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스키타이와 유사 지역주의

 

신라는 종족적으로 스키타이와 유사한 것으로 나왔네요. 신라흉노족설이 진실인듯 합니다.

그에 비해 조선은 전통적으로 몽골리안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예맥족의 발원이 몽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상복지가 가라앉힌 물가… 보육시설 이용료 33.9% ↓ 물가 19개월만에 2%대 하락 정치

무상복지가 가라앉힌 물가… 보육시설 이용료 33.9% ↓ 물가 19개월만에 2%대 하락
  • 2012.04.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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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평소 재정부담을 이유로 비판해온 무상복지 시리즈가 물가안정의 일등공신이 됐다.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의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2.6% 오르는 데 그쳤다고 1일 밝혔다. 이는 2010년 8월(2.7%) 이후 19개월 만에 2%대로 떨어진 것이다.

지난달 물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보육시설 이용료다. 보육시설 이용료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33.9%가 떨어져 주요 품목 중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보육시설 이용료의 급감은 바로 지난달부터 실시된 0∼2세 무상보육지원 정책 덕분이다.

지난해 말 국회 예산통과로 인해 정부는 지난달부터 0∼2세 영·유아에 대해 소득에 상관없이 무상보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지원대상을 소득 하위 70%까지로 제한했지만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전 계층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서울시 등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무상급식이 확산되면서 학교급식비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6% 떨어졌고, 유치원 납입금도 11.1%나 감소했다. 사립대 납입금(-3.3%)의 하락도 지난해부터 대학가에서 불붙기 시작한 반값등록금 운동에 따른 여파로 보는 시각이 많다.

통계청 안형준 물가동향과장은 “무상급식, 영·육아 보육비, 유치원 납입금 지원 등 정부 정책 효과가 없었으면 3월 물가상승률은 3.1%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이날 3월 소비자물가 관련 보도자료에서 “보육료, 유치원납입금, 무상급식확대 등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정부정책이 물가안정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 등의 현안이 나올 때마다 재정부담을 이유로 처음에는 반대해오다 야당 주장 및 여론에 의해 떠밀리듯이 무상시리즈를 받아들여왔기 때문에 ‘물가안정은 정부 덕’이라는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한사코 반대하던 정부가 소비자물가가 안정되자 과실만 따먹으려 한다”는 비판의견이 많이 나왔다.

무상시리즈 효과로 물가가 떨어졌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전셋값은 5.7%, 농산물은 9.4% 뛰었고 알뜰주유소 등 다양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휘발유(5.3%)와 경유(6.0%) 등의 가격도 올랐다. 서민들의 체감물가는 여전히 악화된 상태인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 조사결과 일반인의 기대인플레이션은 올해 1∼2월에도 4%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다는 것은 경제 주체들이 앞으로 물가가 계속 상승하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출애굽기 경로를 통해 본 고난 jesus christ is our king

라암셋--숙곳--에담--비하이롯(바다와 믹돌사이, 바알스본 앞)--홍해(빅터호수로 추정)를  건넘-수르 광야쪽 가는길 에담광야 끝부분--마라의 쓴물 사건--엘림(물샘 12 종려나무 70그루)

 

요기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서 물이 거의 다 떨어지자 마라라는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에 대한 원망과 불평불만을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생존의 문제에 닥치자 원망이 나왔던 것이죠. 베드로도 예수님의 엄청난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했지만 정작 생존과 죽음의 문제가 닥치자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면서 동시에 그 끝에는 항상 축복을 예비해 두신다는 것을 여기 출애굽의 여행경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마라의 쓴물 사건이 있었던 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바로 엘림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엘림에 이미 물샘 12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예비되어 이었던 것이죠.

 

인생의 험난한 여정에서 고난이 찾아올때 하나님은 그 고난 앞에서 인내하고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예비된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기를 원하시죠. 이스라엘 민족이 조금만 참고 원망을 하지 않았다면 엘림에 도착했을테고 온전하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엘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한 상태였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없었고 그 결과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게 되지 못하면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도 이스라엘 민족처럼 인내하지 못하고 쉽게 불평불만과 원망을 하곤 합니다.

 

어쩌면 그 원망이 멈추는 시점이 고난과 시련의 시험을 통과하는 때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합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는

 

삼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p.s 엘림이후의 출애굽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출애굽 경로에서도 영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경로만 적어놓겠습니다.

 

엘림--신광야[만나와 메추리]--르비딤[아말렉과 전투, 맛사 또는 므리바물사건]--시내산(시내광야)[금송아지사건, 십계명 받음, 성막제작]--다베라[원망과 탐욕]--기브롯 핫다아와[메추라기-탐욕의 무덤]--하세롯[미리암 벌을 받음]--바란광야(가데스바데아)[가난안 정탐, 악평 후 38년간 떠돔, 고라 다단 아비람 반역사건]-욧바다--에시온게벨--친광야(가데스바데아)[40년째 떠돌다 다시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감]--<에돔통과 거절당함>--호르산[아론의 죽음,호르마 점령]--부논--<에돔땅 우회>[녹뱀 사건]--오봇--이예아바림--<모압땅 위회>--아르논강--비스가산--<헤스본의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이 거주하는 요단 강 동쪽 땅 점령>--모압평지[발람 이야기, 신명기낭독]


구스 여인과 결혼한 모세 jesus christ is our king


십자가 체험과 부활 jesus christ is our king

종려나무는 성경에 많이 나오는 중요한 식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종려나무로 지칭된 것은 실은 대추야자를 가리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려나무와 대추야자는 식물학적으로는 별개의 식물입니다.(즉 한국어로 번역할때 약간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영어는 palm이 종려나무 야자나무 모두를 가리킴.) 

 

대추야자는 학명을 phoenix dactylifera L.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명은 tamar, 그리스명은 phoinix, 영명은 date palm, 독일명은 Dattelpalme라 하는데, 대추같은 열매가 달리는 야자나무이기 때문에 대추야자라 합니다.

 

신명기 8장 8절에 가나안 땅의 8대 먹을거리가 나오는데 거기보면 마지막에 꿀도 사실은 이 대추야자를 가리킵니다.

 

이 대추야자를 말려 견과류로 먹으면 정말 꿀처럼 달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을 떠나 홍해사건을 체험한지 몇일이 지나 물이 떨어집니다. 즉 수르광야를 사흘길로 통과하면서 마라 라는 곳에 이르렀을때 거기 물이 조금 있었는데 그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자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하져.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나서 처음 고난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인생살면서 더이상 못살겠다느니 이런 불평을 할때가 있잖아여. 바로 그런 케이스와도 유사한 경우입니다.

 

그런다 사실은 거기서 조그만 더 가면 엘림이라는 곳이 준비되어 있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엘림은 열 두 물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과 꿀처럼 단 대추야자 열매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인생의 고난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연단하시기 위한 화롯불과 같은 곳인데 사실은 그 고난을 (불평없이 오히려 감사로) 넘기고 나면 엘림과 같은 축복을 하나님은 예비해 두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마라의 쓴 물은 우리 인생의 십자가 체험이고 엘림의 물과 종려나무는 부활의 체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을 위해 자기를 버려 십자가에서 죽으면서까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다시 부활한 것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종려나무는 영적으로는 승리와 늘 푸른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다음 성경구절등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겔 41:18-20).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아 7:7).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3).]

이렇듯 승리와 늘 푸른 것을 상징하는 종려나무는 동시에 영존하는 승리를 뜻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결과 영광을 지키는 문지기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견디시며, 감당하시며, 지속하시며, 널리 세력을 펴시며, 영존하시는 승리한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소생시키고 살리시는 생명 주는 영(고전 15:45)이십니다.

 

즉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번성하는 생명을 상징하며 그것들은 또한 생명의 만족, 환난에 대한 승리 안에서의 즐거움을 상징하는 것이죠.

