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칼럼 2008년 2월 21일] 노무현 생각 정치

[고종석 칼럼 2008년 2월 21일] 노무현 생각

며칠 뒤면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이든 반대한 사람이든, 노무현 시대에 점수를 후히 매기는 것 같진 않다. 무엇보다, 지난해 말 대통령선거에서 구여권 후보가 겪은 참담한 패배에는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얼마쯤 반영돼 있었다.

그가 취임하기 직전, 나는 대통령 노무현의 가장 큰 업적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일 수도 있다고 쓴 적 있다. 새 대통령의 발걸음에 딴죽을 걸겠다는 악의로 한 말이 아니라, 소수파의 호민관으로서 대한민국 제1시민 자리에 다다른 정치역정을 기린 말이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아쉽게도,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된 것 이상의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일반 시민으로 돌아올 참이다.

■ 리버럴 진영의 트로이 목마

힘센 사람들을 향한 노 정권의 투항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 세 해 전, 나는 어느 글에서 노무현이 트로이목마일지도 모른다고 비아냥거린 적 있다. 복고주의자들이 리버럴리즘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보낸 트로이목마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비아냥거림을 뉘우칠 계기나 기회를 그 뒤에도 얻지 못했다.

노 정권 5년간, 서울 강남을 지역적 이데올로기적 고리로 삼은 재벌-관료 동맹은 그 전보다 더욱 튼튼해졌다. 그리고 이 신성동맹은 곧 출범할 이명박 정권에서 만세동락을 구가할 모양이다.

노무현은 힘센 친구를 새로 얻기 위해 힘없는 친구를 버렸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배신이 또렷해진 뒤에도, 그 배신으로 이득을 본 세력은 그의 친구가 돼 주지 않았다.

노 정권 덕분에 재산을 단단히 불린 땅 부자들, 집 부자들, 대자본가들은 5년 내내 노무현을 저주했다. 옛 친구를 버리고서도 새 친구를 얻지 못함으로써, 다시 말해 모두를 적으로 돌림으로써, 노무현은 기이한 방식으로 국민통합에 기여했다.

노무현이 사면초가에 놓인 이유 하나는 그의 배신이 전면적이지 못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권력을 시장에 헌납함으로써 노무현은 과감히 경제적 강자 편을 들었으면서도, '민주화세력'이라는 자신의 상징적 기득권은 포기할 뜻이 없었다. 소위 '과거사 정리'라는 것은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이 욕망과 관련 있었을 테다.

그런데 이 '과거사 정리'는 그가 버린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별 관계없는 '정권의 취미'로 보였던 데 비해, 그가 새로 친구로 사귀고자 했던 힘센 사람들에게는 제 존재의 기반을 건드리는 민감한 문제였다.

다섯 해 전 새 대통령을 뽑을 때, 한국 유권자들 마음 속에선 윤리적 욕망이 파닥거렸다. 지난해 말 새 대통령을 뽑을 때, 그들 마음속에 윤리적 욕망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큰 것이 자신의 행태였음을 노무현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탈-윤리 대통령 이명박은 윤리 대통령 노무현이 다섯 해 동안 진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래도록, 한국 유권자들은 정치적 결정에 윤리가 끼어드는 걸 꺼릴 것이다.

■ 윤리적 출발, 탈-윤리적 종말

공정함을 위해서, 적대적 언론의 반노 선동이 커뮤니케이션을 왜곡해 정권을 고립시켰다는 대통령과 그 주변의 하소연에도 일리가 있었음을 지적해야겠다. 정파 신문들이 판치는 한국 저널리즘 시장에서 노무현에게 호의적인 매체는 드물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권에 대한 여론 악화를 크게 거들었다.

새 대통령 당선자나 인수위의 최근 천둥벌거숭이 행태를 노 대통령이나 그 주변사람들이 벌였다면, 정권이 뒤흔들릴 정도의 십자포화를 언론으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시대를 평가할 뒷날의 역사가가 이 시대 신문들을 사료로 쓰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노무현과 노무현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조차, 노무현이 실패한 대통령이었음은 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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