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경상도 지역주의

1.

세종실록 150권, 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창원 도호부

지리지 / 경상도 / 진주목 / 창원 도호부


땅은 기름지고 기후는 따뜻하며풍속은 거칠고 사나우며 소송(訴訟)하기를 좋아한다


2.

성종실록 12권, 성종 2년 윤9월 2일 신축 2번째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김겸광·이영은의 첩 다툼에 대한 처벌을 간하는 대사헌 한치형 등의 상소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한치형(韓致亨) 등이 상소하기를,

"먼젓 날 예조 판서 김겸광(金謙光)이 이영은(李永垠)과 약혼한 첩을 요구하여 몰래 장가들어 그 여자를 데리고 갔는데, 이영은이 빼앗기를 꾀하여 그 여자의 주인에게 부탁하여 김겸광의 집에서 나오기를 재촉하게 하였고, 김겸광이 허락하지 아니하자 이영은이 고장(告狀)을 손수 써서 그 주인에게 주어, 와서 고소하게 하였습니다. 신 등이 그 고장을 상고하여 물으니, 그 다투는 여자는 철비(哲非)라고 하는 자인데, 바로 김은(金殷)의 천첩(賤妾)의 딸이었습니다. 신 등은 의심하기를, 한 천한 여자를 가지고 두 재상이 서로 다투니 이는 반드시 자색(姿色)이 있는 자일 것이라 여겼으나, 그 어미 약덕(若德)의 말을 들으면, 그 여자는 별로 자색은 없고 다만 그 전민(田民)649) 이 조금 넉넉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제야 두 사람의 다툼은 오로지 재리(財利)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아! 사대부(士大夫)의 풍기(風紀)가 이와 같으니 조정(朝廷)이 무슨 수로 바르겠습니까? 신 등은 그윽이 스스로 한탄해 합니다.

인하여 그 혼인을 도모한 절차를 갖추어 따져 물으니 이러하였습니다. 처음 철비가 그 아비에게서 자라 경상도 성주(星州)에 있었는데, 이영은이 오래 전에 이미 글을 통하며 말을 맺었고, 그 어미가 서울에 있는데 이영은이 또한 더불어 언약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김겸광이 또한 마음이 있어서 두 사람이 모두 몰래 도모하다가, 이영은이 장차 휴가를 맡아 가서 그 사사로운 뜻을 이루려고 하니, 김겸광이 이를 알고 바로 철비를 불러서 재촉해 길을 떠나게 하였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 김겸광이 다른 곳에 숨기고 얼마 아니되어 그 어미의 집을 몰래 옮겨서 장가들어 데리고 갔는데, 비록 그 주인이 돌아오기를 재촉했으나 나가 보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무릇 빼앗길까봐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는 김겸광의 마음씀이 간사함이 심한 것입니다. 이영은은 김겸광이 이미 장가든 뒤에 가만히 빼앗을 꾀를 생각하여 혹은 사람을 시켜서 그 어미 집을 엿보기도 하고, 혹은 친히 가서 그 주인에게 청탁하기도 하면서, ‘김겸광이 비록 이미 장가들었을지라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만약 빼앗아 나를 주면 내가 마땅히 장가들겠다.’고까지 하였으나, 그 주인이 빼앗을 수 없게 되자 또 손수 고장(告狀)을 써서 고소하게 하여 기어이 차지하려고 하였는데, 마침내 그 욕심을 이룩하지 못하자 조정에 말을 퍼뜨리고 동료 친구에게 글을 보내어 김겸광의 악함을 드러내었으니, 이는 이영은이 탐하고 간사하며 염치없음이 심한 것입니다.

신 등이 이 두 사람의 정상(情狀)을 자세히 알아내고 장차 성상에게 전해 아뢰어서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니, 김겸광이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감히 글로 꾸며서 상서(上書)하여 은혜받기를 바라고, 전하께서도 또 우대해 용서함을 내려 주시어서 신 등을 불러 모두 내버려두기를 명하셨습니다. 신 등은 이르건대, 인주(人主)는 상벌(賞罰)의 권세를 잡아 아랫사람을 제어하는 데에 이목(耳目)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여 이에 유사(有司)에 붙였으니, 유사는 인주의 이목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불법(不法)이 있어서 유사가 바야흐로 거핵(擧劾)하여 성상께 아뢰려고 하는데 탄핵을 입은 자가 감히 글을 올려 스스로 말을 벌여 모람되게 은지(恩旨)를 바라니, 어찌 다만 유사를 멸시하는 것이겠습니까? 인주의 위엄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신 등은 여러 번 천총(天聰)을 어지럽히어 그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였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니, 그윽이 스스로 한스러워합니다. 예전에 성탕(成湯)이 삼풍 십건(三風十愆)650) 으로 벼슬자리에 있는 이에게 경계하기를, ‘감히 재물과 여색(女色)에 따름이 있으면 이를 음풍(淫風)이라고 이른다. 경사(卿士)가 몸에 한 가지만 지니고 있어도 그 집이 반드시 망할 것이니, 신하가 이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그 형벌을 묵형(墨刑)으로 하겠다.’라고 하였으니, 경사로서 재물과 여색을 탐하여 음풍을 범하면 예로부터 성왕(聖王)의 용서하는 바가 아니며, 유사(有司)가 바로잡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어찌 용서해 둠이 마땅하겠으며, 신 등도 또한 어찌 바로잡지 아니하는 형벌에 나아가기를 달게 여기겠습니까?

전하께서 신 등에게 전교하시기를, ‘저희들 가운데서 첩을 다투는데, 국가에 관한 것이 아니니 논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시니, 신 등의 의혹이 더욱 심합니다. 대저 서울은 사방(四方)의 근본이고, 조정은 백관(百官)의 법이며, 재상은 사대부(士大夫)의 표준입니다. 처첩(妻妾)을 빼앗기를 다투는 것은 오랑캐[夷狄]의 풍속인데, 사방의 근본, 조정의 표적, 사대부의 모범이 되는 지위에 있으면서 오랑캐의 행동을 하니, 전하께서 그 하는 바에 맡겨 방검(防檢)을 가하지 아니하면 신 등은 바로 온 나라 사람이 기탄하는 바가 없어, 서로 이끌어 오랑캐와 금수의 행동을 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찌 염려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3.


성종실록 15권, 성종 3년 2월 11일 무인 3번째기사 1472년 명 성화(成化) 8년

경상도에 내려간 겸장령 허적으로 하여금 비부와 사통한 봉은을 추국하게 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상주(尙州) 사람 별시위(別侍衛) 김자(金滋)의 아내 봉은(奉恩)이 그 비부(婢夫)와 사통(私通)하여 풍속을 훼상(毁傷)한 것은 관계된 것이 경하지 않습니다. 청컨대, 본도에 내려간 겸장령(兼掌令) 허적(許迪)으로 하여금 추국(推鞫)하여 아뢰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4.

특진관 홍숙(洪淑)이 아뢰기를, “근래 재변은 사필(史筆)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일어납니다. 비록 《춘추(春秋)》에 실린 것도 오늘날과 같이 심한 적은 없습니다. 신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인심이 강한(强悍)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들으니, 경상도는 인심과 풍속이 그렇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보니, 사람 죽이기를 마치 새나 짐승을 죽이듯 하였습니다. 비록 살인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가 중상(重傷)할까 두려워하여 발설하지 못하는 일도 또한 많이 있었습니다.

중종 31권, 12년(1517 정축 / 명 정덕(正德) 12년) 윤12월 4일(을해) 1번째기사


5.

사간원이 아뢰기를,
“경상도(慶尙道) 정병(精兵)이 북방을 방어하기 위하여 갈 때, 그들이 지나간 길목은 겁탈과 노략질을 자행하며 마치 병화라도 겪은 듯하니 당시 인솔했던 차사원(差使員)을 파직시키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하였다.

선조 17권, 16년(1583 계미 / 명 만력(萬曆) 11년) 10월 17일(을축) 1번째기사

6

신이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되었을 때 그 도의 인심과 풍속을 보니 퇴폐하기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성상께서 풍속을 변화시킴에 뜻을 두시므로, 신이 그 지극하신 의도를 본받아 완악한 풍속을 변혁하고자 하는데… "

중종 13년(1518년) > 중종 13년 4월 > 중종 13년 4월 1일

7

“신이 전에 경상도에 있을 때에 듣건대, 금산 군수(金山郡守) 이공장(李公檣)이 고을 아전에게 함부로 형장을 가하여 발가락이 모두 떨어져 나갔고 이어 죽었습니다. (중략) 지금의 인심은 지난날과 달라 완악(頑惡)함이 날로 심해져, 금령(禁令)을 범한 자를 장 일백(杖一百)에 처해도 오히려 두려워하여 그만 두지 않고 전처럼 행동하니, 부득이 전가 사변(全家徙邊)한 다음에야 금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중종 24년(1529년) > 중종 24년 4월 > 중종 24년 4월 29일

8

“경상도 상주포(尙州浦) 진(鎭)에 속한 군졸 정세문(鄭世文) 등이 권관(權管)을 능멸 모욕한 일은 크게 풍속과 관계되는 것이어서 지극히 놀라운데, 지금 듣건대 단지 본도(本道) 도사(都事)가 추고(推考)하도록 했다 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는 반드시 따로 서울의 조관(朝官)을 보내 추열(推閱)하여 실정을 알아내어 정죄(定罪)한 다음에야, 외방(外方)의 어리석은 민중들이 조정에서 놀라와하는 뜻을 알아차리고서 완악하고 포악한 마음을 고치게 될 것입니다. "
중종 21년(1526년) > 중종 21년 4월 > 중종 21년 4월 28일


9

“근일 경상도 관찰사의 계본(啓本)을 보건대 풍재·수재가 지극히 놀랍다. 또 어제 듣건대 헌부(憲府)의 문을 쏘았다 한다. 헌부는 풍기(風紀)를 맡은 곳인데 이처럼 꺼리지 않으니, 그 일은 익명서(匿名書)의 예(例)와 같아서 궁극히 추고할 수 없을 듯하나 각별한 처치가 있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중종 12년 8월 > 중종 12년 8월 17일

10

'도내(道內)의 인심이 완악하고 사나와서 송사를 맡은 관원이나 관찰사의 하는 것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멋대로 흉보고 헐뜯고 합니다.'
중종 39년 4월 > 중종 39년 4월 27일

 
결론:조선왕조실록에서 안까는 지역없다. 그런데 그저 전라도를 까는 구절만 뚝잘라와 "라도 얘들은 태초부터 븅신이오~" 이지랄 하는게 얼마나
좃잡고 반성해야할 ㅄ같은 행위인지 알아보았다.


http://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ali2199


1.2.3은 1분정도 잠깐 검색한 결과라네요.  4부터는 인터넷링크  

영남이 조선정계에서 퇴출된 조선후기쪽 가면 훨 더 많이 나올 듯




http://db.history.go.kr/id/ma_013_0600_0120


특히 普州 妓生이 名하고 慶尙道 色酒家가 名하지오. 엇던 방면으로 좀 수치스러운 듯하나 蝎甫가 만키론 慶尙道가 제일이요.(일동은 하하하 하고 우섯다.)


(해설 - 진주 기생이 유명하고 경상도 색주가가 유명하지요. 없던 방면으로 좀 수치스러운 듯하나 갈보가 많기로 경상도가 제일이지요)


朝鮮의 到處는 말도 말고 南北滿洲, 西伯利亞, 멀니 北海道까지 慶尙道産의 賣春婦가 안이면 모다가 寂寞江山일테요.(일동은 올소하고 웃는다.)


(해설 - 조선의 도처는 말도 말고 남북 만주,시베리아,먼 북해도까지 경상도산의 매춘부가 없으면 모두 적막강산이지요)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ma_016_0060_0270


파리보다 妓生數爻가 셋이 더 만타는 晋州를 비롯하야 大邱, 昌原 等地는 妓生의 産地로 유명하다. 京城도 무슨 組合 무슨 組合하고 嶺南妓生專門의 貿易所가 잇스며

(해설 -파리보다 기생수자가 셋이 더 많다는 진주를 비롯해서 대구,창원 등지는 기생의 산지로 유명하다. 경성도 무슨 조합 무슨 조합하고 영남기생전문의 무역소가 있다)


http://blog.naver.com/memo/MemologPostView.nhn?blogId=tank0104&logNo=80205266714&categoryNo=69&currentPage=42
일제시대때에도 유명했던 경상도 매춘문화 


▷ 이란관련- 더러운 정권과 그 아류 언론의 폐악질

조선, 연합에서 씨부리는 52조, 42조 이거 다 개뻥이구

단기 (short term) 대충 18조 정도.

그 나마 언론에서 정상 회담후 즉석에서 MoU 19건 싸인, 발표한 것도 다 개뻥임



이란 언론은, 박 방문전 이미 17건 이상 mou 서명된 것이였다고 발표.

결국, 가서 한 것이라곤 mou 1-2건. 이게 전부임.

그리고 기름은 넘치는데 현금 없어 미치는 나라에 28조원 돈퍼주기,

그리고 박물관 관람...이게 전부임. 이 박물관 보러 해외여행 간 듯


이란 페르시아 국립, 보석 박물관 아주 유명하다고...이번에 알았음

워낙 고귀하고 유물 안전 보존상, 승인된 사람에 한해, 일주일에 딱 2틀, 8시간만 개방....
황금 침대, 황금 옷, 황금마차 등..극비 통제라 인터넷에 사진 조차 없다고...


0.북핵 제재 관련도 다 조작...개소리임. 이란 최고 실권자와의 회담.


이란 PressTV, 회담 제목" "한국과 이란은 사악한 미국과 싸워야 합니다"


"이란과 한국은 미국의 악의와 편견에 굴복하지않는 관계를 형성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Sanction (유엔, 미국등의 제재)에 흔들리거나
미국의 영향력과 사악함에 의해 물들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두나라간 대화만이 지속적이며, 견고하고 강하고 온유한 것입니다


이런 mou 나 계약도, (미국의) 외교적 요인과 제재에 영향을 받지않고 두나라 사이에

채결되야만 합니다"...뭐 그런 내용으로 어쩌구 쭉 이어짐


그러다, 이등신 한마디, 하지만 - 혹 떼려다, 혹 붙인 격,

- 유엔안보리의 이행(북핵 제재안)의 이란 협조 어쩌구 하니까...


뭔 개짓는 소리인냥... 깡무시. 바로 미국의 테러 잣대 성토와 한미동맹을 질타.

 


좋은 테러, 나쁜 테러로 분류하는 미국식 테러리즘의 이중 잣대를 배척했다.
(이슬람의 테러는 bad, 미국에 의한 폭력은 good 뭐 이런식의 이중성을 의미한 듯)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슬로건으로 입으로만 떠들지 실제 진솔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 비핵화 얘기 단 한마디도 않 나옴. 미국에 대한 성토외.


반대로, 노골적으로 한미동맹을 규탄함

국정 전반에 실권을 가진 최고 지도자는, 박에게 말했다.

"한미동맹이 양국간 결속 확대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되며,  미국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Sanctions(유엔, 미국의 제재)에 좌지우지 되지 말아여 한다"


( 이건뭐, 한국이 미국과 하는 꼬라지 보고, 여차하면 다 깨버리겠다는 말 아닌가?)


0. 이건 이란 대통령과 회담 내용


(이란 법체재상, 대통령도 저 최고 지도자가 임명. 한국 황총리 수준일 듯)

북관련, 언론 뒤져도 이 말외에는 전무- "이란은 특히 한반도와 중동을 포함한 지구상에,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파괴 무기의 생산과 비축을 반대합니다"


(stockpile, 비상용 저장: 이스라엘, 한국, 일본등 해외에 비축되어 다고 믿는 미국핵 의미일 듯)

이건, 그냥 한반도, 이스라엘, 미국을 함께 싸잡아 자기들 하고픈 말 지껄인 것임


이런 걸 가지고, 이 나라 언론과 청와대쉐끼들,

- 이란 북제재 동의, 북에 메세지...북과 이란의 관계를 흔든 외교적 대성공...염병 지널을. 


저런 말은 세계 지도자들, 개나소나 다 하는 말...북한도 맨날 저런 말, 지껄있는 것이고...


언론서 말하는 북핵, 비핵화 관련 외교급 공동성명...이런 것 이란 발표 전혀 없음.

다 거짓, 조작일 뿐...있었다면 련합, 조선등에서 성명식 사진 대문에 걸구 지널했을 것이고...


그야말로, 개망신, 건국이래 최악의 정권의 최악의 외교. 




▷ 이란發 속보...경악할 한국 언론...분노를 넘어, 망연자실 이네요

이나라 언론, 이 정도일 줄이야...분노를 넘어...이젠 망연자실...

먹구살려 1년의 반은, 미친 놈처럼 보따리들고 이나라 저나라 헤메고 다니는냐,

일없어 한 몇개째 쉬며, 세상 좀 들여 보는데, 이럴수가! 


어제밤, 별 생각없이 그냥, 지나가듯 이란 사이트 한번 보다,

국내 언론과 너무도 달라 아침에 글 올렸는데...,


지금, 연합, 조선등 어떤가 보니...참, 기가 막히네요. 이럴수가...

이 나라 언론 어쩌다 이리됐는지. 북한, 김정은 우상화는 애들 장난 수준.

이란 신문 3곳, 방송 2곳 (통제 독재국가라 언론수가 별로) 주변 아랍뉴스까지 뒤졌는데....

지금 이 나라 언론, "이 떡년 이란방문 관련 소식 몽땅 거짓입니다"


이란과 북한관계는 잘 아실테니, 각설하구,

- 북한, 북자도 않나와요. 북관련, 통일관련 단 한마디도 없었음.

오히려, 친미 동맹 남한 정책이 이번 경협에 영향을 줄수도 있다는

경고성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네요.


몇시간적 방송된, 이란 PressTV, "떡년과 이란 최고 실권자 회담" 방송 들어봤는데, 

저 빙신같은 년, 앞에 앉혀놓고,

- "미국은 악의 국가"라며 성토..

- "한미동맹 남한은 미국의 악마성에 물들지 말아라." 

 - "미국의 Sanctions(북한에 대한 제재)에 한국은 좌지우지 되지 말아야 한다." 

얘들 가르치듯 꾸짓는 태도로 질타. 이 등신같은 년, 한마디 못하고 쭈구리고 묵묵...


이런 것을, 이 나라 언론들은 반대로- 북핵관련 공동성명, 북핵-제재 공조, 북한에 메세지...

이런 황당한 거짓으로 둔갑. 기만, 조작 보도의 극악적 폐악질을 자행하고 있으니...


- 한번 더 듣고, 대화내용 자게판에 올리려는데...버퍼링 땜시. 나중에 전문 올릴께요


방송 메인 타이틀 - 이 한마디가 모든 걸 다 말해 줍니다.

최고 리더 왈, "이란과 한국은 미국의 범죄성과 싸워야만 합니다"

 Tehran, Seoul must resist US malice in ties (with each other): Leader




호남홀대론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재반박

://theacro.com/zbxe/5244066
2016.04.29 15:47:01
267
<추가 및 수정>

반론에 대하여 원저자가 수정을 했길래 아래에 수정분을 올립니다.


오돌님께서 운영하시는 담벼락의 링크를 따라갔다가 읽은 기사입니다.

얼마 전에 디지탈조선 사이트에서 '영남패권', '친노패권'을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대부분 '친노패권'에 대한 기사. 그리고 친노패권의 언급도 당시 새정련 당내 권력 투쟁 관련 기사여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영남패권이라는 것이 단순한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라는 인식을 갖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민의당은 4.13 총선 내내 ‘친노 패권’ 청산과 호남 홀대론을 줄곧 주장해 왔다.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영남 패권주의 때문에 낙후된 호남이 다른 지역을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지원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호남 홀대론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호남이 주장하는 홀대론의 근거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역대 정부의 지방 국책사업의 편차나 출신지별 고위직 인사문제는 기준이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사 전문은 여기를 클릭)


기사에는 '영남패권'이라는 가해자가 명시된 단어 대신 '호남홀대론'이라는 가해자가 은닉된 표현, 그러니까 518 광주학살이라는 표현 대신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으로 가해자는 은닉했던 표현과 같은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 저 기사 자체에는 오류가 많아 보입니다. 저 기사를 링크한 원글의 저자는 이런 주장을 했으니 말입니다.


<반론>
서남권 종합개발계획, J 프로젝트를 실천했던가? 계획만 24조원이었지, 무슨 투자를 했나? 해남기업도시, 무안기업도시 모두 무산되었잖아. 24조 빼라. 

광주 아시아 문화 전당예산 5조도 2016년에 유승민이 아시아문화전당법 통과시켰다가 욕먹고 공천탈락했는데, 벌써 투자된 것처럼 신문기사를 쓰네.

그리고, 여수세계 박람회 예산 9조라는 것은 전주광양고속도로, 순천-영암 고속도로 건설예산 포함이거든. 타지역은 고속도로 다 놓았는데.. 2010년 이후에 고속도로 건설한 것이 자랑이냐?

광주완도 고속도로는 만들지도 않았는데.. 무슨 연장을 했다고 하냐? 하여튼, 뻥은 그만좀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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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남권에 고속도로 건설한 것, ktx 건설한 것, 부산 가덕도 신항만 건설은 쏙빼냐?

대구-부산 고속도로 (경주가는 경부선과 별개임) 2006년 개통 
부산-울산 고속도로 2008년 개통
울산-포항 고속도로 2015년 개통
중부 내륙 고속도로(대구-경북상주) 2007년 개통

경부선 KTX 2단계(동대구-부산) 2010년 개통
<참고로, 부산-광주간 철도는 부산-순천까지는 복선전철화 했는데. 순천-광주는 단선이잖아. 주승용의 올해 총선 공약이 광주-순천 철도 복선전철화다>

경북 상주-경북 영덕 고속도로 2017년 개통 예정
경북 상주-경북 영천 고속도로 2017년 개통 예정
부산 외곽순환 고속도로(경남 김해-부산시 기장군) 2017년 개통 예정 

호남권에 2개 고속도로 만들때 영남권에 7개 만들었거든(4개 완공, 3개는 2017년 완공예정), 영남권 고속도로 건설예산은 왜 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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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개발 계획만 세우고 무산되도, 수십조 예산 투자한 것이 되어 버리냐?

<반론>이 사실이라면 조선일보는 아주 잘못된, 그러니까 '해석의 결과 차이'가 아닌 '팩트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상기 인용기사에는 이런 쪽글이 달려 있는데 이 쪽글의 내용은 100% 맞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쪽글에 대한 찬반의 숫자.


쪽글1.gif




이런 논란을 잠재우고 호남차별을 제도적으로 극복하려면 제가 주장한 것처럼 국가적으로 빅데이타를 구축하여 객관화시키는 것이 급선무겠죠. 그리고 국가적 빅데이터의 확보의 필요성은 그동안 모든 국가적 과제에서 진영간의 주장에서 자신쪽에 유리하도록 통계들을 왜곡 편취하여 주장하는 '나쁜 관행'도 축출해서 국가적 과제의 실행 시 객관적인, 더 많은 의견들을 수렴하고 반영하여 그 시행의 결과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을 최소화 시키겠죠.


호남홀대론의 실체 정치

이것이 호남 홀대론의 실체다 !    
호남홀대 안했다는 친노들의 목소리는 참으로 뻔뻔하기까지 하다. 호남홀대 안햇다고 여러 공직의 호남인사들을 열거하는 친노들은 참으로 뻔뻔하다. 호남이 호남만 혜택보자고 노무현에게 몰표로 지지해 주었을까?? 친노는 얼마 얼마 하는 이해관계로만 접근하고 있다.

실상 호남홀대론은 더불어민주당이 기대에 부응하지못한 내부 행태에서 파생적으로 나온 것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내부적으로 지나친 파벌 계파 싸움이 당의 무능이 당에 대한 실망감이 그런 이야기로 확산된 측면이 오히려 더 강한 것인데도 친노는 그저 발뺌하듯 진흙탕식 반론만 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수도권 이외는 모두가 ??주리는데, 흙 묻은 떡가지고 싸우는 것이 과연 보기 좋냐는 것이다.  


친노들의 주장 : 호남 홀대론 근거없다 !