엘림(엘림은 전능자들, 혹은 강한 자들을 의미하는 복수 명사이다.)에 있었던 종려나무들은 난장이 나무들이 아니라 공중으로 높이 치솟은 큰 종려나무들이었을 것이었습니다. 물은 분명히 샘으로부터 아래로 흘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림에는 아래로 흐르는 물과 위로 자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른 다음, 우리 안으로부터 자라나는 부활 생명에 대한 그림입니다. 먼저 부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릅니다. 이 흐름의 결과는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에게는 단물뿐만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바뀌어진 물과 엘림에 있는 열두 샘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흐르는 물을 가지려면 십자가의 체험인 마라로부터 부활의 체험인 엘림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므로써 부활의 승리를 쟁취하시길 바래봅니다.


가나안의 바알종교 jesus christ is our king


성경의 종려나무 jesus christ is our king

 

종려나무는 성경에 많이 나오는 중요한 식물 중의 하나다. 그러나 성경에 종려나무로 지칭된 것은 실은 대추야자를 가리킨 것이다.(http://blog.daum.net/mhkyb/527) 그러므로 종려나무와 대추야자는 식물학적으로는 별개의 식물이다. 대추야자는 학명을 phoenix dactylifera L. 이라고 한다. 그리고 히브리명은 tamar, 그리스명은 phoinix, 영명은 date palm, 독일명은 Dattelpalme라 하는데, 대추같은 열매가 달리는 야자나무이기 때문에 대추야자라 한다.

마라를 떠나 엘림에 진을 쳤다. 엘림에는 열 두 샘이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었다(민 33:9).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겔 41:18-20).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아 7:7).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3).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승리와 늘 푸른 것을 상징한다. 이것은 영존하는 승리를 뜻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결과 영광을 지키는 문지기이시다. 그리스도는 견디시며, 감당하시며, 지속하시며, 널리 세력을 펴시며, 영존하시는 승리한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소생시키고 살리시는 생명 주는 영(고전 15:45)이시다.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번성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그것들은 또한 생명의 만족, 환난에 대한 승리 안에서의 즐거움을 상징한다.

엘림(엘림은 전능자들, 혹은 강한 자들을 의미하는 복수 명사이다.)에 있었던 종려나무들은 난장이 나무들이 아니라 공중으로 높이 치솟은 큰 종려나무들이었을 것이다. 물은 분명히 샘으로부터 아래로 흘렀을 것이다. 그러므로 엘림에는 아래로 흐르는 물과 위로 자라는 나무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른 다음, 우리 안으로부터 자라나는 부활 생명에 대한 그림이다. 먼저 부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른다. 이 흐름의 결과는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는 것이다.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에게는 단물뿐만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에게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바뀌어진 물과 엘림에 있는 열두 샘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흐르는 물을 가지려면 십자가의 체험인 마라로부터 부활의 체험인 엘림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담 귀용(Madam Guyon)의 시대로부터 그녀와 동시대(同時代) 사람인 펜 루이스(Penn-Lewis) 여사 시대까지 주님의 백성은 대부분 마라에 있었다. 펜 루이스(Penn-Lewis) 여사의 사역을 통해 십자가의 주관적인 체험이 온전히 회복되었다. 펜 루이스(Penn-Lewis) 여사를 뒤이은 시대에서 주님은 마라에서 엘림으로 나아가셨다. 엘림에서 그분은 열두 샘과 칠십 종려나무가 있는 그분의 농장을 돌보셨다. 그러나 주님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마라를 매우 귀히 여기고 거기에 머물기를 갈망했다. 그들은 십자가에 관한 펜 루이스 여사의 저서들을 뛰어넘어 전진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십자가의 체험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들은 흐르는 샘과 자라는 종려나무에는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그들의 씁쓸함이 십자가의 적용을 통해 얼마나 달콤함으로 바뀌었는지를 간증한다. 마라에서 지체하는 자들에게 치료하는 나무는 있으나 신성한 생명의 풍성과 승리를 표현하기 위한 자라나는 칠십 종려나무는 없다. 마라에는 농장이 없다. 거기에는 오직 베어서 쓴 물에 던지는 한 나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마라에서 엘림으로 전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치료하는 나무에서 자라 번성하는 종려나무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가 마라에서 지체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엘림으로 나아가 거기에서 그분의 군대로 강화되기를 요구하신다. 최근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삼 세기 전의 신비주의에 의해 쓰여진 저서들에 관해 묻는 편지를 받았는데, 특별히 마담 귀용(Madam Guyon)과 로렌스(Lawrence) 형제의 저서들에 관해서였다. 사실상 마담 귀용(Madam Guyon)의 자서전은 마라에서의 체험에 대한 역사이다. '그리스도를 닮음'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삼 세기 전에 마라에서의 체험을 강조했던 자들은 흐르는 열두 샘과 자라는 칠십 종려나무를 많이 강조하지 않았다. 오늘날 주님은 하나님의 농장에 물을 주시어 종려나무들을 자라게 하여 그분의 생명의 풍성과 승리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샘들을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마라에는 농장이 없고 씁쓸함을 달게 바꾸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성장이 없다. 그러나 엘림에서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풍성과 하나님의 행정의 온전한 승리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농장과 종려나무 숲을 누린다. 우리는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바뀐 물 안에서, 그 물에 의해, 그 물과 함께 종려나무들처럼 자라야한다. 그럴 때 그 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과 완전한 승리를 표현하는 흐르는 물이 될 것이다.

종려나무로 만든 격자창

종려나무로 만든 격자창을 보자. 창문은 공기와 햇빛을 들어오게 하고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겔 41:16). 이 창문들은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생명 주는 영은 극히 자유롭고 해방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또한 격자가 있다. 자유가 있지만 또한 창살이 있다. 하늘에 속한 것과 생명에 속한 것과 순수하고 깨끗한 공기는 모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창문에 격자, 곧 창살이 있기 때문에 더럽고 악하고 소극적인 것은 모두 차단될 것이다.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이렇게 역사하신다.

모든 널판에는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다(41:18-20). 그룹은 1장에 언급된 네 생물이며 피조물 위에 표현되신 주님의 영광을 상징한다. 그룹들 사이에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리스도의 영속되고 영존하신 능력을 상징하는 종려나무가 있었다. 1장에서 그룹은 네 얼굴을 가졌으나 벽에 새겨진 그룹은 두 얼굴-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얼굴-뿐이다. 사람의 얼굴은 인성을 상징하고 표현하며 사자의 얼굴은 인성 안의 승리를 나타낸다. 할렐루야! 벽은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진 나무로 덮여 있다. 이들은 나무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니고 새겨진 것이다. 우리는 주님에 의해 새겨져야 한다. 우리는 덮는 널판들이며 주님에 의해 새겨질 필요가 있다. 새겨지는 것은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당신은 어떤 형제 자매를 만날 때 그들에게 주님의 새겨짐이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주님의 영광이 그들 안으로 새겨졌다. 영속되는 능력과 신선함과 영원토록 싱싱한 생명이 그들의 존재 안으로 새겨졌다. 주님의 새겨짐으로 인해 그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모양과 인상을 나타낸다.



승리하는 생명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마태복음 28장 8 절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이들은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나무 가지들은 종려나무 가지들로서(요 12:13), 승리하는 생명과(계 7:9) 장막절에 의해 예표된 것처럼(레 23:40, 느 8:15) 이 생명의 풍성한 산출을 누리는 만족함을 의미한다. 무리들은 겸비하신 왕의 오심을 축하하기 위해 그들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들을 사용했다. 승리하는 생명을 상징하는 종려나무는 감춰진 샘물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높이 치솟아 자라난다. 이는 승리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그들의 어떠함으로 온유하신 왕을 존귀케 함에 있어서 사람들은 그분이 승리하는 생명이 있는 그런 분임을 인식했다.

7 절과 8절은 이렇게 말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뭇잎을 길에 펴며". '옷'은 사람의 행위에 속한 인간의 미덕을 상징한다. 제자들은 그분이 탈 수 있도록 나귀 위에 그들의 옷을 얹어놓아 노예-구주를 존귀케 했으며, 무리들은 그분이 통과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옷을 길에 폄으로 그분을 존귀케 했다.

