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경제적 가치: 민주주의는 얼마야? 김대중

가난한 사회는 민주주의를 할 능력이 없으니 독재를 해서라도 경제를 발전시키는 게 낫다는 군부독재 정당화논리는 아직까지도 광범위한 사회적 지지를 획득하고 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정권에 빌붙어 호의호식했던 사람들이 민주화 이후에 머쓱해지니까 꺼내 놓은 논리가 한술 더떠서 우리가 이만큼 경제를 발전시켜 놓은 덕택에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게 된거라는 이른바 "선근대화-후민주화론"이다.  최근들어 더욱 기세를 떨치고 있는 민주화세력 무능론도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민주화세력을 가장으로 두느니 돈 잘 벌어오는 산업화세력이 낫다는 발상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돈만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황금만능주의자들은 돈이 있어야 민주주의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을 봐라. 그리고 아프리카를 봐라.  잘 사는 나라들은 민주주의를 하고, 못사는 나라들은 대부분 민주주의가 아니다. 박정희-전노의 리더쉽으로 이만큼 먹고살만 해지니까, 민주주의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래 그림 (1)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출처: Acemoglu et al. (2006). Income and Democracy. NBER Working Paper No. 11205

가로축은 1인당 국민소득을, 세로축은 프리덤 하우스가 산출한 민주주의 점수이다 (1에 가까울 수록 민주주의국가이다). 1990년대 한국은 소득수준도 높고 민주화도 잘 된 국가로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는 뒤지지만, 아시아권에서 발군인 한국은 대만과 국민소득 수준은 엇비슷하지만 민주화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들이 민주화도 보다 진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로 독재부역세력들이 주장하는 "선근대화-후민주화론"은 일리가 있다고 봐야 맞는 것일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민주주의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은 경제발전이 민주화의 선결조건임을 전제하고 있기에 일정수준의 소득수준은 민주주의를 촉발하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위의 그림 (1)은 이런 인과관계를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것같지만 실은 경제발전이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인과과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상관관계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각 국가별 고유의 상황변수를 통제하고,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다 정밀하게 검증해 보기 위한 한 방편으로 소득수준의 변화정도와 민주주의의 변화 정도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교양없기로 정평이 난 연봉 2천의 남자가 1년 후에 연봉 3천이 되었다.  소득이 천 만원이 늘었는데, 교양수준은 나아졌을까?  나아졌을 수도 있고 나빠졌을 수도 있다.  이렇게 연봉의 변화와 교양수준의 변화를 비교해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게 상관관계가 아닌 진짜 인과관계를 평가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출처: Acemoglu et al. (2006). Income and Democracy. NBER Working Paper No. 11205

1970년에서 95년 사이 국가별 소득수준의 변화정도와 민주주의 점수의 변화정도를 추적해 본 결과, 먹고살만 해졌다고 해서 민주화가 진척되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앞서 <그림 1>에서는 잘 살수록 민주화가 되는 우상향의 직선이 나타났지만, 막상 변화 대 변화의 관계를 비교해 보니 잘 살게 된다고 해서 민주화가 진전된다는 우상향의 직선은 사라지고 평평한 직선 (먹고사는 것과 민주화는 무관함을 의미한다)만이 남았다.

한국과 태국은 경제도 발전하고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민주화가 진전된 케이스지만, 경제가 발전했는데도 민주주의는 제자리인 싱가폴과 중국같은 케이스도 존재하고, 경제는 발전했는데 오히려 민주주의는 뒷걸음질친 인도같은 나라도 있다. 

위 그림에서 좋은 포지션을 차지한 태국은 얼마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한 한국같은 나라는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란 걸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졸부란 개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부는 단기간에 빠르게 증식할 수 있지만, 교양이나 지성은 속성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졸부가 달리 졸부인가?  재부가 증가한다고 교양도 절로 증가하는 것이 아님은 조금만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다.  밤마다 술먹고 여자끼고 놀면 교양이 느는 게 아니라 타락해서 인생막장으로 가게 된다.  돈이 없다고 해서 교양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돈이 많으면 교양을 쌓을 기회가 더 많은 게 사실이라도, 돈을 버는 길과 지성인이 되는 길은 필연적으로 만나는 것은 아니다. 

졸부는 있어도, 졸지에 지성인이 되는 경우는 없다.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나라는 여럿이지만, 졸지에 민주주의국가가 된 경우는 없다.  민주주의를 이식해 줘도 말아먹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고, 극히 예외적 케이스라고 할 한국도 50년의 독재로 퇴행했다가 민주화를 쟁취했다.  민주주의가 그만큼 시간을 두고  숙성이 필요한 것이라면, 보다 공평하게 백년의 시차를 두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함수관계를 평가해 보는 건 어떨까?


출처: Acemoglu et al. (2006). Income and Democracy. NBER Working Paper No. 11205


1900년에서 2000년까지 1백년동안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관계를 측정해 본 결과 역시 민주화와 경제발전은 따로 논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체득하기엔 백년도 부족한 것일까?  그렇다면 5백년을 두고 보면 어떨까?



출처: Acemoglu et al. (2006). Income and Democracy. NBER Working Paper No. 11205



1500년에서 2000년까지 5백년의 시차를 두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봤더니, 놀랍게도 다시 소득이 증가할수록 민주화도 진전되는 정의 관계가 나타났다.

MIT와 하바드의 경제학자들이 5백년에 걸쳐서 민주주의를 체득하려면 얼마나 소득이 증가해야 하는 지 추산해 보았다.  1990년도 달러 기준으로 계산된 1500년의 세계 평균 소득수준은 566달러라고 한다.  당연히 5백년 전에는 민주국가란 게 없었다.  이 나라들이 민주화가 되려면 소득수준은 얼마나 늘어나야 할까? 

순전히 소득증가만으로 민주화를 달성하려면 566달러의 국민소득은 984조까지 늘어야 한다는 게 Acemoglu등의 결론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다음과 같다. 이론적으로 민주주의를 돈으로 살 수 있다. 가능하다. 내 일년 소득이 984조가 된다면 피를 흘리지 않고도 민주화가 찾아온다.  아시아 최고수준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현 일인당 국민소득은 2만불 정도에 불과하다. 984조에는 상당히(!) 못미치는 국민소득 수준인데, 이말은 다시 말해 우리 선배들이 흘린 피와 눈물값이 984조의 가치를 나에게 안겨 준 것임을 의미한다. 

민주화 세력은 우리에게 구찌같은 명품 핸드백을 선물해 주진 못했을 지 몰라도, 6월항쟁으로 흘린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은 민주주의라는 세계 최고가의 명품을 우리 모두에게 골고루 안겨주었다.  우리모두가 누리고 있기에 값싸 보일지 몰라도, 잊지 마시라.  99% 초대박 할인판매라도 민주주의는 여전히 럭셔리한 사치품이며,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는 모래알처럼 많다는 사실을... 그리고 분명히 하자. 박정희가 조선왕조 5백년만큼 살아 통치를 했어도 남한땅에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다. 압축성장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이 우리가 일구어낸 압축민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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