참여정부 고위직 인사 27%가 호남, 광주 전남 한전 등 이전으로 혁신도시 추진 등



그럼 공직에서 경상도 출신 인사들도 함께 열거하먼 어떨까?? 그러고나서 후하게 몰표를 준 호남과 박하게 일부 표만 준 영남으로 나눠어서 그 지지해준 지지율만큼 다시 비교 해보라. 과연 호남이 몰표로 지지한 만큼 정당한 혜택을 받았는지 말이다.

서민과 진보에서 표 받아서 재벌 대기업 우선의 신자유주의 보수 정책을 쏟아낸 것이 과연 제대로 된 행동인가?? 서민과 진보에서 표 받아서 집권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공직은 사실 고작 몇 십개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 임기중에도 몇 번씩 바뀌기 때문에 검찰 총장 자리 하나도 두세개의 자리로 나타날 수 있다. 노무현 정권 때 호남에서 몰표를 주고 당의 지분도 압도적인 호남에서 노무현 정권때 모든 공직을 모조리 다 휩쓸었었나? 이론대로만 보면 아마 전 공직의 50%는 일단 호남출신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는데말이다. 하지만 당장에 법무무 장관과 검찰 총장 그리고 그 이하 차관까지의 자리를 봐도 호남이 50%는 커녕 법무부장관은 고작 김승규와 천정배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강금실 빼고 모조리 경상도 출신이였다.

유래없는 재벌 대기업 우선에 집중한 노무현 정권 : 2003년 ~ 2008년


김각영 검찰총장: (2002. 11 ~ 2003. 3 ) : 충남 보령. 대전고. 김대중 정부에서 임염되었으나 노무현 대통령 취임 12일만에 사표. 노무현 대통령의 평검사와의 대화 중 "검찰 수뇌부 믿지 못하겠다"고 밝힌 것에 따른 것으로 2년 임기보장이 안된 것에 비판적 시각.

송광수 검철총장 (2003. 4 ~ 2005. 4) : 경남 마산.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불리한 수사결과가 나오자 친노세력과 마찰 중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검토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사임.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불법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물러나겠다고 주장하였지만, 수사가 거듭될수록 자꾸 몇 배로 늘어나자 중수부 폐지 거론한 것.

김종빈 검찰총장 ( 2005. 4. 3 ~ 2005. 10. 17) : 전남 여수. 197일 재임.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법에 따른 불구속 수사 지휘권 발동에 반발하며 이는 검찰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고 판단하고 사임).


정상명 검찰총장 (2005.11 - 2007.10 ): 경북 의성. 경북고.

노무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다. 사법시험 동기인 데다 사적 모임인 ‘8인회’ 멤버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75년 서울 서소문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김해 촌뜨기’ 노무현의 점심 친구 고민을 해결해준 사람으로 정상명과 8인회를 지목했다. 임기 중 주요 사건 : 안기부X파일, 삼성관련 사건 등

임채진 검찰총장 ( 2007.10 - 2009.5.): 부산고, 경남 남해.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떡값 수수검사 중의 한 명으로 지목한 것과 관련해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 노무현 정권이 마지막으로 임명했던 임 전 총장은 박연차 게이트로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서거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강금실 법무부장관 (2003.2.27 ~ 2004.7.29) : 제주. 서울 경기여고. 서울대
김승규 법무부장관 (2004.7.29 ~ 2005.6.29) : 전남 광양. 서울대
천정배 법무부장관 (2005. 6.29 - 2006.7.29) : 전남 신안. 서울대
김성호 법무부장관 (2006.8.28 - 2007.9.3) : 경남 남해. 고려대
정성진 법무부장관 (2007.9.4 - 2008.2.28) : 경북 영천. 서울대
김경한 법무부장관 (2008.2.29 - 2009.9.29) : 경북 안동. 서울대



검찰이든 법무부장관이든 대통령의 임기 초기와 임기 말기는 다르게 나오고 있다. 임기 말기로 갈수록 대통령 본인의 색깔에 맞고 자신에게 유리한 사람을 세우고 있다.

호남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별다른 수혜를 입지 못했다. 그래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무현에게 몰표를 준 것이다. 단순히 이익보자고 호남이 그들을 몰표로 지지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친노들의 호남홀대론의 반론은 아주 구차하고 치사한 이익관점에서만 논하고 잇는 것이다.



무엇보다, 충청이나 경기, 강원 지역 등에서 보면 이런 논쟁 자체가 개차반일 수 있다.  
수도권 이외는 모두가 ??주리는데, 흙 묻은 떡가지고 싸우는 것이 과연 보기 좋냐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 창출의 기여도로 보자면, 과연 호남이 영남에 비해 월등히 많아야 하는게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정상적인 것은 특별한 우대는 아닌 것이다. 서민과 진보에서 표 받았으면 서민과 진보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배신하면 안되는 것이다.


노무현의 측근이자 원조친노의 증언에 따르면, "참여정부 초반 만해도 호남출신 비서관급이 아마 49명 정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 문 후보가 대통령실장으로 재직하면서 그 수가 광주전남 3명, 전북 2명으로 줄었다."

이런 증언은 임기 초반과 후반과의 차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전체 몇 명하면서 홀대는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눠보면 전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흐름이 위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양상과 거의 일치한다.

여기에 정동영, 천정배, 박지원 등 호남의 주요 중진 인사들에 대한 친노들의 강한 거부감과 일방적인 배척도 한 몫햇다고 본다. 막말로 정동영이 범법자 전과자인가? 이명박의 BBK 사건을 무협의로 덮어준 것이 정동영이였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김대중 대북송금특검도 호남홀대론의 한 부분이다.

왜 김영삼이나 박근헤에 대해셔는 별다른 조치가 없이 오로지 김대중에 대해서만 그렇게 가혹하게 몰아붙이며 특검까지 했냐는 것이다. 심지어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서 대북송금 특검이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팽배했는데 말이다. 지금의 김부겸 대구 수성갑 당산자도 당시 그 문제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결국 김대중의 대북송금특검은 친노와 한나라당의 강경파가 손을 잡고서 몰아붙였던 행위였다.



당시까지만해도 외형상 오로지 대립과 갈등만 존해했던 대북 교역이나 교류도 없었고, 따라서 대북관련법들도 없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김대중의 평양방문으로 남과 북은 서로 교류를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누가 봐도 명백한 대권행위였다. 그리고 참고로 북한의 핵개발 역사는 이미 노태우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친노들은 김대중 겁주기를 시도하면서 당신이 직접 지시한 것이냐 직접 따지고, 그래서 직접 지시안한 것으로 해서 박지원 독단적인 행위로 결정하고 박지원을 감방에 쳐넣음. 만일 김대중이 현금준비를 직접 지시했다면 그 때는 친노들이 그 행위를 대권행위로 받아드렸을까?? 그로인해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되었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원만히 해결한 것이다.

아래의 자료를 보듯 이미 2002년부터 친노들의 김대중 비판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친노들의 김대중 비방글 어제 오늘의 일이더냐?
불리하면 김대중 정신 운운하고 틈만나면 김대중 비방한는게 김대중 정신 계승이냐?


왜 친노들은

아래와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특검 등 조사 요구 안하나??
친노들의 논리라면 김영삼 정권도 특검해야 맞다.




당시 민간이 신분이였던 박근혜의 평양 방문시 들고 갔다는 500억원에 대한 조사는 왜 없나?




LH공사 지방 이전 문제도 호남홀대론의 또 하나의 근거다.

무엇보다 정부 공기업의 지방 이전 사업에서 아마도 가장 덩치가 크다는 LH공사는 나중에 '리틀 노무현'이라고 불리던 경남의 김두관 도지사 때 그 경남에 빼앗겨 버렸다. 전북에서 도민들까지 나서 항의와 규탄 대회를 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본래대로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분리 유치추진도 거부되엇던 것이다. 한꺼번에 통합해서 다 가져가버린 것이다. 분권의 본래 취지에도 그다지 부합하지못한 것이다.


그리고 충청도나 강원도는 정부 공기업 유치 못했나?? 혁신도시 안생겼나는 것이다. 지방 혁신도시 건설이 호남만의 우대정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호남에 유치된 혁신도시는 시헤적인 아주 특별히 우대한 호남 우대적 조치이고, 충청도와 강원도에 유치된 혁신도시는 지방분권 정책에 따른 당연한 해당 지역 몫이란 말인가?? 충남의 엄청난 변화는 그럼 또 뭐냐?? 행정수도인 세종시 이 외 아산 등 다른 지역의 엄청난 발전은 그럼 또 뭐냐는 것이다. 자민련의 지역정당이 있어서 충청도가 고립되어서 그렇게 발전했나??



친노들의 논리는 참으로 개차반이다.

호남이 홀대 주장하면 구차하게 이렇다 저렇다할 내용은 사살없다고 본다. 그런 논쟁을 하려한다면 제주도 둥 다른 지역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말이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도 자꾸 지연되고, 오히려 농업용지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개발을 더 용이하게 한 이명박 때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구감소야 대부분의 지방에서 다 격은 상황이지만, 특히 전북은 중국과의 가까운 지리적 이점에도 높은 산지가 없음에도 현재 전국 최하위 경제상황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실상 호남홀대론은 더불어민주당이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못한 자신들 내부 행태에서 파생적으로 나온 것으로 본다. 내부적으로 지나친 파벌 계파 싸움이 당의 무능이 당에 대한 실망감이 그런 이야기로 확산된 측면이 오히려 더 강한 것인데도 친노는 그저 엉뚱한 말로 변명하기에만 바쁜 모습이다.

'호남 홀대론' 이야기 나왔을때, 미쳐 생각을 못했봤다 일부는 다소 오해가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지만, 호남 민심의 상대적 체감이 그러하다는 것이기에 일단 반성하고 향후 당내에서 호남의 지지와 지분에 부합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호남홀대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도 못하는 구차한 변명으로 호남인들을 더 화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펌)

친노패권주의가 없다고? 정치

김종인 합의추대냐 아니냐로

오늘 이종걸이 인터뷰를 했는데...

거기서 문재인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했어.

그야말로 문재인이 오너라는걸 이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이종걸도

다 수그리고 있다는거지.

그런데 문재인은 전대표잖아..

문재인이 대가리 쓴게 김종인을 공동비대위장으로

영입해.....그러고는 다른 사람을 사퇴시켜서

김종인을 단독비대위장으로 만들고 자기도 당대표

사퇴하지.

결론만 보면 말도 안되는 짓거리야...

당대표가 외부인사를 지명해서 전권을 넘기는건

있을수가 없는 일이거든. 당대표가 사퇴하면

당헌, 당규에 차순위 지명이 나와 있는 것이지

내가 사퇴한다고 너가 해..하듯이 맘대로 물려줄 수 없어.

(펌)

그래서 문재인은 편법써서 김종인에게 전권을 물려줬는데

김종인이 폭로한바에 따르면

문재인이 대선때까지 당을 맡아달라고 하면서

영입했다는거야.....

이게 말이 돼?

총선이후 전당대회를 하는건 상식적인거고

그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대표가 뽑히는건

당원이든 대의원이든 그들이 할 일이야.

대체 문재인이 뭐라고 차기 전당대회 이후의

권력까지 보장하지.....

친노패권이 없다는 자들은 이건 어떻게 설명할건데?

김종인이 지금 합의추대해달라고 버티는건

문재인이 대선까지 당을 맡아달라고 약속했기 때문이야.

즉, 문재인 너가 나와서 판 정리해달라고 하는거야.

그런데 지금이야 문재인이 오너라는거에 맞설 비노조차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지만....

총선전은 그게 아닌데......어떻게 당 대표가

차기 대표자리까지 약속하나.....

이거야 말로 당원이나 대의원들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얘기인것이지.......

이게 친노패권 아니면 뭐가 친노패권이겠어......

친노패권 없다는 친노들 많은데....

친노패권은 다른게 아니야.

당권을 잡는다고 친노패권인게 아니라..

이런식으로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하거나

경선시 룰개정이 반복되고 과거 한명숙 서울시장 나올때

당내경선에서 TV토론 하게 선관위에서 규정되어 있음에도

한명숙을 보호하려고 아예 TV 토론을 못하게 막았지.

그때 이계안이 선관위에 호소했는데 선관위는 묵묵부답.

심지어 선관위원장이 한명숙 캠프에 가담....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을 두고 친노패권이라 하는거야.

내로남불에 잣대가 오락가락하면서 어떻게든 자신들

유리한 방향으로만 하니까 친노패권이라고 하는거지.

당대표가 차기 대표자리를 약속해?

전두환이 노태우한테 대통령 약속하는거 따라하긴가?

이런 문제가 대중들에게 환기돼야돼.....

4.13총선 지역구 정치

새누리당 지역구 920만 563표 비례 796만 272표
더민주당 지역구 888만1163표 비례 606만9744표
국민의당 지역구 356만5382표 비례 635만5572표
정의당 지역구 39만5357표 비례 171만9891표

수도권 122


서울 49개 선거구

새누리  12

더민주  35

국민의당 2


경기 60개 선거구

새누리 19

더민주 40

정의당 1


인천 13개 선거구

새누리 4

더민주 7

무소속 2



PK 40


부산 18개 선거구

새누리 12

더민주  5

무소속  1


울산 6개 선거구

새누리 3

무소속 3


경남 16개 선거구

새누리 12

더민주  3

정의당  1




TK 25


대구 12개 선거구

새누리 8

더민주 1

무소속 3


경북 13개 선거구

새누리 13




대전 충청 26


충남 11개 선거구

새누리 6

더민주 5


충북 8개 선거구

새누리 5

더민주 3


대전 7개 선거구

새누리 3

더민주 4


세종시 1개 선거구

무소속 1





호남 28


광주 8개 선거구

국민의당 8


전북 10개 선거구

새누리 1

더민주 2

국민의당 7


전남 10개 선거구

새누리 1

더민주 1

국민의당 8



강원 8

새누리 6

더민주 1

무소속 1



제주 3

더민주 3




새누리 105명 14개 시도에서 당선자 배출 (세종 광주 제주 제외)

더민주 110명 13개 시도에서  당선자 배출 (세종 광주 울산 경북 제외)




20대 4.13총선 광주 전남 전북 지역별 득표수 정당별 득표율 정치

1.


지역구별 득표수

광주

더불어민주당 241,276표

국민의당 398,594표

157,318표 차



전남

더불어민주당 373,720표

국민의당 430,405표

56,685표 차



전북

더불어민주당 365,726표

국민의당 398,321표

32,393표 차




더불어민주당 980,722표

국민의당1,227,320표


총 득표수 차 246,598표



국민의당 약 47%
더민주당 약 38% 입니다.



2.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수

광주

더불어민주당 200,628표(28.59)

국민의당 374,308표(53.34)


전남

더불어민주당 289,799표(30.15)

국민의당 458,772(47.73)


전북

더불어민주당 298,537(32.26)

국민의당 395,984(42.79)




더불어민주당 788,964표(29.58)

국민의당 1,229,064표(46.08)


친노패권공학의 최후 결정판 문재인의 단말마적 호남협박 정치

친노패권공학의 최후 결정판 문재인의 단말마적 호남협박

친노패권공학의 최후의 단말마적 호남,민주 자존감 확인사살 겸 지지층 ,국민협박 망동총선 공멸 부르는 야권분열 주역 친노 더민당

문재인이 친노패권과 안철수 국민의당 창당으로 인한 야권분열 책임 회피와 함께 이해찬을 비롯한 친노패권의 걸림돌이자 껄그러운 당내 시어머니,사생아 진골,육두품 범친노와 비노 공천숙청을 통해 명실상부한 성골 친노친문 패권정당으로 재창당키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회심의 한수가 도부수 바지사장 카드였다.

그러나 비례초려끝에 영입한 도부수 바지사장 김종인이 거침없는 칼부림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자 당내 친위대 친노를 동원 야비한 '셀프공천' 합창으로 김종인 토사구팽 작전을 펼쳤지만 노회한 김종인이 여론을 끌어들인 자가투쟁 역공으로 사면노가(四面盧歌)에 맞짱을 뜨면서 오히려 김종인,문재인 둘다 죽는 토사공팽(兎死共烹)상황으로 바뀌었다.

자칫 친노친문 패권 정당,대권도전은 커녕 제 무덤을 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면서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생사존망의 기로에 몰리자 그동안 김종인 수렴청정 지휘용으로 사용하던 원격 리모콘을 낙동강에 내 던지고 급거 상경 "같이 살자"며 당권에 총선 총사령탑 지휘봉까지 안겨주는 사죄 읍소초려로 제 무덤을 팔뻔했던 바지사장 토사구팽 꼼수를 접었다.

그러나 셀프공천 토사구팽 작전으로 더민당이 친노 사당임이 드러난데다 문재인의 조종을 받는 공학적 리모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는게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이로인한 지지층 이탈과 비판적 국민 여론이 비등하면서 경쟁을 허용치 않으려 일부러 무시했던 안철수 국민의당이 용틀임을 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정권봉헌,선거패배가 전매특허인 민주 역적 정치 패잔병임에도 일말의 반성도 없이 지지층과 국민 감성 자극 당심 들러리 국민경선제 패권무기로 기득권을 누려온 민주 역적답게 야권을 대표하는 친노친문 패권진영으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겠다며 새누리당 개헌선 저지를 대의명분으로 포장 친노 아스팔트 시민사회 원로 정치 장사꾼들을 전위대로 내세워 친노 중심 야권통합,야권연대 굿판을 벌였다.

한완상 전 부총리가 선봉에 서서 "야권연대를 거부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직설 어법을 동원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압박하였지만 안 대표가 "양당 기득권 해체,3당 체제가 더 중요하다"면서 "차라리 광야에서 죽겠다"는 일도양단의 결기로 독자노선을 천명하고 구경꾼보다 안철수를 희생양 삼아 패권 목적을 달성하려는 비열한 술수라는 비판여론이 확산되면서 총선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지역기반 중심의 한국 정당정치 특성 상 지역기반을 상실하면 정권교체 수권대안 정당의 지위를 상실한다는 점을 고려할때 호남을 지지 기반으로 존재해 온 더민당으로서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밀리는 최악의 상황까지 연출되자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호남을 잃은 상황하에서 총선에서 수도권과 충청지역에서 의미있는 성적을 낸들 모래위에 쌓은 성처럼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다.모래언덕인 수도권을 호남 야성 열풍이 불어 올라와 다져 주지 않으면 찰라의 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정치생명을 좌우할 호남바람의 북상이 국민의당 블랙홀로 호남 민심이 빨려 들어 가면서 김종인의 107석 배수진,한겨레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 등 친노 호위무사 언론들의 진보 여론 조작성 지원 보도 등 안철수 국민의 당 죽이기,호남 민심 붙들기 총력전을 펼쳤지만 호남과 국민은 더 멀어져 갔다.

호남홀대,호남차별 강변 최후의 패권공학 승부수 호남 협박

지지기반 호남과 지지층 붙잡기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 등 백약이 무효가 되면서 호남 전역이 국민의 당 천하가 될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자 문재인은 바지 사장 김종인과 최후의 패권 공학 승부수 띄우기를 모의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90%넘는 압도적 전략적 몰표를 주었던 호남이었다.그러나 정치적 은인이요 존재이유인 호남을 친노 패권주의로 능멸한 결과 이제는 찾으면 찾을수록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기에 호남지역 더민당 잔류 세력은 물로 당내에서조차 호남을 가지 않는게 도와 주는 것이라며 문재인의 호남 방문을 반대하였다.

이러한 호남지역의 반노반문정서를 깨부수지 않고는 더민당,친노 문재인의 정치적 미래는 없기 때문에 호남방문이라는 정공법으로 정면돌파하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표면적으로는 그랬다.그러나 문재인의 호남 방문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전제하에 호남 민심이 돌아서면 금상첨화지만 돌아설 가능성이 낮기에 호남 민심 달래기보다는 호남 민심 협박으로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고 수도권 및 비호남 친노친문 지지세력 결집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촛점을 맞춘 것이다.

문재인과 김종인은 문재인의 호남방문 대국민 관심제고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김종인이 "문재인 호남방문 득될게 없다"장이야 하면 신 문고리 권력 측근으로 자리잡은 정청래와 감홍걸이 나서 "호남에서 전멸하고 수도권에서 이겨서 130석 할 가능성은 없다.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에 가야 한다" 궁으로 맞받는 짜고 치는 관심 유발 호객행위를 연출하였다.

정치권과 언론의 논란거리로 키워 문재인의 호남방문에 여론의 포커스가 맞춰지는 시점에 맞춰 전격 호남을 방문 읍소를 가미한 협박으로 호남을 통타 친노친문 결집으로 승부를 내 총선 후 야권 재편을 주도 대권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친노 진영의 존망을 건 최후의 패권 공학적 잔꾀가 선거를 닷새 앞둔 4월 8~9일 이틀간에 걸친 문재인의 호남 방문인 것이다.

친노 정치마당쇠 김홍걸과 무릎팍 꿇기,충장로 퍼포먼스

문재인은 친노친문 정치 마당쇠를 자처한 긴대중 전 대통령의 세째 아들인 김홍걸을 반노반문정서 방패박이로 꿰차고 광주로 내려가 먼저 5.18민주화 국립묘지를 찾았다.문재인은 김홍걸과 함께 참배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호남에 고립감과 상실감만 안겨드렸다”며 “여러분에게 직접 야단을 맞고, 질타를 듣기 위해서, 안 된다는 당을 설득해 이제야 왔다”는 말로 용서를 구하였다.

문재인의 이러한 사죄와 반성의 자세는 진정성과 설득력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그러나 거기까지였다.5.18묘지 무릎꿇기 사죄가 호남 협박을 위한 푸닥거리 퍼포먼스였음을 오후 2시 30분쯤 300여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충장로에서 가진 '광주 시민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입장문 발표를 통해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5·18 민주화묘지를 참배한 후 광주천을 따라 양동시장, 광주공원 등을 거치는 동안 만난 광주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납짝 엎드린 자세를 취하였지만 입장문을 펼쳐든 충장로에서 자세는 사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전면전을 각오한 결기가 넘쳐 흘렀다.

"광주시민 여러분, 뵙고 싶었다"는 말로 입을 연 문재인은 "대선주자로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호남 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밑거름 삼았으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승리의 기쁨을 돌려드리지 못하고 호남에 고립감과 상실감만 안겨드리고 강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고, 정권교체의 희망도 당의 분열,후보 단일화도 이루지 못해 반드시 이겨야 할 국면에서 분열로 인한 패배를 걱정하게 만들었다"고 한탄했다.

이어 문재인은 "늦게 찾아 죄송하고 그간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서 "분이 풀릴 때까지, 제 얼굴 맞대고, 호되게 꾸짖어 달라"면서 "이제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든 하겠다"는 말로 시민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였다.

그러나 으레적인 인삿말 끝에 나온 뒷말은 자화자찬이었다.자신이 대표 사임전 영입한 인물들을 말하는 듯 "더불어 민주당은 과거의 혼란을 딛고 새롭고 유능한 인재들로 넘쳐 난다"면서 "이 나라를 이끌어가기에 충분한 인재들이 호남의 더불어 민주당 후보들 속에 있다. 정권을 탈환하고, 대권을 꿈꿀 만한 훌륭한 씨앗들이 뿌려졌다"고 강조한후 " 호남 기득권 정치인의 물갈이를 바라는 호남의 민심에 우리당은 호응했다"고 큰 소리쳤다.

그러면서 문재인은 "호남을 볼모로 자신의 기득권에만 안주했던 구시대적 정치, 호남 민심을 왜곡해서 호남을 변방에 가두어 두려는 열적 정치인. 여러분들은 그런 정치인들에 대한 강한 교체 의지를 더불어 민주당의 후보들을 통해 바로 그런 구시대적, 분열적 정치인을 심판할 수 있다"는 말로 사실상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들을 낙선시켜 줄것을 요구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재인은 "호남인에게 지역 정당이란 불명예를 안기면서까지 그들만의 영달을 쫓는 세력이 이 신성한 호남 땅에서 더 이상은 발붙이지 못하도록, 더불어 민주당의 모든 호남 후보들은 끝까지 싸워 나갈 그들에게 힘을 줘달라"며 안철수 국민의 당을 호남이 타도할 불구대천지 원수로 세뇌시키는 말도끼질을 서슴지 않았다.

