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유감, 봉하마을의 피에로가 되려는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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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유감, 봉하마을의 피에로가 되려는가
김대중과 노무현, 역사는 그들에게 책무를 요구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 말이다. 저도 청와대에 살아봤는데 겁은 안 나고 기분은 나쁘고 그리고 별 소득이 없다.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노무현 전 대통령 노사모 총회 축사) 

참여정부 5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듯이 그때에는 막말로 '개나 소'나 모두 노무현을 탓하고 야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선 그 '개나 소' 축에 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이 대북송금특검을 받아들였을 때에도, 노무현이 이라크에 재파병을 했을 때에도,  노무현이 사학법 재개정에 동의했을 때에도, 노무현이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였을 때에도, 심지어는 노무현이 한나라당에 연정을 제안했다가 박근혜에게 퇴짜를 맞았을 때에도 우리는 노무현을 심하게 질책할 수가 없었다.

 

노무현을 비판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노무현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여유와 호사를 누리고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봉하마을에 찾아가 그에게 열광하고 있다. 그는 이따금 한 번씩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어준다. 한편으로 그는 동구밖 편의점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든지,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는 모습들을 보여주어 국민을 흐뭇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최근 봉하마을에서는 노사모 정기총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촛불 시위대가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는 일을 직접화법으로 비판했다. 그는 청와대 행진이 대통령에게 '겁을 주지는 않고 기분만 나쁘게 할 뿐, 소득이 없다'고 말했다 한다.

이것은 참여정부 5년 내내 자기를 비판하고 싶어도 참았던 사람들을 섭섭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아니 그는 이미 시민에 대한 배신을 시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선 '초록은 동색'이라고, 자기도 대통령 한 번 해 본 사람이니까 대통령 편을 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이것은 한 달 넘게 생업에 지장을 받아가며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정열과 진지함을 모욕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대관절 촛불 시위에 '대통령에게 겁을 주고 안 주고'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지금의 이 심각한 상황에 '대통령의 기분이 나쁘고 안 나쁘고'가 뭐 그리 중요하다는 말인가? 

노무현에게는 모든 것을 게임이론으로만 보는 천박함이 있다.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도 진지한 시민들을 제 깜냥으로만 판단하여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청와대라는 곳이 성역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시민들은 국민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대통령에게 좀 더 가까이 가서 생동하는 여론을 들려주고 싶은 욕구에 청와대 쪽을 향하는 것뿐이다. 지금처럼 비폭력 시위라면 그것이 한강이든 청와대이든 응당 합법적인 일 아닌가?  

수십만의 시민들이 정말 정권을 폭력으로 타도하려는 모진 마음을 품었었더라면 그까짓 전경버스 몇 대를 뚫지 못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경찰을 탓하지는 못할지언정, 시위대의 뜻을 왜곡해서 비판하는 게 전직 대통령의 할 일이라고 생각 들지 않는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에도 청와대 경내에서 노사모 회원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지역주의와 기회주의를 비판했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정동영과 손학규를 염두에 둔 발언 같아 보였다. 그 전에 노무현은 고건 전 총리를 심하게 비판하여 그를 도중 하차시키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정동영이나 손학규나 고건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노무현의 정체에 대하여 한 번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노사모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해체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이 5년 간 대통령을 하는 동안에도 잘 유지하더니 퇴임 후 몇 달이 지난 이 시점까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이것은 노사모라는 단체가 노무현의 정책이나 역사의식과는 무관하게 노무현이라는 특정 개인의 '모노마니아'(빠)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사적 책무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마니아들은 노무현의 언행에 따라 자기의 정견이나 역사의식까지도 바꿔 간다는 것이다. 그의 마니아들은 노무현이 처음에 진보일 때는 같이 진보였다가 노무현이 보수화되자 따라서 보수화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 게 사실이다. 그러니 노무현의 말 한 마디가 더 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의식의 한계를 보이는 노 전 대통령

 

