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ang] 민주주의의 요체, 참정권, 박정희 경제성장론 정치

1.
민주주의, 비약과 단계

 
근대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는 분명히 구분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분은  참정권(suffrage)의 비율이 아닙니다.
 
근대민주주의의 기준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선거에 의해서 국가권력이 바뀌는 것이 보장되어있나 그렇지 않나 라는 점과, 다른 기준은 다수결로도 절대로 범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가 있다는 원칙입니다. 선거에 의한 권력, 그리고 그 권력도 범접할 수 없는 개인의 기본권이라는 두 가지 원칙이 보장되어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권력이 본질적으로 그 구성원들에게서 나온다는 원칙과 또 그렇다고 해도 다수의 의견으로도 범할 수 없는 소수의 신성한 권리가 보장된다는 두 가지 원칙은 서로 다르지만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두 원칙이지요.
 
18 세기 말 미국에서 인류 최초로 근대민주주의의 이 두가지 원칙을 담는 성문 헌법이 제정되는데,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물론 원칙이 수립되었다고 해도 흑인노예나 여성이 민주주의의 구성원에 포함되는 것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근 200 년이나 걸린 셈이지요. 100% suffrage 가 보장된 현대에도 빈민계층은 사실상 거의 투표를 하지 않으니까 실제적으로는 민주주의절차에서 제외되어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면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한 번의 비약과 단계적인 확산을 통해 완성되어가는 것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나 남한 등의 민주주의 선진국에서의 핵심적인 토론은 이제, suffrage 같은 절차적 문제만이 아니라, 소위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봐야하는가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간단하게 얘기하면 국가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당하지 않을 자유 (Negative Freedom) 와 인간답게 살 권리 (Positive Freedom) 를 어디까지 규정하고 보장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지요. 제가 예전에 쓴 글에 나오는 청계천 노점상의 권리를 어느정도까지 인정하고 보장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하는 단계가 된 것이지요.
 
그런데 비민주사회에서 민주사회로 가는 일은 대단한 점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비민주사회에서 권력을 누리던 집단이 쉽게 그 권력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민주사회는 끊임없이 비민주적 욕망에 의해 위협을 받습니다.
 
남한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지요. 남한은 1948년 부터 1961 년까지 상당히 모범적인 민주사회를 만들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미군정이 거의 강제로 만들어 놓은 민주적 성문 헌법에 따라 사회의 질서가 움직이고 있었고, 사상표현집회결사의 자유도 상당한 정도로 보장되어있었고, 선거에 의한 권력의 교체도 얼마든지 가능했었지요.
 
이승만이 부정선거로 이 절차를 무시하려하자 전국민이 들고 일어나서 이승만을 하야시킨 것도 보면 남한 인민의 민주의식의 성숙성을 또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인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쿠데타를 통해 민주정부를 몰아내고, 헌법을 바꾸고, 종신독재의 길을 열었지요.
 
이 사건은 단순히 민주주의의 단계론으로 용서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는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분명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더구나 선거에 의한 권력교체라는 과정만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사상표현의 자유라는 또 하나의 기본적인 권리를 압살합니다. 후자는 전자를 더구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이지요.
 
다시한번 정리하면 민주주의의 두 가지 원칙은 17 세기 말의 영국, 18 세기 말의 미국이라는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관철될 수 있고, 사실 관철되어야만 하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영미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은 이 원칙을 무시하고 산업화의 길을 걸었는데, 역사를 되돌이켜 보면 그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합니다. 프랑스혁명정신을 짓밟은 나폴레옹 1세과 3세의 18세기 프랑스, 구독일, 구일본, 그리고 최근에는 구소련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남한의 경우도 박정희 이전의 1960년대와, 박정희 이후의 1980 년대 이후, 즉 절차적 민주주의가 보장된 기간이 다른 민주적 원칙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내용으로 봐도 훨씬 건전합니다. 이것은 최용식선생 등 재야경제학자들이나, 고려대의 이종화 교수등 제도권의 경제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고, 박정희 경제성장론은 전혀 근거가 없는 허구요 신화에 불과합니다.
 
제 의견을 정리하면, 민주주의는 물론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지만, 비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분명한 기준 역시 존재하고, 경제발전을 이유로 이 분명한 기준을 무너뜨리는 것은 쉽게 용서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영-미-남한의 경우를 보면 민주주의하에서의 경제발전이 수준도 높고 내용도 좋습니다.
 