이어 문재인은 "저에 대한 여러분의 실망과 섭섭함에도 불구하고,새누리당과 맞서 정권교체 해낼 더불어 민주당에 대한 여러분의 애정을 믿어 의심치 않는데도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으며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는 최후 통첩성 협박 발언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호남홀대,차별 안했다는 후안무치한 치매성 강짜

이어지는 망언은 점입가관의 극치다."저의 모든 과오를 짊어지겠다. 그러나 한 가지, 제가 가져갈 수 없는 짐이 있다"면서 사실상 자신이 짊어져야할 과오의 핵심인 "저에게 덧씌워진 “호남홀대” “호남차별”이라는 말 만큼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고 아픔이자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모욕으로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며 5.18민주화 묘지에서의 사죄 침방울이 마르기도 전에 깡그리 부정한 것이다.

감히 국민을 앞에두고 이렇게 후안무치할수가 있단 말인가.문재인이 누구이던가.치졸한 반정치도의적 도덕적 차별화와 우리가 남이가 영남 정서 영합에 의한 친노정권제체 조기안착 및 강화를 위해 정권창출의 은인인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 죽이기 대북송금특검을 기획하고 민정수석으로 기획 사정 사령탑을 맡아 동교동계 중심 호남정치인,국민의 정부 인사 학살숙청을 주도한 장본인 아니던가.

이뿐 아니다.영남 중심 친노 전국정당 건설을 위해 노무현의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회창이 싫어 나를 찍은것,정치발전 가로막는 호남지역주의 타파 위한 전국정당 건설"배신적 망언에 만세 삼창을 부르며 민주당 분당,친노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서 호남을 능멸하고도 부산에 내려가 "노무현정권은 부산정권" 선언으로 전통적 지지층과 호남인들 가슴에 피멍을 들게 만들었다.

자신의 정치적 본색이 이러함에도 문재인은 적반하장을 정당화하려는 울먹임 연기를 구사해 가며 거듭 "호남이 듣기에 섭섭한 말을 했을 수도 있으나 결단코 호남 홀대는 없었으며 오히려 역대 어느 정부보다 호남을 배려했다고 자부한다"는 말로 호남 자존심 죽이기 입방망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회창 싫어 찍었다.호남 지역주의 타파,호남정치인과는 정치하기 싫다,부산정권 발언이 섭섭한 말 한마디로 넘길 사안인가.천냥빚을 갚는 진솔한 설득력 있는 중천금이 아니라 오히려 만냥빚을 더 짊어지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호남에 대해 배려했다고 하는데 친노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굴종적 범 친노 호남 출신들에게 감투를 주었을뿐 호남 출신 숙청용 '다면평가서'를 만들어 정부 각 부처 호남 출신들을 쫒아내고 그자리에 영남 출신들로 채웠으면서 배려를 했다니 개가 웃을일이다.

김대중 정부는 DJP연합정신에 따라 김종필 자민련 출신들에게 총리 3명을 비롯 장관,심지어 공기업 임원진까지 철저하게 5:5비율로 안배를 하여 배려를 했다. 이는 김종필 전 총리가 회고록에서 밝힌데서 잘 알 수 있다. 노무현 정권시절 지역별 고위 공직자 분포 현황을 보면 호남의 경우 14% 수준이었다.12%이하에 머무르고 있는 명박근혜 정권에 비하면 약간 높기는 했지만 실세 보직보다는 대부분 한직이나 허세 보직으로 밀렸다는 점에서 보면 도긴개긴이다.

이에 비해 영남 출신은 38% 수준을 유지 했을뿐만 아니라 실세보직 등 노른 자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실이 이러한데 호남을 배려했다니 이야말로 말로 안된 개코같은 흰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경제적으로도 눈을 씻고 맨정신으로 들춰봐도 호남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노무현 정권 시절 10조원을 투자하여 부산 신항만을 집중 개발하여 젖과 꿀이 홍수가 나는 부산만세 소리만 요란했지 호남엔 빈깡통 두드리는 깽깽이 소리만 처량하게 울렸을 뿐이다.

배려인지 배아파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호남인 분통 터지게 만든 요사스러운 말을 들은적은 있다.이해찬 총리가 당시 건설 중이던 호남 고속철은 투자 가치가 낮기 때문에 중단하거나 보류해야 한다는 개차반 같은 망언이다.

실상이 이러했으면 이게 홀대요 차별이지 배려를 했다니 미친개마저 포복절도할 강짜를 대명천지 백주대낮에 그것도 호남인을 대상으로 혀무당당하게 내뱉다니 아직도 호남인들은 그대를 비롯한 친노패권의 영원한 종이란 말인가.

'문재인의 4.8 광주선언'이 아니라 '문재인의 4.8호남협박'

문재인의 4월8일 광주 발언은 골백번 접고접어 이해를 하려해도 '문재인의 4.8 광주선언'이 아니라 '문재인의 4.8호남협박'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호남의 이단아로 불리는 김홍걸을 방패막이 삼아 계산된 5.18민주화 묘지 무릎팍 꿇기 푸닥거리 퍼포먼스로 지능적인 동정심을 자극,유발 정치 철면피 패권친노 이미지 세탁한것부터가 작심하고 광주땅을 밟은 것이다.

충장로에서"지지를 거두면 미련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며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호남을 홀대 차별하지 않았는데 홀대,차별했다는건 문재인,노무현과 참여정부,즉 친노에 대한 모욕이자 치욕이요 아픔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대안이 될 수 없는 국민의당보다 정권교체를 이루어 낼 수 있는 더민당에 전략적 투표를 해 달라"는 정치적 노림수는 뻔하다.

이미 국민의당으로 쏠린 호남민심이 자신의 협박에 놀라 더민당으로 원대 복귀 전략적 선택으로 호남에서 반타작이라도 하게되면 좋고 최악의 경우가 예상되는 만큼 차라리 당당하게 할말을 해버리는게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이 노리는 호남협박이 노리는 핵심은 호남 홀대 차별이 사실이 아님을 천하에 공개 선언함으로써 호남의 반노반문 정서를 지역주의에 천착한 억지 타령으로 낙인 찍어 반사적으로 친노 세력의 자긍심을 높혀줘 지지층을 결속,결집 녹색바람 상경차단,대중 선동 부대로 동원,수도권과 충청 지역에서의 승부를 통해 총선 후 야권재편 주도,대권고지 선점으로 친노패권을 완성해 보고 싶다는 중독성 패권욕의 산물이다.

결론적으로 문재인의 광주 협박은 지략과 전략과 거리가 먼 모의,모략,책략,권모,술수,꼼수가 본색이요 정체성인 친노패권공학의 최후의 단말마적 호남,민주 자존감 확인사살 겸 지지층 ,국민협박 망동이다.제발 이번 망동을 끝으로 민주역적 친노의 준동이 종말을 고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친노가 민주당을 접수한 과정(친노패권이 없다?).txt 지역주의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니 호남이 최대주주고 친노는 한줌도 안된다며?


근데 왜 휘둘리고 다니느냐?


애초에 구조가 말이 되느냐?


그러니까 친노 패권이란 없는 거다. 이런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전 친노의 당권 장악 과정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친노의 당권 장악 과정의 핵심 이념은 단 하나였습니다.


'호남 밟고 영남 가자.'


호남은 당연히 우리 표이니


새누리가 최대 주주인 영남에서 야권 영남 사람들을 얼굴로 내세워


지역구도 타파하자 이겁니다. 네 나쁠 거 없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의 집권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근데 이젠 아닙니다. 이런 식은 아닙니다.


그들에겐 당원은 없었습니다. 흑싸리 껍데기였습니다.




1. 지지율 5%도 안되고 국회의원 하나 없는 혁통은 어떻게 60년 전통의 80석 민주당을 접수했나?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는 2010년 55년 전통의 민주당 당수가 되었습니다.


이후 엠비의 역대급 삽질들로 반사이익을 얻었고 재보선에서 연전연승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11월, 한미 FTA 재개정 및 폐기 여론이 크게 일었는데


11월 22일, 한나라당에서 한미 FTA를 날치기 통과하는 사건이 일어나 국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전부터 한미 FTA 반대 입장을 견지했던 천정배, 정동영, 민노당을 필두로


격렬한 반대 움직임이 있었고 거리에서 농성했습니다.


근데 유시민의 427 재보선 참패 이후


나꼼수의 뽐뿌질로 국회의원 경험 하나 없이 대선지지율 10%를 넘던 문재인과


그를 업은 이해찬, 한명숙, 문성근은 그자리에 코빼기도 안비쳤습니다.


그들은 뭘했을까요?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32936§ion=sc1§ion2=



바로 혁신과통합이라는 페이퍼정당을 만들어


60년 전통의 민주당을 접수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손학규와 혁통의 야합으로 전체 대의원의 정족수 및 과반수마저 조작하며


이 두 당은 합당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우리의 한겨레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당원들을


또다시 '난닝구'프레임에 가둡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9741.html


그리하여 두 당은 당대당 합당을 하게 되었고


권리당원 수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부족했던 혁통세력은


이제부터 '마법의 모바일 신기'를 활용하게 됩니다.


일일당원이라는 해괴한 개념을 빌어 전당대회를 접수하기 시작했고


(이하 수정)


또한 5:5 합당에 걸맞게 대의원 구성은 의석 80석이 넘는 민주당도 10500명,


의석 0석인 시민통합당도 10500명 해서 총 21000명의 대의원에게


무려 지분 30%를 몰빵해줍니다.


(이상 수정)


그 결과, 불과 한달전에 합당한 한명숙, 문성근에게 무려 41.38%의 득표가 돌아갔고


그리하여 한명숙 체제로 2012 19대 총선을 치르게 됩니다.


그리고 유종일, 이해영, 송기호, 이상이 같은 개혁적 경제 전문가들을 죄다 낙천시키고


노이사 공천에 여념이 없었습니다.(친노, 이대, 486)?


또한 뜬금없이 본인들이 총리하면서 추진했던 해군기지와


불과 몇달전 에프티에이 농성에 코빼기도 안비친 이들이 한미에프티에이 폐기에 나섰는데


곧바로 이명박이 '노무현이 시작한 에프티에이 이명박이 완성합니다'로 반격합니다.


곧 '착한 에프티에이 나쁜 에프티에이, 착한 해군기지 나쁜 해군기지' 프레임에 빠져


민주당이 200석을 넘는다는 총선에서 새누리 과반을 허용하며 참패하고 맙니다.




? 2. 총선에 참패하고도 문성근, 이해찬 대표 체제


정말 놀랍게도 무려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곧바로 문성근이 당권을 잡았고


이후 6월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해찬이 당수가 됩니다.


여기에도 당원은 없었습니다.


전당대회의 비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대의원 30%, 모바일 70%....


네.. 모바일 70%....


그리고 대의원은 아까 그 민주당과 혁통당이 반반 가지고 있던 그 대의원..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그나마 대의원 비중도 부산에서는 투표율을 높이려고 오후 7시에 대의원회의를 하고


광주전남에서는 그것도 화순에서 오후 1시에 대의원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호남이 친노 싫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바일과 대의원으로 국회의원 경력 고작 6개월인 문재인이 제1야당 대선후보에 등극합니다.





3. 2014 730 재보선


우리는 2014 730 재보선을 김한길-안철수의 실패라고 보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바로 김안4노의 거대 삽질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안철수는 세월호, 안대희, 문창극 정국에서도 재보선 5석 예상한다 흰소리를 하였고


호남에 자기 사람 심기에 바빴으며


백두환관 김한길은 그런 안철수의 권력욕을 역이용하여


천정배하나 쳐보겠다고 기동민 허동준 권은희 사태를 연이어 야기했습니다.


또한 486들은 연판장 정치로 제1야당의 기득권이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시켜주었고


친노들은 15곳 중 무려 7곳에나 본인들이 공천되어서 7곳 모두 전패했습니다.


그중 순천에서의 서갑원 패배는 야권지지자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습니다.


근데 김한길 안철수는 적어도 자기들이 책임지고 대표 사퇴했습니다.




4. 조강특위


조강특위라는 말이 생소할 것입니다.


바로 245개의 지역위원장을 뽑는 권한이 있는 위원회입니다.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 지역위원장이 총선에서 공천 및 경선에서 유리할 뿐만 아니라


바로 지역의 대의원을 뽑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기구입니다.



2014년 10월 조강특위에는 15명이 뽑혔는데


그 중 5명이 친노(윤관석,김태년,장하나,남윤인순,허성무),


나머지 2명이 범친노(오영식, 김영주)였습니다.


나머지 1명은 민평련, 나머지 2명은 김한길계 나머지 2명은 안철수계


나머지 1명은 정동영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그들의 입맛에 맞게 지역위원장을 꾸려나갔고


전국 246개 중 213개를 단수임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위원장들은 대의원을 뽑아나가기 시작합니다.





?5. 2015 2월 전당대회


조강특위 얘기를 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들이 임명한 지역위원장이 대의원을 측근들로 임명하고


바로 그 대의원들이 바로 전당대회에서 표를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도 아시다시피 권리당원의 권한은 적었습니다


대신 대의원과 여론조사가 부각 되었습니다.


대의원 45% 당원 30% 국민여론조사 15% 당원여론조사 10%


그리하여 결과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문재인 대의원 45.05 당원 39.98 국민여론 58.05 당원여론 43.29


박지원 대의원 42.66 당원 45.76 국민여론 29.45 당원여론 44.41



그런데 참 의아하셨을 겁니다.


아니 당원은 박지원이 이기는데 대의원은 문재인이 이기지? 하며 신기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신기할 게 없습니다.


바로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4번에서 언급한 조강특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당원 분포와는 전혀 맞지 않는 대의원 분포입니다.



2015년 1/18기준 전체 권리당원 262611명 중 호남이 무려 145254명으로


전체중 호남의 비중이 55.5%인데 반해


같은기간 전체 대의원 14719명 중 호남은 고작 2311명 즉 전체의 고작 15.7%입니다


반면 영남의 경우는 같은 기간 권리당원 숫자가 겨우 8678명으로 


전체중 고작 3.3%인데


대의원은 무려 2728명으로 전체의 18.5%나 차지합니다.


이런게 어딨습니까?


없는살림에 집권하라고 땀묻은 돈 코묻은돈 내봐야


권한부여 이따구로 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그 연세많고 노회한 이미지인 박지원을 상대로


아주 가까스로 문재인이 당권을 잡게됩니다.


호남이 싫어하는덴 다 이유가 있습니다.





6. 재보선 패배에 책임 무


아니 뭐 그래도 그래도 승리하자면 영남표 중요하다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던중 당대표로서의 능력을 시험가능한 순간이 왔네요


바로 2015 429재보선이죠


문재인은 서울의 호남인 관악을에 경선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연정의 설계자인 정태호 공천을 관철시켰고


대선땐 고작 광주 두번 내려가놓고


천정배하나떨어뜨리자고 무려 8번이나 내려갑니다


그리하여 호남민들은 분노하여


비오는 투표날 체육관에서 줄서가며 투표하러갑니다


김포의 딸이라는 문재인 부인이 가세하는 착한 지역주의를 보여주고


야권에게 수월한 성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4전 전패라는 끔찍한 성적표를 받아듭니다.


지난 14년 730때는 김안사노가 모두 개판쳤음에도 불구하고


김한길안철수는 선거다음날 책임지고 대표직 반납했는데


문재인은 호남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거니와 대표직도 계속 이어가네요?





네 이래도 친노패권 없습니다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p=1&b=bullpen2&id=4816368&select=title&query=&user=&reply=


김대중과 문재인이 비교가 되나(펌) 정치

김대중과 문재인은 일단 체급자체가 비교가 안되지

일단 유세할때 몰고 다니는 인파에서부터 차이

그리고 문재인은 호남과 수도권에서 국회의원 당선시킬 능력있나? 그러나 김대중은 실제 그런 정도의 능력을 가졌음

혹자는 김대중 4수를 가지고 말하는데

71년 대선은 사실 DJ가 이긴 선거였지. 독재정권이 불끄고 자기들 유리한 투표용지 막 집어넣고 하던 시기인데

87년은 3김대립으로 다자구도였고 92년 역시 3당합당이후 정주영나오고 해서 다자구도였어. 다자구도에서 김대중만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김대중이 계속 나갈 수 밖에 없었지

결국 유일하게 비교할 수 있는 건 양자대결이 펼쳐진 97년 대선인데 그때 DJ는 양자구도에서 DJP연합으로 중도층흡수노력등으로 결국 대권을 먹었지

문제는 문재인은 양자구도의 지난 대선에서 분명 중도층 흡수능력이 더 뛰어났던 안철수를 재끼고 올라가서 지고 왔어. 그 와중에 내부 비토층이 장난 아니지. 문재는 중도보수전반에 거친 막대한 비토층이 있어 확장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거지. 특히나 안철수 나오면 안철수가 이기지만 문재인 나오면 진다고 그렇게 말해도 친문쪽 파이터들만 계속 인간성 좋은 문재인이 이길거라는 종교모드로 일관했다는것

김대중은 지지자들 사이 내부 비토층은 거의 없었거든. 김대중은 노무현도 끌어안고 재야도 끌어안고 중도보수층도 끌어안와았거든. 마지막 김종필까지도 김대중과 연합 할 정도로

반면 친노들은 지지자들 사이 내부 비토층을 스스로 만들어왔어. 또 친노들이 지난 과거 정치를 개판으로 운동권식으로 해서이기도 하지. 그 결과 기존 지지자들이 노무현 대연정 이후부터 해서 다 떠나가기 시작해서 선거마다 참패공식 만들어갔지

가장 큰 문제는 대선 패배이후 문재인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젼같은 거는 거의 보여주지 못했고 거의 내부싸움에서만  능력만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과거 지지자들이 더민당 떠나 무당층이 되거나 새누리 지지하도록 만들어버렸지.

한마디로 문재인은 경남에서라도 제발 자기능력으로 국회의원 10석이상 은 그냥 쉽게 만들수 있냐 이말이지. 사실 문재인은 김대중은 커녕 김종필에도 안되는 수준이지. 오히려 이번에 안철수가 수도권에서 돌아다니면서 국회의원 자기 외에 추가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안철수가 오히려 김대중과 비슷한 행보겠지(물론 안철수도 아직 김대중과 비교는 안되지만 적어도 김대중과 유사한 능력을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보임)

그리고 김대중은 처음 수구보수 일변도의 정치환경을 타개하려는 입장이었어. 사회 모두 강고하게 버티고 있는 기득권을 처음 타파하는 그런 것이었는데 그 이후 김대중이 뿌려놓은 좋은 환경하에 노무현은 보다 쉽게 당선이 가능했던 것이고. 한국 사회의 기득권을 김대중이 처음 무너뜨리는 상황과 이미 2번 무너뜨려려봐서 우리도 어느정도 인프라를 가진 뒤의 상황을 똑같다고 말할 수 없지















참여정부 비서관중 호남출신 비중 - 문재인 호남인사숙청 지역주의

국민정부 초기 36%
중기 43%
말기 43%
참여정부 초기 25%
중기 20%
말기 9%
MB정부 초기 11%
중기 11%
말기 10%
근혜정부 초기 12%

출처: 한국행정연구 제22권 제3호 2013
대통령 비서관 인사에 대한 정권별 비교연구
비서학 논총 제17권 제2호

문재인씨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호남출신 비서관 수가 광주전남 3명, 전북 2명으로 줄었다 - 참여정부 대선캠프장 염동연

출처:
http://jeollailbo.com/news/general_view.php?An=381760&code4=PO0100001%20&page=2&PHPSESSID=00892ece32031ce8c0ab01a6560dce98


그리고 참여정부때 대통령이 국정원 진급자 비중을 경상도 40%, 전라도 20%로 맞추라고 지시하자 경상도 출신자를 어머니 고향인 전라도로 본적을 바꿔 진급시킨 사례가 mb정부때 밝혀집니다

http://m.naeil.com/m_news_view.php?id_art=63273

현재 호남인구 생각해볼때 20%도 많은것 아냐? 할수 있는데 저 연령대 출생시의 인구비중은 영남 31% 호남 25% 였습니다. 그리고 각정권은 집권정당과 가까워 배신할 가능성이 적은 지역 출신자로 인재풀이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야당 집권기에는 인재풀에 호남과 영남리버럴, 수도권 출신자가 많은건 당연합니다.


출처


문재인에 대한 호남비토는 '참여정부 시기 예산이 얼마고 장관이 몇 명이고'의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지역주의

노통이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광주와 호남이 높은 공헌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무현은 대선후보가 된 그 순간부터 국정 내내 
부산에 대한 구애에 너무 많은 정치력을 소모했습니다.



실제로 노무현의 정치적 결단과 행동의 대부분은 'PK지역에 민주당 국회의원 만들기'
라는 관점에서 해석이 됩니다.
(물론 정치개혁과 정치문화 혁신이라는 노통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대선후보가 된 직후 지지율 폭락의 계기가 되었던   '신민주대연합론' 주창과 YS 방문부터
2002년 지방선거에서 영남권 광역단체장 배출에 실패하면 대선 후보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던 것
한나라당조차도 당황했던 '대북특검' 수용과 
전국정당을 기치로 내 걸었던 열린우리당의 창당
그리고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갈라놓은 '대연정'과 중선거구제 개편까지..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참여정부 시기 동안 영남권에 민주화 세력의 뿌리를 박겠다는 
깊은 의지의 표현입니다.
거기에 노무현 측근들의 발언은 또 어떤가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온 문재인의 '부산정권' 발언이나 유시민의 난닝구 논쟁
역시 결국 호남색 빼기를 위한 시도였습니다.



그렇게 노무현 정권이 끝나고 나서 이제 2012년에 문재인이 대선 후보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문재인의 대선 행보는 A부터 Z까지 '부산'이었습니다.
총선 국면에서는 '낙동강 전선'이 이슈의 중심이 되었고, 대선 국면에서는
PK지역 40% 득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호남에서의 득표는 상수로 여겨졌습니다.
반면 안철수는 부산 출신임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고 DJ나 노통처럼 
수도권-충청권-호남권의 서부 벨트 승리를 대선 승리 전략으로 삼았습니다.



결국 호남 50대 이상의 문재인 비토는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심리적인 소외감 내지는 
박탈감이 그 원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써서 투표해줘봤자 권력을 잡으면 

PK 지역에서 인기 관리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라는 근거있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호남의 투표율은 TK의 그것에 맞먹을 만큼 높았습니다.)
그리고 문재인은 분명 이 사태에 책임이 아주 큽니다.
저는 문재인이 대선 후보가 되기를 바라고 호남 정서를 잘 풀어나가기를 기대하지만
이제는 쉽지 않은 단계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그간 호남의 투표 전략은 소위 '될 만한 놈을 밀어준다'라는 측면에서 설명되었지만
이런 전략은 이제 최소 50대 이상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우리 사람을 뽑자'라는 심리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문에 문재인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누리에 맞설 가장 강력한 후보' 같은 구호보다는
본인이 호남에 정말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진정성 있는 행보가 꼭 필요할 겁니다.


참여정부 인사편중 지역주의

호남이 홀대까지 받았다는 건 아닌 것 같고(굳이 그 의미대로라면 영남에 비해 인사에서 좀더 수가 적긴 함) 영남에서 참여정부, 문재인 등 써놓고 불태울 정도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참여정부+인사편중]으로 구글링해보니 비판적 내용이 좀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 영남 출신이 가장 많이 기용되었고 그 다음으로 호남 출신이 많이 기용되었네요. 전수조사하는게 가장 정확하겠지만 너무 시간이 걸려서 찾은 기사 내용 위주로 본다면요.

그리고 본문내용 중에 나온 보직이 주로 차관급 이상인데 정무1비서관이 요직이라면 요직일 수 있지만 이렇게 넣기 시작하면 민정2비서관, 의전비서관, 연설비서관 등 별의별 보직을 넣을 수 있으니 이건 빼는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호남이 주 논제라면 광주 국비 증가 내용에 전남, 전북 국비도 같이 나오면 좋을 듯 하네요. 그렇진 않았을 것 같지만 광주 국비 많이 지원해주고 전남북 국비 지원 줄여서 도낀개낀 만드는 식의 정부운영이라면 호남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국비 소폭 증가에서 심하면 감소까지도 이론상은 가능하니까요.