나뭇잎(8절)은 종려나무 가지에서 따온 것이었다(요 12:13).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하는 생명과(계 7:9) 초막절 잔치로 예표된 것처럼(레 23:40, 느 8:15) 이 생명의 풍성한 소출을 누린 데서 오는 만족함을 상징한다. 무리들은 자기들의 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사용하여 노예-구주의 오심을 경축했다.

노예-구주는 영광스러운 입성을 하셨으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이것은 주님의 지혜에 따라 발생했다. 그분의 구속 사역을 위한 준비로 그분이 안배하신 첫 번째 일은 이 같은 환영이었다. 이러한 환영에 의해 그분은 사람들의 승인을 받으셨다. 마치 그분은 그들에게서 득표를 하신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분을 지지했으며 그분을 메시야로 인식했다.

신명기 15장 1절~11절 (부유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이스라엘의 7대 절기의 규례에 대해서 jesus christ is our king


레위기와 사회안정망 jesus christ is our king

레위기 19장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말고 내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고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를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외국의 나그네)을 위하야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머거리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매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내 이웃 사랑하가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꼐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꼐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나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으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밭 모퉁이나 포도원의 열매의 일부는 아에 거두지 말라는게 성경의 가르침이네요.

 

이른바 사회안정망 사상이 이미 성경에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의 나그네 즉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하라는 말씀도 성경에 나오네여.


불의한 부(富), 불의한 청지기 누가복음16장 jesus christ is our king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는데, 그는 청지기를 하나 두었다. 이 청지기가 재산을 낭비한다고 하는 고발이 들어와서, 주인이 그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자네를 두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데, 어찌된 일인가? 자네가 맡아 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이제부터 자네는 청지기 일을 볼 수 없네.' 그러자 그 청지기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 날 때에,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이해 줄 사람들을 미리 마련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내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는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어서 앉아서,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가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받아서, 여든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것은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아들보다 더 슬기롭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눅16: 1-9)

 

-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쓰는데 당신이 뭐요?
돈 많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윤리적 요청을 묵살하기 위한 방편으로 혹은 자신의 부가 정당하며 거리낄 것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요령으로 말입니다.


'부(富)가 나쁜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흔히 나오는 답은, 부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이를 어떻게 벌어서 쓰느냐가 문제다 라는 견해입니다. 혹은 정직하게 번 돈은 나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공정하고 정직하게 부(富)를 축적한다는 것이 어렵기에 한국에서의 부(富)는 문제가 있다는 정도의 입장입니다.


사실 돈이라는 것 자체가 의롭거나 불의하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백 원짜리 동전이나 백 억원짜리 수표나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도덕적인 영역에서 논의 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상업적 거래의 수단으로서 부여된 값어치를 나타낼 뿐입니다. 거래적 가치는 도덕적 가치로 변용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닙니다.


부(富)의 도덕성을 말할 때, 거래가치 측정의 수단인 돈을 연상해서는 곤란합니다. 단지 거래가치 측정의 수단으로서의 돈을 떠올리고는 '부(富)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라는 주장에 쉽게 동조하는 경우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부(富)의 도덕성을 논할 때의 부(富)는 거래 가치 측정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배타적 소유라는 관점에서 거론되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간여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라는 사유재산권의 논리에 부(富)의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시대적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인간은 자신의 손에 돈을 쥐고 운용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돈에 대한 배타적 소유를 꿈꾸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부(富)의 축적이라는 말은 나만이 사용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돈의 양을 늘려간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부(富)라는 개념에는 독점의 욕구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과연 인간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자기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용한 양식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과연 이 지구  상에 있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보다 수십 만 배를 더 소유해도 좋을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고백일까요? 결국 우리의 모든 것이(시간, 능력, 소유)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에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에 말입니다.

한 개인의 부(富)의 축적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부(富)의 포기를 전제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내 부(富)가 늘어난다는 의미는 다른 사람의 몫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한 명의 거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몫을 내놓아야 합니다. 로또 복권에는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富)의 축적 메커니즘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천 원씩 내놓은 것을 몇몇 사람이 독식하는 것입니다. 부(富)를 갖게 되는 과정에 능력이라는 말 대신에 행운이라는 말이 대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富)를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써 벌었다고 생각하는 부(富)조차도 사실은 하나님의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부(富)라는 것은 그 자체로 불의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의 것이라는 배타적 독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운용하는 부(富)는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불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의한 정치기의 불의함은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주인의 재산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의 소용에 따라 주인의 재산을 써버리거나 자기만의 소유를 늘리기 위해 삥땅을 쳤을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님에도 자기의 것인 듯이 사용하였습니다.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유용했던 것입니다.


주인이 그에게서 그가 누리던 것을 빼앗겠다고 하는 순간 그는 생각했습니다.
- 이제 내가 쫓겨난 연후에 무엇을 할꼬, 미리 나를 도와줄 사람 즉 친구를 사귀어 두어야 겠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그들의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이 불우한 처지에 빠진 자신을 박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능력껏 호의를 베풂으로서, 청지기직을 박탈당한 자신이 비빌 언덕을 마련하려는 고도의 전술입니다.
청지기의 행동은 분명 주인의 재산에 손실을 입힌다는 점에서 이전까지 그가 저질렀던 행동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여전히 축내고 있는 청지기를 보고 칭찬하는 주인의 심사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이 중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축내기는 마찬가지이나 이번에는 주인에게 색다른 보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인자하고 어진 사람이라는 평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청지기가 주인의 돈을 임의로 착복함으로써 주인의 재산에 손실을 줄 뿐만 아니라, 바보 같은 주인이라는 소문도 함께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기 아랫사람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주인이라는 평 말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청지기의 행동이 주인에게, 빚을 탕감해주는 어진 사람이라는 평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주인은 청지기를 칭찬함으로써 청지기가 한 일은 바로 주인 자신이 시켜서 한 일일 것이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이 청지기를 정죄했다면 사람들은 주인은 강퍅한 사람이고 청지기는 관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으로서는 청지기를 칭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주인은 재산의 손실보다는 어진 사람으로서의 명성을 더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당시 스스로 빛의 자녀임을 자처하며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폐쇄적인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어둠의 자식들)과 일체의 교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끼리 재산을 모아 자기들끼리만 쓰며 세상과 고립된 삶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만을 기다리며 엄격한 종교 생활로 자신들의 영역을 고수하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富)를 자기들만을 위해 사용하는 그들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부(富)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고 교제하는 세상사람들이 더 현명하다는 것이 예수께서 가지신 관점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富)를 독점하고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나님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원망을 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부(富)를 가지고 자기만을 위해 씀으로써, 하나님의 부(富)를 축냄과 동시에 어질지 못하고 무능한 하나님이라는 평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진정 공평하시고 인자로우시다면, 저들은 저렇게 호의호식하는데 나는 이렇게 배고픔과 질병으로 고통 당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시겠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부(富)의 독점과 풍요로운 소비는 결국 하나님의 재산을 유용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며 단지 우리에게는 그것을 선용하고 관리하는 책임이 맡겨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를 가지고 빚진자들의 어려움을덜어주고 세상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혜로운 종이라 칭하시며 더 큰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http://blog.daum.net/kierkeka/9761079


고창병 수종병 누가복음 14장 2절 jesus christ is our king

누가복음 14장 1절부터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고창병 걸린 자를 고쳐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이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각색 병자 중에서 이번에는 고창병에 걸린 자를 고쳐 주셨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갑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고창병이 뭔지도 모릅니다.

고창병은  '수종병(水腫病,dropsy)이라고도 하며, 
헬라어는 "휘드로피코스" (물이라는'휘도르'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이 병은  신체의 세포조직이나 각종 강막(腔膜)이 협장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상태를 가리키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얼굴이 부어 오르며 팔과 다리도 크게 
부어올라 살갗이 물러지는 증상을 띠게 된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죄인들을 영적 병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창병은 영적으로 어떤 병적인 모습으로 죽어가는
우리를 보여 주는 것일까요?

이것은 물에 의한 병입니다.
이 물이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물이 우리에게 병을 가져와서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물인 말씀을 율법으로 읽고 적용하여 얻게 되는
병을 말합니다.