(2003년 12월 01일)
 
 
 
2.
절차적 민주주의와 참정권문제 계속
 

고대 그리이스의 인구의 10% 자유민만 참정권이 보장된 민주주의도 민주주의입니다. 물론 노예계급에게는 적용이 안되는 민주주의이지요.
 
민주주의는 참정권을 갖는 공동체의 성립과 그 공동체내에서의 민주적 절차를 보장함으로서 달성되는 것이지 모든 인간을 다 포함시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들어 남한의 민주주의가 북한인민들까지 다 포함시킬 필요는 없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일본인들까지 다 포함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현대민주주의는 대부분 보통선거(universal suffrage), 즉 성인(이 기준은 18-25세 까지 다양하지만)이면 남녀, 임금, 교육수준 불문하고 참정권을 갖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universal suffrage 를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개념적으로 현실적으로 옳지 않다고 봅니다.
 
19 세기 이후 영국과 미국은 완전한 민주주의가 확보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기준은 물론
 
1) 인민에 의한 권력 교체가 가능한가
2)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권리장전에 포함된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가
 
를 기준으로 하는 겁니다.
 
맑스마저 영국과 미국에서는 평화적 사회주의이행이 가능하고, 혁명이 난다면 그것은 지배계급만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잘못이 된다고 말했지요.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이후에는 흑인을 포함한 모든 남성의 참정권이 보장되고 영국 역시 차아티스트운동의 성공등으로 18세기 중엽이후에는 점차 남성의 경우 universal suffrage 쪽으로 나아갑니다. 물론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은 19 세기와 20 세기 초 내내 여성참정권운동을 통해서 19세기 말 뉴질랜드를 최초로 20 세기 전반에는 스위스를 제외한 전 자본주의-사회주의국가에서 보장이 되지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있어서 사상표현, 집회결사의 자유가 참정권에 우선한다는 생각은 이 당시 역사를 봐도 교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Chartist 운동(첫번째 요구가 universal manhood suffrage)이나 여성참정권운동의 역사도 보면, 참정권이 없는 계층집단이라도 사상과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있었기 때문에 향후 참정권을 획득하는 사회운동을 펼치고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도국들의 경우 1차대전, 2차대전 독립후에 문자해득력을 참정권부여의 기준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저는 이 기준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부활시켜서 적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원래 근대 공화주의는 교양있는 시민, 적어도 정치적 토론을 이해하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참정권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더구나 예를들어 현대국가처럼 기본 읽고 쓰기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는 곳이라면 문맹 혹은 의무교육 수료 여부를 참정권의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상 전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의 의견입니다. )
 
마지막으로, 박정희시대와 19세기 영미는 비교자체가 우스운 일일 정도로 19 세기 영미의 민주주의의 수준이 높습니다.
 
오히려 19 세기 영미 민주주의의 경우 여성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문맹자나 극빈프롤레트리아트를 참정권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히틀러나 페론식의 파퓰리스트가 득세할 수 없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현대민주주의는 현대과학과 마찬가지로 무식한 자들까지 참정권을 허용하고 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직은 개인 생각이지만 제 희망으로는 이 생각이 21세기 세계경영과 관련해서 미국에서 점차로 힘을 얻어갈 것으로 희망하는 사항임. 미국의 경우 하이스쿨 졸업장이나 동등자격증을 참정권의 조건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민주주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춘 사람이 많아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중간계급이 두꺼워져야 민주주의가 개화한다는 평범한 상식도 사실은 같은 얘기입니다. 글을 읽고 쓰고 정치적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훈련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2003년 12월 02일)
 
 
 
 
 3.
사상의 자유, 참정권
 

[1] 사상의 자유
 
제가 아는 지식으로는 사상의 자유 문제를 처음 체계적으로 제시한 정치철학가는 Jone Locke 로 1689 년 명예혁명 일년 후에, On Toleration 이라는 팸플릿을 썼지요. 16-17 세기 내내 극심한 종교분쟁에 지치고 지친 영국인들이 자기 주장과 다르다고 사람들 그만 죽이고 이제는 그냥 좀 인정해주자라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홍세화가 프랑스야말로 Tolerance 의 대명사인 것처럼 주장을 했지만, 그저 무식한 택시운전사의 생각입니다. 사상 표현의 자유도 그 기원이든, 또 가장 빨리 발전을 하고 보장이 되는 곳이든, 영국과 미국입니다.
 
