고도 그 당을 지역주의정당이라며 분당을 해놓고 영패정당인 딴나라당과는 연정을 하자는 패륜적 작태를 반복한 인간이 바로 노무현이고 말이야. 이런 패륜은 인륜역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거든. 이것은 그 만틈 영남패권주의에 경상도은 철저히 물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 유명한 밥상머리 교육말야.

아무튼 전라도차별이 영남패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었던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돼. 이것은 반공이데올로기는 그나마 이념적 대결과정에서 생긴 근대적 차별이지만 영남패권이데올로기하에서 생긴 전라도차별은 봉건적 차별이기 때문이지. 마치 김정일이 김일성을 세습하는 형태나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노무현등으로 영남패권이 세습되는 거랑 별 차이가 없다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난 봉건적인 영남의 패권적 작태부터 일소해야 비로서 근대적 정치발전이 가능하다고 보는 거지. 동시에 그 봉건적인 영남패권이 남북간의 평화와 통일에 가장 큰 적이고 또 영남패권세력이 집권하면 결국 한국의 경제는 절단이 나게된다는 역사적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가야.

박정희의 초창기 경제발전은 사실 장면정부의 국가주도의 경제계획발전을 무단도용한 거니까 무효이고 동시에 임기말 극심한 경제파탄을 생각해 볼 것. 그 뒤 전두환은 국제경제환경상 저로 호황을 누렸을 뿐이고 노태우 김영삼은 한국경제를 절단냈고 노무현 역시 한국경제를 상당부분 망가뜨렸지. 동시에 이명박은 앞으로 찬찬히 보게 될거야. 어떻게 나라를 개판내는지를 말야.

정리하면, 전라도차별의 기원은 일제-이승만-박정희로 이어져왔고 이것은 전라도가 반제국주의-반독재의 선봉에 있었음을 의미할 뿐이라는 거야. 일제-이승만-박정희의 전라도차별의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이것은 제국주의논리-극우독재이데올로기-영남패권 이렇게 되는 거지.

사실 역사를 공부하면 할 수록 나는 전라도사람에게 한없는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는 거야.

충무공 이순신께서 하신 그 유명한 말 "무호남 무국가"라는 말이 조선의 역사에서는 진리임을 말이야.






덧글

  • 혁신한국 2010/09/01 09:20 # 삭제 답글

    독립운동가가 전라도에 가장 많았다는 글을 썼다고 자진 삭제하신 걸로 유명하신 분이군요. 내용을 읽어보니, 개쌍도가 유언비어를 날포한다는 이야기가 보여서, 실소를 금할길이 없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딱히 전라도 사람에 대해 별무신경인 상황인데 말입니다. 경상도가 전라도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면 경상도 사람들의 정서상, 호남 사람들은 경상도에 자리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 소개를 간단하게 할까 합니다. 저는 서흥김씨 영남 중파 28대손으로 저희 19대조 할아버님이 한훤당 김굉필 어른이십니다. 호는 안 만드셨던 분인데, 제자들이 한훤당이라 불렀기에, 지금은 한훤당이 호가 되신 분이시지요. 호남의 명문가가 몇군데 있지요. 최산두, 김안국, 윤호정(윤선도의 아버지),김인후(성균관 문묘에 호남인으로 유일하게 배향된 인물), 송강 정철등 호남의 명문가라 불리우는 선비들을 가르친 분이 바로 저희 가문의 19대조 할아버님인 김굉필 선생입니다. 제자중 가장 크게 된 제자는 조광조, 이언적이었으며 퇴계이황, 이율곡으로까지 그 학문이 전승이 되어졌습니다. 역시 성균관 문묘에 배향이 되신 분이며, 동국 18현, 동방 5현에 나란히 자리하고 계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 분의 후손으로서 귀하가 지목한 몇가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호남사람들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귀하는 반란사건등등을 이야기 했습니다만, 이는 후시대의 이야기입니다. 1948년 이승만 정권 수립후 독립운동가들로만 구성된 내각요인들이 발표가 되었지요. 10대 내각 임명자중에 호남인은 대법원장 김병로 한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영남은 4명이었지요. 모조리 독립운동가들로 구성이 되었지요.

    반란사건은 그 이후에 생긴 일입니다. 즉, 시기상으로 보아 이승만 대통령이 호남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것은 이미 독립운동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부터라고 할만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3.1운동의 지역별 발생현황에 대해서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제 블로그에 지역별 3.1운동 발생현황에 대한 자료가 있습니다. 전라도는 전국에서 압도적인 꼴찌였습니다.

    그리고 전라도는 조선말기 최대의 친일단체였던 진보회의 발생지이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였던 이승만 대통령이 좋게 볼만한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던 지역이었지요.