그 좋은 예가 안식일병입니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죄인들이 예수에 의해 고침을 받고 안식에 도달한 자, 즉 거듭난 생명을
가진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토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법으로 이해하고 행하니, 
생명이 되어야 할 말씀이 오히려 죄인들을 수종병에 걸려 죽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바리새인들처럼 안식일에 대한 중대한 인식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생명과도 같은 규례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아주 많은 경우에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문제로 부딪혔던 것입니다. 그만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문제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경 안에서 이렇게 생명과 같이 여기는 법이 왜 없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율법적으로 읽고 간음을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목숨 걸다시피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안식일이 아무 일도 안한다고 해서
새생명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도 간음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새생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명령대로, 그 율법대로 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생명의 말씀에 의해서 새생명을 받지 못하고, 
단지 법을 지키고 행위를 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생명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주는 말씀(물)으로 인한 수종병입니다. 

결국 고창병(수종병)이란 결국 복음의 말씀을 율법으로 이해하고 
행하는 자들의 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죽습니다.
마치 염소새끼가 먹어서 생명을 받을 어미 젖으로,
그 새끼를 삶아서 그 새끼가 죽임을 당하듯이 ...  

우리의 고창병, 참 예수를 만나서 고침 받으시기 바랍니다. 


coast, shore, beach 영어

동해안에 가자.
Let's go to the East Beach. (X)

여름 휴가나 방학 때 많이 찾는 동해안 !
그런데 '동해안'을 영어로 East Beach라고 표기하면 될까?
만일 '동해안'이 여러 해변 중의 하나라면 East Beach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해안'은 여러 해변을 거느리고 있는 길고 넓은 바닷가이기 때문에 East Coast라고 해야 맞는 영어 표현이다. 그러니까 East Coast 내에 Naksan Beach(낙산 해수욕장), Kyungpo Beach(경포대 해수욕장) 등이 있는 것이다.

Beach는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을 가리킨다. 반면 Coast는 단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곳이란 의미로 coast의 일부는 경사가 지고 암석이 많아 beach가 없는 곳도 있다. 즉, coast에는 beach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예로, lake(호수)에도 경우에 따라 beach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lake에 coast는 없다. 왜냐하면 coast는 바다에 접해 있을 때에만 coast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안가와 관련해 shore란 단어도 있는데, shore는 기본적으로 coast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더 광범위한 뜻으로 쓰인다. shore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만이 아니라 호수나 강 등이 육지와 만나는 곳, 즉 물과 육지가 만나는 모든 곳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쓰인다.

율법과 예수님 jesus christ is our king

레위기는 제사제도와 관련된 책입니다. 

 

그리고 레위기에는 1장에서 5대 제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화목제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소제는 우리의 기도와 관련됩니다. 그리고 번제는 상번제라고 해서 매일매일 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헌신된 삶과 연결이 되져.

 

즉 출애굽기가 우리의 구원과 관계된다면 레위기는 구체적인 삶에서의 성화와 관계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결과 거룩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제사에서도 매우 구체적인 절차를 정해두셨습니다.

 

안수를 할것인지 여부, 피를 바를것인지 여부, 피를 쏟을 것이지 뿌릴 것인지 여부, 고기의 전체를 태울 것인지 아니면 기름진 부분만 태울 것인지, 어떤 짐승을 제사로 드릴것인지 등등입니다.

 

나아가 각자의 경제적 형편까지 고려해서 세밀하게 규정을 해 두었지요.

 

그리고 제사를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은 모세와 아론의 후손인 레위족속들만 할 수 있게 했는데 그들이 제사를 집행하는 과정도 엄격한 절차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집행하는 레위인들중에는 이러한 구체적인 절차를 어겼을 때 자칫하면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경외를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대표적으로 레위기 10장에 보면 아론의 두 아들이었던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다 죽음을 당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10장 후반부에 보면 회막에 들어갈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말로 미루어 볼때 아마도 나답과 아비후가 독주를 마시고 회막안에 들어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지금으로 치면 목사가 술먹고 설교한 것과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아무튼 나답과 나비후는 제사와 관련된 하나님의 율법을 심각하게 어긴 것이죠.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 아론과 나머지 아론의 아들들은 속죄제와 관련하여 평민이나 족장이 드린 제물은 기름만 태우고 나머지 부분은 그것을 버리지 않고 먹어야 했는데 오히려 그 나머지 부분을 먹지 않고 버려버리는 죄를 짓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모세가 아론과 그 나머지 아론의 아들들에게 책망을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론과 다른 아들들의 이러한 율법을 어긴 행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을 까요?

 

그 이유는 레위기 10장 19절에 나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는데 자신들이 어찌 염치없이 그 속죄제물을 먹을 수 있겠느냐며 반문하는 대목입니다.

 

즉 아론과 나머지 아들들(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속죄제물을 먹지 않은 이유가 자신들은 그것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그런 그들의 태도때문에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지만 나답과 아비후와 달리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언약적 율법을 주셨듯이 사실 우리에게는 본성적인 율법 즉 양심 나아가 도덕을 주신 목적이 무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인간에게 주신 진짜 목적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도록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론은 비롯 외양상으로는 율법을 어겼지만 자신의 죄인됨을 깨달음으로써 오히려 율법의 목적은 이루었습니다. 그 결과 나답과 아비후와 달리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왜냐하면 율법이 요구하는 진정한 목적과 의도데로 반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보면 안식일날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문제를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따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누가 너의 이웃이냐라고 묻는 질문이 나옵니다.

 

이 모두가 바로 이런 율법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과 신약은 서로 통하고 있는 것이죠.

 

동시에 이 부분은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에덴 동산에 두시고 다른 모든 나무의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목적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사실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예수님의 속죄를 예표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완성된 결과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폐지되었던 것이죠. 다만 레위기의 제사제도에서 담긴 그 근본적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예배와 삶에서의 성결이라는 주제에 관련한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 인간이 죄인이라는 뼈저린 인식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통해서 율법을 주신 진정한 목적을 성취하는 삶들이 되시길 바래봅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여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삶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구요.

 

왜냐하면 예수님이야말로 율법을 완성하신 지혜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프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진화론의 사기적 화석연대측정 jesus christ is our king

화석연대측정방법이 아래 설명하는 데라면 기존의 진화론적 설명은 한마디로 사기라고 밖에.



....................



그러면 하나 궁금해지는 게 있습니다.

 

종종 뉴스에서 '~천만년', '~억년' 된 생물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보도하는데요.

도대체... 그쯤 되었다고 추정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7천만년 되었다고 단정되어버린 거대개구리에 대한 상상도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219601002

 

 

 

위에서 언급했듯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에는 측정할 만한 동위원소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탄소동위원소 역시 적용 자체가 불가능하죠.

 

 

 

 

 

 

그럼 뭘까요?

이게... 자세히 뜯어보면, 좀 당혹스럽습니다.

 

어떤 물고기화석을 들고가서 먼저 생물학자에게 연대를 물으면, 생물학자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직접 연대측정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물고기화석이 그랜드캐년 화석 중에 요기 퇴적층에서 나왔는데, 이 퇴적층은 퇴적순서상 고생대 무슨무슨 기(期)에 해당되는 지층이기 때문에, 대략 3억년쯤 전에 형성된 퇴적층입니다. 근데 거기서 이 물고기화석이 나왔으니, 이 물고기는 3억년쯤 전에 출현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 화석을 지질학자에게 가져가서 그 연대를 물으면, 지질학자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직접 연대측정은 못합니다. 하지만 이 퇴적층에서 이 물고기화석이 나왔는데, 이 물고기는 진화의 순서상 고생대 무슨무슨기에 해당되는 시기에 살았을 생명체이기 때문에 이 화석은 3억년 전쯤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근데 그 화석이 이 지층에서 발견되었으니 이 지층은 3억년쯤 전에 퇴적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떤가요? 납득이 되시나요?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저 논리는 '순환논증의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생물학자는 지질학자의 말에 근거를 두고 있고, 그 지질학자는 생물학자의 말에 근거를 두고 있으니까요.


.................