아래는 인사 관련해서 2003년에 나온 기사내용인데요.

http://m.simi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45383

“참여정부 인사, 편중 급격한 수정이 문제”

박 교수는 참여정부 인사는 인구 모집단(1949년)을 기준으로 볼 때 영남 38.5%, 호남 24.6%, 경인 15.4%, 충청 12.3%로 영남은 7.1% 과다, 호남은 0.6%으로 형평성은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국민의 정부와 비교 할 때는 영남(26.2→38.5%), 호남(18.0%→24.6%)로 비중이 다함께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호남지역의 참여정부 인사 불만으로 박 교수는 'DJ정부 임기말과 참여정부 조각 비교'를 통해 호남인사가 40.0%→24.6%로 대폭 감소한 반면, 영남인사는 24.6%→38.5%로 대폭증가하는 과정과 주요부처 1,2급 인사에서도 호남(24.8%)보다 영남편중(41.0%)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2005년 기사로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네요.

http://m.inews24.com/view.php?g_serial=173456&g_menu=022600

참여정부 장-차관급 64%가 영·호남 출신...신학용의원

열린우리당 신학용의원은 11일 중앙인사위원회가 제출한 '참여정부의 정무직공무원 현황'을 인용 "현직자를 포함해 참여정부 역대 장관 및 차관급 공무원의 출신지역이 영남과 호남에 편중돼 있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인사위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 출범 후 장차관급을 거쳐간 정무직 공무원은 모두 323명. 이 중 전남이 16.7%인 54명으로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 각각 43명씩인 경남과 경북 순. 서울은 10.8%인 3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재 재임 중인 장-차관 총 130명의 경우 경남지역 출신이 23명(17.6%)으로 가장 많고, 전남이 21명, 경북이 19명 등 전체적으로 영·호남 출신 공무원이 전체의 68.3%인 89명에 달했다.

역대로도 영남지역 출신이 119명(36.8%), 호남지역 출신 89명(27.5%)으로 두 지역 출신이 역대 참여정부 장-차관급 10명 중 6명(64.3%)을 차지하고 있는 셈.

< 참여정부 장,차관급 공무원의 출신지역별 현황 >

  (장관급 수) (차관급 수)
서울 35 15
부산 15 8
대구 17 3
울산 1 0
경북 43 19
경남 43 23
인천 1 0
광주 8 5
전북 27 10
전남 54 21
대전 3 1
충북 13 4
충남 18 6
경기도 17 8
강원 7 2
제주 2 0
이북 16 4
중국(미확인 포함) 3 1

총계 323 130

이게 2003년 초 취임하고 임기 중반인 2005년까지 누적이라 이후 임기 끝난 2008년 초까지는 미반영일 텐데 대략 임기 절반까지 인사로 보고 권역별로 나누면

권역 / 장관급 / 차관급
1.경상권-119/53
2.전라권-89/36
3.경기권-53/23
4.충청권-34/11
5.북한 및 외국-19/5
6.강원권-7/2
7.제주권-2/0


2005년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나왔는데 100대 요직이란 게 정하기 나름이라 좀 모호한 있죠.

http://m.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6535

참여정부 ‘100대 요직 인사’ 대해부
권력 있는 곳에 PK 출신 있다

은 참여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지난 2년 동안 청와대와 정부 인사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권력 지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점검해 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 100대 요직을 선정하고, 2003년 참여정부 출범 당시와 2005년 2월 현재 어떤 인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비교해 분석했다. 100대 요직은 여타 언론 매체의 범례와 기자들의 판단을 종합해 선별했다(12~13쪽 표 참조).

2년 사이에 가장 크게 변한 대목은 100대 요직에 오른 인물들의 출신 지역이다. 초기에는 영남 출신(대구·경북, 부산, 울산, 경남·북) 28명, 호남 출신(광주, 전남·북) 24명, 수도권 출신(서울, 경기, 인천) 22명, 충청 출신(대전, 충남·북) 12명, 강원, 제주 출신 13명이어서 지역 별로 얼추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영남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오히려 ‘영남 편중 시비’가 일 조짐이다. 출범 초에 비하면 영남 출신이 28명에서 35명으로 늘어난 데 반해, 강원·제주 출신은 13명에서 6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수도권과 충청·호남 출신은 크게 보면 변화가 적은 듯이 보이지만, 호남권에서는 전북 퇴조(9명→6명), 전남 약진(13명→16명)으로, 충청권에서는 대전·충북 퇴조(7명→2명), 충남 약진(5명→11명)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영남 출신, 특히 부산·울산·경남 출신 인사들은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예컨대 검찰 경찰 법무부 국정원 국세청 금감위 금감원 공정거래위원회 부패방지위원회 등 권력 중추 기관의 요직 31개 중 11개(35.5%)를 부산·울산·경남 출신이 장악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송광수 검찰총장, 이종백 서울지검장, 임채진 법무부 검찰국장, 이상업 국정원 2차장, 김성호 부패방지위원회 사무처장, 오대식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이다.

사정기관이나 ‘경제 검찰’이라고 불리는 국세청·금감위 등을 특정 지역 출신이 장악할 경우 일반 국민이 느끼는 인사 편중 체감도는 더욱 가파르다. 대통령 모교인 부산상고 출신이 100대 요직에는 드문데도 불구하고 마치 참여정부를 쥐락펴락하는 것처럼 비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들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금감원 부원장보 같은 사정 관련 업무에 속속 배치되고 있어서라는 것이 중론이다(15쪽 상자 기사 참조).

부산·울산·경남 다음으로 권력 요직 31개에 가장 많이 진출한 지역은 뜻밖에도 충남(5명)이다. 충남은 전체로도 경남(16명) 전남(16명) 서울(15명)에 이어 11명을 100대 요직에 배출함으로써 참여정부 2기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행정부에서는 이해찬 국무총리(충남 청양), 청와대에서는 김우식 비서실장(충남 공주)을 투톱으로 하고,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충남 금산), 오영교 행자부장관(충남 보령),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충남 공주), 이정수 대검 차장(충남 서산), 이기묵 서울경찰청장(충남 보령), 전형수 서울국세청장(충남 보령), 김종민 대변인(충남 논산)이 그 뒤를 받치고 있다.


아래 기사는 국가정보원 인사와 관련된 내용이네요. 몇십개의 중앙행정기관 중에 하나만 가지고 비판하기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A부엔 영남 출신이 많고 B부엔 호남 출신이 많고 C부엔 충청 출신이 많아 전체적으로 골고루 인사가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국가정보원이 대표적 권력기관이고 폐쇄적 조직인 데다가 선거에도 관여한 전력이 있어서 특정 지역라인에 편중되는 것에 주의는 필요하겠죠.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0285118#cb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를 앞두고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서울 성동갑)이 2005년 10월 7일 배포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전체 간부(00명) 중에서 영남지역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46.4%로 이는 국민의 정부 시절의 21.4%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주요보직자 비교' 참조).

최재천 의원은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의도적일지라도 고른 지역안배를 하였으나, 참여정부는 영남지역의 편중, 호남지역의 배제, 충청지역의 약진, 기타지역은 전무한 상태로, 최소한의 지역안배도 이루지 못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그 근거로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호남지역 출신 간부 비율이 35.7%를 차지해 상당한 약진을 보인 반면에 영남지역은 21.4%로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은 것이 사실이나, 다른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경기·충청·강원-제주-기타 지역 출신이 각각 14.2%를 차지해 대체로 고른 지역안배를 보여주었다"고 제시했다.

반면에 참여정부 들어서는 충청지역 출신은 25%로 상대적으로 약진했지만 서울·경기 출신비율은 절반(7.1%)으로 줄어들고 강원·제주·기타지역 출신은 전멸(0%)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 시절의 영남지역에 대한 상대적 차별인사는 과거 40년간 사실상 국정원(중정, 안기부)을 지배해온 특정지역의 독점구도를 해소하고 지역균형 상태를 달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참여정부 국정원 인사에서는 그런 명분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기억나는게 그당시 코드인사라는 말로 언론에서 인사쪽을 많이 지적했었죠.

http://m.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40

참여정부 인재풀 인수위 편중 논란

노대통령 코드론 주창 인사정책 한계25일 대통령직 인수위원 출신인 윤성식 교수가 감사원장 내정자로 발탁되자 정치권 주변에서는 또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정책 문제점이 고개를 들고 있다.정치권이 지적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인사정책 문제점은 인재풀이 협소하다는 것. 실제로 노 대통령은 집권후 이른바 ‘코드론’을 주창해 스스로 인사정책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노 대통령은 또 지난 2월 대통령직 인수위 활동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인수위원들은 마음을 비워 달라”며 “원칙적으로 인수위원들을 요직에 기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각오는 한낱 공염불에 불과했다. 30명의 인수위원중 현재 21명이 청와대와 내각 등 요직에 전진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인수위원중 민주당으로 복귀한 임채정 인수위원장과 김한길 기획특보,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 등 3명을 제외하면 27명중 21명이 청와대나 내각 요직에 발탁된 셈이다.인수위 부위원장이었던 김진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비롯해 각 분과 간사 출신인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 권기홍 노동부 장관, 허성관 해양수산부 장관, 윤성식 감사원장 내정자 등 내각의 장관급 이상만도 5명이나 된다.

대통령직속기구의 책임자 중 장관급 인사는 이정우 정책실장,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이종오 정책기획위원장,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등 4명이다. 또 대통령비서진에는 이병완 홍보수석비서관, 정만호 의전비서관, 박범계 민정2비서관 등 7명이 포진되어 있다.“인수위원들은 자문단으로만 활용하겠다”던 당초 방침이 무색할 정도로 인수위원 출신들의 요직 진출이 두드러진게 현실이다.이와관련 노 대통령은 25일 경제지 편집국장단과 가진 합동인터뷰에서 “너무 ‘코드’를 찾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지만 나는 ‘코드’를 고집하려고 한다.

개발독재론의 허구성 정치

Prezeworski.pdf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를 (당분간) 희생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개발독재론의 허구를 100여 개 넘는 나라들의 사례분석을 통해 통렬하게 비판한 글(아래는 요약한 내용입니다). 독재는 독재일 뿐이다!





Democracy and Economic Development-Adam Prezeworski





정치 체제와 경제 성장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분석해 봐야 한다.

(1) 경제 성장이 정치 체제의 등장과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가?

(2) 정치 체제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가?

è 정치 체제가 처한 ‘상황’과 정치체제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구분하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정치체제가 탄생하고 지속되고 소멸되는지 이해해야 한다. 즉, 정치체제의 탄생과 그 존속을 좌우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è 민주주의의와 독재의 정의: 민주주의에서는 지도자 선출이 자유로운 경쟁을 바탕으로 한 투표로 이루어지며 투표에서 진 사람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으로 보고 이외에 모든 형태는 독재이다.





1. 경제발전과 정치체제의 역학(Economic Development and Regime Dynamics)

(정치 체제의 역학: 두 체제 타입이 등장하거나 소멸되는 경위, 하나가 소멸되면 그 반대가 등장한다.)

빈곤한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인 경우는 드물고 부유한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더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을 설명하는 두가지 가설은 첫째,’민주주의 등장은 성장된 경제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고 둘째, 민주주의가 등장하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민주주의가 지속되려면 성장된 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è 이 두 가설 중 어떤 것이 유용한 것이지 알려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등장하는 지와 어떻게 존속되는지에 관한 것을 구분해서 연구해야 한다.





(1) 민주주의의 등장(Transitions to Democracy) =독재의 소멸

① 일인당 소득(per capita income): 일인당 소득이 높을수록 민주주의 등장의 확률은 높으나 독재 정권아래 일인당 소득이 높다면 민주주의 등장 확률은 적어진다. 따라서 일인당 소득이 높다고 반드시 민주주의가 등장한다고 볼 수 없다.

② 경제성장률: 어떤 독재 정권은 경제성장이 계속 있어도 소멸되는 반면, 어떤 독재 정권은 경제성장이 하락되었을때 소멸되는 것으로 보아 경제 성장률과 독재정권 유지의 상관관계는 없는것으로 보인다.

③ 소득분배: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높아질수록 독재정권의 존속률은 낮아진다.

④ 그외, 종교 식민지 역사 등은 민주주의 등장을 예측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è 민주주의의 등장(=독재의 소멸)은 매우 다양한 이유에서 시작된다.



(2) 민주주의의 존속(Survival of Democracies)

à민주주의의 등장은 여러 이유와 배경에서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유지시키는 요소는 몇가지로 쉽게 알수 있다. 그중 가장 큰 요소는 일인당 소득(per capita income)이다.

① 일인당 소득이 어느 수준이상이면 민주주의는 유지된다. 풍족한 민주주의는 그 어떤 상황(전쟁, 폭동, 정치 위기, 경제 위기 등)에도 유지된다.

②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민주주의의 생존 확률도 증가하지만 일인당 소득의 영향만큼 크지는 않다.

③ 경제의 성장과 하락이 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얼만큼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기 어렵다.

④ 빈부격차가 없을수록 민주주의 유지 확률이 높지만 부의 분배가 민주주의 유지에 끼치는 영향은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

⑤ 정당들의 정치적 힘의 균형이 너무 치우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유지가 된다.

⑥ 종교와 문화가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있으나 저자는 가톨릭 인구가 많은 곳에서 민주주의가 많다는 것과 개신교나 이슬람교는 모두 민주주의의 시작과 존속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함.

⑦ 식민지 역사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 또한 미미하다.

⑧ 의회민주주의(평균 74년)가 대통령 중심 민주주의(평균 24년)보다 존속률이 높다.

⑨ 민주주의 역사가 길다고 해서 민주주의 존속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일인당 소득이 높을수록 민주주의가 유지 되기 쉽다.

à 따라서 민주주의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인당 소득인데 그 이유를 저자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일단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면 정권체제를 바꿈으로 겪을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선거에서 패한 사람도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동의한다.



결론: 민주주의는 빈곤국가에서는 드물고 부유한 국가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그 이유는 경제성장 때문에 민주주의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이 있는 상태에서 더 오래 존속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등장의 배경은 매우 다양하고 예측하기 어려우나 민주주의가 한번 설립되면 그 존속을 예측하기는 매우 쉬운데 그중 가장 큰 요소가 일인당 소득이다.





2. 정치체제가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Political Regimes and Economic Development)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을 억제한다는 주장에 대해,

①찬성론: 가난한 국가 à 즉각적인 소비, 투자 감소 à노동조합의 인정으로 임금인상à 소비 더 증가 à임금인상으로 기업의 이윤 감소, 투자 감소 à 또한, 기업은 수익을 투자보다 개인에게 분배하게 됨à 낮아진 투자는 경제 성장 둔화.

②반대론: 효율적인 투자 환경이 장기적으로 조성된다. 독재체제에서는 국가가 일괄적으로 투자를 조정할 수 있으므로 성장속도는 빠르나 민주주의에서 투자의 속도는 느리지만 투자에 대한 효율성이 높다. 따라서 총 생산량은 독재체제나 민주주의나 비슷하나 일인당 소득은 민주주의가 높다.



(1) 정치제제가 경제의 투자액, 자본 주식, 노동력, 국민 총 소득, 일인당 소득 이 다섯가지에 얼만큼 영향을 주는가?

① 투자액(investment): 빈곤한 나라이든 부자인 나라이든 정치체제가 경제투자액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

② 주식자본(capital stock):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정치체제가 주식자본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③ 노동력(labor force): 노동력은 독재 체제하에서 증가하나 노동의 효율성은 민주주의에서 증가하여 총 생산(total output)은 둘다 비슷하다. 민주주의에서 독재로 바뀐 경우와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바뀐 경우에 경제 성장률은 비슷했다.

④ 총 소득(total income): 정치체제의 유형은 총 소득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며 독재체제에서 확실히 증가하는 것은 자본이 아니고 노동력뿐이다. 그러나 효율성은 떨어지기 때문에 총 소득은 비슷하다.

⑤ 일인당 소득(per capita income): 경제성장과 국민의 복지를 논할때 중요한 것은 총소득이 아니라 일인당 소득이다. 독재체제에서는 인구증가율이 높기 때문에 일인당 소득은 낮아지며 민주주의에서 일인당 소득이 더 빨리 증가한다.



(2) 정치체제의 불안정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불안정한 상황이 더 자주 일어나지만 그러한 불안정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 하지만 독재체제에서는 정치적 불안정한 상황이 일어날 확률은 적지만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 영향이 매우 크다.



(3) 인구증가율

독재 체제에서는 일인당 소득, 종교, 문화, 식민지 역사 등 어떤 배경과 상관없이 출산율, 사망률, 전체 인구 증가율이 민주주의 체제 보다 높다. 독재체제에서 국가가 공공사업(기간 사업, 국민복지 등..)에 투자하는것이 그 구성원에 안정감을 주지 못하므로 구성원들은 제일 믿을 만한 자산을 아이들로 생각한다.



결론: 역사적으로 볼 때 빈곤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렵다. 타이완, 싱가폴, 대한민국처럼 독재체제에서 빈곤을 벗어난 국가가 있고 일본과 몰타처럼 민주주의 체제에서 빈곤을 벗어난 국가가 있으며 태국, 포르투갈, 그리스처럼 양 체제를 모두 경험하면서 빈곤을 벗어난 국가가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정치 체제가 경제적 발전을 가져온다고 보기 어렵다.

독재체제는 노동력의 증대와 저임금에 의지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노동력에 대한 높은 임금을 지불하지만 효율적인 노동력의 사용과 기술의 진보에서 많은 혜택을 얻는다. 부유한 독재체제에서의 경제 성장이 노동 집약적이고 노동착취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총소득의 평균 증가율은 민주주의 와 비슷하다.





전체 결론:

이상으로 살펴본 결과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가 양보되거나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의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지난 50년간 독재에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국가들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그만큼 발전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평균적으로 독제체제나 민주주의 제체에서 총 소득의 증가율은 거의 비슷하며 일인당 소득은 민주주의 하에서 더 빨리 증가한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는 낮은 인구성장률을 가지고 있는 반면 독재체제에서는 민주주의 체제보다 인구 성장률이 높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독재체제에서 국민의 삶은 더 어둡고 짧다. 독재정권은 그 정권이 오직 안정적일 때만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독재정권에서 경제실적은 매우 큰 편차가 있으며 그 실적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들은 그들의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들은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산인 아이들을 많이 낳게 된다. 따라서 독재하에서 일인당 소득은 느리게 성장하며 국민들은 짧은 수명을 살게 되고 빈곤이 삶을 궁핍하게 한다. 정치체제는 정치적인 자유뿐 아니라 물질적인 풍요에 있어서도 그 차이를 만든다.



역대급 세계 최대 경상도 노예 부산 형제복지원과 전라도 섬노예 지역주의

1. 경상도 노예

부산 형제복지원

이같은 인권유린의 근거는 국가가 제공했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령이 그것이다. 정부는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영장도 없이 구금하도록 이 훈령을 만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사회정화'가 목적이었다. 형제복지원에서 1975년부터 12년 동안 513명이 숨졌지만 죽음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을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2014년 7월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계류중이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2만~3만명의 사람들이 형제복지원에 잡혀들어가 감금됐다. 가혹행위, 노동력 착취, 성적 학대, 인권 유린 등이 잔혹하게 자행됐다. 탈출하다 실패한 원생은 맞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에서 1975년부터 12년 동안 513명이 숨졌지만 죽음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1986년 단속으로 수용된 부랑인 수만 1만6125명이다. 부랑인들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법률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헌법과 사회로부터 배제된 국민이었다.

형제복지원은 이후 재육원, 욥의 마을, 형제복지지원재단에 이어 2014년 2월에는 느헤미야로 수차례 바꾸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형제복지원에서 감금생활을 했던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들은 대부분 죄가 없었다. 수감자 대부분은 형제복지원을 나온 뒤 고통을 이기려고 술과 약에 의존해 살고 있다. 진상 규명을 통해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2014년 7월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55명이 진상규명을 위한 '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관계 부처인 안전행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난색을 표했고, 2015년 5월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중이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XX21

게다가 중요한 점은 이것은 한 개인의 부도덕 문제에 한정 지을 것이 아니라 부산시 공직 사회가 공조한 것이다. 소위 소대장이라 불리는 감독관 중 대장격인 왕소대장이라고 불렸던 이의 증언에 의하면 부산시, 부산시 사회복지과, 경찰 모두의 합작품이라고 말하였다. 암묵적으로 돈을 주고 받으면서 폭력, 비리에 방조하였고 납치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고 원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이 원래 사는 곳을 알려주어도 찾아줄테니 경찰차를 타라고 말하고는 복지원으로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후에 수사가 이루어지자 당시 김주호 부산직할시장은 담당 검사에게 청탁 전화를 하고, 보사부장관에게 원장이 바로 석방되도록 건의하는가하면, 훗날 김영삼 정부 때 법제처장을 지낸 송종의 부산지검 차장검사는 수사 철수를 지시하였으며[3] 부산시 공직사회가 전체적으로 공모한 문제였다.

여기에 더해 당시 부산시 의료 관계자들 역시 부검서류를 날조하거나 사망원인을 고의로 날조하는 등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병리과 의사[4]가 아닌 산부인과 의사가 피해자 시신의 부검을 맡는 등 의료행정 역시 개판이었다. 현실에 나타난 인외마경, 피해자들이 같은 부산시민인데도 그 사회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애초에 수감자들은 같은 사람으로 봤는 지도 모르겠지만

https://namu.wiki/w/%EB%B6%80%EC%82%B0%20%ED%98%95%EC%A0%9C%EB%B3%B5%EC%A7%80%EC%9B%90%20%EC%82%AC%EA%B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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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허더덕 2만명 규모라는데. 문제는 이게 아직도 해결이 인되고 있다는거 같네요

사망자는 513명 정도. 문제는 저기 갇혀 감금 성폭행 노예생활 한 인원이 무려 2만명

거기다 부산시 의료관계자 공무원 경찰 부산시 전체가 공조한 사건

 그런데 정작 이런 범죄를 저지른 박인근의 특수감금 혐의는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대구고법의 불복을 거치면서 7번의 판결 끝에 1989년 무죄를 받음. 정권차원의 비리라 그런건지.

문제는 아직도 저것과 관련된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이건 참고

일베=경상도

본적원적을 조사해 대구경북인지 알아보면 됌.

이번에 문제일으킨넘도 대구경북임

국정충일베충~ 원세훈(경북영주)전국정원장
김용판(대구)전서울경찰청장
윤정훈목사(대구)십알단단장
김규석(경북)댓글담당 현국정원3차장(경북)
사이버사령부운영대장(대구)
좌익효수(대구)국정충
일베운영자(대구)
5.18희생자 홍어택배비하 일베충(대구서식 대학생)
노무현비하그림 일베충(구미&칠곡 서식 고딩)

홍가혜가 고소한 일베충 천여명중 대구지검 관할자만 515명...부산경남빼고..ㄷㄷㄷ

조희팔(영천) 사기통수계의 레전드
김광준(경주) 검찰비리 최대뇌물 10억수수 조희팔비리검사
권모총경(대구) 조희팔뇌물 9억수수 대구경찰청
주수도(울산) 국보급 수조원 수십만 사기통수꾼
박영복(군위) 금융사기원조범
김용수(영주) 이중섭그림 사기범
신정아(청송) 학력사기대모
김대업(대구) 국보급 병역비리 사기범
민홍규(산청) 국새도 사기친다.
유근필일당 6명(부산) 난중일기절도 일본 밀반출기도범
채종기(칠곡) 600년된 국보1호숭례문 방화범
장국현(칠곡) 220년된 금강송 사진찍는다고 벌목
박정희(구미)-혈서매국노 왜완견
박근령(대구) 신사참배 안하면 패륜
박근혜(대구)-뉴라이트와 한나라당의 길 다르지 않다.
이명희(문경)위안부졸졸 교학사교과서
안병직(함안)뉴라이트재단 이사장
김진홍(청송)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뉴라이트 국편위장-유영익(진주) 이태진(성주)
이영훈(대구) 서울대교수-일본 아베담화 진중한 문장
유석춘(안동)연대교수 뉴라이트계열 교수들
이주천교수-충남생이나 초중고를 부산에서 다님
조전혁-광주생이나 부산에서 초중고
오선화-제주생이나 대구물먹음


엄마부대 대표(포항)
부대표(포항)
어버이연합(본적이 쌍도인 설쌍디언들이 주류)
서북청년단 재건위 위원장(부산) 대변인(부산)
뉴스타운 회장 손상윤(경북울진) 종북좌빨 및 라도팬카페 인터넷매체
올인코리아 조영환(경북울진) 종북좌빨 및 라도팬카페 인터넷매체
뉴데일리 김영한(대구) 말이필요없는 뉴데일리
데일리안 민병호(경북군위) 대통령비서실 뉴미디어정책비서관
일베운영자(대구)
좌익효수(대구)국정충
윤정훈목사(대구)십알단단장
사이버사령부운영대장(대구)




기타 경상도 노예






2.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http://www.ilwar.com/poli/102723

 

 

왜 전라도 섬 노예라는 단어가 안되냐구요?

