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해 넘기는 단재신채호 선생의 국적? 역사

또 해 넘기는 단재신채호 선생의 국적?
"독립운동가들에게 우리 국적 회복시켜 주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
 
성훈 칼럼니스트
 
▲ 독립운동하다 체포된 단재 신채호선생
단재 신채호선생(1880~1936)은 언론인이자 소설가, 역사학자, 사상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분으로 일제에 의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앞장섰던 선각자였다.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절대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며 선 채로 세수를 했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는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추대되자 이승만을 향해 "나라가 독립도 되기 전에 나라를 팔아먹을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승만은 해방 후 미군정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 말이 빌미가 되어 이승만은 신채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철저하게 배격했다.

그렇게 흘러오다보니 해방 62년이 지난 조국에서 아직도 선생은 국적이 없다. 1912년 일제는 조선의 호적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조선민사령'을 제정했다. 단재 선생은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신고를 거부 망명길에 올랐고, 독립운동을 하다 1936년 뤼순 감옥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유골이 충북 청주 남성면 고향으로 귀향했을 때 ‘무국적자’라는 이유로 매장에 어려움을 겪기까지 했었다.

뒤늦게 정부에서는 단재 신채호의 큰 뜻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78년 묘소 옆에 사당을 지어 영정을 봉안하고 기념관을 세웠다. 그러나 단재 선생은 조국 땅에서도 여전히 편치 못하다. 제대로 묘지관리가 되지 않고 있어 수맥으로 봉분이 여러 번 무너지자 묘소를 이장하려는 유족들과 청원군이 땅 보상 문제와 문화재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 최초 묘자리와 이장된 가묘. 첫 묘자리는 수맥으로 수차례 봉분이 무너졌다. 독립운동가는 죽어서도 왜 이리 고달픈지
당연히 국립묘지에 계셔야 할 선생은 오늘도 찬바람을 맞으며 쓸쓸이 고향 마을을 굽어보고 있을 뿐이다. 국적도 없이 잠들어 있는 한 독립운동가의 생애가 이리도 쓸쓸하고 허접하게 대접받아도 되는 것인지.....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악질 친일파들은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깝다. 

 
▲ 최초 묘자리가 수맥으로 인해 수차례 봉분이 무너져 이장하려 했으나 문화재는 유족이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법 때문에 근처에 가묘식으로 이장되어 있는 신채호선생의 현재 묘.  이 묘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하는 단재선생의 묘란 말인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편치않고 후손들까지 망하는 것이 독립운동가들이다.
 
이런 일은 비단 단재뿐이 아니다. 상당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광복 후 대한민국은 국적부를 따로 두지 않고 호적에 등재된 사람 모두에게 대한민국의 국적을 부여했기 때문에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국적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상룡, 홍범도, 김규식 등 독립 운동가들이 다들 무국적 무호적 상태이다. 그 수가 300여 명이나 된다니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망명지에서 단재는 나라를 되찾는 길은 '강도 일본'에 폭력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은 '조선혁명선언문'에 잘 나타나 있다.
 "최근 3·1운동 이후 수원·선천 등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서간도·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주민을 도륙한다, 촌락을 불지른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능욕한다, 목을 끊는다, 산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몸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잔혹하게 다룬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의 '산송장'을 만들려 하는도다. 이상의 사실에 따라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異族)통치가 우리 조선 민족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 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죽여 없앰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 단재선생이 지적한 일제의 만행. 붙잡힌 독립운동가를 작두로 목을 짜르는 처형을 하고 있다.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
단재의 후손은 외가 호적에 이름을 올린 채 살다가 대법원 청원을 통해 ‘신채호’라는 이름 석자를 아들 신수범(사망)씨 호적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호적등본은 지금도 큰아버지 이름으로만 뗄 수 있도록 돼 있다며 국적법 개정을 통한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목숨을 돌보지 않고 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대가가 과연 무엇입니까? 단재 신채호선생이 무국적이라니요. 대한민국은 대체 누구의 나라란 말입니까.”