 

지구는 결코 수십억년이 되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원시수프... 단세포가 진화... 중생대 고생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런 걸 이야기할 만큼의 시간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구가 젊다는 증거 세 번째.

 

알로사우르스, 아크로캔토사우르스 등 대표적인 공룡들의 뼈 속에서,

탄소동위원소연대측정법으로도 측정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양의 탄소가 남아있다는 겁니다.

 

 

 

수천만년 전에 죽은 동물뼈라면 연대측정 자체가 불가능해야 합니다만,

상당히 디테일하게 16000년, 25000년... 뭐 이렇다는 결과값을 도출할 만큼 넉넉한 탄소동위원소가 발견된다는 겁니다.

 

인터넷 성경연구 레위기 구약 5대 제사 jesus christ is our king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22과) 1.

레위기(2): 속죄제, 속건제, 제사장 규례(4-7장)

  
*죄를 용서 받거나 보상하기 위해 제사들 *

  우리는 지난 시간에 번제와 소제, 그리고 화목제사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제사들은 죄와 상관없이 평상시에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죄나 실수를 했을 때에 이를 용서받고 보상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가 사람에게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는 "속죄제사"라 불렀고, 과오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에게 해를 입힌 것을 보상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는 "속건제사"(보상제사)라고 불렀습니다. 오늘은 이 두 제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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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기는 번제나, 소제(곡식 제사), 그리고 화목제에 대해서는 회중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평범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속죄제('하타-')와 속건제('아샴')에 대해서는 제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두 제사는 모세 이전에는 따로 실시하지 않은 제시였기 때문이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상시에 자원해서 드린 제사였다. 그러나 속죄제와 속건제는 특별히 드려야 할 경우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때때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의 물건이나 남의 물건에 해를 끼칠 때가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이웃과의 관계도 매우 악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결국 우리의 영적 생활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거나, 하나님이나 이웃의 물건에 해를 주었을 경우, 신속하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또 화목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제사 규례를 제정해 주셨다. 그 제가사 바로 속죄 제사와 속건 제사였다."속죄 제사"는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였고, "속건 제사"는 하나님의 물건과 이웃의 물건에 해를 주었을 경우에 그것을 보상하기 위한 보상 제사였다.
 
<참고> 속죄제와 속건제의 같은 점과 다른 점

1. 같은 점
  이 두 제사는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경우에 드리는 제사"였다.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금한 일을 했거나, 또는 하라고 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이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제사는 결코 고의로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는 아니었다. 하나님은 고의, 또는 계획적으로 지은 범죄(짐짓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처벌하게 하셨다. 속죄 제사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죄는 실수나 연약함으로 지은 죄(그릇 범한 죄)였다. 속죄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죄는 1) 실수나 부지 중에 지은 죄(4:13,22,27,5:18), 2) 부주의로 인해 지은 죄(5: 1,4,15), 그리고 3) 무의식적으로 짓는 죄였다(민 35:11,15, 22, 23).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할 경우에 하나님께 나가 제물을 드려 죄를 속해야 했다.

2. 다른 점
  속죄제는 일반적으로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보편적인 경우에 드렸다. 그러나 속건제(보상제사)는 "1) 여호와의 성물을 드릴 것을 자기가 사용했거나(5:15-19), 2)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손에 넣고 부인하거나 거짓 맹세를 한 경우"에 이를 보상하기 위해 드려졌다(5:20-25). 성경은 이러한 죄를 가리켜 "여호와께 '불신실한'('마알')죄"라고 부르고 있다. '마알'이란 말은 '배반, 불신실, 침범하거나 훔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3. 제사 절차상의 차이점
 가. 속죄제는 속죄제물만 드렸지만, 속건제는 속건제물 외에 불법으로 취한 것에 1/5을 더한 배상이 요구되었다.
 나. 속죄제는 제물을 드리는 자가 그 제물을 죽이고 직접 불에 태웠다(4:15,24,29,33). 그러나 속건제는 제사장이 대신해서 제물을 잡았으며, 그 제물도 제사장이 먹어야 했다(14:12).
 다. 속죄제물은 개인의 경우 암컷을 드렸다(4:28,32). 그러나 속건제사는 제물로 수양이 필요했으며(5;18, 6:6), 훔친 것 외에 1/5에 해당하는 배상을 첨가했다(27:13,15,19,27,31).

1. 속죄제(4:1-5:13)

 1-1. 속죄제의 의미(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4:1-2)

  속죄제(Sin offering)는 히브리어로 '하타아트'(헬라어로는 '페리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이는 '죄를 위한 제사'라는 뜻이다. '하타아' 또는 '하마르티아'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이 말은 미래형으로 사용되면 '목표를 맞추지 못하거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 헛발을 디디거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성경에서 "죄의 본성"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죄를 지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한 목표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성도들은 "여호와의 금령 중에 하나를 그릇 범했을 때"에 이러한 속죄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그 명령을 어겼다". 이러한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제물을 드려야 했다. 이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는 과정이 바로 "속죄제사"이다. 우리는 속죄제를 다루는 레위기 4장에 "그가 속죄한즉 사함을 얻으리라"는 말이 약 10회나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속죄제의 핵심이 "죄 사함"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이말은 피엘형으로 사용되면 "어떤 것을 잃고 고통을 당하는 것", 또는 "속죄제를 드려 죄 씻음을 받고 자유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속제죄는 죄로 인해 고통에 빠져 있는 성도들을 죄와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한 제사였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제사는 죄를 심판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성도들을 죄와 죄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규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의 속죄제물로 세상에 보내주셨다. 하나님은 길 잃은 양처럼 하나님의 목표에서 떠나 방황하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보내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를 용서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통해서 모든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되었다. 

1-2. 속죄제의 4가지 종류와 그 절차(레 4:3-35)

  하나님은 속죄제의 규례를 네 종류, 즉 1) 제사장(3-12), 2) 온 회중(13-21), 3) 족장(22-26), 그리고 4) 평민(27-35)으로 구분해서 제정해 주셨다. 이러한 제사 규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제정된 것이었다.
 1) 죄는 누구나 다 범할 수 있다-제사장이나, 이스라엘 회중이나, 족장, 그리고 평범한 백성들 모두 범할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3:23)고 선언하고 있다.
 2) 각자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다-하나님은 백성들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여 각자의 상황에 맞는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하나님은 부유한 자들에게는 값비싼 희생을,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값싼 제물을 요구하셨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의 경제적인 여건을 최대한 고려해서 내려진 조치였다.

 가. 제사장이 드리는 속죄제사(3-12)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3)

  
* 제사장 속죄 제사의 의미

  아마 일반 신자들은 제사장만은 거룩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음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히 5:1-3)

  히브리서 기자는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이 사람 중에서 선택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사장 역시 인간이기에 언제든지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이 죄를 지은 경우에는 그 책임이 일반 회중보다 훨씬 중했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죄는 자신으로 끝나지 않고, 백성 전체에게 "죄얼"(죄의 영향-재앙)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지도자들이 범죄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 사탄은 영적 지도자를 먼저 공격의 목표로 삼는다. 왜냐하면 그는 영적 지도자가 타락하면 그 영향이 전체 회중에게 크게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 제사장 속죄 제사의 절차 

 1) 속죄 제물로 수송아지를 드림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3-4)

   범죄한 제사장은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고 와야 했다. 제사장의 속죄제물은 흠 없는 수송아지였다. 이 수 송아지는 죄를 지은 제사장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서 희생될 송아지였다. 제사는 항상 회막 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죄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용서를 구해야 한다.

 2) 안수("..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4)
  제사장은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가져간 다음에 그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죽였다. 제물 위에 안수하는 것은 자신을 제물과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하며, 제사 드리는 자의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의 죄가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주님께 전가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3) 죽임("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4)
  제사장은 자신을 대신하여 제물을 죽여야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셨다.

