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종족적으로 스키타이와 유사한 것으로 나왔네요. 신라흉노족설이 진실인듯 합니다.
그에 비해 조선은 전통적으로 몽골리안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예맥족의 발원이 몽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2012/05/0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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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0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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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평소 재정부담을 이유로 비판해온 무상복지 시리즈가 물가안정의 일등공신이 됐다.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의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2.6% 오르는 데 그쳤다고 1일 밝혔다. 이는 2010년 8월(2.7%) 이후 19개월 만에 2%대로 떨어진 것이다.
지난달 물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보육시설 이용료다. 보육시설 이용료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33.9%가 떨어져 주요 품목 중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보육시설 이용료의 급감은 바로 지난달부터 실시된 0∼2세 무상보육지원 정책 덕분이다.
지난해 말 국회 예산통과로 인해 정부는 지난달부터 0∼2세 영·유아에 대해 소득에 상관없이 무상보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지원대상을 소득 하위 70%까지로 제한했지만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전 계층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서울시 등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무상급식이 확산되면서 학교급식비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6% 떨어졌고, 유치원 납입금도 11.1%나 감소했다. 사립대 납입금(-3.3%)의 하락도 지난해부터 대학가에서 불붙기 시작한 반값등록금 운동에 따른 여파로 보는 시각이 많다.
통계청 안형준 물가동향과장은 “무상급식, 영·육아 보육비, 유치원 납입금 지원 등 정부 정책 효과가 없었으면 3월 물가상승률은 3.1%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이날 3월 소비자물가 관련 보도자료에서 “보육료, 유치원납입금, 무상급식확대 등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정부정책이 물가안정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 등의 현안이 나올 때마다 재정부담을 이유로 처음에는 반대해오다 야당 주장 및 여론에 의해 떠밀리듯이 무상시리즈를 받아들여왔기 때문에 ‘물가안정은 정부 덕’이라는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한사코 반대하던 정부가 소비자물가가 안정되자 과실만 따먹으려 한다”는 비판의견이 많이 나왔다.
무상시리즈 효과로 물가가 떨어졌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전셋값은 5.7%, 농산물은 9.4% 뛰었고 알뜰주유소 등 다양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휘발유(5.3%)와 경유(6.0%) 등의 가격도 올랐다. 서민들의 체감물가는 여전히 악화된 상태인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 조사결과 일반인의 기대인플레이션은 올해 1∼2월에도 4%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다는 것은 경제 주체들이 앞으로 물가가 계속 상승하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 2012/03/2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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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암셋--숙곳--에담--비하이롯(바다와 믹돌사이, 바알스본 앞)--홍해(빅터호수로 추정)를 건넘-수르 광야쪽 가는길 에담광야 끝부분--마라의 쓴물 사건--엘림(물샘 12 종려나무 70그루)
요기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서 물이 거의 다 떨어지자 마라라는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에 대한 원망과 불평불만을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생존의 문제에 닥치자 원망이 나왔던 것이죠. 베드로도 예수님의 엄청난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했지만 정작 생존과 죽음의 문제가 닥치자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면서 동시에 그 끝에는 항상 축복을 예비해 두신다는 것을 여기 출애굽의 여행경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마라의 쓴물 사건이 있었던 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바로 엘림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엘림에 이미 물샘 12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예비되어 이었던 것이죠.
인생의 험난한 여정에서 고난이 찾아올때 하나님은 그 고난 앞에서 인내하고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예비된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기를 원하시죠. 이스라엘 민족이 조금만 참고 원망을 하지 않았다면 엘림에 도착했을테고 온전하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엘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한 상태였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없었고 그 결과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게 되지 못하면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도 이스라엘 민족처럼 인내하지 못하고 쉽게 불평불만과 원망을 하곤 합니다.
어쩌면 그 원망이 멈추는 시점이 고난과 시련의 시험을 통과하는 때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합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는
삼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p.s 엘림이후의 출애굽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출애굽 경로에서도 영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경로만 적어놓겠습니다.
엘림--신광야[만나와 메추리]--르비딤[아말렉과 전투, 맛사 또는 므리바물사건]--시내산(시내광야)[금송아지사건, 십계명 받음, 성막제작]--다베라[원망과 탐욕]--기브롯 핫다아와[메추라기-탐욕의 무덤]--하세롯[미리암 벌을 받음]--바란광야(가데스바데아)[가난안 정탐, 악평 후 38년간 떠돔, 고라 다단 아비람 반역사건]-욧바다--에시온게벨--친광야(가데스바데아)[40년째 떠돌다 다시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감]--<에돔통과 거절당함>--호르산[아론의 죽음,호르마 점령]--부논--<에돔땅 우회>[녹뱀 사건]--오봇--이예아바림--<모압땅 위회>--아르논강--비스가산--<헤스본의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이 거주하는 요단 강 동쪽 땅 점령>--모압평지[발람 이야기, 신명기낭독]
- 2012/03/2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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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2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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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나무는 성경에 많이 나오는 중요한 식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종려나무로 지칭된 것은 실은 대추야자를 가리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려나무와 대추야자는 식물학적으로는 별개의 식물입니다.(즉 한국어로 번역할때 약간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영어는 palm이 종려나무 야자나무 모두를 가리킴.)
대추야자는 학명을 phoenix dactylifera L.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명은 tamar, 그리스명은 phoinix, 영명은 date palm, 독일명은 Dattelpalme라 하는데, 대추같은 열매가 달리는 야자나무이기 때문에 대추야자라 합니다.
신명기 8장 8절에 가나안 땅의 8대 먹을거리가 나오는데 거기보면 마지막에 꿀도 사실은 이 대추야자를 가리킵니다.
이 대추야자를 말려 견과류로 먹으면 정말 꿀처럼 달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을 떠나 홍해사건을 체험한지 몇일이 지나 물이 떨어집니다. 즉 수르광야를 사흘길로 통과하면서 마라 라는 곳에 이르렀을때 거기 물이 조금 있었는데 그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자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하져.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나서 처음 고난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인생살면서 더이상 못살겠다느니 이런 불평을 할때가 있잖아여. 바로 그런 케이스와도 유사한 경우입니다.
그런다 사실은 거기서 조그만 더 가면 엘림이라는 곳이 준비되어 있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엘림은 열 두 물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과 꿀처럼 단 대추야자 열매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인생의 고난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연단하시기 위한 화롯불과 같은 곳인데 사실은 그 고난을 (불평없이 오히려 감사로) 넘기고 나면 엘림과 같은 축복을 하나님은 예비해 두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마라의 쓴 물은 우리 인생의 십자가 체험이고 엘림의 물과 종려나무는 부활의 체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을 위해 자기를 버려 십자가에서 죽으면서까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다시 부활한 것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종려나무는 영적으로는 승리와 늘 푸른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다음 성경구절등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겔 41:18-20).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아 7:7).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3).]
이렇듯 승리와 늘 푸른 것을 상징하는 종려나무는 동시에 영존하는 승리를 뜻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결과 영광을 지키는 문지기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견디시며, 감당하시며, 지속하시며, 널리 세력을 펴시며, 영존하시는 승리한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소생시키고 살리시는 생명 주는 영(고전 15:45)이십니다.
즉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번성하는 생명을 상징하며 그것들은 또한 생명의 만족, 환난에 대한 승리 안에서의 즐거움을 상징하는 것이죠.
엘림(엘림은 전능자들, 혹은 강한 자들을 의미하는 복수 명사이다.)에 있었던 종려나무들은 난장이 나무들이 아니라 공중으로 높이 치솟은 큰 종려나무들이었을 것이었습니다. 물은 분명히 샘으로부터 아래로 흘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림에는 아래로 흐르는 물과 위로 자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른 다음, 우리 안으로부터 자라나는 부활 생명에 대한 그림입니다. 먼저 부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릅니다. 이 흐름의 결과는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에게는 단물뿐만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바뀌어진 물과 엘림에 있는 열두 샘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흐르는 물을 가지려면 십자가의 체험인 마라로부터 부활의 체험인 엘림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므로써 부활의 승리를 쟁취하시길 바래봅니다.