 

그러면 제가 역으로 물어보지요. 부산 형제 복지원 노예사건은 왜 경상도 노예 사건이 아닙니까?경기도의 시골에서 50년간 노예로 착취 당한 할아버지 사건을 경기도 노예 할아버지 사건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그냥 노예할아버지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왜 전라도 신안군 섬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신안군 섬 노예 사건이 아니라, 전라도 섬 노예입니까?전라도 지방에서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해서? 하지만 다른 지역에도 유사한 노예 사건은 발생합니다.그러나 그 사건에는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사건의 앞에 지역을 붙이는 건, 그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났다는 표시에 불과합니다. 신안군이라는 지역에 섬 노예를 위한 조직적 카르텔이 있다고 말해지지요. 그렇다고 신안군 전체 사람을 , 섬 노예 카르텔에 종사하는 범죄자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현재 전라도라는 지역이, 과거 독재 시절 반항이 심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지금까지 군부독재세력의 후예에게 대놓고 표를 안 준다는 이유로 전라도라는 지역에 대한 폄하가 이명박 정부부터 인터넷에서 공공연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전라도의 사람들이 딱히 위대하거나,더 깨어 있다거나, 이런 말을 드리려는게 아닙니다.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개겼다는 이유로 근 30년간 짓밟히고 있다 라는 말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밀양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밀양을 많이 욕했습니다.미국에서 조승희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부끄러워했지요.김연아가 메달을 따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기뻐합니다.삼성이 휴대폰으로 세계1위를 하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자랑스러워합니다.


(글의 진행을 위해서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전라도 섬노예라는 말을 합당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예시를 보고 당신은 무엇을 느낍니까? 대다수의 한국인에게는 개인과 집단과 지역을 분리해서 사고할수 잇는 기능이 상실되어 있다는것을 저는 말씀드리려는겁니다. 왜냐면 군부독재기간동안, 사람은 개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집단에 얽매여서 살았지요.


그것을 공동체주의,집단주의라고 합니다. 개인이 개인으로 평가받기 보다는, 그 집단에 의해 평가받는것 그런데 한국인은 지난 30년간 군부독재를 겪으면서 집단적으로 사고하는것이 그 뇌 속에 박혔습니다.


당신의 이웃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칩시다.그런데 누군가가,당신보고 욕을 해요. 안 황당하겠습니까? 당신이 외국에서 길을 걷는데 누군가가 당신이 한국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침을 뱉어요. 안 황당할까요?당신은 그런 집단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서 당신을 당신 스스로가 아닌 당신이 속한 집단



민족,국가,인종,지역,성별로 평가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리고 인해 피해를 받을 때 당신은 그때서야 깨닫게 됩니다. 이건 부조리 하다라구요.그걸 깨닫기 전에 당신은 무의식중에 그런 집단주의적 사고에 동참하고 있습니다.한국인중 남성들이 동남아에가서 미성년자 성매매를 합니다. 당신이 부끄러워해요. 같은 한국인이라고, 그런데 당신이 성매매를 한 건 아니잖아요? 왜 부끄러워합니까?밀양에 있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욕해요. 성폭행을 했다고, 밀양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남학생들이 성폭행한거잖아요, 근데 왜 밀양 사람들을 싸잡아서 욕해요??


사람들은 자기가 집단주의로 인해 피해 받기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집단에 매몰되어서 남을 비판하고, 평가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 번 전라도 섬노예도 그래요. 전라도의 신안군의 섬에서 일어난 사건이에요. 범죄자는 그 섬에 노예주하고, 그 범죄를 도운 사람들이에요.근데 전라도 섬노예 라고 해서 , 전라도를 싸잡아서 욕해요. 국정원과 30년간 지속된 전라도 죽이기에 세뇌된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방법입니다.


섬노예 사건 욕하세요. 그런데 거기에 관련된 사람만 욕하세요. 노예주하고 그를 도와준 사람들을 욕하세요. 나머지는 죄가 없는데 왜 당신에게 욕을 먹어야 할까요??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하면, 죄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 만 판결 내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전라도라고 싸잡아서 섬 노예를 욕하는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전라도라는 지방 자체에 대해서 유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그게 과연 올바릅니까?


존 맥아더의 [무질서한 은사주의]를 비판한다 우후후

존 맥아더의 [무질서한 은사주의]를 비판한다

In Criticism of John MacArthur's <Charismatic Chaos>

구요한 목사

( 서울대 경제학과. 뉴욕 법과대학원.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졸업. 서울 생명의교회 목사)

존 맥아더는 비록 뛰어난 강해설교자이자 목회자이지만 그의 [은사 I & II]는 건전한 영적 체험의 결핍과 영적 현상에 대한 무지 및 신학적 편견이 낳은 추악한 부산물이다-

필자가 90년대 초에 존 맥아더의 Charismatic Chaos( [은사 I & II ]로 번역됨)1)을 처음 대했을 때, 그는 자신의 무경험이나 나쁜 경험에 의해 기적 종식론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마치 성경의 가르침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먼저 은사주의자들의 수많은 실책을 자세하고 다양하게 수집한 그의 열심에 놀랐고 동시에 몇 가지 전통적이고 독단적인 교리로 영적인 현상을 쾌도난마같이 난도질하는 그의 만용에 또 한 번 놀랐다.

존 맥아더는 자신이 마치 현대의 선지자인양 서문에서 자화자찬을 주저 않고 늘어놓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책을 보고 오늘날의 은사운동에 대해 성경적으로 바른 견해를 가지게 되어서 감사하다'는 편지가 쇄도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필자가 아는 어떤 집사는 존 맥아더가 쓴 [은사]라는 책 제목만 보고 혹시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뭔가 배울게 있나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보았다가 너무나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소리를 하여 조금 읽다가 내다버렸다.

또한 필자가 아는 한국 유수 장로교 신학교 출신의 한 목회자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의 현장에서 성령의 역동적인 능력을 체험한 후 "한국에서 신앙생활하고 신학 교육을 받으면서 이런 것에 대해 전혀 소개 받지 못하고 마치 전통적인 것이 신앙의 전부인 양 잘못 소개한 전통주의자들에 의해 '영적으로 기만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맥아더 식의 의견을 따르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존 맥아더의 일방적인 논리 전개로 악 영향을 받아서 성령의 다양한 사역을 소멸하고 있는 것이 나는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은사운동 변호](Charismatic Manifesto)라도 한 권 집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후 시간이 다소 흘렀고 필자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다. 은사운동에 대한 시비가 있을 때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존 맥아더의 주장을 마치 군대의 야전 전투교범처럼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존경하는 수많은 개혁, 보수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도 어쩐 일인지 오늘날의 성령의 외적인 사역에 관해서는 체험이 있는 평신도보다도 못한 엉뚱한 견해를 마치 성경의 가르침인 양 내세우는 경우를 필자는 너무나 많이 목격해 왔다. 문제는 그들 자신의 잘못된 견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가진 권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존 맥아더도 마찬가지이다. 강해 설교가로 이름이 나있고 스스로 개혁, 보수주의자를 표방하기 때문에 반(反) 은사운동의 성향이 있는 한국의 수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그의 견해를 금과옥조같이 따르고 있다.

필자 또한 말 그대로 '은사주의자들의 혼란들'을 누구보다도 피부로 느낀 사람이다. 지나친 건강 축복 복음, 병적인 체험 추구, 영적인 교만, 체험을 말씀 위에 놓는 오류, 오늘날의 계시에 대한 오해, 몇 가지 신기한 영적인 은사를 가져야 신령한 신자라고 착각하는 오류 등 은사주의자들이 저지르는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는 존 맥아더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지 않고 전통적이고 해묵은 몇 가지 독단적이고 편파적인 교리로 성경이 지지하는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이나 관행조차 무차별 포격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는 만용이고 객기에 지나지 않으며 더 나아가서 성령을 소멸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끔찍한 죄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존 맥아더는 자신이 마치 개혁, 보수신학의 선봉장인 것처럼 과시하지만 필자가 알기에는 그가 제시하는 몇 가지 독단적인 교리는 오늘날 개혁, 보수신학 내에서조차 심각한 도전을 받는 주장들이다. 더군다나 '경험보다는 교리를 중시한다'는 그 자신이 자세한 주석적인 근거도 없이 은사주의자들의 여러 가지 오류를 나열해 놓고는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는 식의 경험적 논리를 서슴지 않고 내세운다.

맥아더 식으로 어느 한 신학 전통의 오류를 파헤친다면 이 세상에 남아있을 것이 과연 있을까?

존 맥아더 자신의 전신인 '세대주의자의 혼란들'은 어떤가? 심심찮게 시한부 종말론으로 홍역을 치루는 이유는 세대주의자들이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 아닌가? 예수님의 천상 재림 따로, 지상 재림 따로 라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어떤가? 맥아더가 배운 신학 전통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필자도 원한다면 맥아더식으로 [세대주의자들의 몽유병]이란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바른 교리와 바른 전통은 내세우지만 바른 행위와 삶이 죽어 있는 '죽은 정통'의 폐해는 어떠한가? 교조적 집단이기주의, 개교회주의, 형식주의, 전통주의 및 총회 임원의 부정선거, 장로 및 임직자의 금권선거, 강도사 및 편목 가입으로 인한 금전 개입 등, 필자는 소위 말하는 정통 교파에 직접 소속한 경험을 통해, 이들이 얼마나 썩어빠지고 화석화되었는가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정통 교회의 흙탕물]이란 책을 출판한다면 맥아더의 [은사] 못지않는 오류를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오늘날의 은사운동을 무작정 변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부 반(反)은사주의자들에 의해 성경의 진리가 왜곡되고 성령의 다양한 사역이 소멸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면 관계상 필자는 맥아더의 주장의 오류와 독단을 그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개혁, 보수주의의 입장에서 간단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첫째 그는 진리는 체험이 아니라 말씀에서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진리는 체험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나 체험이 진리의 이해를 주도해서는 곤란하지만 체험 또한 진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흔히들 "은사주의자들은 체험을 중시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교리(또는 말씀)를 중시한다"고 한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시간을 두고 곰곰히 생각하고 연구한 결과 그 주장의 오류를 발견했다. 이 주장은 이렇게 풀어 쓸 수 있다. "적어도 성령의 외적인 사역에 관한 한 일부 은사주의자들은 체험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지만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무 체험에 근거한 인간의 논리를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말하자면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말씀이나 교리 그 자체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들이 해석한 말씀'이란 말이다. 자신들의 무 체험에 근거하여 논리적으로 '해석한 말씀'만이 유일한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이야 말로 말씀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사람들이 아닌가? 기록된 말씀은 불변하지만 성경에 대한 인간의 해석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발전, 변화해 가야 하지 않는가?

성경의 진리는 원어나 역사적인 배경을 연구하고 독단적인 교리에 충실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체험이 없는 경우 사변적이고 편파적인 교리가 생길 위험성이 너무나 많다. 오늘날의 기적을 부정했다가 실제로 자신이 체험한 후에 종전의 견해를 바꾸고 성경을 다시 이해하기 시작한 전문교역자나 신자들의 이름이나 간증 목록을 대라면 책 한 권도 모자랄 것이다.

존 맥아더는 은사주의자들이 반(反)지성적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반(反) 체험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둘 다 모두 바른 성경해석과 건전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계시(revelation)라는 말의 정의 문제이다. 개혁, 보수신학은 성령의 감동(Inspiration)과 조명(illumination)을 구분한다. 성경의 기록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없고 완전하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은 성령의 조명이다. 성령의 감동은 완전하지만 성령의 조명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보수신학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록된 성경에 대해서만 (특별)계시 라는 말을 사용한다.

존 맥아더는 이런 식으로 계시란 말을 정의한 후, 은사주의자들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이들이 마치 종결된 성경의 기록에 무엇을 더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펄펄 뛴다. 천하에 이런 이단이 어디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개혁, 보수주의자들 예를 들어, D. A. 카슨, 웨인 그루뎀, 번 포이트레스 등이 지적하듯 성경 자체는 계시라는 말을 그렇게 좁은 의미의 전문용어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계시하다"의 헬라어는 아포칼립토이며 명사형은 아포칼립스이다. 성경에서 이 말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마 11:27),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엡 1:17), 기록된 성경과는 상관없는 사적인 계시(고전 14:26)를 말할 때에도 사용된다.

계시라는 말을 기록된 성경과 동일시 하는 것은 조직신학자들의 독단이지 성경의 가르침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개혁, 보수신학을 접할 기회가 없는 은사주의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계시라는 단어를 성령의 조명이란 차원에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좁은 의미의 전문 술어로만 이해하여, 마치 기록된 성경 계시에 무엇을 더하는 식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들의 용어 사용상의 미숙을 탓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들은 성경에 있는대로 사용했지만 듣는 자가 자기들의 신학의 편견으로 그렇게 듣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용서 못할 이단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말하는 계시는 개혁, 보수신학이 말하는 성령의 조명이지 감동은 아니다.

감동(inspiration)이란 말도 문제가 있다. 사실 이 말도 성경이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라 라틴어에서 생긴 말이다. 한글 개역성경은 성령의 감동(이 경우는 영어로 moved by or prompted by the Holy Spirit 의미에 해당)이라는 말을 너무나 평범하게 자주 사용한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나 일반 신자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거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평범한 의미로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하등 잘못이 아니다. 개혁, 보수주의자들도 평범한 의미로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계시라는 말만 왜 좁게 전문적인 의미로만 정의하는가? 물론 역사적으로 몬타너스같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사적인 계시를 기록된 성경의 계시와 동일시 하는 오류를 범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시라는 말을 사용하기만 하면 곧 성경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과민 반응이다. 모든 솥뚜껑을 자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성경 자체가 계시라는 말을 평범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셋째, 과연 오늘날에도 사도시대와 같은 기적이 지속되는가? 존 맥아더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기적 종식론이 마치 개혁, 보수신학의 대표적인 입장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물론 개혁, 보수신학자들인 번 포이트레스, 고든 피, 웨인 그루뎀 및 잭 디어 등도 기적 계속론을 주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기적 종식론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의 기적 시기를 3시기(모세, 엘리야 및 사도시대)로 구분하는 것은, 기적의 기능을 특별 계시인 성경의 기록을 증거 하는 것으로만 국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기적 (또는 이사와 이적)의 기능은 너무나 다양하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요 3:2; 9:32-33), 사도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사실(고전 2:4; 고후 12:12),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마 12:28),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에(마 14:14; 20:34; 막 1:41 등),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출 14:4; 요 2:11), 믿음에 대한 반응으로(마 9:22; 15:28), 사람들의 절실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왕상 17:1-16, 17-24), 전파하는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기 위해(막 16:20), 사람들을 모아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마 4:24-25) 등 무수히 많은 이유로 기적을 행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는 이런 명백한 성경의 구절들은 하나도 인용하지 않고 조직 신학자들의 독단만 앵무새처럼 나열한다. 번 포이트레스는 기적을 특별 계시인 성경의 기록을 증거 하는 좁은 의미로만 국한시키는 조직신학자들의 횡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2)

필자는 맥아더에게 묻고 싶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과거의 신학자들이 반대파를 대항하기 위해 고안해낸 변증법적인 기적 종식론을 마치 불변의 금과옥조처럼 주장하는 그 태도가 과연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내세우는 개혁, 보수주의자의 태도인가? 은사주의자들이 체험에 의해 성경을 해석한다고 비판하기 전에 독단적인 논리로 성경의 진리를 외면하는 오류를 맥아더는 먼저 시정해야 하지 않는가?

II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부정하다가도 자신들이 실제로 체험한 후,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기적 종식론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학자들이 반대파를 대항하고 자신들의 무 체험을 변호하기 위해 고안해낸 인간의 논리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기적 종식론은 수백 년의 교회사를 통해 너무나 정교하게 개발, 보완되어왔기 때문에 짧은 지면으로 모든 종식 이론을 반박하기에는 부족하다. 더군다나 체험이 있는 경우는 기적 종식론의 허구성을 금방 깨닫지만 실제 체험이 없는 사람들은 너무나 논리가 정교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무 체험을 지지해 주기 때문에 좀처럼 기적 종식론을 버리지 못한다. 지면 관계상 여기에서는 존 맥아더의 대표적인 오류 몇 가지를 비판하는데 그치고자 한다. (좀 더 관심이 있는 분은 신앙 변증 시리즈의 <기적은 계속된다>를 보기 바란다.)

첫째 맥아더는 오늘날의 기적을 부정하기 위해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기적과 오늘날의 그것들과를 비교한다. 맥아더에 의하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모든 사람들의 모든 병을," 그것도 "즉각적"으로 고쳤는데, 오늘날 기적을 행한다는 사람들은 모든 병을 고치지도 못하고 고치는데 시간도 걸린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신약적인 기사와 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맥아더는 같은 세대주의자인 노만 가이슬러3)의 주장을 답습하고 있으며 에드워드 그로스4)도 이 주장을 따른다.

성경은 과연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맥아더가 주장하듯 문자적으로 "모든" 사람의 "모든 병"을 다 고쳤다고 기록하는가? 도대체 맥아더의 태도가 학자적이지 못하다. 왜 그는 자기의 주장을 지지하는 성경 구절만을 인용하고 부정하는 구절들은 무시하는가? 그는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감(減)했기 때문에 그 자신이 걸핏하면 은사주의자들을 이단이라고 부르듯 그 자신이야말로 이단 중의 이단이 아닌가?

성경 말씀을 살펴보자.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맥아더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왜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 중에서 단지 한 명만 고치셨을까?(요 5:1-9).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거나(마 13:5), 권능을 행하실 수가 없어서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다(막 6:1-6).

이 구절들에 의할 때 어쩌면 맥아더 류의 교회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잘못된 신학 이론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즉각적이 아니라 2회에 걸쳐서 소경을 고치셨다(막 8;22-26).

사도 바울도 모든 병을 다 고친 것은 아니다(빌 2:25-27; 딤전 5;23; 딤후 4:20).

왜 이런 모순이 생기는가? 맥아더는 성경이 말하는 "모든"이란 말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록을 경직적으로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세대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오류이다. 성경에는 모든이란 말이 5천 5백회 이상 사용되며 여기에 any, none, every를 합치면 그 수는 1만 번을 상회한다고 한다.5)

스타인은 모든이란 단어를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과장법으로 해석할 것인가를 판정하는 몇 가지 지침을 제공한다. 그는, 다른 곳의 기록과 상충되는 경우나, 다른 곳에서의 예수님의 행동과 상충되는 경우, 또는 일상생활에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보편적인 술어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과장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타인의 지침을 따를 때, 성경에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모든 사람의 모든 병을 고쳤다는 기록은 필자가 예로 든 성경 구절들과 상충되므로 문자적이 아니라 과장법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복음서나 사도행전에서 과장법을 자주 사용하는 목적은, 어떤 특정한 사실을 단순화하여 강조함으로써 듣는 사람들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주의를 사로잡아서 결단과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필사본(기록된 성경)이 태부족하여 듣는 것이 강조된 당시에 단순화한 과장법은 기억하기에 많은 도움이 되는 방법이었다.

맥아더 식으로 주장하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만인구원설(universalism)이 옳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식으로 기록한 구절들이 많기 때문이다(요 1:7; 벧후 3:9 등).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 의해 그 의미가 제한되므로(마 1:21; 요 17:9; 엡 1:12; 롬 11:7),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만 구원을 받는다는 제한 속죄론(limited atonement)이 개혁, 보수신학의 입장이 아닌가?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맥아더의 주장은 성경의 기본적인 성경해석학에 위배된다. 개혁, 보수신학의 강점이 기록된 말씀에 근거한 논리의 일관성인데 맥아더는 자신의 논리를 내세우기 위해 성경의 명백한 기록마저 무시하는 횡포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기 때문이다.

성경을 경직적인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세대주의의 오류이다. 이들은 성경 구절들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한 결과 "교회의 구원 따로, 이스라엘의 구원 따로"라는 이원론적인 구원관을 주장하며 "예수의 천상 재림 따로 지상 재림 따로"를 주장하여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원조가 되었다. 제이 아담스는 지나치게 문자적인 해석에 집착한 세대주의자들의 성경해석법을 한 물체가 여러 개로 보이는 "초점이 맞지 않는 렌즈"라고 부른다.

더군다나 맥아더는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성경해석법을 주장하지만, 전형적인 세대주의적인 용어인 '문자적 해석,' '통상적 의미'란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개혁신학자인 번 포이트레스는 이러한 용어의 개념의 모호성을 통렬하게 비판한다.6)

또한 노만 가이슬러의 말장난을 한번 살펴보자. 그는 예수님이 모든 병을 '즉각적으로 고치셨다'는 자기의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2회에 걸쳐서 소경을 고치신 사건(막 8:22-26)을 즉각적인 치유라고 주장한다. 즉 한 단계, 한 단계가 '완전한 치유를 향한 즉각적인 치유'였지 불완전한 치유가 아니라는 것이다.7)

'두 번에 걸친 즉각적인 치유'가 성립되는 개념이라면 3번, 4번, 5번 더 나아가서 10번에 걸친 즉각적인 치유 개념도 성립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 모두가 완전을 향한 즉각적인 치유가 아니고 무엇인가?

더군다나 가이슬러는 은사주의자들의 기사와 표적에 대한 목격담을 모조리 부정한 후, 자신은 실제로 드물게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수많은 기적 목격담은 부정하고 자신의 목격은 진짜라고 주장하는 그 주장 자체가 다른 사람의 체험은 믿지 못하겠지만 '나의 체험'은 중시하는 체험적인 주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맥아더의 또 다른 횡포를 살펴보자. 그는 기적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다.

사도시대의 기적들이 그 이후의 시대에도 계속된다고 말하는 곳이 성경 어디에도 없다. (끝난다고 기록한 구절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필자 주.) 또한 성경은 신자들로 하여금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구하라고 권면하는 곳도 없다. 신약 성경 모두를 살펴볼 때 신자들과 성령의 관계에 대해 명령형으로 말하는 곳은 다섯 군데 밖에 없다.

성령으로 행하라(갈 5:25).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

성령으로 충만하라(엡 5:18).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살전 5:19)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유 20).8)

필자는 맥아더가 어떤 성경을 보는지 궁금하다. 필자가 보는 성경은 맥아더의 성경과는 판이하다. 성령과 은사를 "구하라"고 명령하거나 권면하는 구절들이 도처에 있다.

구하라 . . . . 찾으라 . . . . 문을 두드리라 . . . .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 9, 13).

너희는 더욱 좋은 은사를 사모하라(고전 12:31).

신령한 것(은사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노력하라(고전 14:1).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노니(딤후 1:6)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살전 5:19-20).

왜 이런 오류가 생기는가? 맥아더는 기적 종식론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믿고, 성경에서 '성령이나 은사를 구하라'고 명령하거나 권면하는 구절들은 오늘날의 우리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그 구절들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착시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자신의 편견과 전제로 인해 분명한 성경의 기록을 외면하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바른 신학과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틀릴 수 없다'는 영적인 교만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오류를 자아낸 것이다.

III

Q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쟁쟁한 개혁 신학자이다. 그는 강의 시간에 '성경에 기록된 기적은 사도시대에 중지되었으며 악하고 음란한 세대만이 오늘날 기적을 요구한다'(마 12:39)는 요지로 강의했다. 필자는 강의 후 즉시 항의성 질문을 했다. 헤르만 리델보스의 The Coming of Kingdom(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의 임함의 제일의 표적은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낫는 것이며, 피터 와그너 교수의 연구 조사 등에 의하면 기적은 지금도 지속된다. 그런데도 기적은 사도시대에 끝났다고 주장하는가?

Q 교수는 전혀 언짢은 기색을 하지 않고 웃으면서 "미스터 구의 말이 옳다. 나도 피터 와그너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발걸음을 돌리는 Q 교수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필자가 존경하는 교수가 실제로는 기적이 오늘날에도 지속된다고 믿으면서도 공적인 강의시간에는 기적 종식론을 주장하는 그 이중성에 어이가 없었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에 두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성경 중심의 개혁 신학을 자부하는 이곳에서조차 오늘날 도도하게 밀어닥치는 성령 운동의 거센 풍파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자기들의 신학을 애써 인간적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이 측은해 보였다.