"오늘 일부 질 나쁜 신문을 보니까 '재협상에서 정권 퇴진으로'라는 제목을 뽑아 놓았더라. (시위 현장에서) 얼마나 정권 퇴진이라는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신문에서 제목으로 뽑은 것을 보니 정권 퇴진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 쇠고기협상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정권 퇴진을 그냥 말로만 해 보는 것은 괜찮은데, 진심으로 믿고 밀어붙이는 것은 우리 헌정 질서에도 없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읽은 신문이 어떤 신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상적인 신문이라면 시위대의 구호가 '정권 퇴진'이었다고 보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신문들이 그렇게 제목을 뽑아 쓰기도 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그 신문을 '질 나쁜 신문'이라고 비판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먼저 잘 모르면 말하지 말든지 아니면 잘 알아보고 나서 말하는 것이 도리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잘 모른다면서도 함부로 말을 했다. 시위대의 구호가 정권 퇴진이었다는 기사를 쓰는 신문이 왜 질 나쁜 신문이 되어야 하는지? 노 전 대통령은 없는 사실을 신문이 부풀려 선동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헌정질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가 박정희나 전두환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아마도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취임한 대통령이니까 퇴진을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다. 여기에는 보다 진지한 논의와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것은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옛날의 '왕'과 오늘의 대통령을 비교해 볼 수는 있다.  

하늘이 정해 준다는 왕도 백성의 뜻에 어긋난 짓을 하면 교체할 수 있다고 <맹자>는 전하고 있다. 하물며 현대의 대통령은 국민이 투표로 뽑은 사람이다. CEO를 자처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대통령은 소비자가 뽑은 경영인에 불과하다.  

소비자는 상품에 하자가 있을 때 자기가 선택해서 구매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콜'이라는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심지어 상품에 하자가 없을 때에도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국민은 스스로 선택한 대통령에게 하자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대통령의 리콜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는 법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이 성급하게 발언한 것 같다. 

"노사모는 끝이 없이 갈 것 같다. 여러분들은 자녀 교육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노란 모자와 티를 입혀 노란 물을 들여 놓으니 이 아이들도 갈 데까지 가지 않겠나? 만일 노란 물이 유전자 DNA에 입력된다면 대를 이어 노란 물이 갈 것이다." 

노무현은 봉하마을 시골에 박혀 뒷방 촌로로 늙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노사모를 선동하는 발언처럼 들린다. 이런 말을 하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는 노사모 회원들에게 자자손손 노사모 회원이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김대중과 노무현, 역사는 그들에게 책무를 요구한다

 

"국민이 대단하고 위대하다. 촛불집회는 아테네의 민주주의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 휴대전화를 통해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된 중대변화다."(김대중)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이 '대단하고 위대하다'고 말한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민이 '무섭다'고 말했다. '대단하고 위대하다'는 말과 '무섭다'는 말의 차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국민에게 향하는 친화감의 정도에서 노무현의 '무섭다'는 말은 김대중의 '대단하고 위대하다'는 말보다는 현저히 취약한 게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에 6·15와 10·4 정상회담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그는 쇠고기 문제는 미국이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인이 미국 쇠고기를 안 먹게 되면 호주나 뉴질랜드만 이익이지 미국은 손해 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역사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의 다른 대통령이 지니지 못한 강점과 미덕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권위주의 타파에 솔선수범했다. 아마 노 전 대통령처럼 가족이나 친지가 청렴한 대통령은 다시 나오지 않을 터이다. 그는 지역감정의 해소에 정치적 운명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호남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호남인들에게는 다시 영남인을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되겠다는 학습효과를 안겨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역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올바른 책무를 요구하고 있다. 그가 부여 받은 역사적 책무에는 헌정질서 운운하면서 촛불시위자를 비판하는 일 따위는 들어 있지 않다. 수명이 길어진 현대에 그는 아직 왕성하게 활동해야 하는 중년이다. 봉하마을에 안주하며 관광객이나 노사모의 방문이나 받으면서 전직 대통령의 안락함에 취하다가는 그는 영락없이 '피에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피에로는 익살꾼이다. 그는 무지하지만 순정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시대에 대한 비판도 하고 때로는 비극적인 입장에 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한낱 어리석은 광대일 따름이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에로처럼 되는 것을 결코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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