사실 18 세기에는 영국, 특히 미국 식민지에서는 17세기 부터 상당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심지어는 루이 왕정의 프랑스에서도 계몽철학가들이 황당한 주장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식민지의 경우 기본적으로 구대륙의 종교탄압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처음에 많았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가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사실 현재의 미국 수정헌법 1 조도 흔히 표현자유라 말하지만, 그 문구를 보면 종교의 자유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사상자유의 근원은 사실 종교개혁이후 극심한 종교분쟁에 지치고 지쳐서 유럽인들이 발견해 낸 합의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글은 물론 19세기 중반 존 스튜어드 밀의 <자유론>입니다. 지금 읽어봐도 탄탄한 논리로 짜여있습니다.
 
밀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의 한가지로, 인간 사고의 오류가능성(fallibility)의 가능성을 둔 것은 대단한 사고의 이너베이션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10,000 사람이 맞다고 해도 1 사람의 사고, 주장을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10,000 사람이 다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학의 발전논리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현대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의 방법과 현대과학의 방법론 사이의 유사성을 찾는 논리의 시초를 밀이 제공한 것이지요. 사실 과학이 그렇지요. 그리고 과학은 현재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격려하는 분위기이지요. 현대과학의 발전과 현대민주주의 사회의 발전이 궤를 같이하는 철학적 뿌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의 역사에 관한 영어로된 출판은 많이 있는데... 글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censorship 아티클부터 읽어보시는게 어떨까 합니다. ^^
 
[2] 현대 민주주의와 참정권
 
문맹자의 투표권을 제외하는 것이 비민주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이미 현대사회는 일정 범죄이상을 저지른 사람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외국인의 참정권도 제한하며, 청소년의 참정권도 제한합니다.
 
문맹자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은 예를들어 성, 인종, 지역 등으로 제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문맹자는 언제든지 글을 배워서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참정권을 획득할 권리 자체를 빼앗는 것이 아니니까, 저는 전혀 비민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실제로 현재 문맹자에게까지도 투표권을 주는 일이, 참정권운동의 지나친 과격화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파퓰리스트적인 감상에 빠져서 치밀하게 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고,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 이제는 깊이 생각하기 시작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뭐 다행히 우리나라나 미국의 경우 (내가 관심있는 나라들) 은 문맹자는 별로 없으니 상관없습니다만, 저는 고등학교학력을 요구해야 한다고 까지 주장하는 사람이니까... ^^
 
[3] universal suffrage 의 문제, 역사적 사례
 
Universal Suffrage 의 성과는 전체적으로 보아 네거티브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참정권운동이 지나친 결과물을 가져왔다는 결론이 가능하겠지요.
 
물론 제 생각이 정치적으로는 소수이지만, 학문적으로는 꼭 소수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예를들면, Juan Linz 같은 학자는 나찌, 스페인, 포르투칼의 파시즘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의 universal suffrage 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봅니다. 남한의 초기의 이승만 정부를 Bruce Cumings 는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체제와 비교하는데, 그것도 사실은 Universal Suffrage 의 직접적인 잘못된 결과일 수 있지요. 전후 독립한 나라들도 별 예외없이 그리 성적이 좋지 못합니다.
 
인류가 21 세기에는 이제 과도하게 진행되어 사람이라면 개나소나 가지고 있는 참정권을 이제는 거두어들이고, 민주시민의 자격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참정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가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4] 인도의 저발전과 민주주의에 대하여
 
인도의 저발전은 경제정책 자체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겠지요.
 
이차대전 이후에 서유럽 일본 남한 대만 싱가폴 등이 사실 미국의 정책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열린경제를 지향하지 않을수 없었기 때문에 고속성장이 가능했었다면, 인도나 브라질의 경우는 미국의 입김이 약해서 수입대체산업추진으로 닫힌 경제를 추구했기 때문에 저발전상태로 남은 것입니다.
 