- 2012/03/1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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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18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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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려나무는 성경에 많이 나오는 중요한 식물 중의 하나다. 그러나 성경에 종려나무로 지칭된 것은 실은 대추야자를 가리킨 것이다.(http://blog.daum.net/mhkyb/527) 그러므로 종려나무와 대추야자는 식물학적으로는 별개의 식물이다. 대추야자는 학명을 phoenix dactylifera L. 이라고 한다. 그리고 히브리명은 tamar, 그리스명은 phoinix, 영명은 date palm, 독일명은 Dattelpalme라 하는데, 대추같은 열매가 달리는 야자나무이기 때문에 대추야자라 한다. 마라를 떠나 엘림에 진을 쳤다. 엘림에는 열 두 샘이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었다(민 33:9).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겔 41:18-20).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아 7:7).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3).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승리와 늘 푸른 것을 상징한다. 이것은 영존하는 승리를 뜻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결과 영광을 지키는 문지기이시다. 그리스도는 견디시며, 감당하시며, 지속하시며, 널리 세력을 펴시며, 영존하시는 승리한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소생시키고 살리시는 생명 주는 영(고전 15:45)이시다.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번성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그것들은 또한 생명의 만족, 환난에 대한 승리 안에서의 즐거움을 상징한다. 엘림(엘림은 전능자들, 혹은 강한 자들을 의미하는 복수 명사이다.)에 있었던 종려나무들은 난장이 나무들이 아니라 공중으로 높이 치솟은 큰 종려나무들이었을 것이다. 물은 분명히 샘으로부터 아래로 흘렀을 것이다. 그러므로 엘림에는 아래로 흐르는 물과 위로 자라는 나무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른 다음, 우리 안으로부터 자라나는 부활 생명에 대한 그림이다. 먼저 부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른다. 이 흐름의 결과는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는 것이다.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에게는 단물뿐만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에게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바뀌어진 물과 엘림에 있는 열두 샘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흐르는 물을 가지려면 십자가의 체험인 마라로부터 부활의 체험인 엘림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담 귀용(Madam Guyon)의 시대로부터 그녀와 동시대(同時代) 사람인 펜 루이스(Penn-Lewis) 여사 시대까지 주님의 백성은 대부분 마라에 있었다. 펜 루이스(Penn-Lewis) 여사의 사역을 통해 십자가의 주관적인 체험이 온전히 회복되었다. 펜 루이스(Penn-Lewis) 여사를 뒤이은 시대에서 주님은 마라에서 엘림으로 나아가셨다. 엘림에서 그분은 열두 샘과 칠십 종려나무가 있는 그분의 농장을 돌보셨다. 그러나 주님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마라를 매우 귀히 여기고 거기에 머물기를 갈망했다. 그들은 십자가에 관한 펜 루이스 여사의 저서들을 뛰어넘어 전진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십자가의 체험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들은 흐르는 샘과 자라는 종려나무에는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그들의 씁쓸함이 십자가의 적용을 통해 얼마나 달콤함으로 바뀌었는지를 간증한다. 마라에서 지체하는 자들에게 치료하는 나무는 있으나 신성한 생명의 풍성과 승리를 표현하기 위한 자라나는 칠십 종려나무는 없다. 마라에는 농장이 없다. 거기에는 오직 베어서 쓴 물에 던지는 한 나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마라에서 엘림으로 전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치료하는 나무에서 자라 번성하는 종려나무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가 마라에서 지체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엘림으로 나아가 거기에서 그분의 군대로 강화되기를 요구하신다. 최근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삼 세기 전의 신비주의에 의해 쓰여진 저서들에 관해 묻는 편지를 받았는데, 특별히 마담 귀용(Madam Guyon)과 로렌스(Lawrence) 형제의 저서들에 관해서였다. 사실상 마담 귀용(Madam Guyon)의 자서전은 마라에서의 체험에 대한 역사이다. '그리스도를 닮음'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삼 세기 전에 마라에서의 체험을 강조했던 자들은 흐르는 열두 샘과 자라는 칠십 종려나무를 많이 강조하지 않았다. 오늘날 주님은 하나님의 농장에 물을 주시어 종려나무들을 자라게 하여 그분의 생명의 풍성과 승리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샘들을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마라에는 농장이 없고 씁쓸함을 달게 바꾸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성장이 없다. 그러나 엘림에서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풍성과 하나님의 행정의 온전한 승리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농장과 종려나무 숲을 누린다. 우리는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바뀐 물 안에서, 그 물에 의해, 그 물과 함께 종려나무들처럼 자라야한다. 그럴 때 그 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과 완전한 승리를 표현하는 흐르는 물이 될 것이다. 종려나무로 만든 격자창 종려나무로 만든 격자창을 보자. 창문은 공기와 햇빛을 들어오게 하고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겔 41:16). 이 창문들은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생명 주는 영은 극히 자유롭고 해방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또한 격자가 있다. 자유가 있지만 또한 창살이 있다. 하늘에 속한 것과 생명에 속한 것과 순수하고 깨끗한 공기는 모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창문에 격자, 곧 창살이 있기 때문에 더럽고 악하고 소극적인 것은 모두 차단될 것이다.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이렇게 역사하신다. 모든 널판에는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다(41:18-20). 그룹은 1장에 언급된 네 생물이며 피조물 위에 표현되신 주님의 영광을 상징한다. 그룹들 사이에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리스도의 영속되고 영존하신 능력을 상징하는 종려나무가 있었다. 1장에서 그룹은 네 얼굴을 가졌으나 벽에 새겨진 그룹은 두 얼굴-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얼굴-뿐이다. 사람의 얼굴은 인성을 상징하고 표현하며 사자의 얼굴은 인성 안의 승리를 나타낸다. 할렐루야! 벽은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진 나무로 덮여 있다. 이들은 나무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니고 새겨진 것이다. 우리는 주님에 의해 새겨져야 한다. 우리는 덮는 널판들이며 주님에 의해 새겨질 필요가 있다. 새겨지는 것은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당신은 어떤 형제 자매를 만날 때 그들에게 주님의 새겨짐이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주님의 영광이 그들 안으로 새겨졌다. 영속되는 능력과 신선함과 영원토록 싱싱한 생명이 그들의 존재 안으로 새겨졌다. 주님의 새겨짐으로 인해 그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모양과 인상을 나타낸다. ![]() 승리하는 생명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마태복음 28장 8 절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이들은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나무 가지들은 종려나무 가지들로서(요 12:13), 승리하는 생명과(계 7:9) 장막절에 의해 예표된 것처럼(레 23:40, 느 8:15) 이 생명의 풍성한 산출을 누리는 만족함을 의미한다. 무리들은 겸비하신 왕의 오심을 축하하기 위해 그들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들을 사용했다. 승리하는 생명을 상징하는 종려나무는 감춰진 샘물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높이 치솟아 자라난다. 이는 승리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그들의 어떠함으로 온유하신 왕을 존귀케 함에 있어서 사람들은 그분이 승리하는 생명이 있는 그런 분임을 인식했다. 7 절과 8절은 이렇게 말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뭇잎을 길에 펴며". '옷'은 사람의 행위에 속한 인간의 미덕을 상징한다. 제자들은 그분이 탈 수 있도록 나귀 위에 그들의 옷을 얹어놓아 노예-구주를 존귀케 했으며, 무리들은 그분이 통과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옷을 길에 폄으로 그분을 존귀케 했다. 나뭇잎(8절)은 종려나무 가지에서 따온 것이었다(요 12:13).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하는 생명과(계 7:9) 초막절 잔치로 예표된 것처럼(레 23:40, 느 8:15) 이 생명의 풍성한 소출을 누린 데서 오는 만족함을 상징한다. 무리들은 자기들의 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사용하여 노예-구주의 오심을 경축했다. 노예-구주는 영광스러운 입성을 하셨으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이것은 주님의 지혜에 따라 발생했다. 그분의 구속 사역을 위한 준비로 그분이 안배하신 첫 번째 일은 이 같은 환영이었다. 이러한 환영에 의해 그분은 사람들의 승인을 받으셨다. 마치 그분은 그들에게서 득표를 하신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분을 지지했으며 그분을 메시야로 인식했다. | ||
- 2012/03/1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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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 2012/03/1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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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9장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말고 내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고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를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외국의 나그네)을 위하야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머거리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매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내 이웃 사랑하가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꼐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꼐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나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으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밭 모퉁이나 포도원의 열매의 일부는 아에 거두지 말라는게 성경의 가르침이네요.
이른바 사회안정망 사상이 이미 성경에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의 나그네 즉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하라는 말씀도 성경에 나오네여.
- 2012/03/1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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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는데, 그는 청지기를 하나 두었다. 이 청지기가 재산을 낭비한다고 하는 고발이 들어와서, 주인이 그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자네를 두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데, 어찌된 일인가? 자네가 맡아 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이제부터 자네는 청지기 일을 볼 수 없네.' 그러자 그 청지기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 날 때에,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이해 줄 사람들을 미리 마련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내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는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어서 앉아서,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가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받아서, 여든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것은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아들보다 더 슬기롭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눅16: 1-9)
-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쓰는데 당신이 뭐요?
돈 많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윤리적 요청을 묵살하기 위한 방편으로 혹은 자신의 부가 정당하며 거리낄 것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요령으로 말입니다.
'부(富)가 나쁜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흔히 나오는 답은, 부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이를 어떻게 벌어서 쓰느냐가 문제다 라는 견해입니다. 혹은 정직하게 번 돈은 나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공정하고 정직하게 부(富)를 축적한다는 것이 어렵기에 한국에서의 부(富)는 문제가 있다는 정도의 입장입니다.
사실 돈이라는 것 자체가 의롭거나 불의하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백 원짜리 동전이나 백 억원짜리 수표나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도덕적인 영역에서 논의 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상업적 거래의 수단으로서 부여된 값어치를 나타낼 뿐입니다. 거래적 가치는 도덕적 가치로 변용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닙니다.
부(富)의 도덕성을 말할 때, 거래가치 측정의 수단인 돈을 연상해서는 곤란합니다. 단지 거래가치 측정의 수단으로서의 돈을 떠올리고는 '부(富)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라는 주장에 쉽게 동조하는 경우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부(富)의 도덕성을 논할 때의 부(富)는 거래 가치 측정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배타적 소유라는 관점에서 거론되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간여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라는 사유재산권의 논리에 부(富)의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시대적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인간은 자신의 손에 돈을 쥐고 운용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돈에 대한 배타적 소유를 꿈꾸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부(富)의 축적이라는 말은 나만이 사용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돈의 양을 늘려간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부(富)라는 개념에는 독점의 욕구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과연 인간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자기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용한 양식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과연 이 지구 상에 있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보다 수십 만 배를 더 소유해도 좋을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고백일까요? 결국 우리의 모든 것이(시간, 능력, 소유)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에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에 말입니다.
한 개인의 부(富)의 축적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부(富)의 포기를 전제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내 부(富)가 늘어난다는 의미는 다른 사람의 몫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한 명의 거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몫을 내놓아야 합니다. 로또 복권에는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富)의 축적 메커니즘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천 원씩 내놓은 것을 몇몇 사람이 독식하는 것입니다. 부(富)를 갖게 되는 과정에 능력이라는 말 대신에 행운이라는 말이 대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富)를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써 벌었다고 생각하는 부(富)조차도 사실은 하나님의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부(富)라는 것은 그 자체로 불의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의 것이라는 배타적 독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운용하는 부(富)는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불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의한 정치기의 불의함은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주인의 재산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의 소용에 따라 주인의 재산을 써버리거나 자기만의 소유를 늘리기 위해 삥땅을 쳤을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님에도 자기의 것인 듯이 사용하였습니다.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유용했던 것입니다.
주인이 그에게서 그가 누리던 것을 빼앗겠다고 하는 순간 그는 생각했습니다.
- 이제 내가 쫓겨난 연후에 무엇을 할꼬, 미리 나를 도와줄 사람 즉 친구를 사귀어 두어야 겠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그들의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이 불우한 처지에 빠진 자신을 박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능력껏 호의를 베풂으로서, 청지기직을 박탈당한 자신이 비빌 언덕을 마련하려는 고도의 전술입니다.
청지기의 행동은 분명 주인의 재산에 손실을 입힌다는 점에서 이전까지 그가 저질렀던 행동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여전히 축내고 있는 청지기를 보고 칭찬하는 주인의 심사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이 중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축내기는 마찬가지이나 이번에는 주인에게 색다른 보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인자하고 어진 사람이라는 평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청지기가 주인의 돈을 임의로 착복함으로써 주인의 재산에 손실을 줄 뿐만 아니라, 바보 같은 주인이라는 소문도 함께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기 아랫사람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주인이라는 평 말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청지기의 행동이 주인에게, 빚을 탕감해주는 어진 사람이라는 평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주인은 청지기를 칭찬함으로써 청지기가 한 일은 바로 주인 자신이 시켜서 한 일일 것이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이 청지기를 정죄했다면 사람들은 주인은 강퍅한 사람이고 청지기는 관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으로서는 청지기를 칭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주인은 재산의 손실보다는 어진 사람으로서의 명성을 더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당시 스스로 빛의 자녀임을 자처하며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폐쇄적인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어둠의 자식들)과 일체의 교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끼리 재산을 모아 자기들끼리만 쓰며 세상과 고립된 삶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만을 기다리며 엄격한 종교 생활로 자신들의 영역을 고수하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富)를 자기들만을 위해 사용하는 그들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부(富)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고 교제하는 세상사람들이 더 현명하다는 것이 예수께서 가지신 관점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富)를 독점하고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나님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원망을 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부(富)를 가지고 자기만을 위해 씀으로써, 하나님의 부(富)를 축냄과 동시에 어질지 못하고 무능한 하나님이라는 평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진정 공평하시고 인자로우시다면, 저들은 저렇게 호의호식하는데 나는 이렇게 배고픔과 질병으로 고통 당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시겠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부(富)의 독점과 풍요로운 소비는 결국 하나님의 재산을 유용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며 단지 우리에게는 그것을 선용하고 관리하는 책임이 맡겨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를 가지고 빚진자들의 어려움을덜어주고 세상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혜로운 종이라 칭하시며 더 큰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http://blog.daum.net/kierkeka/9761079
- 2012/03/16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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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안식일에 고창병 걸린 자를 고쳐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이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각색 병자 중에서 이번에는 고창병에 걸린 자를 고쳐 주셨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갑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고창병이 뭔지도 모릅니다.