 4) 휘장 앞에 피를 뿌림(5-6)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5-6)

  제사장의 죄는 엄중히 취급되었다. 제사장의 속죄를 위한 제사는 다른 제사들과 같이 번제단에 피를 뿌리지 않았다. 제사장의 속죄제사는 제사장이 직접 성소 안에 들어가서 언약궤가 있는 휘장 앞에 속죄를 위해 피를 7번 뿌려야 했다. 이것은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경우 다른 사람이 중개할 수 없고 제사장이 직접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죄를 속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에서는 이 휘장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때에 성전 휘장이 찢어지게 되었다. 제사장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5) 피를 향단 뿔에 바름
  "제사장은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7)

  향단 뿔은 기도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것은 제사장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6) 피를 번제단 밑에 쏟음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 단 밑에 쏟을 것이며..."(7)

   그 제물의 나머지 모든 피는 회막 문 앞에 있는 번제단 밑에 부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신 후에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서 물과 피를 모두 흘리셨다.

 7) 번제단 위에 기름을 불사름((8-10)
  "또 그 속죄 제물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취할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화목제 희생의 소에게서 취함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8-10)

  속죄제의 경우에는 화목제의 제사와 같이 가장 기름지고 귀한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셨다.

  8) 나머지는 모두 버림(11-12)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사를지니라."(11-12)

  속죄제 제물은 제사 드리는 자의 죄를 담당했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진 바깥에 가져다가 불살라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머리에 가시관, 양팔과 다리엔 못, 허리엔 창, 그리고 온 몸에는 채찍을 맞아 모든 몸으로 형벌을 받으셨다. 그리고 성밖에서 저주받은 몸으로 죽으셨다(히 13:11-13, 9:11-10:18).

 

 나. 회중이 드리는 속죄제사(13-21)
  이스라엘 온 회중 전체가 실수로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를 범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이 경우 온 회중이 그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후에 그 죄를 깨닫게 되면, 그들은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다. 이때에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로 드렸으며,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제물에 안수하고, 그 후에 그 소를 속죄 제물로 드렸다. 우리는 때로 교회나 민족 전체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전에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것도 이러한 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뛰어 놀던 경우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회중의 속죄 제사는 백성의 지도자인 장로들이 백성들을 대표해서 제물에 안수했으며, 그 제물을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렸다. 이러한 제사 절차는 제사장의 속죄제사의 경우와 동일했다.


 다. 족장의 속죄제(22-26)
  족장들도 여호와의 금령을 부지중에 범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로 인해 허물을 가지고 있다가, 후에 그 죄를 깨닫게 되면 여호와께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다. 여기에서 "족장"은 정치적 지도자를 의미한다. 우리는 정치적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족장들이 죄를 짓게 된 경우에는
수송아지 대신 흠 없는 수 염소가 제물로 드려졌다. 그러나 족장의 속죄제는 제사장이나 회중의 제사처럼 제물의 죄를 휘장 앞이나 향단에 뿌리지 않고, 번제단 뿔에 발랐으며, 그리고 남은 피는 모두 번제단 밑에 뿌려야했다. 그 외의 나머지 제사 절차는 모두 제사장이나 회중의 속죄 제사와 같았다. 우리는 이러한 제사 규례를 통해서 족장의 속죄제사가 제사장이나 회중의 죄보다는 가볍지만, 개인보다는 엄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이 범죄할 가능성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딤전 2:1-2).

 
 라. 평민의 속죄제(27-35)
  평민의 경우에는 흠 없는
암염소, 또는 어린 암양을 속죄제물로 드렸다. 그리고 나머지 절차는 모두 족장의 경우와 같았다. 일반적으로 통치자는 수컷을 제물로 드렸고, 평민들은 암컷을 드렸다. 이것은 당시의 문화를 따라 수컷은 지도자를, 암컷은 평민을 상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 "특별히 언급된 속죄제(속건제)의 경우">(레 5:1-4)

1. 법정에서 피고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때에, 그가 죄를 지은 사실을 알고도 말을 하지 않은 경우. 재판관이 피고의 증언에 대한 사실여부를 묻고 사실을 아는 자는 증인으로 나서 달라고 요청 할 때에 증인으로 나서지 않은 경우. 그는 고의적으로 재판관이 잘못 판결을 내리게 만든 죄의 책임을 져야 했다(5:1). 

2.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모든 부정한 것(곤충, 짐승, 가축, 또는 사람의 시체 등)과 접촉하여 부정케 되었다가 후에 그것을 깨닫게 된 경우(5:2-3).

3. 지킬 의사도 없이 빈말로 맹세하여 선이든 악이든 하겠다고 한 경우. 맹세한 자는 무심중에 경솔하게 맹세하였기 때문에 죄의 책임을 져야만 했다(5:4,5-6).

  이러한 경우에 죄를 범한 자는...
 1) 스스로 그가 범한 과실을 자복하고(5)
 2) 어린 암 양, 또는 염소로 속죄제를 드려야 했으며,
 3) 제사장이 그의 허물을 위하여 그가 드린 제물로 속죄 제사를 드려 속죄해야 했다(6).


 마.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속죄제(5:7-13)
 
 * 비둘기를 드리는 경우(7-10)
  만일 어린양을 드릴 힘이 되지 않으면,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중에서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속죄제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드렸다. 제사장은 속죄제를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않은 채로 그 속죄제물의 피를 단 곁에 뿌렸으며, 그 뿌리고 남은 피는 단 밑에 흘렸다. 그리고 번제로 드리는 것은 번제의 규례와 같았다.

  * 곡식을 드리는 경우(11-13)
  만일 비둘기도 드릴 힘이 없을 경우에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속죄 제물로 제사장에게 가져갔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중에서 한 웅큼을 집어서 단 위에 불살라 그를 위하여 속죄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남은 가루는 소제의 경우와 같이 그를 위해 제사를 드린 제사장의 소유가 되었다. 이때에 소제와 달랐던 점은 속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기름이나 유향을 놓지 못하게 한 점이다.


<참고: "속죄 제물의 처리">(레 6:24-30)-죄를 담당하는 제사장-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물 희생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레 6:25-26)

  "무릇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느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제사장과 회중의 속죄제물-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레 6:27-30)

  이것은 속죄 제사를 드린 제사장이 그 백성의 죄를 담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사를 대신 드린 제사장은 그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 지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할 때에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시고 우리의 죄가 용서받도록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요일 1:8, 2:1 참조).   


1-3. 속죄제의 특징


 1. 제사의 규례가 대상과 재력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제사장과 회중(수송아지)
  속죄의 피를 성소 안에 들어가서, 휘장 앞 향단에 바르고 나머지 피를 번제단 밑에 쏟음.

  +-족장(수염소)
  속죄의 피를 번제 단에만 바르고 나머지는 번제단 밑에 쏟음.    

  +-평민(어린 암양, 암염소)
  제사의 규례는 족장의 경우와 같음.

  +-가난한 자
  1)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드리는 경우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속죄제, 하나는 번제로 드림.
   기름을 드리거나, 몸을 진 바깥에 버린다는 언급이 없다.   
  2) 고운가루 에바1/10을 드리는 경우
  기름이나 유향을 놓지않고, 제사장이 한 웅큼을 집어 단에 태워 속죄제를 드렸으며,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었다.

 2. 속죄 제사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한 제사가 아니라,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다.

 3. 제물이 번제와 같이 모두 단에 불살라지지 않고, 기름을 제외한 모든 제물이 저주 받
   은 것으로 간주되어 진 바깥에서 불살라졌다.

 4.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으로 인해 부지중에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다.

 
1-4. 적용: "속죄제를 통해 본 영적인 교훈"

  1.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거나 부주의함으로 짓는 죄를 덮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의적이나 습관적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벌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공의를 이루기 위해 행하시는 당연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가 고의로 지은 모든 죄까지도 덮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고의로 죄를 범할 때 징계하심으로 그들을 바로 잡아 주신다.

  2. 자신의 말에 무책임하거나 세속적인 부정에 접촉한 자들은 허물이 있다. 법정에서 위증죄를 범하거나 세속의 삶에서 부정한 것과 접촉하거나, 경솔한 맹세를 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삼가 조심하여 행동해야 한다.