    이승만 정권 당시에 호남인사들이 대우받지 못한 것은 자료상으로도, 그리고 호남인으로 의심되는 귀하 스스로도 인정하는 내용이니만큼 더 이야기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4.19이후에 정치권에 등장한 장면 내각에서 호남인사의 등용율이 20%에 해당한다는 귀하의 주장에 대한 의문에서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지금에까지 호남출신들이 대거 등용이되었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단한번도 존재했던바가 없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정말 학술적으로 귀한 자료이고 연구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자료이겠지요. 귀하가 언급하는 장면 내각 당시의 20% 호남인사 등용에 관한 자료가 있다면 조심스럽게 요청을 해봅니다.
  • 콜트레인 2010/09/03 16:52 #

    혁신한국님 / 모 이상한 소리는 패스하고

    경상도쪽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독립유공자누락된 인구가 무지 많습니다. 전라도 쪽에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누락된 것을 압니다. 특히 동학까지 포함하면 경상도는 전라도에 쨉도 안됩니다.

    그리고 해방정국당시 경상도도 엄청나게 빨갱이들이 많았습니다. 박정희 형 박상희부터가 빨갱이출신이었고 유명한 대구폭동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검색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장면정부시기 호남출신이 등용된 것은 이미 여러 자료에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론 경상도 꼴통사이트에서 그 부분만을 빼고 헛소리많이 하는걸 봐 왔구요,

    제 블로그 글중에 이미 이와 관련된 자료가 있으니 잘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본글은 제가 쓴게 아니고 복사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독립유공자관련글도 디시에서 복사해온것이었고 그 당시 비밀글로 하는것을 깜박 잊어버려서 그리된 것입니다.
  • 혁신한국 비판 2010/09/25 20:41 # 삭제 답글

    님 닥치고 집안 자랑 하지마세요.. 콜트레인님이 맞는 소리하셨는데요..
  • 이라도 2015/01/15 03:00 # 삭제 답글

    대한민국에 전라도 하고 경상도 밖에 없어요? 경상도가 다 해먹는다고 징징대는 전라도... 타도 사람들이 보기엔 둘다 똑같아요. 재수 없구요.
  • 이라도 2015/01/15 03:00 # 삭제 답글

    대한민국에 전라도 하고 경상도 밖에 없어요? 경상도가 다 해먹는다고 징징대는 전라도... 타도 사람들이 보기엔 둘다 똑같아요. 재수 없구요.
  • 2015/01/15 03:0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1/15 03:0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토종부산 2020/07/03 11:11 # 삭제 답글

    토종 부산사람입니다. 10년이 지난 글에 댓글을 답니다.
    남북 갈라치기한것도 몇년 안됩니다. 그런데 좌우로 우리같은 장기말들이
    기득권자들이 전략으로 나눈거에 서로 싸울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휘둘리지말고 서로 똥이라고 욕하지 맙시다.
    그럴수록 진보 보수 정치인들 배불리는 행동들입니다. 다른것같죠? 그렇게 믿고싶은것입니다. 똑같습니다.
    내가 믿던 그 정치 정당도 오래되면 썩습니다.
    차타고 2-3시간 거리고, 전라도 지역에 자주 놀러가는데 그냥 이웃이고 좋은사람들뿐입니다.
    우리끼리 싸우지맙시다 이 장기말들아.
  • 평영남비 2021/04/12 08:01 # 삭제 답글

    저기요 경상도 지역은 고조선 이래 노예지역이었습니다 흉노세력 김일제의 정복으로 세워진 나라였고 김일제 치하에서 노예생활하다

    마한전라도 세력의 집권하에 있던 진한경상도는 마한 속국이었고
    다른 백제 고구려는 중앙집권시기가 빠르고강성한반면 6세기 법흥왕율때에서야 율령반포한 열등한 지역 발전느린 지역이 바로 경상도 신라였습니다 사료에도 광개토대왕릉비문에도 신라내물왕이 고구려에 군사요청하며 신라성에 왜인들로 가득하니 청컨대 군병력 보내달라하는 기록이 있고 이에따라 광개토가 기병 4만을 지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신라는 왜구들에 의해 이미 점령당하던 약소국인 열등한 지역이었습니다

    백제 무령왕 의자왕 에게도 신라성 40개를 뺏기고 대야성까지 뺏겨 경주도 끝날상황에 당나라의 동진정책 동조해 백제를 당나라에게 뺏기게하는데 가담한 동조세력이 신라였고 당나라만 빼고본다면 신라는 약소국이었고 열등한 지역이었습니다

    당나라에 백제가 멸망하자 경상도 전라도에 웅진도독부 계림도독부를설치해 당나라가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를 장악하여 지배하였고 매소성 기벌포 전투로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쳐 신라가 통일했다고 경상도인들은 주장하나 결과적으로 그 전투이후 신라는 당나라의 도독부치하에서 당나라속국이었지 통일 한 사실은 단한번도 없습니다

    이후 후삼국시대 후백제 견훤에 의해 경상도땅 경주는완전히 유린될만큼 경상도는 항상 열등한 약소국이었으며

    고려시대엔 고려태조 왕건은 왕위를 전라도 출신 혜종에게 물려주었고 시무조에 나온 차령이남은 등용하지마라란 사실은 조작으로 문경세제 이남인것으로 판명되었고 이에 따라 천민집단부락인 향 소 부곡이 경상도에만 가장 밀집되었으며 이는 신라마지막왕 경순왕은 후백제 견훤에게 죽임당하고 이후 고려에 자연스레 흡수합병된 약소한 나라였음을 방증해주는 것입니다 천민집단 밀집지역 경상도는 고려시대때 철저히 차별받은 지역이었습니다.