고창병은 '수종병(水腫病,dropsy)이라고도 하며,
헬라어는 "휘드로피코스" (물이라는'휘도르'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이 병은 신체의 세포조직이나 각종 강막(腔膜)이 협장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상태를 가리키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얼굴이 부어 오르며 팔과 다리도 크게
부어올라 살갗이 물러지는 증상을 띠게 된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죄인들을 영적 병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창병은 영적으로 어떤 병적인 모습으로 죽어가는
우리를 보여 주는 것일까요?
이것은 물에 의한 병입니다.
이 물이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물이 우리에게 병을 가져와서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물인 말씀을 율법으로 읽고 적용하여 얻게 되는
병을 말합니다.
그 좋은 예가 안식일병입니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죄인들이 예수에 의해 고침을 받고 안식에 도달한 자, 즉 거듭난 생명을
가진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토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법으로 이해하고 행하니,
생명이 되어야 할 말씀이 오히려 죄인들을 수종병에 걸려 죽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바리새인들처럼 안식일에 대한 중대한 인식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생명과도 같은 규례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아주 많은 경우에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문제로 부딪혔던 것입니다. 그만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문제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경 안에서 이렇게 생명과 같이 여기는 법이 왜 없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율법적으로 읽고 간음을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목숨 걸다시피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안식일이 아무 일도 안한다고 해서
새생명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도 간음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새생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명령대로, 그 율법대로 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생명의 말씀에 의해서 새생명을 받지 못하고,
단지 법을 지키고 행위를 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생명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주는 말씀(물)으로 인한 수종병입니다.
결국 고창병(수종병)이란 결국 복음의 말씀을 율법으로 이해하고
행하는 자들의 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죽습니다.
마치 염소새끼가 먹어서 생명을 받을 어미 젖으로,
그 새끼를 삶아서 그 새끼가 죽임을 당하듯이 ...
우리의 고창병, 참 예수를 만나서 고침 받으시기 바랍니다.
- 2012/03/1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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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go to the East Beach. (X)
여름 휴가나 방학 때 많이 찾는 동해안 !
그런데 '동해안'을 영어로 East Beach라고 표기하면 될까?
만일 '동해안'이 여러 해변 중의 하나라면 East Beach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해안'은 여러 해변을 거느리고 있는 길고 넓은 바닷가이기 때문에 East Coast라고 해야 맞는 영어 표현이다. 그러니까 East Coast 내에 Naksan Beach(낙산 해수욕장), Kyungpo Beach(경포대 해수욕장) 등이 있는 것이다.
Beach는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을 가리킨다. 반면 Coast는 단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곳이란 의미로 coast의 일부는 경사가 지고 암석이 많아 beach가 없는 곳도 있다. 즉, coast에는 beach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예로, lake(호수)에도 경우에 따라 beach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lake에 coast는 없다. 왜냐하면 coast는 바다에 접해 있을 때에만 coast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안가와 관련해 shore란 단어도 있는데, shore는 기본적으로 coast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더 광범위한 뜻으로 쓰인다. shore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만이 아니라 호수나 강 등이 육지와 만나는 곳, 즉 물과 육지가 만나는 모든 곳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쓰인다.
- 2012/03/15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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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는 제사제도와 관련된 책입니다.
그리고 레위기에는 1장에서 5대 제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화목제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소제는 우리의 기도와 관련됩니다. 그리고 번제는 상번제라고 해서 매일매일 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헌신된 삶과 연결이 되져.
즉 출애굽기가 우리의 구원과 관계된다면 레위기는 구체적인 삶에서의 성화와 관계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결과 거룩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제사에서도 매우 구체적인 절차를 정해두셨습니다.
안수를 할것인지 여부, 피를 바를것인지 여부, 피를 쏟을 것이지 뿌릴 것인지 여부, 고기의 전체를 태울 것인지 아니면 기름진 부분만 태울 것인지, 어떤 짐승을 제사로 드릴것인지 등등입니다.
나아가 각자의 경제적 형편까지 고려해서 세밀하게 규정을 해 두었지요.
그리고 제사를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은 모세와 아론의 후손인 레위족속들만 할 수 있게 했는데 그들이 제사를 집행하는 과정도 엄격한 절차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집행하는 레위인들중에는 이러한 구체적인 절차를 어겼을 때 자칫하면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경외를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대표적으로 레위기 10장에 보면 아론의 두 아들이었던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다 죽음을 당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10장 후반부에 보면 회막에 들어갈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말로 미루어 볼때 아마도 나답과 아비후가 독주를 마시고 회막안에 들어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지금으로 치면 목사가 술먹고 설교한 것과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아무튼 나답과 나비후는 제사와 관련된 하나님의 율법을 심각하게 어긴 것이죠.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 아론과 나머지 아론의 아들들은 속죄제와 관련하여 평민이나 족장이 드린 제물은 기름만 태우고 나머지 부분은 그것을 버리지 않고 먹어야 했는데 오히려 그 나머지 부분을 먹지 않고 버려버리는 죄를 짓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모세가 아론과 그 나머지 아론의 아들들에게 책망을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론과 다른 아들들의 이러한 율법을 어긴 행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을 까요?
그 이유는 레위기 10장 19절에 나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는데 자신들이 어찌 염치없이 그 속죄제물을 먹을 수 있겠느냐며 반문하는 대목입니다.
즉 아론과 나머지 아들들(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속죄제물을 먹지 않은 이유가 자신들은 그것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그런 그들의 태도때문에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지만 나답과 아비후와 달리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언약적 율법을 주셨듯이 사실 우리에게는 본성적인 율법 즉 양심 나아가 도덕을 주신 목적이 무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인간에게 주신 진짜 목적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도록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론은 비롯 외양상으로는 율법을 어겼지만 자신의 죄인됨을 깨달음으로써 오히려 율법의 목적은 이루었습니다. 그 결과 나답과 아비후와 달리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왜냐하면 율법이 요구하는 진정한 목적과 의도데로 반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보면 안식일날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문제를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따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누가 너의 이웃이냐라고 묻는 질문이 나옵니다.
이 모두가 바로 이런 율법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과 신약은 서로 통하고 있는 것이죠.
동시에 이 부분은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에덴 동산에 두시고 다른 모든 나무의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목적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사실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예수님의 속죄를 예표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완성된 결과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폐지되었던 것이죠. 다만 레위기의 제사제도에서 담긴 그 근본적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예배와 삶에서의 성결이라는 주제에 관련한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 인간이 죄인이라는 뼈저린 인식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통해서 율법을 주신 진정한 목적을 성취하는 삶들이 되시길 바래봅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여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삶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구요.
왜냐하면 예수님이야말로 율법을 완성하신 지혜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프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 2012/03/1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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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대측정방법이 아래 설명하는 데라면 기존의 진화론적 설명은 한마디로 사기라고 밖에.
....................
그러면 하나 궁금해지는 게 있습니다.
종종 뉴스에서 '~천만년', '~억년' 된 생물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보도하는데요.
도대체... 그쯤 되었다고 추정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7천만년 되었다고 단정되어버린 거대개구리에 대한 상상도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219601002
위에서 언급했듯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에는 측정할 만한 동위원소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탄소동위원소 역시 적용 자체가 불가능하죠.

그럼 뭘까요?
이게... 자세히 뜯어보면, 좀 당혹스럽습니다.
어떤 물고기화석을 들고가서 먼저 생물학자에게 연대를 물으면, 생물학자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직접 연대측정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물고기화석이 그랜드캐년 화석 중에 요기 퇴적층에서 나왔는데, 이 퇴적층은 퇴적순서상 고생대 무슨무슨 기(期)에 해당되는 지층이기 때문에, 대략 3억년쯤 전에 형성된 퇴적층입니다. 근데 거기서 이 물고기화석이 나왔으니, 이 물고기는 3억년쯤 전에 출현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 화석을 지질학자에게 가져가서 그 연대를 물으면, 지질학자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직접 연대측정은 못합니다. 하지만 이 퇴적층에서 이 물고기화석이 나왔는데, 이 물고기는 진화의 순서상 고생대 무슨무슨기에 해당되는 시기에 살았을 생명체이기 때문에 이 화석은 3억년 전쯤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근데 그 화석이 이 지층에서 발견되었으니 이 지층은 3억년쯤 전에 퇴적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떤가요? 납득이 되시나요?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저 논리는 '순환논증의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생물학자는 지질학자의 말에 근거를 두고 있고, 그 지질학자는 생물학자의 말에 근거를 두고 있으니까요.
.................
지구는 결코 수십억년이 되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원시수프... 단세포가 진화... 중생대 고생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런 걸 이야기할 만큼의 시간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구가 젊다는 증거 세 번째.
알로사우르스, 아크로캔토사우르스 등 대표적인 공룡들의 뼈 속에서,
탄소동위원소연대측정법으로도 측정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양의 탄소가 남아있다는 겁니다.
수천만년 전에 죽은 동물뼈라면 연대측정 자체가 불가능해야 합니다만,
상당히 디테일하게 16000년, 25000년... 뭐 이렇다는 결과값을 도출할 만큼 넉넉한 탄소동위원소가 발견된다는 겁니다.
- 2012/03/1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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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22과) 1. 레위기(2): 속죄제, 속건제, 제사장 규례(4-7장)
*죄를 용서 받거나 보상하기 위해 제사들 *
우리는 지난 시간에 번제와 소제, 그리고 화목제사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제사들은 죄와 상관없이 평상시에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죄나 실수를 했을 때에 이를 용서받고 보상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가 사람에게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는 "속죄제사"라 불렀고, 과오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에게 해를 입힌 것을 보상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는 "속건제사"(보상제사)라고 불렀습니다. 오늘은 이 두 제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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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는 번제나, 소제(곡식 제사), 그리고 화목제에 대해서는 회중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평범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속죄제('하타-')와 속건제('아샴')에 대해서는 제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두 제사는 모세 이전에는 따로 실시하지 않은 제시였기 때문이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상시에 자원해서 드린 제사였다. 그러나 속죄제와 속건제는 특별히 드려야 할 경우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때때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의 물건이나 남의 물건에 해를 끼칠 때가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이웃과의 관계도 매우 악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결국 우리의 영적 생활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거나, 하나님이나 이웃의 물건에 해를 주었을 경우, 신속하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또 화목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제사 규례를 제정해 주셨다. 그 제가사 바로 속죄 제사와 속건 제사였다."속죄 제사"는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였고, "속건 제사"는 하나님의 물건과 이웃의 물건에 해를 주었을 경우에 그것을 보상하기 위한 보상 제사였다. 1. 같은 점 2. 다른 점 3. 제사 절차상의 차이점 1. 속죄제(4:1-5:13) 1-1. 속죄제의 의미(4:1-2) 속죄제(Sin offering)는 히브리어로 '하타아트'(헬라어로는 '페리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이는 '죄를 위한 제사'라는 뜻이다. '하타아' 또는 '하마르티아'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이 말은 미래형으로 사용되면 '목표를 맞추지 못하거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 헛발을 디디거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성경에서 "죄의 본성"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죄를 지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한 목표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성도들은 "여호와의 금령 중에 하나를 그릇 범했을 때"에 이러한 속죄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그 명령을 어겼다". 이러한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제물을 드려야 했다. 이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는 과정이 바로 "속죄제사"이다. 우리는 속죄제를 다루는 레위기 4장에 "그가 속죄한즉 사함을 얻으리라"는 말이 약 10회나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속죄제의 핵심이 "죄 사함"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이말은 피엘형으로 사용되면 "어떤 것을 잃고 고통을 당하는 것", 또는 "속죄제를 드려 죄 씻음을 받고 자유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속제죄는 죄로 인해 고통에 빠져 있는 성도들을 죄와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한 제사였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제사는 죄를 심판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성도들을 죄와 죄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규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의 속죄제물로 세상에 보내주셨다. 하나님은 길 잃은 양처럼 하나님의 목표에서 떠나 방황하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보내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를 용서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통해서 모든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되었다. 가. 제사장이 드리는 속죄제사(3-12)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음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히 5:1-3) 히브리서 기자는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이 사람 중에서 선택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사장 역시 인간이기에 언제든지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이 죄를 지은 경우에는 그 책임이 일반 회중보다 훨씬 중했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죄는 자신으로 끝나지 않고, 백성 전체에게 "죄얼"(죄의 영향-재앙)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지도자들이 범죄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 사탄은 영적 지도자를 먼저 공격의 목표로 삼는다. 왜냐하면 그는 영적 지도자가 타락하면 그 영향이 전체 회중에게 크게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 제사장 속죄 제사의 절차 2) 안수("..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4) 3) 죽임("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4) 4) 휘장 앞에 피를 뿌림(5-6)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5) 피를 향단 뿔에 바름 7) 번제단 위에 기름을 불사름((8-10) 속죄제의 경우에는 화목제의 제사와 같이 가장 기름지고 귀한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셨다. 8) 나머지는 모두 버림(11-12) 속죄제 제물은 제사 드리는 자의 죄를 담당했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진 바깥에 가져다가 불살라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머리에 가시관, 양팔과 다리엔 못, 허리엔 창, 그리고 온 몸에는 채찍을 맞아 모든 몸으로 형벌을 받으셨다. 그리고 성밖에서 저주받은 몸으로 죽으셨다(히 13:11-13, 9:11-10:18).