인도의 사례 - 민주주의는 보장되었는데 경제발전이 더딘 역사 - 는 그 이외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에서 상당히 좋은 교훈을 또한 우리에게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례를 오히려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의 수준에 비해 너무 많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는 이관요-박정희 식의 파악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 즉 참정권이 보장되면 끝이다라는 사고방식의 폐해였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기회의 평등을 또한 기본정신으로 합니다. 인도는 카스트제도 때문에 이것이 보장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참정권과 더불어서 카스트제도를 파괴하는 개혁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민주개혁이지요. 즉 민주국가가 서고, 카스트제도를 국가의 힘으로 파괴해서 신분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국가의 에너지를 기본교육등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에 더욱 많이 사용했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인도의 경제개발실패 사례는 민주주의의 다른 조건, 즉 신분제철폐와 교육강화라는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에 참정권의 보장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민주주의, 절름발이 경제개발이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경제정책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에 저발전이 되었다는 것이 일차적 해석이지만, 그런 수구적 경제정책이 상당히 오래동안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또한 민주주의 저발전 - 카스트제도의 존속과 문맹의 지속 -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5] 남한의 경제구도
 
남한의 경제구도는 박정희고 뭐고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닙니다.
 
일본, 남한, 대만, 그리고 동남아의 경제구도는 이미 1947 년경 미국 국무성, CIA 자료들을 보면 이미 워싱턴에서 다 짜여져 있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2 권에도 이미 보면 자세히 기록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을 대공산권에 대항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기지로 하고, 남한, 대만, 그리고 동남아를 일본 경제와 연계시키며 그 경제에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는 구상입니다. 2003 년 현재 일본, 남한, 대만, 동남아 경제권은 정확히 그 이상의 실현태에 불과합니다.
 
이승만이든 장면이든 박정희든 별로 이 기본구도를 어길 수도 없었고, 어기려고 해보지도 않은 것입니다. 사실 박정희는 이 구상에 개기려고 해보지요. 결국 수입대체산업을 추진합니다. 소위 자주국방논리와 방위산업추진이 그 산물이지요. 결국 이 사건(핵무장도모)으로, 미국의 눈 밖에 나고, 암살까지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박정희 암살뒤에 전두환정권부터는 이 자주국방노선을 포기하고, 소위 개방화, 안정화라는 미시장경제에의 편입을 더욱 가속화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김재익노선이고 우리 경제체질을 완전히 개선한 좋은 정책이었습니다. (최용식, 이종화교수 등의 인식도 저랑 같습니다.)
 
박정희와 남한 경제개발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박정희의 공헌이 있다면 전체적으로 네거티브, 그리고 경제왜곡입니다. 참고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중, 남한경제발전이 최하위입니다. 그 이유가 박정희의 네거티브 공헌때문입니다. 반면에 박정희와는 무관하게 교육수준은 네 마리 용중 최고지요.
 
필리핀은 기본적으로 토지개혁에 성공하지 못해서 소농들이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없었고, 마르코스가 박정희보다 오래 살아남아서 경제개발에서 뒤떨어진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한반도는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으로 인해 상당한 수준의 경제인프라 - 철도, 국도, 교육 - 등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이나 미국과는 달리 일제는 한반도를 확실하게 일본경제에 포함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출발점이 매우 다릅니다. 아무튼 필리핀은 기본적으로 아시아 네마리 용과 출발점 (initial condition) 이 다릅니다.
 
그래도 제 생각으로는 박정희가 망치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기 때문에 남한도 박정희가 마르코스처럼 더 오래 살았다면 필리핀 처럼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003년 12월 05일)
 
 
 
 
4.
경제성장, 박정희의 경제정책, DJnomics 
 
 
최용식 선생님의 박정희 경제성장론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훌륭한 작업을 보다 보니까 그 동안 한국경제 성장이 박정희가 잘해서 된 것이라고 얘기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서시 보고 얼굴 찡그리던 못생긴 동네아줌마들의 모습과 겹쳐지더군요.
 
서시 얘길 다 아실 겁니다. 서시가 하도 예뻐서 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속이 안좋아서 항상 찡그리고 다녔답니다. 근데 동네 아낙들이 서시가 왕의 총애를 받는 걸 보고, '아하, 얼굴을 찡그리면 남편사랑을 받겠구나' 이렇게 판단해서 장안에는 찡그리는 얼굴이 갑자기 유행을 했더라네요. 결과는 뭐겠습니까? 동네 여편네들 남편들한테 귀싸대기 맞는 소리만 들렸다는거 아닙니까?
 