    이후 조선시대 성균관 배향된 김굉필 등을 언급하며 마치 조선시대 경상도가 출세했다라고 주장하나 경상도는 단한번도 주역이 된적없는 약소하 열등민 이었습니다 서인 경기 기호세력과 충청호서 지역 호남서인 위주의 조선 조정 세력이 조선을 장악했고 경상도 동인은 항상 비주류였으며 영정조 100년 그이후 고종 때까지 약 200년간 경상도는 이괄의 난 반란세력으로 낙인되니 과거시험 자체를 응시할수없는 지역이었고 평영남비를 통해 이를 방증해주고있으며 조선시대 경상도는 철저히 차별받은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1592년 임진왜란시기 12년간 경상도에만 왜구성이 29개가 지어졌고 남자가 경상도땅에 남아나지않았다는 실록 기록과 원숭이 털가진 아기가 태어난다는 실록 기록보면 왜구들에게 완전히 장악된 지역이 경상도 였고 남아나는 경상도 남자는 없고 여자들은 성노예들로 전락했으며 임란 이전에는 3포개이전이후 정유재란까지 경상도는 약 20년간 왜구들에의해 완전히 유린된 지역이며 사료에보면 지금의 부산기장 지역으로 왜구 주력부대가 상륙했기에 그곳 일대가 왜구 일본인 피라고보시면 됩니다. 백제 충청과 삼한중 가장 강력한 목지국의
    전라도 세력이 일본을 점령하고 일본으로 진출 일본을 장악한 반면 경상도는 그 일본에 의해 장악당한 열등한 지역이었습니다.

    근현대사에 들어 1909년 일제는 경술국치전 전라도에 의병들이 너무많아 전라도의 의병들을 죽이기위해 호남대토벌작전을 벌일만큼 전라도의 의병들은 강했고 많았으며 반면 경상도는 친일경찰 노덕술을 비롯해 친일파들이 제일 많았고 전라도는 일제의 의병군탄압으로 만주로 이주해 대부분의 의병세력들이 전라도 출신이었고 제일많았으며 세가 가장쎘습니다 의병기록 남아있는 세부사항은 1940년 이후 기록으로 경상도가 제일 많은것으로 나오나 친일파 또한 전국에서 제일 많았고 전라도는 친일파가 제일적은반면 1910년 기록이 존재하지않지만 역사적 사실인 동학농민운동 1909년 호남대토벌작전 1927년 광주학생 항일운동 을 봤을때 일제에 항거한 의병들이 전라도가 가장 강했고 많았다는 사실을 방증해주는것이고 반면 경상도는 1940년 이후 기록을 빗대 경상도가 제일 독립군들이 많다고 주장하나 친일파역시 그 기록대로보면 제일 많은지역이고 경상도는 임란 당시에도 조선길을 안내한 경상도인들 출신지가 경상도 부산기장 쪽이 대부분이고 같은 경상도인들이 가튼 조선인들의 코를 잘라짚으로 엮어 왜에게 바쳣다는 기록을볼때 경상도 배신기질이 농후한것을볼때 1940년이전 전라도의 의병군세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적었음을 알수있습니다


    박정희 들어서나경상도가 산업화되어 잘사는것처럼 보이나 그 이전 역사적으로 경상도는 열등했고 약소한 지역이었습니다 허나 전랒느는 고조선 마지막왕 준왕이 남하에 전라도 익산에 수도를 삼고 있어 민족적 정통성을 전라도가 가지고있으며 삼한중 가장 강성했던 마한수도 익산이었고 당나라와 신라의 공격에 충청도 백제는 패해 끌려갔지만 전라도 마한귀족들은 백제를 구원하는 지원군을 보내지않았고 백제 부흥지역으로 최후의 보루로 백제를 구해내려한 자부심 있는 지역이었으며 고려 조선시대 인재의 절반이 전라도에서 나올정도로 풍요하면서도 똑똑똑한 인재들이 중앙정부 요직에서 자리를 잡았고 전주이씨 조선본향으로 이성계의 초상을 모신 전주가 있는 지역이었을만큼 자부심 있는지역이었습니다

    근현대사에들어 박정희의 독재배신 군사쿠데타 이전까지 전라도는 한반도의 중심이며 최후의 보루였고 반면 경상도는 열등하고 약소한민족이며 경상도만 고조선부여계열이 아닌 북방경쟁에서 밀려난 흉노족 계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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