<참고> 속죄제와 속건제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이 두 제사는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경우에 드리는 제사"였다.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금한 일을 했거나, 또는 하라고 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이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제사는 결코 고의로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는 아니었다. 하나님은 고의, 또는 계획적으로 지은 범죄(짐짓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처벌하게 하셨다. 속죄 제사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죄는 실수나 연약함으로 지은 죄(그릇 범한 죄)였다. 속죄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죄는 1) 실수나 부지 중에 지은 죄(4:13,22,27,5:18), 2) 부주의로 인해 지은 죄(5: 1,4,15), 그리고 3) 무의식적으로 짓는 죄였다(민 35:11,15, 22, 23).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할 경우에 하나님께 나가 제물을 드려 죄를 속해야 했다.
속죄제는 일반적으로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보편적인 경우에 드렸다. 그러나 속건제(보상제사)는 "1) 여호와의 성물을 드릴 것을 자기가 사용했거나(5:15-19), 2)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손에 넣고 부인하거나 거짓 맹세를 한 경우"에 이를 보상하기 위해 드려졌다(5:20-25). 성경은 이러한 죄를 가리켜 "여호와께 '불신실한'('마알')죄"라고 부르고 있다. '마알'이란 말은 '배반, 불신실, 침범하거나 훔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가. 속죄제는 속죄제물만 드렸지만, 속건제는 속건제물 외에 불법으로 취한 것에 1/5을 더한 배상이 요구되었다.
나. 속죄제는 제물을 드리는 자가 그 제물을 죽이고 직접 불에 태웠다(4:15,24,29,33). 그러나 속건제는 제사장이 대신해서 제물을 잡았으며, 그 제물도 제사장이 먹어야 했다(14:12).
다. 속죄제물은 개인의 경우 암컷을 드렸다(4:28,32). 그러나 속건제사는 제물로 수양이 필요했으며(5;18, 6:6), 훔친 것 외에 1/5에 해당하는 배상을 첨가했다(27:13,15,19,27,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4:1-2)
1-2. 속죄제의 4가지 종류와 그 절차(레 4:3-35)
하나님은 속죄제의 규례를 네 종류, 즉 1) 제사장(3-12), 2) 온 회중(13-21), 3) 족장(22-26), 그리고 4) 평민(27-35)으로 구분해서 제정해 주셨다. 이러한 제사 규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제정된 것이었다.
1) 죄는 누구나 다 범할 수 있다-제사장이나, 이스라엘 회중이나, 족장, 그리고 평범한 백성들 모두 범할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3:23)고 선언하고 있다.
2) 각자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다-하나님은 백성들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여 각자의 상황에 맞는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하나님은 부유한 자들에게는 값비싼 희생을,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값싼 제물을 요구하셨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의 경제적인 여건을 최대한 고려해서 내려진 조치였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3)
* 제사장 속죄 제사의 의미
아마 일반 신자들은 제사장만은 거룩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1) 속죄 제물로 수송아지를 드림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3-4)
범죄한 제사장은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고 와야 했다. 제사장의 속죄제물은 흠 없는 수송아지였다. 이 수 송아지는 죄를 지은 제사장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서 희생될 송아지였다. 제사는 항상 회막 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죄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용서를 구해야 한다.
제사장은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가져간 다음에 그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죽였다. 제물 위에 안수하는 것은 자신을 제물과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하며, 제사 드리는 자의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의 죄가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주님께 전가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제사장은 자신을 대신하여 제물을 죽여야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셨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5-6)
제사장의 죄는 엄중히 취급되었다. 제사장의 속죄를 위한 제사는 다른 제사들과 같이 번제단에 피를 뿌리지 않았다. 제사장의 속죄제사는 제사장이 직접 성소 안에 들어가서 언약궤가 있는 휘장 앞에 속죄를 위해 피를 7번 뿌려야 했다. 이것은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경우 다른 사람이 중개할 수 없고 제사장이 직접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죄를 속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에서는 이 휘장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때에 성전 휘장이 찢어지게 되었다. 제사장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했다.
"제사장은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7)
향단 뿔은 기도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것은 제사장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6) 피를 번제단 밑에 쏟음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 단 밑에 쏟을 것이며..."(7)
그 제물의 나머지 모든 피는 회막 문 앞에 있는 번제단 밑에 부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신 후에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서 물과 피를 모두 흘리셨다.
"또 그 속죄 제물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취할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화목제 희생의 소에게서 취함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8-10)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사를지니라."(11-12)
나. 회중이 드리는 속죄제사(13-21)
이스라엘 온 회중 전체가 실수로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를 범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이 경우 온 회중이 그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후에 그 죄를 깨닫게 되면, 그들은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다. 이때에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로 드렸으며,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제물에 안수하고, 그 후에 그 소를 속죄 제물로 드렸다. 우리는 때로 교회나 민족 전체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전에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것도 이러한 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뛰어 놀던 경우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회중의 속죄 제사는 백성의 지도자인 장로들이 백성들을 대표해서 제물에 안수했으며, 그 제물을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렸다. 이러한 제사 절차는 제사장의 속죄제사의 경우와 동일했다.
다. 족장의 속죄제(22-26)
족장들도 여호와의 금령을 부지중에 범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로 인해 허물을 가지고 있다가, 후에 그 죄를 깨닫게 되면 여호와께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다. 여기에서 "족장"은 정치적 지도자를 의미한다. 우리는 정치적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족장들이 죄를 짓게 된 경우에는 수송아지 대신 흠 없는 수 염소가 제물로 드려졌다. 그러나 족장의 속죄제는 제사장이나 회중의 제사처럼 제물의 죄를 휘장 앞이나 향단에 뿌리지 않고, 번제단 뿔에 발랐으며, 그리고 남은 피는 모두 번제단 밑에 뿌려야했다. 그 외의 나머지 제사 절차는 모두 제사장이나 회중의 속죄 제사와 같았다. 우리는 이러한 제사 규례를 통해서 족장의 속죄제사가 제사장이나 회중의 죄보다는 가볍지만, 개인보다는 엄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이 범죄할 가능성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딤전 2:1-2).
라. 평민의 속죄제(27-35)
평민의 경우에는 흠 없는 암염소, 또는 어린 암양을 속죄제물로 드렸다. 그리고 나머지 절차는 모두 족장의 경우와 같았다. 일반적으로 통치자는 수컷을 제물로 드렸고, 평민들은 암컷을 드렸다. 이것은 당시의 문화를 따라 수컷은 지도자를, 암컷은 평민을 상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 "특별히 언급된 속죄제(속건제)의 경우">(레 5:1-4)
1. 법정에서 피고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때에, 그가 죄를 지은 사실을 알고도 말을 하지 않은 경우. 재판관이 피고의 증언에 대한 사실여부를 묻고 사실을 아는 자는 증인으로 나서 달라고 요청 할 때에 증인으로 나서지 않은 경우. 그는 고의적으로 재판관이 잘못 판결을 내리게 만든 죄의 책임을 져야 했다(5:1).
2.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모든 부정한 것(곤충, 짐승, 가축, 또는 사람의 시체 등)과 접촉하여 부정케 되었다가 후에 그것을 깨닫게 된 경우(5:2-3).
3. 지킬 의사도 없이 빈말로 맹세하여 선이든 악이든 하겠다고 한 경우. 맹세한 자는 무심중에 경솔하게 맹세하였기 때문에 죄의 책임을 져야만 했다(5:4,5-6).
이러한 경우에 죄를 범한 자는...
1) 스스로 그가 범한 과실을 자복하고(5)
2) 어린 암 양, 또는 염소로 속죄제를 드려야 했으며,
3) 제사장이 그의 허물을 위하여 그가 드린 제물로 속죄 제사를 드려 속죄해야 했다(6).
마.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속죄제(5:7-13)
* 비둘기를 드리는 경우(7-10)
만일 어린양을 드릴 힘이 되지 않으면,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중에서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속죄제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드렸다. 제사장은 속죄제를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않은 채로 그 속죄제물의 피를 단 곁에 뿌렸으며, 그 뿌리고 남은 피는 단 밑에 흘렸다. 그리고 번제로 드리는 것은 번제의 규례와 같았다.
* 곡식을 드리는 경우(11-13)
만일 비둘기도 드릴 힘이 없을 경우에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속죄 제물로 제사장에게 가져갔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중에서 한 웅큼을 집어서 단 위에 불살라 그를 위하여 속죄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남은 가루는 소제의 경우와 같이 그를 위해 제사를 드린 제사장의 소유가 되었다. 이때에 소제와 달랐던 점은 속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기름이나 유향을 놓지 못하게 한 점이다.
<참고: "속죄 제물의 처리">(레 6:24-30)-죄를 담당하는 제사장-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물 희생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레 6:25-26)
"무릇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느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제사장과 회중의 속죄제물-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레 6:27-30)
이것은 속죄 제사를 드린 제사장이 그 백성의 죄를 담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사를 대신 드린 제사장은 그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 지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할 때에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시고 우리의 죄가 용서받도록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요일 1:8, 2:1 참조).