이런 대화를 어느 동문에게 말했더니 그는 한술 더 떠서 말하기를 "교수들이 오늘날에도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성령 운동이 교내에 불어 닥칠 것이므로 조심하는 것"이라는 엉뚱한 논리를 전개한다.

"성령 운동이 밀어닥치는 것이 걱정되어 오늘날의 기적을 부정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불안하여 나의 신학으로 브레이크를 걸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개혁주의자라고 자부하는 그 이중성에 또 한번 어이가 없었다.

어떤 운동이 교회에서 무시하거나 소홀히 취급한 분야를 강조하면 반대자들은 "그렇게 하면 전통 교회가 중시해 온 xx분야가 소홀히 취급되기 쉽다. 그러므로 이런 운동에는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비판한다. 그러면 비판자들은 왜 새로운 분야는 소홀히 취급했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회개하고 받아들일 생각은 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 잘못될까봐 걱정하고 있다니! 왜 하나님의 일을 자기가 걱정하는가? 이것이 바른 교리의 산물인가, 게으름과 편견의 산물인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수들의 이러한 내적인 갈등을 모른 채 그들의 기적 종식론으로 무장된 수많은 사역자들이 강의 시간에 배운 그대로를 실제 목회에서 적용하고 있으며, 그 밑에서 배운 평신도들 또한 비판의 여지없이 배운 대로 믿고 행동하여 성령의 사역을 소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맥아더같이 영향력을 끼치는 극우파 보수주의자들이 계속 기적 종식론을 지지하는 저서들을 출판해 내고 있으니 말이다.

필자도 맥아더식으로 한 번 말해보자. 맥아더 식으로 주장하면 오늘날의 '설교'는 신약적인 설교가 아니다.

성경을 보라.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한 설교는 준비가 없이 즉흥적이었고, 상당 부분이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성령의 감동이 완벽하였고 내용에 오류가 없었다.

성경을 보라.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설교 준비했다는 말이 어디 나오는가? 그러나 오늘날의 설교는 어떤가? 상당 시간을 소비하여 여러 참고서를 보면서 준비해야 하고, 성령의 감동도 부족하고 오류투성이다. 맥아더 식으로 주장하면 이런 설교를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또한 성경에는 말씀을 전파라고 했다(딤후 4:2). 맥아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우리는 기록된 성경 말씀을 읽든지 암송하여 그대로 전파해야 한다. 왜 설교를 인간적으로 서론, 본론을 구분하고 예화를 넣고 2대지 3대지로 구성하는가? 성경에 이런 식으로 설교하라는 명령이나 권면이 어디 있는가? 그러면서도 오류투성이인 자신의 강론에 맥아더는 어떻게 감히 신약적인 용어인 '설교하다'(케이루소)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맥아더 식으로 말하면 오늘날의 설교는 신약적인 의미의 설교가 아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설교가 신약적인 의미의 설교가 아니라고 해서 필요가 없는 것인가?

왜 자기들이 하는 것은 다 성경적이고 자기들이 잘 모르고 생소한 것에 대해서는 완벽을 요구하는가? 이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사역을 사사건건 트집 잡은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

또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모든 병을 즉각적으로 고쳤기 때문에 오늘날도 '기사와 표적'이라는 명칭을 붙이려면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문자적으로 똑같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 은사의 차이를 간과한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슈퍼 모델이다. 그들이 올림픽 수영 선수라면 우리는 대충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올림픽 수영선수처럼 수영하지 않으면 수영이 아니란 말인가?

사람마다 말씀 전하는 은사의 정도에 차이가 있듯이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롬 12:3), 은혜의 정도가 다르고(엡 4:7), 기름부음의 정도도 다르므로(요 3:34에서 예수님은 한량 없이 성령을 받으셨다), 은사의 효과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교회의 일상적인 체험에서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수만 명의 교인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십 수명의 교인들에게 설교를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기도로 병을 낫게 하든(약 5:16), 은사로 병을 낫게 하든(고전 12:10, 30)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맥아더는 벤자민 워필드의 잘못된 기적종식론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20세기 초에 프린스턴 신학교의 벤자민 워필드는 그의 [사이비 기적]에서 오늘날 기적 종식론의 이론적 근거를 확고히(?) 마련했다. 그에 의하면 기적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정당한 권위를 위임받은 대표들이라는 사실을 확증(authentication)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사도시대가 끝났으므로 기적은 "필연적으로 소멸되었다"(necessarily passed away)고 주장한다.

워필드는 기적이 그렇게 끝나는 것이 성경의 "원칙"(principle)이며 "역사적인 사실들"(facts)이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경의 원칙에 의해서 기적은 사도시대에 끝났으므로 그 이후에 일어난 기적은 모두 '사이비 기적'이라고 주장한다. 워필드는 사도들의 범위를 확대시켜서 사도들 또는 사도들로부터 직접 안수를 받은 사람들로 국한하며 그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 기적이 끝나는 것이 성경의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워필드는 그 증거로 주후 100년에서 150년까지 50년간의 교부시대 동안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전혀 없거나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주후 150년부터 300년까지는 기적에 관한 기록이 "더러"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없었다"고 주장한다. 주후 4세기에는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 "기이한 일"(marvels)이라고 한다.

비판해 보자.

먼저 워필드는 기적의 기능을 사도성 증거나 특별 계시인 성령의 기록을 증거하는 기능에 국한시켰다. 그러나 필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기적의 기능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밝혔다.

워필드의 아류인 토마스 에드가는 '기독교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은 초대교회 시대에 기적이 없이 말로만 복음을 전파했다면 누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겠느냐? 그러므로 기적은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해 주었다'고 주장한다.9)

오늘날의 기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의 충분성(Sufficiency of the Scripture)을 내세우기 위한 것인데, 에드가는 오늘날의 기적을 부정하기 위해 '사도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조차 그 자체로는 부족했다'는 이단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한다.

둘째, 필자가 보기에 워필드의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사도시대에 완전히 끝나는 것이 성경의 원칙이라면 그 이후에는 전혀 일어나지 말아야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없었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주장을 억지로 내세우기 위해서 져스틴(Justin Martyr, 100-65),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0) 등의 기록을 제시하면서도 이들의 기록을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독단을 서슴지 않는다.

정통 교회의 수많은 교부들이 기적이 일어난 사실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필드는 그들의 주장을 믿을 수가 없으니 자기의 논리에 의한 기적 종식론을 믿으라는 것이다.

은사주의자들이 경험을 성경보다 앞세우는 만큼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자신의 논리 또는 신학을 성경이나 믿을만한 신자들의 증언보다 앞세우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워필드 뿐만이 아니다. 무수한 보수주의자들이 성경을 최고의 권위에 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논리나 신학을 앞세워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난도질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워필드는 또한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이 초기에는 기적을 부정하다가 후기에는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의 초기의 종식론을 옳은 것으로 인용하였다. 어거스틴은 초기에는 성경과 동등한 권위의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는 몬타너스의 열광과 광신을 대항하기 위해 기적 종식론을 주장했다.10)

그러나 어거스틴은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자신이 직접 목격한 후 그의 견해를 바꾸었다. "오늘날에도 기적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들이 성경에서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 읽고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이라도 사용하신다."11)

어거스틴은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기독교 신자들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기적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되고 있다. . . 사실은 오늘날에도 기적들이 예수의 이름, 또는 가끔 성찬식을 통해서 가끔 성자들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

기적 종식론자인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리차드 개핀 교수조차 필자와의 대화에서, 워필드의 주장은 '주석적 근거가 없는 역사적인 경험(또는 무경험)에 의한 주장'이라고 한 마디로 일축해 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많은 개혁, 보수신학자들이 '(무)경험에 근거한 워필드의 주장'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맥아더는 더 나아가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사도시대에 끝났다고 주장한다.12)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들은 말씀 중심으로 살아서 마귀의 세력을 대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다만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약 4:7-8), 근신하고 깨어서 믿음을 굳게하면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벧전 5:8-9).

맥아더는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성품의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적인 전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품성의 문제이다. 사도들이 기록한 서신서들의 거의 모든 강조점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신약의 서신서들을 읽어 보라. 오늘날의 교회를 특징짓는 귀신의 세력들에 대한 병적인 고집은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신자들에게 귀신들을 찾고, 귀신들에게 말하고, 귀신들을 대항하고, 조롱하고, 쫓아내라고 가르치는 것을 한 군데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13)

에드워드 그로스14) 및 데이빗 폴리슨15)도 그들의 저서에서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 교수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귀신을 한 번이라도 실제로 쫓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체험 만능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 중 상당수는 실제 체험이 없으면 지극히 추상적인 논리로 해석되거나 영해 (spiritulization)될 가능성이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맥아더는 다른 사람들을 체험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내가 무 체험을 바탕으로 한 논리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더군다나 필자는 맥아더 식의 견해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귀신을 쫓아내면 '구속사적'이니 '계시사의 독특한 사건들'이니 등등 거창한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동일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오늘날의 신자들이 귀신을 쫓으면 '신비주의'니 '무속신앙'이니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체험의 결핍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 특히 사도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교리를 도출해 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이 아닌가?

더 나아가서 맥아더의 주장은 성경해석상의 전형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그는 첫째 A(기술)가 아니라 B(품성)이라는 헬라식 흑백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성경은 도처에서 A(기술?)는 물론 B(품성)라고 강조한다. 신자들은 성령의 은사(맥아더가 말하는 기술)도 필요하고 성령의 열매(품성)도 맺어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한 피조물을 초월하시는 분이자(A) 내재하시는 분이다(B).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자(A) 완전한 사람이시다(B).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자 인간의 믿음을 필요로 한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둘째 그는 서신서 어디를 보아도 귀신을 쫓아내라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귀신 쫓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서신서들에는 한 군데에서도 기록되지 않았느냐'(침묵에 의한 논증Argument from Silence)는 주장이다.

로마 교회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죽었다는 기록이 성경에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마리아 승천설을 주장한다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서신서에는 단 한 군데에도 기록되지 않았는가?'

침묵에 의한 논증은 비판자의 논리에 의해 비판자 자신이 부메랑같이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서신서들은 주로 교회 내부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내무생활 지침서'이며, 복음서나 사도행전은 '야전 전투교범'이라고 할 수 있다. 작전과 규율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만 있어도 야전전투와 내무생활을 혼동하지 않는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서 자세히 기록한 사실을 구태여 서신서에서 불필요하게 재반복하여 기록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전통적인 개혁, 보수신학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와 경험을 공식화하기 위해서는 역사서(주로 이야기체로 기록된 사도행전, 복음서 등)가 아니라 교훈서(특히 바울의 서신서)를 주요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리를 확립시키는 데 있어서 성경의 교훈적인 부분이 역사적인 부분에 비해 우선권이 있다'것이다.

많은 개혁, 보수신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 그래서 사도행전이나 복음서를 중심으로 하여 성령론이나 마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보수신학 일각에서는 이러한 접근 방법은 '성경 안에 성경'을 인정하는 비성서적인 태도라고 비판한다.

맥아더는 축귀에 대해서는 서신서를 기준으로 해석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예배 시 악기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린다. 악기 사용의 근거를 신약의 서신서는 커녕 신약도 아닌 구약의 시편 150을 참고로 인용할 뿐이다.16)

오늘날 누군가가 맥아더 식으로 "신약 성경 특히 서신서를 보라. 예배시 악기를 사용하라는 명령이나 권면이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예배 시 악기를 사용하는 교회는 잘못된 교회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주장의 타탕성 여부를 성경에 비추어 상고하기는 커녕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살짝 돈 사람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초기 종교 개혁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미국의 청교도들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주도한 제1차 영적대각성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 예배 시 악기 사용을 금지했으며, 시편을 단조롭게 창(Chanting)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믿어왔다. 그들은 서신서에 악기를 사용하고 세상의 음악의 멜로디를 사용하라는 기록이 없다고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어느 지도자는 청교도 시대가 성경의 진리가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시대라는 엉뚱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예배에 대한 이런 주장(성경 해석)이 다시 수정되었다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절대 다수의 교회가 예배 시 악기를 사용하면서 어떤 교리적 갈등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결국 문제는 예배 시 악기 사용의 여부를 성경 전체는 물론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혜의 산물로 보지 않고 굳이 서신서에서만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엉뚱한 교리를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개혁, 보수주의자들은 신앙고백, 선택교리, 예배의 기준, 선교와 전도, 교회의 정치제도, 유아세례 등 교회의 핵심적인 교리와 실천기준의 근거를 복음서나 사도행전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나 사도행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기적을 행하거나 축귀를 하면 왜 큰 일이 난 것같이 야단법석을 부리는가?

맥아더 식의 무 체험자들을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도 사역의 현장에서 복음서나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필요할 때에는 축귀를 하여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자를 따라야 하는가? 어느 편이 성경적인가? 독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IV. 윌리암 데아르테가의 맥아더 비판

교회사학자인 미국의 윌리암 테아르티가는 [성령을 소멸함]17)에서 존 맥아더의 [은사 I & II]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다음은 데아르티가의 견해를 정리한 것이다.

맥아더의 [은사]는 이전 책인 The Charismatics: A Doctrinal Perspective(1978)(은사주의자들: 교리적 전망)의 수정 증보판이다. 이 두 책에서 맥아더는 오순절주의/은사주의 운동은 기독교 교회에 혼란과 무질서와 혼란만을 야기시켰으며 그것은 환상과 잘못된 신학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맥아더는 미국 남가주 선 밸리 소재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성경교사이며, 그의 근본주의적 설교를 통해 매주 1만 명 이상의 교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맥아더는 은사주의 신학에 대한 공격자일 뿐만 아니라 동료 복음주의자에 대해서도 과도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구원과 제자도와의 관련성에 대해 동료 세대주의자와의 신학 논쟁에 연루되어 있다.

맥아더는 효력 있는 구원 체험은 제자훈련의 과정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구원 체험 자체가 영생을 보증하기에 충분하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반대한다. 편견이 없는 복음주의 학자들은 서로 다른 견해의 교환이 되어야 할 논쟁이(약 3:17), 서로가 서로를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난투극으로 전락되었다고 한탄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맥아더는 반대자들의 견해를 공격하기 전에 그것을 통상적으로 잘못 해석하거나 과장한다고 말한다.

베델신학대학원(미네소타주 세인트 폴 소재)의 학장이자 복음주의 학자인 밀라드 에릭슨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맥아더는 오해했다고 비판했다.

바울이 성령 충만한 삶과 성령의 은사를 담대하게 사용하는 것을 규정하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이 교리는, 특히 오순절주의/은사주의 신학에 대한 맥아더의 비판과 적절한 관련성이 있다.

은사의 신학은 극단적인 기적종식론의 신학이다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18)과 같이 맥아더의 영적 이해의 배경에는 스콧틀랜드 실재론19)의 가정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영적 현상에 대한 그의 이해를 저해하고 있다. 그는 신비주의란 부정적인 것이며 은사주의 신앙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신비주의는 객관적이고, 증명 가능한 사실과는 별개로 영적 현상을 인식하려는 믿음의 체계이다. 그것은 느낌, 직관 및 다른 내적 감각들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 객관적인 자료는 도외시되기 때문에 신비주의는 내부로부터 그 권위를 찾는다.

신비주의와는 반대로 맥아더는 "진정한 영적 경험들"을 가질 것을 허용한다. 이것들은 회개, 염려, 기쁨과 잃은 자에 대한 불쌍한 마음과 같은 경건한 감정들과 같은 구원의 과정의 감정들을 말한다.

기대했던 바와 같이, 맥아더는 객관적인 진리의 근거는 성경과 개혁 신학이라고 믿는다.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신학은 개혁 신학이다. 그것은 역사적 복음주의다. 그것은 역사적 정통 신학이다." 맥아더의 논리는 단순하다. '오순절주의/은사주의 신학은 개혁 신학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따라서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은사주의에 대한 맥아더의 공격은 기적 종식론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벤자민 워필드 보다 도가 지나쳐서 17세기 이래로 볼 수 없었던 극단적인 기적 종식론을 주창한다.

그는 오늘날 소위 말하는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점검해 보았지만 진짜는 하나도 없었다고 결론짓는다.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가 문제다. 진정한 기적에 대한 의학적인 검증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는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한다.

맥아더의 '기능심리학'(faculty theology)

한때 맥아더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신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아마 이 학생에게는 축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의 신학적인 틀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그는 상담이나 전문적인 심리학자를 통해 이 학생에게 제공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제공했다. 이 학생은, 생각이 잘못되었으며 나쁜 생각하기를 중지해야 된다는 상담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맥아더의 접근 방식은 중세기에 시작되어 칼빈이 사용한 기능심리학적인 것이었다. *기능심리학은 의지가 마음의 최상의 기능이며 그것은 보다 저급한 감정이나 생각을 지배할 능력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 학생에게는 우울증적인 생각을 중지할 수 있는 의지력의 발동이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생각 즉 지성이 마음의 최상의 기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지성이 마음의 최상의 기능이며 감정은 가장 저급한 기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인간이 전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플라톤의 헬라적인 인간관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신앙도 성경 공부, 신학 공부 등 지성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감정적인 체험을 격하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필자 주)

오만한 신학

맥아더의 [은사]를 읽어가노라면 그가 보편적인 교회의 다른 저서들을 얼마나 읽지 않았나 하는 것에 대해 그저 놀랄 따름이다. 마치 개혁 신학 외에 교부들이나 기독교의 다른 전통의 저서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A. J. 고든이 초대교회의 치유사역에 대해 제시한 증거들은 그냥 무시되었다. 맥아더에게는 개혁 신학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는 마치 교회가 A.D. 90년에 갑자기 사라졌다가 종교개혁 기간 중에 다시 나타난 것처럼 가르친다.

맥아더의 신학에서 가장 비극적인 요소는 성령을 대적하는 문제와 성령에 대한 죄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기각해 버리는 데 있다. 성령을 대적하는 죄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 신성에 대한 증거를 거부하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신자들이 이 죄를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맥아더는 주장한다.

이것이야 말로 세대주의의 또 다른 위험성이다. 이런 주장은 오늘날의 신자는 성령에 대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오늘날의 신자와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분리시킨다. 만일 성령의 '세미한 음성'이 어떤 사람에게 성령의 사역을 대적하는 위험을 경고하면, 지성을 통해 그 목소리는 (대다수가 동의하는) 바른 교리에 반대되는 것이으로 쉽게 거부해 버린다.

이런 점에서 맥아더의 신학은 완벽한 바리새 신학이 되어버렸다. 즉 내가 속한 교단의 신학은 완전하므로 이상하거나 새로운 것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만일 동료 신자들이 나와 동의하지 않으면 그는 이단성의 유희에 빠지는 것이다. 나의 신학을 도전하는 꿈이나 환상은, 이 세대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 수 없다. 따라서 바리새 전통을 따르는 기적 종식론자는 사람이나 하나님으로부터의 신학적인 견책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분별에 실패한 바리새주의

비록 바리새주의는 분명한 역사적인 형태를 가졌지만, 어떤 특정한 시대에 바리새적 이단 현상을 구분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바리새주의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오류를 증명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엡 4:14), 그것을 진정한 교회의 사명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바리새 영(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대다수가 동의하는 정통신학'(consensus orthodoxy))에 근거하여 비판하며, 현재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제가 혹시 그들 자신의 신학적 취약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성경에 비추어 보는 경우가 드물다.

바리새주의의 또 다른 주요한 특징은 열매를 기준으로 다루기를 거절하는 데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비록 어떤 운동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때, 극단주의와 혼란을 자아내어 '혼합된 열매'(mixed fruit)를 맺기도 하지만 그 운동은 전체적인 결과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리새주의자들은,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구분하지 않고, 어떤 운동에 대해 그들의 마음을 결정한 후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치우친 증거를 찾는다.

바리새주의자들의 주장과 미국 법정은 재미있는 유사성을 공유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논쟁할 때 특히 법정공방전과 법정주의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미국 TV의 주인공은 형사 법정의 변호사가 아니면 검사들이었다.20) 법정공방의 특징은 상대방의 잘못을 과대포장하면서 자신의 약점은 감추는 것이다.

이런 방법이 법정에서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영적 진리를 파괴하기 마련이다. 이런 방법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운동이 가진 진리를 인정하지 못한다. 기독교 사역이나 개인의 잘못만 잔뜩 열거해 놓고 그들의 통찰력이나 장점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 논쟁은 바리새 영으로 전염되기 쉽다.

우리는 진정한 기독교적 비판과 바리새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슬픔과 자비를 보이지만 후자는 자기 의에 찬 기쁨과 "내가 그렇게 경고하지 않았는가"라는 잘못된 영에 사로잡혀 있다.

기독교 비극으로서의 바리새주의

모든 바리새주의에는 기회를 놓치는 비극적인 요소가 있다. 교회의 긴급한 사명은 최근의 이런 바리새주의로 인한 손실을 속히 없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적인 간섭으로, 바리새주의와 (함부로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는) '마녀 사냥'으로 인해 야기된 혼란, 분열, 두려움 및 과대망상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바리새주의야 말로 교회의 영원한 이단이며 그것을 그렇게 인정할 수만 있다면, 현재의 위기는 보다 높은 수준의 분별과 영적 성숙을 향한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상 필자는 존 맥아더의 견해를 그의 저서인「은사 I & II」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 보았다. 필자가 강조하는 바는 존 맥아더가 은사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내세우는 개혁, 보수신학의 교리들의 상당 부분이 개혁, 보수신학자들로부터도 심각한 도전을 받는 주제들이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적인 성령 운동의 태동으로 인해 과거에는 당연하다고 믿어온 전통적인 교리들을 성경에 비추어 상고해 본 결과 상당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개혁, 보수신학자들에 의해서도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개혁, 보수주의자의 태도가 아닌가? 인간이 만든 교리가 아무리 정교해도 틀린 것이 판명되면 당연히 성경의 가르침에 종속되어야 하지 않는가?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하지 않는가?


성경은 과연 비과학적인가?(Is The Bible Scientifically Unreliable?) 우후후

성경은 과연 비과학적인가? (Is The Bible Scientifically Unreliable?)



이 세상의 진리나 과학적 패러다임은 시대가 바뀌어 가면서 변해 간다. 하지만, 성령님에 의해 기록 된 성경은 시대의 흐름에 관계없이 참 진리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러한 무오성은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현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뿌리를 내린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면 창세기의 창조내용이 근거 없는 비과학적인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창세기가 폐기되기보다는 진화론의 문제점들만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디과학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어윈 문(Erwin Moon) 박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내가 일생동안 성경의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수 차례에 걸쳐 과학적으로 어떤 문제나 모순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여 보았으나 그러한 오류를 찾을 수 없었다."


에스겔 7:2과 이사야 11:12에 "땅사방"이라는 말이 나온다. 영어로는 네 구석들(four corners)로 번역되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지구가 사각형으로 되어있다 하니 비과학적이고 오류가 있다."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corners"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나프"의 일반적인 의미는 "극한(extremity)"이다. 이 "카나프"는 욥기 37:3과 38:13에서도 쓰였는데 그곳에서는 땅끝(ends)으로 번역되었다. 땅 끝이란 번역도 땅에 끝이 있는 것처럼 잘못 전달될 위험이 있다(실제로 중세 및 그 이전의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음.). 실제로 욥기 37:3은 "빛으로 아주 먼 곳(extremity)까지 이르게 하시고"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4 모퉁이(corners)를 가진 사각형을 말하고자 했다면 "파무드"라는 정확한 의미의 히브리 단어를 주셨을 것이다. 히브리 원어의 부적절한 번역 표현으로 발생된 오해들이다.