(음, 그리고 논의를 위해서) 서시가 왜 얼굴을 찡그렸냐면 왕의 총애를 너무나 받다 보니까 지나치게 좋은 것만 많이 먹어서 속이 아파져서 찡그린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은 오래 살지도 못하고 일찍 죽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일의 순서가 이렇게 되지요.
 
1) 서시의 여자로서의 펀더멘틀이 워낙 좋았다. 
2) 그런데 이쁨을 받다보니까, spoil 되어서 넘 맛난건만 골라먹어서 속병에 걸려 찡그리고 다녔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펀더멘틀이 좋기 때문에 왕의 사랑을 받았다.
4) 속병때문에 안 찡그렸다면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무병장수다산했을 것이다.  
 
왕이 서시를 이뻐한 것은 얼굴을 찡그려서가 아닙니다. 원래 얼굴이 이쁘거나, 밤일을 기가 막히거나 하거나, 아무튼 뭔가 얼굴 찡그리는 것 말고도 이유가 있어서 - 다시말해 경제 펀더멘틀이 좋아서 ^^  - 이뻐한 것입니다. 찡그리는 얼굴에도 "불구하고" 왕의 총애를 받은 것이지, 찡그리는 얼굴 "때문에" 총애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 경제가 60, 70 년대에 잘 나간 것은 박정희의 경제 정책 때문에 잘 나간 것이 아닙니다, 박정희의 잘못된 경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잘된 것입니다. 또 하나 조금 미묘한 것이지만, 박정희의 집권의 배경이 사실 경제펀더멘틀이 좋아지는 것과 좀 관련이 있습니다.
 
앞의 비유를 써서 이야기해 보지요. 서시의 이야기와 같은 논리구조 입니다.
 
1) 토지개혁 + 교육수준 + 미국주도의 시장경제편입 이라는 3 대 요소의 결합으로 인해 경제성장잠재력이 높아졌다.
2) 토지개혁으로 소농이 된 사람들이 멋모르고 박정희의 보나빠르티즘=파시즘 을 지지했다.  
3) 박정희의 파시즘에도 불구하고 경제 펀더멘틀이 워낙 좋아서 한국경제는 잘 나갔다.
4) 하지만 속병이 깊어져 결국 1980 년 의 위기, 1997 년의 위기로 인해 박정희식 경제체질을 대수술해야 했다.
 
이렇게 스토리가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1) 토지개혁 + 교육수준 + 미국주도의 시장경제편입 이라는 3 대 요소의 결합으로 인해 경제성장잠재력이 높아졌다.
 
에 대해서는 많은 미국의 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결과들이 있습니다. 특히 토지개혁+ 교육수준 thesis 는 하바드의 대니 로드릭의 중심 테제지요.
 
제가 보기에 제일 중요한 사실은 1950년대 말이 되면 신규노동력의 명목교육수준이 이탈리아를 넘게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60, 70 년대 경제성장의 동력이지요. 1960년,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에 벌써 그렇게 높아진 교육수준이 박정희 때문입니까? 아니지요.
 
1960, 70 년대에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했지요. 왜냐하면 소농들이 소팔고, 논팔아서 자식들 교육시켰기 때문입니다. 소팔고 논파는게 왜 가능했느냐? 소와 논을 소유한 소농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소농이 왜 많아 졌느냐? 당연히 토지개혁을 상당히 과격하게 성공시킨데다가, 6.25 무렵에 지주계급이 거의 다 죽고 정치적 힘이 약화되었기 때문이죠. 이건 프랑스혁명이후와 매우 비슷하죠.
 
그 담에
 
2) 토지개혁으로 소농이 된 사람들이 멋모르고 박정희의 보나빠르티즘=파시즘 을 지지했다.
 
에 관해서는,
 
맑스를 읽어보세요. 프랑스 혁명의 토지개혁으로 탄생한 소농계급이 나폴레옹 1 세과 3 세를 지지한다는 한탄(?) 이 있지요. (아마,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이나 부뤼메르 19 일인가 뭔가에 있는 분석으로 기억됩니다.)
 