+-족장(수염소) +-평민(어린 암양, 암염소) +-가난한 자 2. 속죄 제사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한 제사가 아니라,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다. 3. 제물이 번제와 같이 모두 단에 불살라지지 않고, 기름을 제외한 모든 제물이 저주 받 4.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으로 인해 부지중에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다. 1.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거나 부주의함으로 짓는 죄를 덮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의적이나 습관적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벌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공의를 이루기 위해 행하시는 당연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가 고의로 지은 모든 죄까지도 덮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고의로 죄를 범할 때 징계하심으로 그들을 바로 잡아 주신다. 2. 자신의 말에 무책임하거나 세속적인 부정에 접촉한 자들은 허물이 있다. 법정에서 위증죄를 범하거나 세속의 삶에서 부정한 것과 접촉하거나, 경솔한 맹세를 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삼가 조심하여 행동해야 한다. 3. 모든 범과들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죄를 지을 때에 하나님께 자백하지 않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고 사단의 정죄에 의해 죄책과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범했을 경우에 반드시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기의 모든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인 하나라도 멸망치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4. 우리는 죄를 짓고 회막문 앞으로 속죄 제사를 드리러 나온 사람을 통해 "죄를 지은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길을 떠나 죄를 지었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생명과 축복을 상실하고, 죄책과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롬 1:18-23, 3:9-18, 5:12, 6:23). 그러나 죄인된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그 죄의 값을 요구하실 때에, 그 값을 능히 지불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속죄제물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서만 우리가 지은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할 수가 있다. 5. "누군가 희생되어야 누군가 살아날 수 있다" 인간의 죄의 값은 사망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야만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일생을 흠 없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 일생 동안 모든 시험을 이기며 의를 지키셨다. 죄가 없는 것은 흠 없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운 삶을 사신 후에 흠 없는 제물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다. 주님께서는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다(롬 5:15, 벧전 1:18-19).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레 17:11). 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회막 앞과 같은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제물로 드려졌다. 그리고 속죄제물이 밖에서 불살라지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고 성문밖에 있는 골고다로 나아가셔서 자기의 모든 몸을 나무에 매달아 저주받은 몸이 되셨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한 속죄제사를 단번에 드리시고, 하늘 성소에서 들어가셨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이 되셔서 모든 죄인을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히 9:11-15, 23-27).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13:11-13, 9:11-10:18)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 "다 이루었다 !"(요 19:30) 7. 주님께서는 성직자와, 부자, 그리고 가난한 자 모두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되셨다. 이것은 속죄제물이 신분에 따라 다른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모든 연령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희생되셨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주님께 나아오는 자를 거절하시는 법이 없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사53:4-6) 2. 속건제(5:14-6:7)-배상 제사- 속건제(또는 '면제죄')는 고의적이든지 비고의적이든지 남에게 상해나 손실을 입혔을 때에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속건'(trespass)이란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금지된 곳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이 제사는 1) 하나님께서 정한 윤리적 규례들을 어기거나, 2) 자기 의무에 태만히 하여 남에게 해를 입힌 경우, 또는 3)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고 부정케 되었을 경우에 드려졌다. 하나님은 이러한 경우에 그 죄를 속하고 남에게 입힌 손해를 배상하고, 자신을 정결하케 하기 위해서 속건제를 드리도록 명하셨다(레 5:14-6:3). 속건제의 규례는 손해를 끼친 것의 1+1/5를 배상하도록 되어있었다. 이러한 규례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부정하게 되었을 때에는 정결하기를 원하시며, 남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배상을 요구하신다. 이 제사는 손해를 입은 사람과 손해를 입힌 사람이 모두 거룩과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드린 제사였다. 가. 성물을 범했을 때 (14-16)-성물에 대한 의무 불이행- 여호와의 성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즉 화목제물, 거룩한 예물들, 제물들, 가축의 첫 태생, 땅의 첫 소산, 십일조 등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서 성별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물건을 취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그것을 취하거나,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았다가 그것이 생각나면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물을 범하는 경우에 그것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책망하신다(수 7:1-아간의 경우, 말 3:7-12-십일조 헌물을 범한 경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에 대하여 엄중하게 처벌하신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 나.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경우였으며, 그 외에는 모두 속죄제사를 드렸다. 다. 속건제는 위와 같은 범죄가 있을 때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해결하기 위한 규례였다. 이 제사 규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속죄 원리가 나타난다. @. 잘못이 있을 때는 자백하고 인정하라. 예 1) 삭개오의 회개와 보상은 이러한 속건제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 예 2) 주님의 다음과 같은 명령은 속건 제사의 정신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을 위한 속건 제물로 삼아주셨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9)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 제사장들이 준수해야 할 제사 규례들(6:8-7장) * * 제사장은 제단 위의 불이 항상 타오르게 해야 한다. * 제사장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의복을 입고서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한다. * 제사장들은 아침마다 재를 버리고 항상 제단의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 제사장은 백성들의 소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만 한다. * 이 소제물에는 누룩이나 꿀을 넣는 것이 금지되었다. *-제사장들은 속죄 예식이 속되게 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죄를 속해주셨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21과) 4. 레위기(1): 번제, 소제, 화목제(1-3장) 1. 번제(burnt offering: 태워드리는 희생제사)(1:3-17). 1-1. 번제에 사용된 제물들(3-9)-양,염소(가축), 비둘기(새)(3--17) * 제사 드리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함 *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짐승: *우리가 쉽게 드릴 수 있는 것 가) 소를 드리는 경우(1:3-9)-부유한 자가 드리는 헌신- * 드림(3) * 안수(스미하)(4) * 죽임(슈히타)(5) "피 흘림이 없은 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 * 피뿌림(체리카)(6) * 각을 뜸(6)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고기를 번제단에 올림(하크타라)(7-8) *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어 태움(9) * "제사장이 재를 버리는 법"(6:10-11) * 선택(14) * 제사장에게 비둘기를 갖다 줌 * 단으로 가져감(15) * 머리를 비틈(15) * 피를 흘림(15) * 더러운 것을 제함(15) * 몸을 찢어서 단 위에 불사름(17) 1-3. 번제의 의의 2-1. 소제의 의미(피 없는 곡식제사) * 참고: "단독으로 드려진 소제"(단독제사) * 참고: "제사와 예물"(제바와 민하) 번제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제사라면, 소제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와 헌신이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소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헌신의 표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 중에서 첫 열매와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심으로써,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셨다. 1. 고운 가루(밀가루, 보리 가루)(2:1-3) 보리가루는 "오메르", "민하스 소타"의 두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보리를 추수하여 부드러운 갈대나 나무뿌리 같은 것으로 살살 두드려서 제 1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나서 구멍이 뚫린 철판에 놓고 볶은 후에 물에 넣고 불린 후에, 맷돌에 넣고 껍질 채 갈아서 다시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또 다시 채로 쳐서 소제에 쓰는 고운 보리 가루를 만들었다. * 참고: "거친 보리 가루를 드린 경우" 2) 2단계 3) 3단계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의 사역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으심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합당한 제물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성령충만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열납할 수 있는 제물이 될 수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행10:38)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1요 2:27)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라."(민18장19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대하13:5)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만일 소금 이 그 맛을 잃으면..." 2. 꿀(12)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잠 5:3)...."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누룩과 꿀)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12) * 참고: "제사장의 소제"(레 6:19-23) 나. 소제는 피와 생명이 없이 곡식가루와 기름과 유향과 소금으로 드리는 제사였다. 다. 소제는 번제같이 완전히 제단에 불사르지 않고, 기념되는 부분만 드려졌다. 그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돌려졌다. 라) 소제는 하나님께 드려졌다(레 2:1). * 참고: "유월절 안식일에 드리는 첫 곡식과, 오순절에 드리는 첫 곡식" * 참고: "소제물의 분배" 가. 초대 교회의 성도들-영적 열매를 맺는 삶- 나. 믿음과 봉사 다. 적은 형제에게 한 사랑(작은 사랑) 3. 화목제(3:1-17) 3-1. 화목제의 의미 가. 제물의 종류(1,6,7,12)-소, 양, 어린 양, 염소. * 안수하고 죽임("그 머리의 예물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3) * 피 뿌림("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요...")(3) * 화목 제물로 드릴 것을 취함(3-4) 이것은 동물의 내부에서 취할 수 있는 기름의 전부로써, 간단히 '모든 기름', '기름', 또는 '기름부분'이라고 불렀다. 화목제에서 특별히 여호와께 드려진 것은 바로 이 기름이었는데(16,17), 기름은 에너지의 근원으로서 짐승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을 상징하였다. 기름과 함께 드린 피는 제물의 생명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피가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은 제물의 생명이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의 생명을 상징하는 피와, 그 제물에서 가장 귀한 부분을 상징하는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지시하셨다.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진 기름은 거룩하기 때문에 이것을 먹는 자는 죽임을 당하였다(레 7:25).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생명과 가장 귀한 것을 드려 헌신하시기를 원하신다. * 제물을 단 위에 불사름(5) * 참고: "화목 제물의 분배" 2. 제사장의 몫-(7:28-34)-가슴과 우편 뒷다리 3. 드리는 자의 몫-"나머지 모두" 가. 제물의 특성 나.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는 제사 다. 화목제사를 드리는 경우: 감사제사, 특별한 서원제사, 자원 제사 라. 예수님은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셨다. "저는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1요 2:2)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1요 4:10)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롬 3;25) 가. 전도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나. 용서하는 삶 다. 화목을 추구함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롬12:18) 라. 찬양 마. 선행과 구제 바. 화목제는 궁극적으로 거룩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즐기는 "천국의 만찬'을 나타낸다. 그것은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과의 평화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만찬이 될 것이다.(계 20:)
1-3. 속죄제의 특징
1. 제사의 규례가 대상과 재력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제사장과 회중(수송아지)
속죄의 피를 성소 안에 들어가서, 휘장 앞 향단에 바르고 나머지 피를 번제단 밑에 쏟음.
속죄의 피를 번제 단에만 바르고 나머지는 번제단 밑에 쏟음.
제사의 규례는 족장의 경우와 같음.
1)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드리는 경우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속죄제, 하나는 번제로 드림.
기름을 드리거나, 몸을 진 바깥에 버린다는 언급이 없다.
2) 고운가루 에바1/10을 드리는 경우
기름이나 유향을 놓지않고, 제사장이 한 웅큼을 집어 단에 태워 속죄제를 드렸으며,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었다.
은 것으로 간주되어 진 바깥에서 불살라졌다.
1-4. 적용: "속죄제를 통해 본 영적인 교훈"
2-1. 속건제의 의미
속건제(trespass offering)는 히브리어로 '아샴'이라고 하는데, 이는 율법이나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행한 범죄(guilt)나 범법행위(transgress=법률을 범함), 또는 남의 것을 범해서 입힌 손해(damage)를 용서받고 배상하기 위한 제사이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죄 제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속건제는 하나님과 이웃에게 입힌 손해를 속죄하고 보상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보상 제사"라고 부른다.
2-2. 속건제를 드리는 경우 (5:14-6:7)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잘못하여 범과 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15)
나. 부지중에 범한 죄에 대한 속건제(17-19)-속죄제와 동일함-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지중에 여호와께서 금하신 명령 중에 하나를 범하게 되면 그는 속건제 또는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는 율법에서 지정한 가치에 따라 수양을 속건 제물로 드린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위해 속건 제사를 드린다. 그러면 이 모든 절차가 마친 후에 그의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다. 하나님께 신실치 못하여 남에게 해를 입힌 경우(6:1-7)
* 남의 물건을 맡거나 또는 전당을 잡힌 경우, 남의 물건을 강도질했거나, 늑봉 하고도(강제로 부당하게 빼앗음) 사실을 부인한 경우(2)
* 폭력으로 남의 물건을 취한 경우/ 잃어버린 물건, 거짓 맹세(3)
이 경우에는 물건의 임자에게 빼앗은 것이나, 강제로 빼앗은 것이나, 저당 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거짓 맹세한 물건에 1/5을 더하여 돌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가서 율법이 지정한 가치에 합당한 수양을 가지고 속건제를 드려서 허물을 속해야 한다.(6-7)
2-3. 속건제의 절차 (5: 5,6,15-18, 6:4-7)
가. 범죄한 사실을 제사장 앞에서 자복 한다(5:5).-자백-
나. 피해를 입힌 경우는 피해 입은 사람에게 1/5을 더하여 돌려준다. 성물의 경우는 제사장 에게 드려졌다.