  3. 모든 범과들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죄를 지을 때에 하나님께 자백하지 않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고 사단의 정죄에 의해 죄책과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범했을 경우에 반드시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기의 모든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인 하나라도 멸망치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4. 우리는 죄를 짓고 회막문 앞으로 속죄 제사를 드리러 나온 사람을 통해 "죄를 지은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길을 떠나 죄를 지었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생명과 축복을 상실하고, 죄책과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롬 1:18-23, 3:9-18, 5:12, 6:23). 그러나 죄인된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그 죄의 값을 요구하실 때에, 그 값을 능히 지불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속죄제물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서만 우리가 지은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할 수가 있다.

  5. "누군가 희생되어야 누군가 살아날 수 있다" 인간의 죄의 값은 사망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야만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일생을 흠 없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 일생 동안 모든 시험을 이기며 의를 지키셨다. 죄가 없는 것은 흠 없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운 삶을 사신 후에 흠 없는 제물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다. 주님께서는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다(롬 5:15, 벧전 1:18-19).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레 17:11).

  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회막 앞과 같은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제물로 드려졌다. 그리고 속죄제물이 밖에서 불살라지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고 성문밖에 있는 골고다로 나아가셔서 자기의 모든 몸을 나무에 매달아 저주받은 몸이 되셨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한 속죄제사를 단번에 드리시고, 하늘 성소에서 들어가셨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이 되셔서 모든 죄인을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히 9:11-15, 23-27).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13:11-13, 9:11-10:18)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

  "다 이루었다 !"(요 19:30)

  7. 주님께서는 성직자와, 부자, 그리고 가난한 자 모두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되셨다. 이것은 속죄제물이 신분에 따라 다른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모든 연령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희생되셨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주님께 나아오는 자를 거절하시는 법이 없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사53:4-6)

2. 속건제(5:14-6:7)-배상 제사-

 
2-1. 속건제의 의미
  
 속건제(trespass offering)는 히브리어로 '아샴'이라고 하는데, 이는 율법이나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행한 범죄(guilt)나 범법행위(transgress=법률을 범함), 또는 남의 것을 범해서 입힌 손해(damage)를 용서받고 배상하기 위한 제사이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죄 제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속건제는 하나님과 이웃에게 입힌 손해를 속죄하고 보상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보상 제사"라고 부른다.

  속건제(또는 '면제죄')는 고의적이든지 비고의적이든지 남에게 상해나 손실을 입혔을 때에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속건'(trespass)이란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금지된 곳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이 제사는 1) 하나님께서 정한 윤리적 규례들을 어기거나, 2) 자기 의무에 태만히 하여 남에게 해를 입힌 경우, 또는 3)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고 부정케 되었을 경우에 드려졌다. 하나님은 이러한 경우에 그 죄를 속하고 남에게 입힌 손해를 배상하고, 자신을 정결하케 하기 위해서 속건제를 드리도록 명하셨다(레 5:14-6:3).

  속건제의 규례는 손해를 끼친 것의 1+1/5를 배상하도록 되어있었다. 이러한 규례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부정하게 되었을 때에는 정결하기를 원하시며, 남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배상을 요구하신다. 이 제사는 손해를 입은 사람과 손해를 입힌 사람이 모두 거룩과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드린 제사였다.


 2-2. 속건제를 드리는 경우 (5:14-6:7)

 가. 성물을 범했을 때 (14-16)-성물에 대한 의무 불이행-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잘못하여 범과 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15)

  여호와의 성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즉 화목제물, 거룩한 예물들, 제물들, 가축의 첫 태생, 땅의 첫 소산, 십일조 등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서 성별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물건을 취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그것을 취하거나,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았다가 그것이 생각나면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물을  범하는 경우에 그것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책망하신다(수 7:1-아간의 경우, 말 3:7-12-십일조 헌물을 범한 경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에 대하여 엄중하게 처벌하신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

 나. 부지중에 범한 죄에 대한 속건제(17-19)-속죄제와 동일함-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지중에 여호와께서 금하신 명령 중에 하나를 범하게 되면 그는 속건제 또는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는 율법에서 지정한 가치에 따라 수양을 속건 제물로 드린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위해 속건 제사를 드린다. 그러면 이 모든 절차가 마친 후에 그의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다. 하나님께 신실치 못하여 남에게 해를 입힌 경우(6:1-7)
 * 남의 물건을 맡거나 또는 전당을 잡힌 경우, 남의 물건을 강도질했거나, 늑봉 하고도(강제로 부당하게 빼앗음) 사실을 부인한 경우(2)

 * 폭력으로 남의 물건을 취한 경우/ 잃어버린 물건, 거짓 맹세(3)
  이 경우에는 물건의 임자에게 빼앗은 것이나, 강제로 빼앗은 것이나, 저당 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거짓 맹세한 물건에 1/5을 더하여 돌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가서 율법이 지정한 가치에 합당한 수양을 가지고 속건제를 드려서 허물을 속해야 한다.(6-7)


 2-3. 속건제의 절차 (5: 5,6,15-18, 6:4-7)

 가. 범죄한 사실을 제사장 앞에서 자복 한다(5:5).-자백-
 나. 피해를 입힌 경우는 피해 입은 사람에게 1/5을 더하여 돌려준다. 성물의 경우는 제사장       에게 드려졌다.
 다. 성소의 세겔로 값에 맞는 흠 없는 수양을 회막 앞으로 끌고 가서 속건 제물로 드린다.  라. 제사장이 속건 제물로 그의 죄를 속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5:16).  

2-4. 속건제의 영적인 의미

 가. 속건제는 성도가 신앙 생활 가운데에서 범한 죄나, 자기 의무를 태만히 해서 남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에 드리는 사죄와 보상에 대한 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범죄는 (히 6:1-,10:26-31)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용서받지 못할 죄"는 아니다(성경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하나님이나 진리를 배반"하거나, 성령을 거스리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죄는 실수와 부족함으로 인해 범죄하거나, 의무 태만, 경솔한 행동, 그리고 부정케 된 경우를 말한다.

 나.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경우였으며, 그 외에는 모두 속죄제사를 드렸다. 
 * 첫째-하나님의 성물을 범했을 때
  신앙에 약하고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한 성도들이 범하기 쉬운 죄.
 * 둘째- 하나님의 법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지키지 않은 경우(속죄제와 동일함)
 * 셋째-이웃에게 악 행하거나 물질에 손해를 준 경우
  -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음/ 분실물 습득/ 저당물/ 거짓맹세로 남에게 해를 입힌 경우
 * 넷째-시체로 인해 몸이 부정케 된 경우
  - 하나님의 소유가 된 우리 몸이 죄로 인해 부정케 된 경우.

 다. 속건제는 위와 같은 범죄가 있을 때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해결하기 위한 규례였다. 이 제사 규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속죄 원리가 나타난다.

  @. 잘못이 있을 때는 자백하고 인정하라.
  @.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
  @  번제는 계속해서 드리지만 속건제는 한 번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하나님의 직무를 맡은 사람은 예배자들이 진실로 회개할 때 용서를 통해서 그들이 회복     되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 하나님의 직무자는 그들로부터 영적인 분깃을 가질 수 있다.

 예 1) 삭개오의 회개와 보상은 이러한 속건제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

 예 2) 주님의 다음과 같은 명령은 속건 제사의 정신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  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 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 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들까 염려하라."(마5:21-22)

 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을 위한 속건 제물로 삼아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생명을 통해 우리의 지은 과오와 허물보다도 훨씬 많은 대가를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와 죄책을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9)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 제사장들이 준수해야 할 제사 규례들(6:8-7장) *

  우리가 그 동안 생각해 본 (레 1:1-6:7)의 내용은 회중, 즉 일반 평민의 입장에서 준수해야 할 제사의 규례였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언제, 어떤 제물을 가지고,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제사를 드리는 평민의 규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이 알아야 할 규례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평민의 입장에서 5대 제사 규례를 말씀해 주신 후에 다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알아야 할 5대 제사 규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이러한 점에서 (레 6:8-7장)은 "제사장의 입장"에서 알아야 할 "5대 제사 규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은 제사장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제사를 준비하고, 집례하며, 또한 제사를 드린 후에 어떻게 제물을 처리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예배 인도자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그 사후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설명한 규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부분을 통해서 성도들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이 제단에서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 지에 대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1. 번제의 규례(6:8-13)

 +-번제물은 단 위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 위의 불은 항상 꺼지지 않게 한다(9).
 +-제사장은 긴 세마포 옷으로 하체를 가리고, 단 위에서 번제의 재를 거두어 단 곁에 두었다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진 바깥에 있는 정결한 곳에 버린다(10-11).                    
 +-제단에는 항상 제사장의 예복을 입어야만 접근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재를 버리기 위해 서 진 밖으로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일반 복장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아침에 나무를 놓고 번제물과 화목제물의 기름을 그 위에 태운다(12-13).