비유로 돌아가서 말하면, 서시가 너무 이쁨받아서 맛난 것만 골라먹다가 속병에 걸린 것처럼, 토지개혁으로 소농이 된 사람들이 갑자기 파시즘을 지지한 겁니다. 안해도 되는데 말입니다.
 
3) 박정희의 파시즘에도 불구하고 경제 펀더멘틀이 워낙 좋아서 한국경제는 잘 나갔다.
 
이건 최용식 선생님이 과거의 경제성장률들을 제시했으니 됐고요.
 
4) 하지만 속병이 깊어져 결국 1980 년 의 위기, 1997 년의 위기로 인해 박정희식 경제체질을 대수술해야 했다.
 
는 것은 지금 겪고 있는 일이니까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참고로 왜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관치재벌경제) 한국경제 발달과 아무 관계가 없느냐 하는 것을 보이는 데에 두 가지 간접 증거가 있습니다.
 
첫째 증거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혹은 더 나은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나라들 중에 관치재벌경제를 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관치재벌경제 안하고도, 싱가폴은 해외자본유치로, 홍콩은 자유방임으로, 대만은 재벌억제 중소기업육성책으로 성공했지요. 그리고 남한을 비롯한 이 네 성공한 경제체제의 특징은 전부 미국주도세계시장에 반강제로 일찍편입되었다는 점과 인적자본이 이미 1950년대에 갖추어졌다는 점이지요.
 
자, 이 네 경제 중에, 1997 년 경제위기 겪은 나라가 어디게요? 남한 하나 뿐입니다. 1980 년에 마이너스성장한 나라가 어디게요? 남한 하나 뿐입니다. 네 나라 중 어디가 젤 못살게요? 남한 입니다. 홍콩과 싱가폴은 남한의 2-3 배, 대만은 30-50% 더 잘 삽니다.
 
이런데 어떻게 박정희의 파시즘 관치재벌경제가 우리경제를 일궜단 주장을 합니까? 조선일보의 세뇌란 의심이 안듭니까?
 
자, 두번째 증거를 들어 보지요. 관치재벌경제 썼는데도 성공한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권위주의적 관치재벌경제는 상당히 많은 나라들이 추진합니다. 리스트를 보시려면 암스덴 책을 보세요. 그런데 그 나라중 제대로 경제 성공한 나라는 남한 하나뿐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할 것 없이 전부 골로 가지요? 왜 그럴까요? 그 나라에서는 토지개혁 + 높은교육수준 + 미국주도의 세계시장에 대한 편입 이 세 개 중 하나, 둘, 혹은 전부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결론 나왔죠?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토지개혁 + 높은교육수준 + 미국주도의 세계시장에대한 편입
 
이것이 성공요인 입니다. 이걸 하고도 경제개발 못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습니다.
 
2) 관치재벌경제
 
이건 경제 망치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관치재벌경제를 했지만, 앞의 삼요소가 갖추어진 나라(대만, 싱가폴,홍콩,남한) 들 중, distant 꼴등입니다. 또 수많은 관치재벌경제 쓴 나라들 중에 앞의 삼요소가 갖추어진 남한만 그래도 반은 따라 간거지요.
 
결론 났지요? 아직도 박정희 "때문에" 경제성장 했다고 우길 사람 있나요?
 
담에 DJnomics 이후는 어떻게 됩니까? 환란을 당한 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모든 나라 (물론 베트남과 중국 - 정확히 우리 60 년대를 따라하는 나라들을 뺀) 경제 중에 남한 경제가 으뜸이지요? 홍콩, 싱가폴, 대만 그저 심심하거나 마이너스 성장할 때 우리는 마구 성장하고 심지어는 올해도 뭐 3% 성장이요?
 
대단한 겁니다.
 
좌파 여러분, DJnomics 가 경제 망쳤다고 우기는 한나라당 따라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그렇다고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가 통하겠습니까? 데이타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2002년 01월 04일)
 
 
 
 
5.
박정희와 서시 Fallacy 2 
 

서시 Fallacy 가 뭔지는 이제 잘 아실 겁니다. 서시는 찡그린 얼굴에도 불구하고 원래 이쁘든 잠자리 기교가 뛰어나든 암튼 기초 체력이 좋아서 임금한테 사랑받은 건데, 장안 동네 아줌씨들은 찡그린 얼굴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찡그리고 다니다가 남편들한테 뺨따귀만 맞았죠?
 