다. 성소의 세겔로 값에 맞는 흠 없는 수양을 회막 앞으로 끌고 가서 속건 제물로 드린다. 라. 제사장이 속건 제물로 그의 죄를 속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5:16).
2-4. 속건제의 영적인 의미
가. 속건제는 성도가 신앙 생활 가운데에서 범한 죄나, 자기 의무를 태만히 해서 남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에 드리는 사죄와 보상에 대한 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범죄는 (히 6:1-,10:26-31)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용서받지 못할 죄"는 아니다(성경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하나님이나 진리를 배반"하거나, 성령을 거스리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죄는 실수와 부족함으로 인해 범죄하거나, 의무 태만, 경솔한 행동, 그리고 부정케 된 경우를 말한다.
* 첫째-하나님의 성물을 범했을 때
신앙에 약하고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한 성도들이 범하기 쉬운 죄.
* 둘째- 하나님의 법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지키지 않은 경우(속죄제와 동일함)
* 셋째-이웃에게 악 행하거나 물질에 손해를 준 경우
-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음/ 분실물 습득/ 저당물/ 거짓맹세로 남에게 해를 입힌 경우
* 넷째-시체로 인해 몸이 부정케 된 경우
- 하나님의 소유가 된 우리 몸이 죄로 인해 부정케 된 경우.
@.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
@ 번제는 계속해서 드리지만 속건제는 한 번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하나님의 직무를 맡은 사람은 예배자들이 진실로 회개할 때 용서를 통해서 그들이 회복 되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 하나님의 직무자는 그들로부터 영적인 분깃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 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 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 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들까 염려하라."(마5:21-22)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생명을 통해 우리의 지은 과오와 허물보다도 훨씬 많은 대가를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와 죄책을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그 동안 생각해 본 (레 1:1-6:7)의 내용은 회중, 즉 일반 평민의 입장에서 준수해야 할 제사의 규례였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언제, 어떤 제물을 가지고,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제사를 드리는 평민의 규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이 알아야 할 규례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평민의 입장에서 5대 제사 규례를 말씀해 주신 후에 다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알아야 할 5대 제사 규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이러한 점에서 (레 6:8-7장)은 "제사장의 입장"에서 알아야 할 "5대 제사 규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은 제사장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제사를 준비하고, 집례하며, 또한 제사를 드린 후에 어떻게 제물을 처리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예배 인도자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그 사후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설명한 규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부분을 통해서 성도들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이 제단에서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 지에 대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1. 번제의 규례(6:8-13)
+-번제물은 단 위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 위의 불은 항상 꺼지지 않게 한다(9).
+-제사장은 긴 세마포 옷으로 하체를 가리고, 단 위에서 번제의 재를 거두어 단 곁에 두었다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진 바깥에 있는 정결한 곳에 버린다(10-11).
+-제단에는 항상 제사장의 예복을 입어야만 접근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재를 버리기 위해 서 진 밖으로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일반 복장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아침에 나무를 놓고 번제물과 화목제물의 기름을 그 위에 태운다(12-13).
제사장들은 언제든지 회중들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수 있도록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 것은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것이었으며, 제사장들은 반드시 이 불로만 제물을 태워야 했다. 이 불은 오늘날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을 상징한다. 성령께서는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믿는 순간부터 그들 안에 거하신다. 성도들은 인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으며, 단지 성령과 진리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참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성령에 의해서만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 예배 집례자는 항상 이것을 기억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제사장 의복을 입지 않고 제사를 집례하면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직분에 맞는 의복을 제사장들에게 주셨다. 이것은 제사장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제사를 인도하는 일 자체가 거룩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인도자가 그 직분에 합당한 영광을 나타날 수 있기를 원하신다. 그들이 단 위에 태운 재를 버리러 진 밖으로 나갈 때에는 그 예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 재는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사장의 의복은 부정하게 취급될 수 없었다.
예배 인도자는 예배드리는 장소가 항상 정결하도록 유지해야 한다. 제단을 더럽히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 예배 인도자는 항상 예배가 정결케 되도록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청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소제의 규례(14-23)
+-소제물은 제단 앞(여호와 앞)에 드린다(14-). 모든 소제물은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한다.
+-고운 기름과 가루 한 웅큼, 그리고 그 위에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라 여호 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한다(15-).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않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었다 (16-). 이 제물은 거룩하게 취급되었으며 이 제물에 접촉하는 자도 거룩하게 되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장소와 방법을 따라서만 제물을 드려야 한다. 제사장들은 성도들의 감사 예물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도록 중보하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
소제물에는 고운 기름, 고운 가루, 유향 등이 첨가되었다. 제사장은 소제물 중에서 기념되는 부분만 제단에 불사르고, 그 나머지는 회막 뜰에서 먹어서 그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게 해야 한다. 제사장이 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아서 드신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 온유한 인격(고운 가루)과, 성령의 힘(기름), 기도의 자세(유향), 그리고 변함 없는 믿음을(소금) 가지고 나아와야 한다. 이 소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서 아론 자손의 제사장 중에 남자들만 먹을 수 있었다.
예배 인도자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거룩한 삶을 살도록 죄나 외식(누룩), 그리고 쾌락을 추구(꿀)하지 않도록 인도해야 한다.
<참고: "제사장의 소제"> (19-23)
아론과 그 자손들은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한 직분을 담당하는 날에 하나님께 소제를 드렸다. 이 소제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기름으로 반죽하여 번철에 구워서, 기름에 적시었다가, 썰어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도록 태워서 드렸다. 이 제사는 그 이후 매일 아침과 저녁에 두 차례씩 드려졌다(19-21). 이러한 제사장이 드리는 소제물은 모두 다 제단에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졌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제사는 중보자 없이 하나님께서 바로 받으신다는 것을 상징한다.(22-23). 예배를 인도할 사람들은 예배자를 인도하기 전에 항상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서 바르게 헌신이 되어 있어야 한다.
3. 속죄제의 규례(24-30)
+-속죄제의 희생은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았다(25-).
+-제물은 그것을 드린 제사장이 거룩한 회막 뜰 안에서 먹되, 제사장의 남자들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죄를 위해 드려진 속죄물은 모두 다 태워야 했다(26,29,30).
+-속죄 제물은 매우 거룩하게 취급되었다. 누구든지 이 고기에 접촉되는 자는 거룩하게 취 급 되었으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그 옷을 거룩한 곳에서 빨았다. 그리고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물이 토기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깨뜨려야 했고, 만일 도자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로 씻어야 했다.
*-제사장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가 그들이 죄를 용서받도록 봉사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성도들이 드리는 회개의 제사를 하나님께 열납되게 하고, 그 제물을 정한 곳에 먹어서 완성시켰다. 예배 인도자들은 백성들이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중보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예배 인도자들의 죄는 하나님께서 친히 용서하신다.
제사장은 제물의 피가 닿은 옷을 정결케 해야 하며, 재물을 삶은 토기는 깨뜨리고, 청동 그릇은 물로 닦아야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속죄 행위가 속되게 되는 일들을 방지하는 것이다. 예배 인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성도들의 회개와 속죄 행동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4. 속건제의 규례(7:1-10)
+-속건제는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취급되었다.(1-)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속건제의 희생을 잡았으며,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렸다(2-).
+-그 모든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화제로 드렸다(기름진 꼬리, 내장에 덮인 기름, 두 콩 팥, 허리 근방에 있는 기름, 간에 덮인 꺼풀, 콩팥)(3-5)
+-제사장의 남자들이 그 고기를 먹었다. 제사장 소유-번제(가죽), 소제물(공평히 분 배)(6-10)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속죄하게 한 후에, 그들이 하나님의 성물과 이웃에게 입힌 피해를 보상하게 함으로 공의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회개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에게 돌려졌다
번제는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는 제사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헌신할 때에 제사 드리는 사람을 대신하여 짐승을 제물로 드리게 하셨다. 이러한 제물은 모두 사람들과 가깝고, 사랑 받으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온순하고, 길들여진 것이었다. 이 제물은 온전하고 흠 없는 최상의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제물들을 지정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소: 족장, 부자들의 제물
- 양, 염소: 일반인
- 비둘기: 가난한 사람
소는 힘있고 강한 것으로 세력있고 재물이 많은 사람이 드리기 적당했고, 양이나 염소는 일반인들이 드리기에 적합했다. 그리고 연약하고 값싼 비둘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기에 적합했다. 이는 빈부의 차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물은 죄인을 위해 희생당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러한 제물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들이다. 소는 강함과 근면 봉사 희생을, 양과 염소는 양순과 순종을, 비둘기는 온유와 순결을 상징함.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지시하셨다.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흠이 없는 것이 우리의 제물이 될 수가 있다.
1-2. 번제를 드리는 순서
* 선택(3)
소의 제물은 흠 없는 수컷을 선택했다. 제물은 흠 없는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제물은 그 제사를 드리는 자를 대신하는 것으로 가장 최상의 것을 드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리도 하나님께 헌신할 때, 우리의 가장 귀한 때에,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한다. 온전한 제물만이 제사 드리는 자의 죄를 속할 수 있었다. 이 제물은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회막문 앞에서 여호와께 열납 하시도록 드림. 제사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대로 드려야 했다.
번제단 북쪽에서 제사 드릴 사람은 동물의 머리를 서쪽(법궤 쪽)으로 향하고, 동물의 뒤에 서서 동물의 머리 두 뿔 사이에 두 손으로 힘껏 안수하고 죄의 고백을 한다. 그리하면 그를 위해 속죄가 되게 되었다. 제사 드리는 자가 제물에 안수를 하게되면, 그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된다. 이 제물은 제사 드리는 사람의 죄를 덮는 역할을 하였다.