청산리전투의 김규식선생의 손자 김모씨는 16년 전 중국에서 건너와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주어지는 특별귀화를 통해 국적을 취득했지만, 2년 전 입국한 조카(김규식 선생의 외증손자) 선호·준호(27)씨는 충북과 경기도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김씨는 일제시대 호적에 등재하지 않아 광복 후‘무국적자’로 남은 독립지사들과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후손의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 또한 제대로 대우도 받지 못하고 삶도 평탄치 못하다. 단재 선생이 임시정부 초기 이승만의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에 첫째 아들 신수범은 신변을 위협받아 몇 번의 위기를 넘겨야 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안정된 직장도 없이 고철장사에 넝마주의, 부두노동자를 전전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족적을 따라 북만주로 갔다. 신수범은 단재 선생의 국적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고 결국 1991년에 타계했다.
둘째 아들 신두범은 1942년에 영양실조로 타계했으며, 선생의 부인 박자혜 여사는 1944년에 병사했다.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씨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치”라며 “일생을 재판과 재판을 거듭하며 법정에서 자신의 정체를 확인받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305’가 시아버지 소유의 밭이고 ‘299’가 집으로 이 일대가 약 2000여평 정도 된다”면서 “1912년 당시 토지대장에 11월 25일자로 ‘신채호의 田(전)’ 등 정확하게 기재돼 있음에도 후손에게 상속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가 막힌 것은 시아버지(단재선생)와 연결고리가 없으니까 상속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호적이 있으면 재산상속이 될 텐데 호적은 커녕, 국적도 없으니 주권을 주장할 수가 없는 것이죠. 제 자식이 신채호 선생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것을 확인하는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시 대한민국과 싸우고 있는 셈입니다.”

아들이 할아버지와 관련된 일이면 무조건 법정으로 간다는 것을 수순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라는 이씨는 “‘死者(사자)는 치적할 수 없다’는 법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순국선열들의 후손들은 억울하게 당하고 산다”고 말했다.

“친일파들은 당시 조선의 귀족이었잖아요? 국적도 있고 호적도 척척 올리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도 수십만평에 이르죠. 친일파 재산을 환수해도 한이 안 풀리는데 있는 땅에서 조상의 넋을 기리며 살고 싶은 이 소망마저 짓밟히니 정말 이민이라도 가고 싶습니다.”

사실 이씨는 자신의 정착지가 없다. 현재 소송 중에 있는 서울의 아들네와 중국에 있는 딸의 집을 오가면서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아들이 대법원에서 정부를 상대로 ‘토지 소유자 확인의 소’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씨는 “살면서 사사건건 시아버지와 관련된 일은 법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억울할 따름”이라며 “독립운동가 예우는 둘째치더라도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니 대한민국에서 이를 확인받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우리 땅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더 당하니까 분통이 터져서 이럽니다. 나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분 아닙니까. 사망했더라도 단 하루라도, 아니 단 한시간이라도 호적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1시간 후 사망신고를 내더라도 나라에서 최소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후손들이 호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이것이 선열들을 예우하는 국가의 의무입니다.” 독립운동가 유가족으로서 당당하고 싶다는 이씨의 말은 긴 여운이 남았다. 
 
▲ 민족반역자처단협회(민처협)의 행사장면.  좌측에 보이는 "광복투사 후손은 3대가 망하고, 부일민족반역자 후손은 3대가 흥한다."는 문구가 눈길을 끌며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청산과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갖추지 못한 결과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반민족자들의 후손들은 일제 때의 기록을 근거로 재산을 찾는 소송을 벌이고 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생계의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아버지의 국적이 없어서 법적으로는 사생아로 취급당하는 어이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을사5적의 하나인 매국노 이완용의 질손자가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로 일하면서 민족혼을 말살한 국사왜곡의 주범인 이병도이다. 이병도는 해방 후에도 서울대총장 문교부장관으로 활약한다. 그의 손자가 현재 국립 서울대학교의 총장으로 있다. 또 다른 손자는 얼마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지냈다. 많은 악질 친일파의 후손들이 아직도 정부 요직에 있는 실정이다.  

▲ 좌측부터 매국노 이완용, 이완용의 질손자 민족반역자 이병도, 이병도의 손자인  이장무 현 국립서울대총장과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매국노 이완용과 이병도의 후손들은 아직도 잘 먹고 살고 있으며 정부 요직에 기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대다수 매국/친일파의 후손들은 교육도 충분히 받고 물려받은 재산과 조상의 후광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상류층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국적도 없이 교육을 잘 받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어 극빈층으로 간신히 생을 영위하고 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세상을 정부가 스스로 조장하고 있다. 즉 “앞으로 일제가 이 땅을 다시 식민지배한다면 국민들은 전부 매국/친일을 해라 그래야 3대가 흥한다. 절대로 독립운동은 하지 마라. 3대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국민들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느냐?”라고 교육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독립운동가들에게 우리 국적 회복시켜 주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 독립운동가들의 국적회복도 중국과 일본과의 외교 마찰이 우려되는 것인지? 이러고도 제대로 된 국가라 할 수 있나?
아직도 정부는 단재와 독립운동가들의 국적회복에 여전히 침묵 중이고 2007년은 또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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