또 간혹 성경에 지구가 평평한 것 (flat earth)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성경에는 그런 구절이 전혀 없다. 오히려 욥기 26:7에는 "그는 땅을 공간에 다시며" (He suspends the earth over nothing: NIV) 와 같이 우주 공간 속에 아무런 지지도 없이 중력에 의해 떠있는 지구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이사야 40:22에는 "그는 땅 위의 궁창에 앉으시나니(NIV: He sits enthroned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와 같이 지구가 원형임을 증거하고 있다. "circle"이라는 말은 구상/원형을 의미하는 히브리 원어 "쿠그(khug=sphericity or roundness)"를 번역한 것이다. 잠언 8: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에서도 같은 원어 "쿠그"가 "compass"로 번역되었다. 하여튼 성경에서는 분명히 지구가 구상으로 되어 있으며 우주 공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오히려 더욱 놀라는 것은 B.C. 700년경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가 어떻게 지구가 구상임을 알았으며, 아브라함 시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욥이 어떻게 지구가 이 우주 공간에 덩그마니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겠냐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했다고 하는 그리이스나 로마 사람들, 심지어 중세의 사람들까지도 지구를 거대한 코끼리나 거북이 또는 헤라클레스등이 받치고 있다고 이해했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직 성령님께서 그들의 손을 빌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음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누가복음 17:34-35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재림시 지구의 한편에서는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낮에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예수님의 재림은 순간적이며 전지구적 사건일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다. 이 당시 어느 누구도 지구가 구상이며 자전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지구 상에 밤과 낮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은 이미 열성/우성 에 관한 멘델의 법칙을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확장되는 우주 (expanding universe: 시편 104:1-2, 이사야 42:5, 45:12) 나 공기에 무게가 있다는 것 (욥기 28:25) 등 성경이 쓰여졌을 그 당시 지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과학적, 의학적 기록들이 그 예를 다 들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또 다른 한 예로 성경에는 욥기 36:27-28에 물의 순환과 강우(Hydrologic Cycle and Precipitation)에 관한 정확한 과학적 표현이 나온다. 욥기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아브라함의 부족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욥기 36:27-28) "He draws up the drops of water, which distill as rain to the streams; the cloud pour down their moisture and abundant showers fall on mankind." (Job 36:27-28)


심지어 중세(Middle Ages)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구름이 어떻게 생기며 비가 왜 오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신비로움으로 여겨왔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B.C. 2000년 경의 욥이 어떻게 그렇게 물의 순환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성령님의 인도로 할 수 있었겠지만…….


시편 8:8에는 바다의 흐름(해류)에도 길이 있다고 한다.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The birds of the air, and the fish of the sea, all that swim the paths of the seas)”‚ 이사야 43:16에도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pathways in the seas)”‚ 라고 하였다. 바다에 해로가 있다고 처음 발견된 것은 해양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매튜 모리(Matthew Maury)에 의해서이며 19세기 중엽쯤이었다. 하지만 시편 8편에는 이미 바다에 해류가 있다고 선포한다.


갈릴레오는 후일 종교재판의 압력에 의해 자신의 견해를 외적으로 수정한바 있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성경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라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성경을 잘 모르는 많은 불신자들의 “성경과 과학은 충돌한다”라는 편견과는 달리 프랜시스 쉐퍼 (Francis Schaeffer) 는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근대 과학의 등장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바와 대립하지 않았다. 사실상 결정적으로 과학혁명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바에 근거했다."


20세기의 저명한 두 석학 화이트헤드 (Whitehead)와 오펜하이머(Oppenheimer)교수는 불신자이면서도 정직한 관점으로 "근대 과학의 중요한 기초가 성경적 세계관에서 탄생하였다"라고 인정하였다. 즉 "인격적 초월자의 지적 합리성에 대한 신념이 근대 초창기 과학자들의 연구에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과학의 역사에는 3번의 큰 혁명이 있었다. 뉴턴에 의한 중력장의 발견이요, 맥스웰의 전기장과 자기장의 통합이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통일장이론(not completed yet)이다. 모두 창조를 믿는 과학자 들이다.


과학의 여러 분야의 박사학위를 가진 윌더스미스 (A. E. Wilder-Smith)는 그의 『성경의 신뢰성(The Reliability of the Bible)』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성경은 과학교과서도 아니고 과학적 전문 용어로 쓰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성경은 여러 과학적 현상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어휘들로 명확하고도 무오하게 기록하였다."


당신은 당신의 친구로부터 성경은 오류가 많고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조롱에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사도 베드로의 말씀처럼 우리의 소망에 관해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준비하고 있는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 전서 3:15)

1960년대에서부터 2006년까지 한국의 gdp순위 변화 박정희

1960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4위 중국 GDP 6백 1십억달러.
5위 일본 GDP 4백 4십억달러.
19위 필리핀 GDP 6십 9억달러.
29위 한국 GDP 3십 9억달러.
42위 홍콩 GDP 1십 3억달러.
57위 싱가포르 GDP 6억 4천만달러.


1965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4위 일본 GDP 9백억달러.
5위 중국 GDP 6백 9십억달러.
27위 필리핀 GDP 6십억달러.
39위 한국 GDP 3십억달러.
44위 홍콩 GDP 2십 4억달러.
60위 싱가포르 GDP 9억 6천만달러.


1970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2천억달러.
6위 중국 GDP 9백 1십억달러.
32위 한국 GDP 8십 9억달러.
38위 필리핀 GDP 6십 6억달러.
50위 홍콩 GDP 3십 8억달러.
59위 싱가포르 GDP 1십 8억달러.


1975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5천억달러.
8위 중국 GDP 1천 6백억달러.
31위 한국 GDP 2백 1십억달러.
37위 필리핀 GDP 1백 5십억달러.
48위 홍콩 GDP 1백억달러.
56위 싱가포르 GDP 5십 6억달러.


1980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1조달러.
11위 중국 GDP 1천 9백억달러.
28위 한국 GDP 6백 3십억달러.
36위 필리핀 GDP 3백 2십억달러.
40위 홍콩 GDP 2백 8십억달러.
58위 싱가포르 GDP 1백 2십억달러.


1987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2조 4천억달러.
11위 중국 GDP 2천 7백억달러.
18위 한국 GDP 1천 4백억달러.
34위 홍콩 GDP 5백억달러.
45위 필리핀 GDP 3백 3십억달러.
59위 싱가포르 GDP 2백억달러.


1992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3조 7천 6백억달러.
10위 중국 GDP 4천 2백억달러.
14위 한국 GDP 3천 3백억달러.
30위 홍콩 GDP 1천 4십억달러.
39위 필리핀 GDP 5백 2십억달러.
40위 싱가포르 GDP 5백억달러.


1998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3조 8천억달러.
7위 중국 GDP 1조달러.
15위 한국 GDP 3천 4백억달러.
25위 홍콩 GDP 1천 6백 6십억달러.
40위 싱가포르 GDP 8백 2십억달러.
43위 필리핀 GDP 6백 5십억달러.


2002년 세계 GDP 순위 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3조 9천억달러.
6위 중국 GDP 1조 4천 5백억달러.
11위 한국 GDP 5천 4백억달러.
28위 홍콩 GDP 1천 6백억달러.
40위 싱가포르 8백 8십억달러.
43위 필리핀 GDP 7백 6십억달러.


2006년 세계 GDP 순위 중에서 동북아시아 주요국..

2위 일본 GDP 4조 3천억달러.
4위 중국 GDP 2조 9천억달러.
13위 한국 GDP 8천 9백억달러.
34위 홍콩 GDP 1천 9백억달러.
40위 싱가포르 1천 3백억달러.
43위 필리핀 GDP 1천 2백억달러.

자료출처
http://www.nationmaster.com/time.php?stat=eco_gdp-economy-gdp&country=ks-korea-south
이 주소의 사이트로 가서 1960년도를 클릭하면 그해의 세계 GDP순위가 쭉 나옴..



위 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박정희 시기부터 전두환시기까지 한국의 세계 gdp순위는 30위권이었습니다.

 

이게 극적으로 변화된 게 87년 민주화운동이후이구여

 

그때 처음 18위가 됩니다.

 

그리고 김대중집권말기 11위 노무현 집권말기 13위를 기록합니다.

 

이거 보면 누가 진짜 경제대통령인지 답이 나올것입니다




1960년대 남북한 경제 비교. 박정희

1960년대

 

1인당 GNP 북한이 남한의 3.5배

북한 325달러

남한 94달러

 

1960년초 주요 생산품 생산량 비교

조강능력  남 0.8   북 56.1   (60배)

화학비료  남3.8    북 86     (22.6배)

철광석     남 14    북 116    (8.2배)

발전량     남 20    북 116    (5.8배)

시멘트     남51     북 207    (4배)

석탄        남590    북1200   (2배)

어획량     남45     북 59     (1.3배)

식량        남 600   북 220   (0.36배)

 

식량 빼고 북한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이었죠.

거기다 북한은 당시 한국 인구의 절반에 불과했는데 생산량이 저정도니 인구대비하면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감이 잡히시죠.

이 차이는 1980년대 가서야 앞지르게 됩니다. 


박정희와 작전주(꾸준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민주화가 필수적이다.) 박정희

박정희 당시 지금으로 치면 아이엠에프와 같은 게 8번인가 있었다는데

 

지금으로 치면 김영삼이 8번집권한건데

 

박정희가 경제를 잘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분히 누군가의 작전세력에 의해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주식으로 치면 일명 작전주 냄새가 좀 난다는 할 수 있습니다.

 

소위 개잡주인데 이런저런 뉴스를 띄어서(자원개발 줄기세포 등등) 개미들 털어먹는 그런 것 말입니다.

 

저같은 투자자는 절대로  개잡주는 취급하지 않거든요.

 

한국의 경제발전이 진정 가능했던 것은 우선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수출이 잘되는 그런 구조에서 가능했습니다.

 

국민이 그런 상태에서 더 열심히 일하고 희망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80년대 한국은 처음으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싹을 텃고 그 뿌리는 5.18에 있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의 일등공신은 어쩌면 5.18과 같은 민주화운동일지 모릅니다. 5.18의 영향때문에 87년 직선제 개헌을 위한 시민혁명도 가능했구요

 

제가 알기론 영국의 산업혁명도 사실은 그 전에 정치혁명 즉 청교도혁명이나 명예혁명이 먼저 있었거든요.

 

정치적 혁명이 일어나서 국민들이 먼가 주인의식이 있을때 그때 경제는 급성장하는 거죠. 경제가 성장한 만큼 그게 자기것이 되니깐요.

 

물론 80년대 3저호황이라는 아주 좋은 경제상황이 있었습니다. 즉 약간의 운도 따랐다는 것이져

 

다 아시다시피 3저호황이라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파워게임에서 일본이 환율을 절상해주는 프라자합의에 기원합니다.

 

그 결과 한국의 공산품이 미국시장에서 엄청난 가격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때 엑셀이라는 차가 무지 팔렸더랬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주가 역시 gdp대비 3배의 폭등을 기록했구요.

 

물론 그 뒤 한국도 극심한 부동산 투기에 잠재성장력일 갈가먹었습니다.

 

그러면서 90년대 김영삼집권시절 준비되지 않은 개방정책 즉 세계화정책으로 나라가 환란에 휩쓸린것이구요.(그 당시 너무 빨리 OECD에 가입할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혹자는 경제성장이 있어야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오히려 전 반대라고 봅니다

 

싱가폴가 같은 소국이 아닌 인구 몇 천만 단위의 나라에서 "꾸준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민주화가 필수적일 주 모릅니다. 민주화의 의미는 국민이 큰 소리를 칠 수 있고 자기 몫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꾸준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죠. 일시적인 경제성장은 북한의 김일성도 했던 거잖아요.

 

문제는 북한의 독재체제는 3대에 걸쳐 유지되면서 그 경제성장의 열매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지 못하면서 망쪼가 들고 결국 경제도 개판이 되었다고 보거든요.

 

다시 말하지만

 

꾸준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민주화가 필수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탈종교화도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자본주의가 성장한 나라를 보면 보두 종교개혁을 통해 자본주의 자체를 긍정적으로 여기게 하는 의식화작업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카톨릭은 극빈사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프로테스탄트는 오히려 청빈사상을 통해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습니다. 나중에는 기독교 자차에 대한 반대까지 나아가는 그런 양태를 보였습니다. 그 결과 유럽의 자본주의가 사실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박정희때 우리가 북한보다 못산거 알고 있냐??? 박정희

박정희때 거의 모든 기간을 북한보다 우리나라가 못살았다.

 

북한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있었고...

공산주의자들은 북한을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우수한 증거라며 내세울 정도였다.

50년대 60년대는 북한은 거의 1년에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한다.

북한은 6.25이전까지만 해도 엄청 잘  살았다.

어느 정도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당시 1000불 수준이었고 이건 뭐.. 미국보다는 딸리지만 최상위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일본은 60년대에 국민소득 500불 겨우 달성했을 정도다.

일제시대 일본 공업력의 30%이상이 한국에 있었다. 그것도 북한 함흥을 위시한 공단에 있었는데...

동양 최대의 댐을 2개인가 가지고 있어서 전력이 풍부해서 경제가 엄청나게 발전해 있었고 2차대전에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근데 6.25때 미국이 싹 폭격해서 다 날려주셨는데... 그 공업인력은 북한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전후 북한발전의 원동력이 된거다.

 

근데 남한은???

당연히 공업보다는 주로 농업이나 경공업 위주여서 정말 아무것도 없었고..

50년대 60년대까지 경제성장률 10%이상 막 치고나가는 북한을 보고 박정희가 열폭한거다!!!

열폭한 박정희 경쟁심에 북한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야 된다고 경제성장률 수치에 집착을 보였는데...

내가 알기론 50년대 60년대 격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았고...

당시 김일성이 남한에 대해서 코우습쳤을 정도였다.

 남한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앞지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냐는 질문에 김일성이 콧웃음을 치며 남한이 경제발전할 때 동안 북한은 앉아서 놀겠냐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정도고 당시로 열폭에 헛다리만 집던 박정희의 경제정책을 봤을 땐 충분히 설득력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한국에 경제 고문을 보내서 한국의 상황상 연간 4%정도로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을 했는데 박정희는 그말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조건 북한보다 높게!!  무저건 년간 10%이상 성장을 목표로 주장했고 말이 안통하는 박정희에 혀를 차며 미국 경제고문단은 본국으로 돌아가버렸다네...

 박정희는 무리하게 성장률에 집착하는 바람에 경제성장률을 원하는 10%대에 맞추긴 했는데... 문제는엄청나게 돈풀어서 맞춘  성장률이라 물가상승률은 항상 그보다 더 높게 성장해서.. 원화가치는 매년 폭락해서 환률은 계속 떨어지고.. 사실 경제는 점점 힘들어져 간거다...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가 열폭 100% 경제 최우선 민주주의 닥쳐라 해서 짓꺼리 한게 유신...

당시 경제성장=안보 라는 인식때문에 닥치고 밀어붙힌거지... 북한보다 경제가 뒤지던 남한입장에서는 경제발전은 생존과 직결된건데 뜻대로 경제는 발전하지 않고 정치인들은 맨날 쌈질하고 하고자 하는 정책이 야당에 막히고 하니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겠지.

 당시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을 때 북한과 경제격차를 줄이지 못해서 미국을 꼬득여 북한을 칠려고 도발한 적도 있었고...
(이 내용은 MBC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다큐에 보면 당시 상황 잘 말해준다.)
  미국에게 한국군 현대화해주고 무장하게 해달라!! 강력하게 요구했는데 미국은 콧방귀도 안꼈고 한국군도 신뢰하지 않았다.

항상 미국 떨거지 무기로만 무장해주고 최신무기는 잘 주려 하질 않았던 거지...

 그래서  당시 박정희가 위기 타결을 위한 히든카드로 내놓은 것이 핵개발!!!  1970년대초부터 계획해서 진행한다. 지금 북한과 비슷한 동기에서겠지...

 그러다 미국에 발각되서 미국과 관계틀어지고 미국은 핵개발 포기 안하면 미군뺀다 협박해제끼고... 미국과의 관계도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갔었다.

 경제는 경제대로 2차에 걸친 유가파동으로 안그래도 돈풀어서 억지로 경제성장률 맞춘 한국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휘청됐고. 1970년대 말.. 박정희 시해되기 전에는 경제가 거의 시궁창 수준으로 박살난 상태였다.

물가가 정말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날뛰고 있었다는 거다.

그때까진 한국 경제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고.. 무슨 한강의 기적? 이따구 소린 안했단 말이지...

그러다 다행이 박정희는 시해되고...

 

전두환 들어서면서 경제정책을 성장률 위주 정책 폐기하고 물가우선 정책 펴고 실속이 없었던 대기업 위주 정책을 폐기하고 중소기업 우선 정책 피고... 

한국은 물가 안정에 들어서게 되고...

한국은 그때부터 경제 대폭발하게 된다. 물가는 한자리수로 안정되면서 경제성장률은 10%이상을 달성했고....

이때부터 한국 경제를 세계가 주목하게 된다.

엄청난 물가상승으로 전후에는 거의 1:1수준이었던 일본 엔화와 환율이 박정희의 성장률 수치 집착으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거의 1:8수준으로 벌어졌던 것이 다시 좁혀지기 시작한거지..

그리고 북한을 1980년부터 완전히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실 지금의 경제는 전두환때와 노태우때 폭풍성장한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이다!

박정희때 경제 성장했다?? 물론 성장은 했지만 사실상 대실패였다!!!

공산주의인 북한보다 뒤쳐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아시아 경쟁국 보다 뒤떨어졌다! 일본, 대만 등등...

 

그리고 혹자는 이렇게 말하지... 한국 1950년대에 이티오피아보다 못살았던 최빈국이 세계 10대수준의 경제대국 됐다고!!!

이거 거짓말이다!!! 한국은 그렇게 못산적 없다. 구한말에 나라 쉽창났을 때조차 국민소득 세계 27위수준으로 잘사는 나라였다.

그리고 일제시대 끝나고 국민소득 1000불수준으로 세계 탑에 들정도로 잘살던 나라였다.

문제는 전후에 다 박살난 시점에 이티오피아보다 못살았다는 건데...

전후는 어느 나라나 못살았다!!!!

2차대전 끝나고 다 박살난 독일을 비롯한 유럽... 핵폭탄 맞은 일본 등등 당시로는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소득이 감소했다.

근데 그런 나라들이 자기를 최빈국에서 선진국이 됐다고 하는거 봤냐???

게다가 당시 이티오피아는 지금 처럼 최빈국이 아니고 잘살던 나라중에 하나로 6.25때 대규모 파병을 했을 정도로 건실한 나라였다. 그러니 당연히 전쟁바로 직후는 이티오피아보다 못살았지!!!

대한민국이 이티오피아보다 못살았다느니 전후에 박살난 것때문에 소득 줄어든 걸 가지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키웠다는 소리는 정말 캐거짓말 중에 거짓말이다.

우린 원래 조선시대부터 대국 중에 하나로 상당히 잘사는 나라중에 하나였다.

추가

대한민국이 앞선 것은 1980년대 초입니다. 1970년대 격차를 줄였으나 2차에 걸친 유가파동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2번이나 해서 주춤하는 상태였고 과도한 대기업 위주의 유동성 공급으로 나라 경제가 거덜나기 직전이었죠. 당시 박정희 정부가 내세웠던 것이 무역상사 지원제도를 통해 수출을 장려하는 것이었는데 이 덕택에 삼성을 비롯 많은 대기업들이 성장하는데... 그 핵심내용이 뭐녔냐면 수출 얼마이상되면 엄청난 저리로 정부에서 대출을 해주는 것이었음! 당시 금리가 20%가 넘는 상황에 무역상사로 지정되면 2~3%로 거의 공짜로 엄청난 대출을 해줬는데... 그러다 보니 삼성같은 무역상사들은 직접 수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수출을 하는 작은 중소기업을 매입해서 수출량을 맞춰 저리의 대출을 받고.. 그 돈으로 또 작은 수출 중소기업 매입하고 또 지금의 하청구조를 만들게 됨. 그게 부작용에 극에 달하게 됨!. 대규모로 대출된 자금으로 삼성같은 기업은 직접생산보다 중소기업을 사서 덩치를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부동산투기 같은 쪽으로 투자를 해서 거품을 일으키고.. 기타 등등... 경제 부작용이 상당했었음. 이것들이 전두환때에 와서 폐기됨  


그리스가 망한 이유 경제

 

그리스의 회계사와 기자조차 인지하는 문제임에도,

미국을 비롯한 유럽 깡패 3인방은 조세형평성이 문제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과다복지에 원인이 있다고 뻘소리를 헌다.

 

갸들이나 우리나 항상 있는 놈은 없는 놈 탓이라고 하는게 주된 논리고,

그게 힘이 있는 놈이 주장하니께 목소리가 큰게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

돈많은 놈은 세금 포탈에, 없는 놈만 꼬박꼬박 낸다.

그런데 보수언론들은 과도한 복지가 우리의 미래를 좀먹는다고 허지.

미래를 좀 먹는 색기가 누구인지 실상을 까야한다.

 

비정상이 정상을 비웃는게 당연한 세상은 결국 두 가지로 종결된다.

 

혁명, 아니면 전쟁.

 

1950년 6.25 이래 모든게 다 망가지고 부숴져야

60~80년대에 발흥한 정주영같은 신흥갑부가 나오는 토양이 형성된다.

 

이미 결정된 것이 세습되는 지금 세상이 영원할 것 같지만,

글쎄...

그 답은 우리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된다.

100년 부자 있던가.

100년 평화 있던가.

ㅎㅎ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 경제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다 입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 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하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생모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 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라고 말 했습니다.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 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 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 없던 필수 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 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 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 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 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 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 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 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 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 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 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 중 어떤 한 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 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 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 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 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 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 안에 다 해치워야 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 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 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 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 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 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 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제삼세력이 아니라 민주당, 개인적 소회(펌) 정치

(1) 개인적 접근
각자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 데는 전부 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당을 꼭, 어떤 인물을 꼭 지지 해야 (하지말아야) 한다고 절대적인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고향 때문에, 어떤 분들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애증 때문이겠져. 그러니 뭐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건 좀 아닌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개인적인 이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 볼까 합니다.

저는 지금의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세력을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그 세력이 저를, 그리고 저와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도움을 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도권 사람입니다. 서울서 태어나서 자랐고, 서울에서 살다가 경기에서 살다가 그랬습니다. 부모님 고향도 호남도, 영남도 아니십니다. 물론 부모님의 고향이 어땠건, 저는 자신의 정체성을 수도권(서울)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혹은 다른 정당/세력을 지지 않는) 이유는 지역 문제는 아닙니다.


(2) 개인적으로 바라본 현실의 문제

그보다 저는 중산층과 서민의 경계정도에 있는 삶을 살아 왔습니다. 다행히도, 운이 따랐는지 일신에 몇가지 재주가 있어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자리에서 일도 하면서 여러계층의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여가면서 점점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는 어쨌거나 소수의 '이너서클'이 있어서 그 이너서클이 모든 자원과, 자기 발전의 기회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독점하고 있고, 소수의 전문가 그룹이 그 '이너서클'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다수의 (사무직/현장)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은 오직 제한된 기회를 가지며, '효율성을 위한 경쟁'이라는 기치하에 행복하지 않은 삶을 강요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마져 떨어저 나간 사람들은 실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희망없는 삶을 살도록 내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이너서클의 문은 닫혀 있습니다. 즉 타고 나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못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너서클을 위해 봉사하는 전문가 그룹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갯수가 적고, 아주 높은 수준의 경쟁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 경쟁에서 이길수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내 아이들도 그럴수 있을까요? 게다가 결국 전문가 그룹안에서도, 이너서클과의 연줄이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여부에 대한 큰 요건이 됩니다. 내 자신이 그런 연줄이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이다음에 혹시 내 자식들의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서, 전문가 그룹 경쟁에 뛰어든다고 하더라도, 저로서는 그런 연줄을 제공해 줄 수 없습니다.

전문가 그룹이 되기 위한 경쟁은 차라리 낫습니다. 만약 개인적인 능력이 그 경쟁에 끼어들 수준이 아예 안되는 사람이라면, 더 끔찍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바로 '생존' 경쟁입니다. 굳이 이너서클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더라도, 단지 결혼하고,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기르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평범한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엄청난 경쟁을 해야 합니다. 나이가 조금 들 때까지 직장을 얻지 못하면 저런 '평범한' 생활을 하기 힘듭니다. 나이가 조금 든 이후에 직장을 잃으면 다시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고 저 생활은 금방 파탄납니다. 없는 돈으로 자영업을 한다고 한들 쉽게 돈이 벌어질 리가 없습니다. 장사되는 가게는 몇 개 뿐입니다. 가게문 닫지 못해 적자를 무릎쓰고 꾸려갑니다. 내 자식들에게 이 생존 경쟁을 하도록 시키기가 너무 너무 두렵습니다.