제사 드리는 사람은 제단에서(1:11), 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소의 오른쪽 앞다리와 뒷다리를 함께 매고, 그리고 왼쪽 앞다리와 뒷다리를 함께 매고(전설에 의하면 한번도 제물이 반항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소의 목을 찌른다. 이와 같이 제물이 사람 대신 피를 흘림으로써 제사 드리는 자를 대신하여 희생이 되었다. 이것은 동물이 희생됨으로 인간의 죄가 속함을 받게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군가 희생이 되어야 누군가 살아 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심으로 인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속죄의 완전성. "피를 단 사면에 뿌림". 이것은 제물의 생명이 제단에 드려진 것을 의미하며, 짐승이 제사 드리는 자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제사 드리는 사람은 그 다음에 그 짐승의 가죽을 벗겼다. 그리고 이렇게 벗긴 가죽은 불로 태우지 않고 제사장의 소유가 되었다(레7:8,고전9:13). 가죽을 벗기지 않으면 제물이 불이 붙기 어려우며 또한 역겨운 냄새를 낼 것이다. 가죽을 벗기는 것은 외식이나 형식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식과 형식적인 헌신은 하나님께 가증한 헌신이 된다. 그리고 나서 제물의 각을 뜬다. 각을 뜨는 순서는 먼저 머리를 자르고, 가슴→오른쪽 옆구리→엉덩이→네 다리→목→기관지→심장→왼쪽 옆구리→내장의 순으로 잘라낸다. 모든 부분을 각을 떠서 하나님께 드리는 순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할 때에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머리는 우리의 생각을, 내장은 우리의 마음과 정서를, 다리는 우리의 행위를, 기름은 우리의 에너지와 힘을 상징한다. 이 모든 것을 제단에 다 태워 드리는 것은 우리가 헌신할 때에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후에 제사장들은 그 각뜬 것들을 제단의 불에 올려놓고 태웠다. 번제는 제사 드리는 자가 자신의 생명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이 제사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내장에 붙은 온갖 더러운 이 물질들과, 매일 걸어다니면서 흙이 뭍은 네 다리의 아래 부분은, 깨끗이 씻어야 단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의 죄의 동기와 생각들, 그리고 매일의 생활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까지 깨끗이 씻어야,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번제를 드리고 탄 재는 제사장이 옷을 갈아 입고, 진 바깥의 재 버리는 곳에 버렸다.
나) 양이나 염소를 드리는 경우(1:10-13)-평민이 드리는 헌신-
양은 순종의 짐승으로서 성경에서 연약한 죄인을 상징하기도 하며, 때로는 속죄양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사야는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사 53:6)고 하였다. 여기에서 양은 죄인 된 인류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양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우리는 창세기 22장에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대신한 수양을 발견한다. 그리고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을 죽음의 사자에게서 구하기 위한 유월절 양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양은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한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성경에서 제물인 경우에 양과 염소를 같은 것으로 취급한 것으로 보인다. 양이나 염소로 드리는 번제의 절차는 수송아지로 드리는 번제의 경우와 같으며, 안수하는 절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생략되었다. 그리고 제물을 잡을 때 단의 북편에서 잡도록 지시되어 있는 것만이 달랐다.
다) 비둘기를 드리는 경우(레 1:14-17)-가난한 자가 드리는 헌신-
이 번제는 주로 가난한 자들에 의해 드려졌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도 제물을 준비해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빈부의 차이를 구별하지 아니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유한 자들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도 번제물도 되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누구보다 가난하게 사셨으며, 따라서 가난한 자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신다. 우리는 이와 같이 다양한 제물들의 모습들을 통해서 각자의 형편에 맞게 나타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부유한 자나, 중산층이나, 빈민층의 어느 누구에게라도 친근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사실 성경에서 비둘기는 순결 외에도 슬픔을 상징하는 데에 사용되었다(사 59:11, 38:14 참고). 많은 슬픔과 고난을 당하는 빈민들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질고와 고난을 당하셨다. 비둘기를 드리는 제사의 경우는 다른 짐승을 드릴 때와 몇 가지 점에 있어서 달랐다. 다른 짐승은 제사 드리는 자가 직접 잡게 되어 있으나, 비둘기만은 제사장이 직접 잡았고(머리를 자를 때 칼을 쓰지 않고 엄지손톱을 썼다), 가죽을 벗기지 않았으며, 모두 제단에 불태우지 않고, 더러운 멱통과 위와 내장들을 제해 버렸다.
이스라엘에서 제물로 드리는 비둘기는 조금 자라면 엷은 노란색이 되고, 또 조금 지나면 금색이 되었다. 집비둘기는 3개월 지나면 이런 색깔이 되었고, 야생 비둘기는 3년 정도 되어야 이런 색깔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가 하나님께 드리기에 가장 좋은 때였다.
제사장은 비둘기를 그로부터 받아 가지고 번제단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남동쪽 모서리에 비둘기를 가지고 선다.
제사장은 번제단 위에 서서 비둘기를 잡는다. 오른손 등에 비둘기를 놓고, 넷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 사이에 그 다리를 끼우고, 둘째손가락과 셋째 손가락 사이에 그 날개를 끼우고,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사용하여 비둘기 목 뒷부분을 자른다. 이때 식도와 모든 목을 통과하는 기관지를 모두 자르되, 목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인간의 죄를 위해 희생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피가 없이는 죄의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
제사장은 비둘기를 빨래를 짜듯 눌러서 피를 빼고, 그 피를 번제단 곁에 뿌린다.
제사장은 목과 위 사이를 찢어서 멱통과 위와 내장들을 꺼낸다. 그리고 그것을 번제단 동편에 있는 재 버리는 곳에(약 9미터 정도 떨어져 있음)던져 버린다.
제사장은 손으로 비둘기의 등을 가르는데, 이 때에 비둘기의 앞부분이 찢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한 제물을 소금과 함께 번제단 위에서 태웠다. 이렇게 할 때에 이 제물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가 될 수 있었다. 제사장들은 비둘기로 제사를 드릴 때, 가난한 자의 제사라고 해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비둘기의 제사 경우에 제사장이 무척 주의를 기울여 제물을 준비해야 했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비둘기가 상하거나 찢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사장들에게는 비둘기의 제사가 가장 어렵고 신경이 쓰이는 제사였다. 우리는 이 모습 속에서 가난한 자의 제사를 열납받게 해 주시려는 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발에 기름을 붓고 눈물과 머리털로 그 발을 씻기던 가난한 여인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에 대하여 크게 칭찬하셨다. 성경 곳곳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용납해 주시는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주님은 "상한 심령을 가진 자"를 영접하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 이셨다. 가난한 자들이 바치는 정성스러운 헌신이 비록 비둘기같이 값싸고,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부유한 자들에게 아첨하고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는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 번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9-).
* 번제는 제물의 전체가 태워지는 제사였다.
* 번제는 짐승의 생명과 피를 통해서 속죄의 기능을 담당했다.
* 번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는 제사였다.
* 번제는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사...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 참고: 하나님은 번제보다 순종을 원하신다.
- 제사보다 공의, 인자,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원하심(미 6:6-7)
- 제사보다 상한 심령을 원하심(시 50:16-17)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실천이 모든 제사보다 나음(막 12:33)
2. 소제(2:1-16)
소제(곡식 제사)는 히브리어로 '민하', 또는 '고르반 민하'(예물의 제물)라고 하는데, 이 '민하'는 '마나ㅎ'라는 어근에서 나온 여성 명사이다. '마나ㅎ'는 아랍어로 "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히브리어에서 "선물" 또는 "예물-조공, 공물-"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의 의미는 어떤 사람이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나, 은혜를 얻기 위해 드리는 선물이나 예물"을 말한다. 이 말은 히브리 종교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답례로 드리는 제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모세 율법에서는 이 말은 "피 없는 곡식 제사"를 의미하고 있다. 이 제물은 첫 열매를 드릴 때와 같이 단독으로 드려지기도 했지만(단독제사), 대부분 다른 제사와 함께 드려졌고(부속제사), "포도주의 전제"가 함께 드려졌다(민15:3-6).
1) 매 안식일마다 드리는 진설병
2) 유월절 안식 후 첫 날(초실절)에 드리는 소제
3) 오순절에 드리는 소제
4) 의심의 소제-거친 보리 가루
소제는 번제나 화목제와 함께 드려졌는데(민 15:3), 성경에서는 이 소제를 일명 "예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적으로 드린 소제는 매 안식일마다 제사장이 12개의 소제의 떡을 떡상에 진설하여 드린 것과, 유월절 다음 안식일에 첫 곡식 한 단을 드린 것, 그리고 오순절에 첫 이삭을 드린 것이다. 소제의 재료는 주로 좋은 밀가루나, 밀가루로 반죽하여 만든 떡, 또는 곡식을 볶은 것이 사용되었다(레2:1-16).
성경에서는 "제사"와 "예물"이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다. 성경에서 "제사"(제바)는 주로 "피 있는 희생 제물"을 의미하고, "예물"(민하, 또는 고르반)은 주로 "피없는 곡식제사"를 의미하고 있다(단 9:27, 삼상 3:14).
2-2. 소제의 종류와 규례
가. 고운 가루를 드리는 소제(2:1-3)
* 소제물을 준비하여 제사장에게 가져옴(1)
* 제사장이 기념물을 단 위에 불사름(2)
* 그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돌아감(3)
* 참고: "소제의 재료들과 그 의미"(2:1-3)
소제는 밀가루와 보리 가루를 사용하였다. 소제는 13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11가지는 밀가루로 드리고, 2가지는 보리 가루로 드렸다. 밀은 세 겹의 껍질로 싸여 있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추수를 한 후에 밀 이삭을 햇빛에 바싹 말렸다. 그리고 그 말린 이삭을 장대로 여러 번 두드려서 밀 알을 떨어냈다. 이렇게 되면 밀이 껍질과 함께 뒤범벅이 된 상태로 되는데, 이것을 키로 까불러서 첫 번째 껍질을 날려보낸다. 그리고 나서 손으로 문지르고 주먹으로 쳐서 그 밀의 껍질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밀을 , 껍질을 까는 맷돌에 넣고 돌려서 두 번째 껍질을 벗겨냈다. 그 후에 그 밀을 다시 굵은 채로 치고 나서, 또 다시 세밀한 맷돌에 넣어 갈아서 세 번째 껍질을 벗겨내었다. 그리고 나서 고운 채로 다시 한번 쳐내서 비로소 소제에 쓸 수 있는 고운 가루(소레스)르 만들었다. 소제에 쓰는 "소레스"(고운 가루)는 이와 같은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얻게 되는 최고급품으로서, 막대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만들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고급 밀가루로 소제를 드리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공정을 통해 곱게 갈아진 고운 가루인 "소레스"는 영적으로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과, "연단을 통해 연단된 온유한 성품"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할 경우에 하나님께 소제를 드리고 그 부정을 해결할 수 있게 하셨다. 이 경우 드리는 소제는 거친 보리 가루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순결한 헌신이 아니라 의심의 소제였기 때문이다.
2. 기름(2:1-2)
소제에는 고운가루뿐 아니라 기름이 필요했다. 소제에 사용하는 기름은 다음과 같은 3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1) 1단계
올리브 열매를 그릇에 담고 절구공이로 계속 친다. 그리고 구멍이 뚫린 채 같은 그릇에 넣으면 기름이 흘러내리는데, 이렇게 제일 먼저 나오는 기름이 제일 좋은 기름이었다.
1차 기름을 뺀 올리브 열매를 다시 무거운 돌이나 무거운 나무 도구로 빻고, 그 기름을 빼면 그 다음 수준의 기름이 되었다.
2번 기름을 뺀 올리브 열매를 맷돌에 넣고 간다. 그리고 압력을 가하여 눌러서 빼내서 만든 기름이 마지막 하질의 기름이었다.
3. 유향(2:1-2)
유향은 레보나란 향료인데, 이 향료는 나무에 상처를 낸 후에 자연 그대로 받아 낸 가공하지 않은 향료이다. 나무에서 향이 흘러나오게 되면, 조금 후에 쌀알처럼 작은 고체가 되는데 이것을 코르틴 이라고 한다. 이 향료는 기도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선한 생활을 의미한다. 우리의 예배에는 기도의 제사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선한 삶이 동시에 요구된다(엡5:2).