그런 경우가 사실 적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서시 fallacy 에 빠집니다.
 
박정희가 한 일이라곤 나라 경제 망치고,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성을 짓밟고, 밤이면 이쁜 처녀들 강제로 데려다가 진탕 술퍼먹으며 노는 거 밖엔 한 일이 없는 자죠.
 
국민교육헌장이라니? 지가 국민학교 선생이고, 국민들은 초딩들입니까? 한마디로 시건방진 놈이죠.
 
그런 자에게 경제성장의 공을 돌리는 일이 얼마나 슬픈 개그입니까?
 
한국경제는 박정희가 망치는 데도 불구하고 잘 된 거지요. 박정희의 독재권력이 정점에 다다른 70 년대 후반은 경제도 정점으로 망가지고, 견디다 못해서 YH 여성 노동자들, 김영삼, 김대중 세력, 그리고 부산마산의 시민들을 비롯한 우리 인민들이 워낙 반유신투쟁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결국 박정희는 지 심복의 총에 맞아 죽은거고, 또 박정희가 죽었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마르코스의 필리핀처럼 안되고 욱일승천기세를 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다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의 영남패권집단은 재벌체제를 정리못해서 결국은 재벌에 나라 경제가 휘둘리고 다시 IMF 관리체제를 맞게 되는 거지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에 대한 계기가 있어요. 이게 다 현대과학과 관련이 있는 얘깁니다.
 
제가 늙은 대학원생으로 늙은 머리 쥐나가며 계량경제학을 Jerry Hausman 한테 배울 때, 서시의 fallacy 에 대해 배웠지요. 물론 Hausman 은 서시를 모르니까 대신 Hausman Fallacy 를 가르쳐 주었지요.
 
스토리가 어떻게 되느냐?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 팀으로 이적한 후, 첫 해에는 우승을 못하고 나머지 세 해에는 팀을 우승으로 이끕니다. 그런데 그 사 년 동안, 나머지 3 년 동안에는 제리 하우스만이 시카고 불스의 통계 자문을 조금 해주었대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자,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면 제리 하우스만이 시카고 불스를 돕고 있는 동안에는 100% 시카고 불스가 우승했고, 마이클 조던이 있는 동안은 75% 밖에는 우승 못한게 되지요. 그래서 시카고 불스의 우승의 공은 제리 하우스만이 차지해야한다고 주장하면 말이 됩니까? 안되지요?
 
저도 제리 하우스만에게 배워서 skyang fallacy 몇 개를 만들어 내기로 했습니다. 
 
첫번째는 한국 경제는 순전히 skyang 때문에 잘 되었다라는 명제입니다. 우리 경제가 잘 나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부터인데, 이게 바로 skyang 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란 말입니다. 물론 1980년까지도 어린 skyang 의 기 때문에 경제가 그리 썩 나쁘지는 않지만, 특히 1984 년부터 1992 년까지의 경제 성과는 눈부십니다. 왜냐하면 딱 그 기간에 skyang 이 죽어라고 한국 경제를 위해 뛰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보세요. 박정희는 1980 년에 죽었고, skyang 은 1984 년 부터 일하기 시작했는데, 경제는 1984 년 부터 1994 년 까지가 제일 좋죠? 왜냐 1984 년까지는 skyang 은 공부만 했지만, 84 년 부터는 일도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skyang 이 90 년대 초에 미국으로 가서 한국 신경을 덜 쓰게 되자 서서히 경제가 금이 가더니, 급기야 1997 년에는 사상최고의 환란을 맞지요. 왜냐?  97 년 고당시가 딱 skyang 이 박사학위논문 쓰느라고 바빠서 한국 경제에 신경쓸 시간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 담에 skyang 이 박사논문 다 쓰고 직장 잡은 담에 djnomics 변호도 하고 암튼 한국 경제에 조금이라도 신경쓰기 시작하니까 다시 경제 살아나죠?
 
그러니까 앞으로는 박정희에게 공을 돌리지 말고, skyang 에게 돌리십시오. 아셨죠? :-).
 
 
(2002년 0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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