만약 경쟁에서 탈락해서 내몰리면. 정말로 고통속에서 허덕이는 삶을 살거나, '저런 낙오자 같은 인간'이라는 시선을 서로가 서로에게 보냅니다. 다른 길이 있긴 합니다. 다른 사람을 등쳐 먹으면서 살면 됩니다. 이너서클에 들어가서, 국가 시스템의 가호를 받으며 남을 등처 먹지 못할바에야, 스스로로 만만한 사람들 등처 먹으면 됩니다.  그리고 이런 투쟁적 경쟁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이너서클이 현재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부의 편중을 더 심화하는데 훨씬 더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시켜만 주면 일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는에 월급은 무슨.' '이 친구는 해외 연수까지 갔다 왔는데 자네는 고작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학점이 안좋았다고?')


(3) 바라는 현실과 그를 위한 정치 세력.

예,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어느 사회에서나 경쟁은 있어왔고 부의 편중은 자연스러웠습니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총생산력이 온 국민의 절대적인 의식주를 해결 못할 정도로 낮은 것도 아닌데, 굳이 큰 부자가 되려는 것도 아닌 사람들 마저도,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만민에 대한 투쟁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가심아픕니다. 그리고  내 자식들에게 그 현실을 물려주기가 너무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이 현실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정치 세력을 골라서 지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경쟁을 통한 효율성 강화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경쟁을 뚫고 높이 올라간 사람이 더 많은 과실을 먹는 것 자체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능력있는 사람들끼리 전문가 집단의 높은 자리를 놓고 경쟁할 때는 그 룰과 출발선이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공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그 경쟁을 포기하고 '소시민'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했을 때는, 소소한 범위에서나마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를 더 많이 소유한 집단이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용인하겠는데,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부와 권력이 못한 사람들을 대놓고 '아랫 것'이나 '천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게 하는 사회를 바랍니다.

어느 정당이나 말이야 다 제가 방금 한 것과 비슷한 말을 하겠지만, 내어놓는 정책과 그 정책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봤을 때 지금의 민주당이 저의 이상과 가장 가깝다고 판단되어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더 중요하게 말하자면 저는 한나라당을 증오하기 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이 친일과 독재의 잔재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증오하지 않습니다 외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저는 충분히 존중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비양심적으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나랏돈을 제돈처럼 쓰는 무리들이 있긴 합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런 무리들의 그런 행동을 지지하는 것은 아닐테지요. 그보다는 오히려 저는 한나라당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을 지지할 것 입니다. 아무리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일을 벌린다고 하더라도, '이너서클'의 기득권을 얼마만큼 인정할 것이며, 그 바깥에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경쟁을 요구할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스텐스를 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이너서클'의 이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야권 연대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직 '한나라당을 타도하기 위한' 야권연대에 냉소적입니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불법적인 쿠테타로 정권을 탈취한 집단이 아닙니다. 어쨌거나 자신들의 정책 철학-- 경쟁을 통한 효율성 강화, 트리클 다운으로 인한 경기 활성화,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 --을 가지고 국민에게 선택받은 합법적 정부입니다. 그러니 정권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는 저 정책철학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다른 정책 철학을 내 세워서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정치인의 기본입니다. 아무런 정책 철학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한나라당] 구호 하나만으로 정확히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국민의 분노의 파도를 타고 정권을 잡는 행위는, 정치인들의 직무 유기요, 국민에 대한 사기입니다.

물론 한나라당의 많은 정치인/공직자들은 합법적 정부 안에서 (자신들의 현재 가지고 있는 그 수많은 기득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개인적인 이득을 얻고자) 온갖 구린 짓을 행했습니다. 그 구린짓을 심판하기 위해서 정권을 잡아온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범죄한 몇몇 심판한 다음에는 뭘 할건데요? 새 정부에서 땅투기, 탈세를 안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너서클 (이를테면 삼성재벌)의 기득권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저와 같은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나아지겠습니까?

더 극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왜 정치인들 끼리 [통합]이니 [연대]니 하는 거에 동원되어서 다른 사람들이나 입씨름 해가면서 그 장단에 춤을 춰야 겠습니까? 정치인들이 나한테 와서 자기들의 정책에 세일즈 포인트를 요점정리해서 말해줘야죠. 시장으로 말하자면 "우리 회사 물건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줘서, 어떤 식으로 동작할 겁니다. 가격은 얼마입니다."이렇게 말해줘야죠. 그래에 그게 내가 바라는 제품인지 아닌지 알지요. 그게 아니라 물건 만드는 회사 몇개가 자기들 끼리 쑥덕거리더니, "올해는 A,B,C사 제품중 A사만 팔기로 했습니다. 훌륭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업계 1위 D사의 안티이기 때문에, 각 회사의 이익은 일정부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D사 제품에서는 쥐가 나온거 아시죠? 우리꺼 살래요 D사꺼 살래요?"


(5) '친노 그룹'. 민주당. 제3세력 신당.

저는 정치 세력에 대한 충성심, 혹은 정치인에 대한 빠심은 그래서 집어치우기로 했습니다.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었던 것도 제가 바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서도 아웃사이더 였던 노무현 후보가, 일단 권력을 잡으면 이너서클로 집중되어 있는 사회 구조를 좀 개선해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원칙과 상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바로 그걸 이야기 하는 듯 했고요. 이후 열린 우리당 분당시, 호남 기반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큰 상처를 입으셨겠지만, 저로서는 그 시점에서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2)에서 이야기 했던 현실을 탈피해서 (3)에서 바라는 이상을 향해 가까이 가는 정치를 한다면, 그를 위해 영남에서의 지지를 조금 더 탄탄히 하고 싶었다면, 한번 하고 싶은 데로 해 봐라 정도였습니다.(그리고 호남도 그 시점에서는 열린우리당으로 같이 따라갔었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3)의 이상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접근하는데 아주 처참히 실패했습니다. 원-달러 환율 얼마, 일인당 국민소득, 세계 몇대 강대국, 어쩌고 성적표를 흔들어 댔는데, 제가 정말 고치고 싶은 (2)의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이너서클로의 권력과 재력의 집중은 더 심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삼성이 있었고요.) 그렇게 되니 제가 지지해야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더군요.

제가 소위 '친노 그룹'을 탐탐치 않게 보는 이유가 달리 있지 않습니다. 참여정부는 (2)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데 실패했고, 이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비극적으로 운명을 달리하셨다고 하더라도 변하지가 않습니다. 후임 이명박 현 대통령이 벌이는 행적이 아무리 더 엉망징창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전의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10 이 -5보다 더 작다고, -5가 양수가 되는건 아니니까요.

어쨌거나 열린우리당은 다시 현재의 민주당이 되었고, 야당이 되었습니다. 현 집권 여당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이 버텨준데에 대해서는 일단 감사합니다. 야당이 되엇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성과의 컨넥션이 없어져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열린우리당 시절보다는 좀 더 현실 개선에 대한 인식이 조금 개선된것 같습니다. 특히 복지논쟁을 불러일으킨 점, 그래서 소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이 보장받아야 된다는 이슈를 만들어 준 것에도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물론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2)의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여전히 강하게 들어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민주당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제삼세력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존의 정치는 만족스럽지가 못하니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그 사람들은 (3)을 위해 어떤 비전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한나라당 민주당 모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 뿐입니다. 새로운 정당,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고만 말합니다. 근데 그렇게 만들어진 새 정당이 '무엇'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책에 관한 입장이 지금 민주당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면, 오히려 지난번 열린 우리당 수준으로 후퇴한다면 그런 새 정당 왜 필요합니까?

그렇게 신당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민주당과 차별화되어서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요? (2)의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건지요.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하려고 하기 때문의 지금 민주당을 부정하는 것인가요. 그냥 단순히 비슷한 (진보) 세력끼리 싸우다 망하지 않으려고요? 열린우리당이 망한게 민노당이랑 싸워서가 아니지 않습니까.

기존의 정치인들은 여야 할것 없이 썩었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근데 그 새로운 인물이란게 누구입니까. 유시민? 문재인? 이해찬? 이 사람들이 정말 새로운 인물인가요? 이 세 사람은 참여정부, 열린우리당이 실패했을 때 그 중심에 있던 사람들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열린 우리당의 실패의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 책임을 전부다 지금의 민주당에게 떠 넘기고,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와 같이 할 수 없다고 핑계 대면서) 도망가 있던 사람들인것 같습니다. 현 집권 세력이 기세가 등등해서 온갖 깽판을 치고 있을때, 이 사람들은 어디서 무슨 역할을 했습니까. 지금 민주당이 했던것 만큼이라도 했나요. 이분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한들, (2)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지난 정부의 현실인식에서 나아간 게 지금 민주당 만큼도 없다면, 그렇담 제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정말로 신선한 뉴페이스는 어떨까요. 조국 교수. 안철수 교수. 박원순 이사장 같은 분들. 박원순씨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와준게 어떻게 보면 잘 된 일 같습니다. 밖에서 훈수만 두던, 현실 정치의 마인드로 무장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실제 혼자서 정치 무대에 뛰어들었을 때의 한계가 어떤지 몸소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지난번 글에도 밝혔지만, 저는 박원순씨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존경할 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진작에 민주당에 들어와서 민주당 정치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주당의 정책을 가지고,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으셨다면,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서 자기 이상 - 그런게 있다면-을 펼쳐 보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럼 이번 선거에서 보여주신 그 수많은 삽질을 좀 덜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본인 준비 안된건 어쩔 수 없으셨겠지만.)

저는 이런 뉴페이스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2)의 현실 인식을 공유하고 (3)의 이상을 향해 사회가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있는 정치세력중에서, 정책기조가 그것과 가장 가깝고, 그것을 실제로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제가 생각하는 것은 민주당입니다. 근데 본인들이 하시고자 하는 정책기조가 지금의 민주당과 어떻게 확연히 다르시기에, 지금의 민주당과 함께 할 수는 없으신 겁니까? 민주당이 자리를 마련해서 모셔온다고 해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차이가 큰 것 입니까? 만약 지금의 민주당을 완전히 배재하고 새로 신당 차리면, 어떻게 지금 민주당 보다 더 잘 수행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저는 뉴페이스들이 말하는 '새로운 정치'가 지금 민주당의 정책기조랑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트위터에서 팔로워 많은 순서대로 국회의원 공천 준다는 것은 아닐테고, 뭔가 정권을 잡으면 국정을 운영할 방향이 있을 텐데, 그걸 한번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민주당에서 영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비민주당'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이해가 안갑니다. 민주당 문이 얼마나 헐겁게 열려있습니까? 한나라당에서 홀홀단신 넘어온 손학규가 당대표 합니다. 개혁 공천한다고 공천도 안주던 박지원씨가 살아돌아와서 원내대표 합니다. 충청도랑 전 강원 도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왼팔 오른팔이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기좀 있을때 들어오면, 그 밑에 줄을 설 국회의원도 널렸습니다. (하하하) 그런데도 민주당에 영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지막으로 신당의 문제입니다. 새로 급조된 정당은 좋은 인물을 많이 모을 수 없습니다. 참신하고, 개혁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 대신, 다른 정당에서 공천 한번 못받을 법한 사람들이 바람을 타고 몰려와서 기회를 노립니다. 탄핵정국에서, 창조한국당에서, 국민 참여당에서 이런 모습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정상적인 정당활동을 통해서 지역과 밀착하던 지역 정치인 대신, 이런 정치 낭인들이 단일화 바람을 타고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건 길게봐서 야권 전체의 인력풀의 질을 떨어뜨리고, 추후 선거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나쁜 인상만 남겨주게 되니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을 거부하는 데는 저는 한가지 대답 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호남의 (냄새나는) 지지가 부끄럽다.'


(6) 지역문제

서두에서 말씀드렸듯 저는 수도권 연고자라서 지역 문제에서 자유롭습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디씨 같은데서 '킁킁킁 어디서 홍어냄새가 나는데 무슨 개드립이야.' 이러고 말겠지만.) 그렇지만 호남의 지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정치에 바라는 것 ((2)의 현실을 (3)의 이상쪽으로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가장 강력한 동맹입니다.

이론적으로 지역문제(영호남 출신 지역에 따른 자원의 배분 불균형 문제)와 개혁문제 (이너서클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자원 배분 불균형 문제)는 서로 독립적인 (independent)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두 문제는 서로 깊은 연관관계(correleation)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 영남지역 출신은 이너서클을 이루는 하나의 큰 축입니다. (고-소-영이 괜히 나온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너서클에 몰려있는 자원과 권력을 재분배하는 일은 영남에 몰려있는 자원을 재분배하는 일과 연결되어 집니다.

반대로 호남의 역할은? 호남의 역할은 학교에서의 왕따 학생의 역할, 조선시대 천민(백정, 광대)의 역할, 인도 카스트 제도의 불가촉 천민의 역할과 유사합니다. 계급화된 사회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서 (냄새가 난다던지, 피부색이 다르다던지, 신의 저주를 받았다던지, 남의 뒤통수를 잘 친다던지) 하면서 계급의 맨 밑바닥에 놓고 천대하고 박해하도록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 박해에 동참하면서 자신들이 그 천대받는 계급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만약 그 박해에 참가할 것을 거부할 경우, 자신들도 같은 취급을 받을까봐 무의식적으로 두렵게 생각합니다. ("너도 홍어지?") 이 설정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건 계급의 최상층, 즉 이너서클입니다. 아래층 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을 박해하고 싸우느라, 정작 이 부조리에서 이익을 얻고 있는게 누구인지 생각할 수가 없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호남인들의 제일 야당에 대한 지지는, 이너서클 중심으로 과도하게 돌아가는 사회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저의 정치적인 욕망과 상당부분 일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호남사람들의 지지는 저의 입장에서 봤을때 가장 큰 동맹입니다.

인정합니다. 호남 지역 정치인 중에 순수하게 자기 지역 발전이라는 이기적인 목표를 압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데 그건 어느 지역 (충청도건, 강원도건, 심지어 경상도건) 정치인도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지역 정치인이 그 지역 유권자에게 이루어 져야 하는 의무와도 같습니다. 과도하게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이너서클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정권을 잡기 위해 이런 세력들과는 얼마던지 (계약을 통한)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호남뿐 아니라 충청, 강원출신 정치인과도요. 그리고 이걸 '정치'라고 부릅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상을 세우기 위해 호남은 무조건 적으로 희생하고 뒤로 빠져라, 안그러면 경상도 지역주의와 다를게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계신다면. 만약 호남의 지지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시다면. 그분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현실 인식과 아주 다른 인식을 가지고 계시거나, 아니면 본인들이 또 다른 이너서클이 되고 싶어하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7) 정리 및 마무리

저는 지금의 현실이 이너서클에게 과도하게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경쟁을 강요하는 그런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기조를 가진 정치 세력, 그리고 그 정책기조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정치 세력을 지지하기 때문에, 현재의 제일 야당인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그러므로 저의 지지는 팬덤의 지지가 아닌 소비자의 지지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민주당 보다 (1) 저의 이상적인 목표를 더 잘 이룰 수 있는 정책 기조를 제시하고, (2) 그 정책 기조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능력을 지닌 정치 세력이 있다면 저는 그 세력을 기꺼이 지지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뉴페이스를 바탕으로한 제삼세력도, 아니면 심지어 야권 통합신당도 이 두가지 기준을 놓고 봤을 때, 지금의 민주당 보다 더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현재의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것을 더 약화 시키는 결과만 나올 것 같아서, 그런 움직임에 매우 부정적입니다.

아 물론 이 모든 견해는 개인적인 견해이며,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충분히 존중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자는게 아니라, 아직 견해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의 관점을 좀 공유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에피소드를 하나 떠올리며 마치겠습니다. 한 10년쯤 전에,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의회 다수당 후보의 위세가 아주 막강한 상태였는데, 제2당 후보의 지지율이 낮았습니다. 그래서 일각의 사람들이 제2당의 지지율과 후보의 지지율이 낮아서 안된다며, 지지율이 높던 무소속 제3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했었더랍니다. 천신 만고 끝에 단일화가 이루어 지고, 제2당 후보로의 단일화가 성사되기는 했지만, 그때 단일화를 추진했던 사람들은 엄청난 성토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우리말로 하자면 '후보단일화협의회'라고 했었죠. 지금의 단일화 추진 세력이, 그때 그나라의 단일화 추진 세력보다는 나은 사람들이길 바랍니다.

 


박정희 전두환 이 새-끼들 이렇게 뒤져야 하는데 정치

나미가 정신병자족 때문에

 

여전히 전직 대우받고

 

딸년은 차기운운하고 있지

 

박정희 그새끼는

 

지딸년보다 어린얘 데려다

 

술쳐먹다 무릎에다 머리베고

 

뒤졌다는것 아녀 


호남 차별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역주의


http://media.daum.net/economic/stock/others/view.html?cateid=1006&newsid=20111006150237518&p=tomatotv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영남권 출신이 정부 요직을 최대 48.2%까지 독식해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조영택 민주당 의원은 종합 국정감사에서 9월 현재 정부 주요 요직과 공공기관장 등의 지역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난 2009년 6월 기준으로 226명의 기관장과 감사의 출신지를 분석한 결과, 48.2%인 109명이 영남출신으로으로 집계됐다.

이는 수도권(17.7%, 40명)과 호남권(15.5%, 35명), 충청권(13.7%, 31명)을 합한 수보다도 더 많은 수준이다.

지난 9월5일 기준 역시 영남권 출신이 41.1%로 많았으며, 수도권(25.1%)과 충청권(13.5), 호남권(12.1%)을 압도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이상과 주요 장·차관급, 4대 권력기관 핵심 보직자, 주요 부처 인사 등 핵심 업무를 맡고 있는 고위 공직자 100대 요직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영남권 인사가 36.2%였지만 임기 반환점인 지난해 8월 42.3%로 증가했다. 이후 올 9월에는 43.8%까지 치솟았다.

참여정부 시절 영남과 비슷한 비율을 보였던 호남권의 경우 출범 초 9.6%에서 지난해 8월 14.9%, 올 9월 10.4%에 그쳤다.

조영택 의원은 "지역 차별적인 편중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언한 공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며 "내일을 꿈꾸는 미래 세대에게 노력하려는 의지마저 꺾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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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패권이 문제죠.

영남이 다 쳐먹고 난 나머지를 호남, 수도권, 충청이 나눠먹는 겁니다. 세 지역간에 별 차이도 없죠.

영남패권이 자꾸 호남을 들먹이는 이유는 수도권과 충청에게 허위의식을 주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게 충청, 수도권이 각성해서 호남과 연합전선을 펼치는 거에요.


왜 박원순 안철수 같은 영남 2군에게 휘둘려야 합니까? 걔들 한테 나눠줘 봤자 영남표 안나옵니다.

노무현 정부가 그랬듯이 영남 1군-> 영남 2군으로의 역내 패권 교체밖에 안됩니다. 왜 민주당, 호남이 거기에 불쏘시개가 되어야 합니까?

민주당을 쇄신해야 한다면서 당 바깥에서 흔드는 인간들, 유시민을 시작으로 예외없이 경상도입니다.

그들이 영남 패권을 자기 반성하고 스스로 해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언제나 영남패권 2중대일뿐이에요.

영남표의 확장성을 말하는것 자체가 실은 민주개혁 세력조차도 영남의 휘하에 놓고자 하는 패권 전략입니다.

같은 노력이면 영남에서 얻는게 1이고 충청, 수도권에서 얻는게 4,5는 됩니다. 1밖에 안나오는 곳에 올인하는거 자체가 패권에 낚이는 겁

니다.

영남과 호남의 대립구도를 만들어서 호남에게 양보를 요구하는것, 영남의 지분 확장을 요구하는 것, 죄다 사실은 충청이나 수도권이 각성

하지 못하도록 하는 영남패권의 저열한 음모입니다.

미국에 대해서 정치

흔히들 미국이 소위 말하는 쌍둥이 적자라는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보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지탱하고 있는 것은 세뇨리지 효과라는 기축 통화국으로서의 이점 때문이라고들 한다.
아무리 적자가 난다고 한들 그것만큼의 달러를 찍어 내면 되니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물론 달러 가치의 하락 때문에 무한정 달러를 찍어 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미국이 세뇨리지 효과로 인해 이득을 보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세뇨리지 효과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이 달러를 찍어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달러를 찍어 내는 은행이 미국 정부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달러를 찍어내는 연방준비 은행은 미국 정부의 소유가 아닌 개인 소유의 은행이며,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은행에 해당하는 연방준비은행의 소유권자가 국가가 아닌
사설 금융기관이라 는 것이다. 처음 듣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에 대한 인지가 선행해야 한다.
이것을 모른다면 아예 미국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이사 7명은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으로 임명되지만
말그대로 그건 형식일 뿐이다. 지명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선택의 여지란 거의 없으며,
이사회의 임원은 임기 14년의 거의 평생 직업에 가까운 보장을 받고 있다.
기축 통화 화폐로서의 달 러가 가진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달러에 대한 각종 통화정책과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그야말로 전세계의 초미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그 대표격인 앨런 그린스펀은 실질적인 세계의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은 자본이다. 모든 힘은 자본력에 의해 결정되며

자본의 논리에 의해 세상은 움직인다. 미국이 인류역사상 최고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가진 자본의 힘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가진 자본은 기실 미국의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에 기반을 둔 거대 금융가들의 것이다.
미국에 기반한 그들 거대 금융 자본가 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그 미국을 통해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는 그들 거대 금융자본 세력의 확장의 역사에 불과하다. 미국의 남북전쟁과 수많은 미국내의 정치적 사건들은 대개가 연방준비은행을 국유화 하려는 세력과 저지하는 세력의 싸움이었으며 결과는 언제나 자본세력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미국이 개입한 모든 전쟁의 배후에는 그들 거대자본세력이 있었으며,모든 과정은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어왔다.
오늘날 세계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정치, 경제적 사건에 그들은 개입되어 있고 그 힘을 과시하고 있다. 겉으로는 자유를 내세우고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익 추구를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일뿐, 모든 것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방편에지나지 않는다.
산술적으로 보면 연방준비은행은 달러를 발행한 만큼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달러의 발행 비용을 제한다고 하더라도 그 규모는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다.


흔히들 빌게이츠를 세계 최고의 갑부라고 하지만 빌게이츠는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그들은 빌게이츠의 수십만, 수백만배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자산을 가지고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단체와 아이엠에프와 같은 각종 세계은행을 설립하여 그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고,
막강한 다국적 제약업체와 군수업체, 에너지 석유업체, 농산물 생산업체, 그리고 유수의 언론사 등을 통해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들의 실체에 대해서 그동안 그림자 정부라는 책을 비롯한 각종 프리메이슨 관련 자료에서 수없이 제기 되었지만 대부분 근거없는 음모이론으로 치부되어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난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 내용들을 백프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미국을 구성하는 자본세력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있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이해없이 미국을 논한다거나 국제정치를 이야기 한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내 네오콘에 의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은 그들 거대자본세력이 추진하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힘이 센놈이 약한놈 이기게 마련이며 돈 많은 놈이 돈 없는 놈 이기게 마련이다. 자유라는 명분으로 그들은 약자가 가진 최소한의 방어수단 마저 제거하여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읽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는 이익의 흐름을 따라 바라보는 것이다. 즉 어느놈이 최종적으로 이득을 보느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대부분의 사건의 본질은 드러난다.

[


TK 만이 진골이다. 지역주의


★<추천도서>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 정치

누구를.. 누구를 원망하리오!!

누구의 손꾸락을 짤라야 하는가!!!!!!!!


1부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

2부 대한민국, 홍수 공화국

강에게 더 넓은 공간을 허하라
물바다가 된 서울
4대강 사업이 오히려 홍수를 부른다
잘려나간 나무들의 절규
지천이 무너지고 가라앉다
드디어 시작된 4대강의 저주

3부 대통령은 거짓말쟁이
피라미도 모르면서 강을 살린다고?
철새 낙원? 철새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생명 살리기? 영원히 볼 수 없는 생명들
운하인 4대강을 운하라고 하지 않는 이유
MB정부의 화려한 거짓말 잔치
영주댐 건설은 국가 권력의 횡포
일자리 창출? 노동자들이 죽어간다
물 부족? 수질 개선?
‘많은 물’이 아니라 ‘맑은 물’이 필요하다
악법 중의 악법 친수구역특별법은 무엇인가?
보를 없애면 물고기가 돌아온다
강물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4부 4대강의 미래 한강
청계천의 슬픈 진실
아름다운 한강 어떻게 망가졌나?
투신자살의 명당, 한강
한강은 운하다
누구를 위한 자전거도로인가?
오리는 없고 오리구이 식당만 가득하구나
한강에서 백조의 우아한 날갯짓을 볼 수 있다면
혈세만 잡아먹을 경인운하
밤섬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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