4. 소금(2:13-)
소제에는 소금이 필요했는데, 이 소금은 제물이 변하지 않게 하였다. 이것은 제사를 드리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에 신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소금은 부패방지와 조미료의 역할도 했는데, 이것은 우리의 삶이 세상의 부패를 막고 사회에 조미료와 같은 그리스도의 맛을 낼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신실하게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나. 화덕에 구운 것으로 드리는 소제(4-)
고운가루(소레스)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전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렸으며, 그 절차는 위의 경우와 같았다.
다. 번철에 부친 것으로 드리는 소제(5-6)
라. 솥에 삶은 것으로 드리는 소제(7-10)
제사의 순서는 고운 가루로 드리는 경우와 같음.
* 참고: 소제를 드릴 때에 넣어서는 안되는 것들(2:11-12)
1. 누룩(2:11)
누룩은 소금과 반대의 성질을 갖고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데 반해 누룩은 부패하게 만들었다. 소금은 변질되지 않게 하는데 반해, 누룩은 물질을 부풀려서 변질시킨다. 성경에서 누룩은 소금과 반대되는 위장, 허풍, 그리고 위선과 부패를 상징한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누룩(눅 12:1), 사두개인들의 누룩(마 16:16), 그리고 헤롯의 누룩을(막 18:5)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적은 누룩이 온 세상에 퍼지게 된다(고전 5:6)"고 경고했다. 이와 같이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소제에 넣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헌신이 기만이나 외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꿀도 소제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성경에서 꿀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꿀같이 달콤함 말씀을 상징 하며, 둘째로 꿀은 꿀같이 달콤한 음녀의 유혹이나 쾌락을 상징한다. 죄는 한번 맛보면 꿀처럼 달콤하여 또 먹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죄를 상징하는 꿀은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에 넣지 못하게 하셨다. 이것은 성도들이 이 세상의 쾌락과 죄악에 빠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3. 첫 이삭의 소제(14-16)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14-16)
* 참고: 소제물과 제사장의 몫(레 7;8,9)
"무릇 화덕에 구운 소제물과 솥에나 번철에 만든 소제물은 그 드린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무릇 소제물은 기름 섞은 것이나 마른 것이나 아론의 모든 자손이 평균히 분배할 것이니라"(레 7:9,10)
"무릇 제사장의 소제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지니라."(레 19:23)
2-4. 소제의 특징과 의의
가. 소제는 향기로운 냄새의 제사였다.(레 2:2,9)
이 제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두 번 첫 곡식의 소제를 하나님께 드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첫 번째로 유월절의 안식일 지난 후 그 다음 날에는 그 해에 거둔 첫 곡식의 한 단을 거두어 번제단에 불살라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 째인 오순절에 첫 곡식과 함께 누룩과 꿀을 드렸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유월절에 드린 곡식과 같이 번제단에 태워서 하나님께 드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예물은 죄를 상징하는 누룩과 꿀이 함께 드려졌기 때문이다. 유월절 다음 안식일에 드리는 누룩과 꿀이 없는 첫 열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다음 안식 후 첫 날에 부활하셨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죄가 전혀 없는 분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졌다. 그리고 오순절에 누룩과 꿀과 함께 드린 첫 열매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생겨난 교회를 상징한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태어난 교회는 이 세상에 성령께서 오셔서 거둔 첫 열매였다. 교회는 예수님과는 달리 바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교회는 아직도 죄와 죄의 요소들이 잠재해 있다(누룩과 꿀).
1) 하나님의 몫-"고운 기름, 가루 한줌"-이것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2) 제사장의 몫-"그 나머지 모두"-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3) 제사 드리는 자의 몫-아무 것도 없었다. 즉 헌신 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제사장에게 드 렸다. 그는 드려진 나머지 모든 것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었다.
2-5. 적용: "소제와 성도의 삶"
내가 주님께 받은 것 중에 일부를 드려서 그 모든 것이(시간, 재능, 물질)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소제의 정신이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드려지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온유하고 겸손한 인격과 하나님의 말씀(고운 밀가루), 항상 깨어 기도하는 자세(향), 성령 충만(기름), 그리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굳게 믿고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소금)가 필요하다. 그리고 온전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외식(누룩)이나 쾌락(꿀)등과 같은 죄의 요소를 삼가야 한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말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향)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성령)....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이 관제는 소제와 더불어 드려지던 것이었다)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너희가 내 형제에게 한 그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마 25:35-40)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제바크 쉴라밈"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감사제로 번역되고 있다. "제바크"는 "제물을 도살하여 잡는 것"을 의미하는 데, 이것은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희생을 의미한다. 그리고 "쉴라밈"은 단수형인 "살렘", "쉴람", "쉴롬"등으로 쓰여졌는데, 이는 "완전한 은혜", "완전한 평화", "완전한 축복" 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제바크 쉴라밈"의 의미는 "평화(또는 은혜, 축복)의 제사"라고 할 수 있다. 화목 제사를 드리는 경우는 감사 제사와 서원의 제사, 그리고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였다. 화목제는 속죄제와 번제, 그리고 소제를 드린 후에 마지막으로 드려졌다. 그 이유는 이 제사가 죄 사함을 얻고, 온전히 헌신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뜻으로 드렸기 때문이다.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는 달리 하나님께 드리는 몫과 제사장의 몫,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분배될 몫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하나님과, 제사장, 그리고 제사 드린 사람들이 모두 기쁨에 참여하였다. 화목제사는 모든 제사의 클라이막스이며 완성이다.
3-2. 화목제의 종류와 순서(3:1-17)
* 암 수 구별 없이 흠 없는 것으로 드림(1)
화목제는 주로 기름을 드리는 제사였다. 그러므로 비교적 기름이 많은 소, 양, 염소들이 제물로 드려졌고, 기름이 적은 새(비둘기)는 제외되었다. 화목제에서는 번제의 경우와는 달리 암 수의 구별이 없었다.
제사를 드리는 자는 제물과 동일시하기 위해 동물에게 안수했으며, 자신이 직접 회막 문 앞에서 죽였다.
화목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특별히 태워 드린 것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였다.
1) 위에서부터 장까지 있는 내장을 둘러싸고 있는 큰 꺼풀-내장에 덮인 기름-
2) 창자에 붙어있는 기름-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3) 두 콩팥과 콩팥 주위인 허리 근방에 있는 기름
4) 간에 덮인 꺼풀-작은 기름으로 된 꺼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 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나. 양이나 염소를 드리는 경우: 소를 드리는 경우와 같은 순서로 진행(3:6-17).
* 양을 드리는 경우(6-11)
* 염소를 드리는 경우(12-17)
*참고: "감사의 제사"(소제를 함께 드림)(7:11-14)
여호와께 감사제로 드리는 화목제의 경우에는 소제가 함께 드려졌다. 화목제와 함께 드리는 소제에는 기름 섞은 무교병, 기름 바른 무교전병,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 그리고 유교병을 예물로 드렸다. 이 소제물들은 함께 드려진 후에 그 중에서 하나씩 대표로 하나님께 거제로 드렸으며, 그 나머지는 희생의 피를 뿌린 제사장에게 주었다. 감사제로 드리는 화목제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고 난 후에, 그 몫의 일부분이 제사장에게 돌아가고, 그 나머지는 제물을 드린 자가 차지하였다. 그러므로 화목제는 번제와는 달리 하나님, 제사장, 그리고 제사 드리는 자, 모두가 이 제물을 먹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1. 하나님의 몫-"기름과 피, 내장, 콩팥, 간"(레 3:16,17)
성경에서 "기름진 것"은 가장 좋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만족할 만한 것을 의미한다(시 63:5,사 55:2, 겔 44:7). 또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피와 기름"은 자기의 생명과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한다.
화목제의 경우 제사를 집례한 제사장은 가슴을 요제로 삼고, 우편 뒷다리를 거제로 삼은 후에 제사장이 취했다. 이는 화목제의 기쁨에 제사장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7:28-32).
하나님과 그것을 중보하는 제사장과의 몫을 제외한 후에 그 나머지는 드리는 자에게 돌려졌다. 이는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린 후에 우리에게 평화와 축복과 안식이 있음을 말해 준다.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과 사람이 모두 관계된다(롬 5:1, 눅 2;14, 요 14:27, 마 5:23-26).
* 참고: 제사드린 음식을 먹는 규례(7:15-21)
1. 감사제인 경우: 기름을 제외한 제물의 고기를 당일로 모두 먹어야 한다(15).
2. 서원제, 자원제: 제사 드린 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었다(16).
이 제물은 어느 경우에든지 제 삼일까지 남기는 일은 금지되었다. 제 삼일까지 남는 화목제물을 먹는 자는 가증한 사람이 되었으며, 그 제물은 불에 태워졌다(17-18). 기쁘게 드린 제물을 빨리 먹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은 제사 드린 자의 성의를 보여준다. 화목제를 드린 자가 그 제물을 먹지 않고 며칠씩 제물을 방치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불 경건한 태도이다. 특히 더운 나라에서는 그 제물이 쉽게 부패되기 때문에 더욱 더 오래 둘 수 없었다. 제물이 부정한 것에 접촉하게 되는 경우에도 부정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에 불에 태웠으며, 이 제물은 부정하지 않은 정결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다. 만일 부정한 자가 이 제물을 먹으면 그는 죽임을 당했다. 이는 거룩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부정한 자들이 참석하여 죽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화목제물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정결한 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교제였다. 오늘날 우리도 성만찬에 죄 있는 사람을 참석시키지 않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19-21).
2-3. 화목제의 특징
* 새가 제외되었다(새에게는 풍성한 기름이 없다).
* 제물의 성이 구별되지 않았다(감사에 남녀의 구별이 없음).
* 전부 다 단에 태워드리지 않고 가장 중요한 기름부분만 드렸다(가장 귀한 것을 드려 헌 신함. 구원을 체험한 성도들은 자연히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감사하게 된다).
* 제사를 드리고 난 나머지는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화목의 결과가 하나님과의 관계만 온 전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제사장과 제사 드리는 사람 모두가 이 평화와 기쁨에 참여하게 하였다)
속죄제와 번제 그리고 소제를 모두 드린 후에 드리는 제사로서 성도들에게 구원과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제사였다.
이러한 제사들은 화목제사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화목제사는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이며, 특별히 자신의 몸을 헌신하기 위해 서원할 때 드리는 제사였다. 또한 화목제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체험하거나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에 감사의 표시로 자원하여 드린 제사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체험한 성도들이 자신의 생명과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 헌신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주님께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들을 화목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다. 이 평화는 세상에서 누리는 평화와는 다르다. 이 평화는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누리는 데서 오는 평화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내주 하시면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요 14:27, 빌 4:6,7).
2-4. 적용: 삶으로 나타내는 화목제사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맺는 것은 이웃과의 화목과도 큰 관계가 있다. 우리가 주님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결과는 이웃과의 평화로 나타나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후에 우리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불신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성도들은 다른 형제들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의 용서와 화평은 이웃과의 용서와 화목으로 나타나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용서를 받은 후에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 5:23-26).
주님께서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우게 될 것이라고 하셨으며, 사도 바울도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고 하였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구원받은 성도는 일평생 그 구원의 은총을 감사해야 한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이것은 하나님께서 제물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제사이다-
- 2012/03/13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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