 * 제사장은 제단 위의 불이 항상 타오르게 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언제든지 회중들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수 있도록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 것은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것이었으며, 제사장들은 반드시 이 불로만 제물을 태워야 했다. 이 불은 오늘날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을 상징한다. 성령께서는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믿는 순간부터 그들 안에 거하신다. 성도들은 인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으며, 단지 성령과 진리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참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성령에 의해서만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 예배 집례자는 항상 이것을 기억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해야 한다.   

 * 제사장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의복을 입고서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제사장 의복을 입지 않고 제사를 집례하면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직분에 맞는 의복을 제사장들에게 주셨다. 이것은 제사장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제사를 인도하는 일 자체가 거룩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인도자가 그 직분에 합당한 영광을 나타날 수 있기를 원하신다. 그들이 단 위에 태운 재를 버리러 진 밖으로 나갈 때에는 그 예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 재는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사장의 의복은 부정하게 취급될 수 없었다.

 * 제사장들은 아침마다 재를 버리고 항상 제단의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예배 인도자는 예배드리는 장소가 항상 정결하도록 유지해야 한다. 제단을 더럽히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 예배 인도자는 항상 예배가 정결케 되도록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청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소제의 규례(14-23)

 +-소제물은 제단 앞(여호와 앞)에 드린다(14-). 모든 소제물은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한다.
 +-고운 기름과 가루 한 웅큼, 그리고 그 위에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라 여호  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한다(15-).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않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었다  (16-). 이 제물은 거룩하게 취급되었으며 이 제물에 접촉하는 자도 거룩하게 되었다.

 * 제사장은 백성들의 소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만 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장소와 방법을 따라서만 제물을 드려야 한다. 제사장들은 성도들의 감사 예물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도록 중보하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

 소제물에는 고운 기름, 고운 가루, 유향 등이 첨가되었다. 제사장은 소제물 중에서 기념되는 부분만 제단에 불사르고, 그 나머지는 회막 뜰에서 먹어서 그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게 해야 한다. 제사장이 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아서 드신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 온유한 인격(고운 가루)과, 성령의 힘(기름), 기도의 자세(유향), 그리고 변함 없는 믿음을(소금) 가지고 나아와야 한다. 이 소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서 아론 자손의 제사장 중에 남자들만 먹을 수 있었다.  

 * 이 소제물에는 누룩이나 꿀을 넣는 것이 금지되었다.
  예배 인도자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거룩한 삶을 살도록 죄나 외식(누룩), 그리고 쾌락을 추구(꿀)하지 않도록 인도해야 한다.


<참고: "제사장의 소제"> (19-23)
  아론과 그 자손들은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한 직분을 담당하는 날에 하나님께 소제를 드렸다. 이 소제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기름으로 반죽하여 번철에 구워서, 기름에 적시었다가, 썰어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도록 태워서 드렸다. 이 제사는 그 이후 매일 아침과 저녁에 두 차례씩 드려졌다(19-21). 이러한 제사장이 드리는 소제물은 모두 다 제단에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졌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제사는 중보자 없이 하나님께서 바로 받으신다는 것을 상징한다.(22-23). 예배를 인도할 사람들은 예배자를 인도하기 전에 항상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서 바르게 헌신이 되어 있어야 한다.


3. 속죄제의 규례(24-30)

 +-속죄제의 희생은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았다(25-).

 +-제물은 그것을 드린 제사장이 거룩한 회막 뜰 안에서 먹되, 제사장의 남자들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죄를 위해 드려진 속죄물은 모두 다 태워야 했다(26,29,30).

 +-속죄 제물은 매우 거룩하게 취급되었다. 누구든지 이 고기에 접촉되는 자는 거룩하게 취 급 되었으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그 옷을 거룩한 곳에서 빨았다. 그리고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물이 토기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깨뜨려야 했고, 만일 도자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로 씻어야 했다.

*-제사장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가 그들이 죄를 용서받도록 봉사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성도들이 드리는 회개의 제사를 하나님께 열납되게 하고, 그 제물을 정한 곳에 먹어서 완성시켰다. 예배 인도자들은 백성들이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중보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예배 인도자들의 죄는 하나님께서 친히 용서하신다.

 *-제사장들은 속죄 예식이 속되게 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제사장은 제물의 피가 닿은 옷을 정결케 해야 하며, 재물을 삶은 토기는 깨뜨리고, 청동 그릇은 물로 닦아야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속죄 행위가 속되게 되는 일들을 방지하는 것이다. 예배 인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성도들의 회개와 속죄 행동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죄를 속해주셨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4. 속건제의 규례(7:1-10)

 +-속건제는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취급되었다.(1-)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속건제의 희생을 잡았으며,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렸다(2-).
 +-그 모든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화제로 드렸다(기름진 꼬리, 내장에 덮인 기름, 두 콩 팥, 허리 근방에 있는 기름, 간에 덮인 꺼풀, 콩팥)(3-5)
 +-제사장의 남자들이 그 고기를 먹었다. 제사장 소유-번제(가죽), 소제물(공평히 분 배)(6-10)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속죄하게 한 후에, 그들이 하나님의 성물과 이웃에게 입힌 피해를 보상하게 함으로 공의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회개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에게 돌려졌다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21과) 4.

레위기(1): 번제, 소제, 화목제(1-3장)

 

 

1. 번제(burnt offering: 태워드리는 희생제사)(1:3-17).

 1-1. 번제에 사용된 제물들(3-9)-양,염소(가축), 비둘기(새)(3--17)
  번제는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는 제사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헌신할 때에 제사 드리는 사람을 대신하여 짐승을 제물로 드리게 하셨다. 이러한 제물은 모두 사람들과 가깝고, 사랑 받으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온순하고, 길들여진 것이었다. 이 제물은 온전하고 흠 없는 최상의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제물들을 지정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제사 드리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함
  - 소: 족장, 부자들의 제물
  - 양, 염소: 일반인
  - 비둘기: 가난한 사람
  소는 힘있고 강한 것으로 세력있고 재물이 많은 사람이 드리기 적당했고, 양이나 염소는 일반인들이 드리기에 적합했다. 그리고 연약하고 값싼 비둘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기에 적합했다. 이는 빈부의 차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짐승:
  제물은 죄인을 위해 희생당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러한 제물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들이다. 소는 강함과 근면 봉사 희생을, 양과 염소는 양순과 순종을, 비둘기는 온유와 순결을 상징함.

  *우리가 쉽게 드릴 수 있는 것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지시하셨다.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흠이 없는 것이 우리의 제물이 될 수가 있다.  


 
1-2. 번제를 드리는 순서

  가) 소를 드리는 경우(1:3-9)-부유한 자가 드리는 헌신-
  
  * 선택(3)
  소의 제물은 흠 없는 수컷을 선택했다. 제물은 흠 없는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제물은 그 제사를 드리는 자를 대신하는 것으로 가장 최상의 것을 드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리도 하나님께 헌신할 때, 우리의 가장 귀한 때에,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한다. 온전한 제물만이 제사 드리는 자의 죄를 속할 수 있었다. 이 제물은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드림(3)
  회막문 앞에서 여호와께 열납 하시도록 드림. 제사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대로 드려야 했다.

  * 안수(스미하)(4)
  번제단 북쪽에서 제사 드릴 사람은 동물의 머리를 서쪽(법궤 쪽)으로 향하고, 동물의 뒤에 서서 동물의 머리 두 뿔 사이에 두 손으로 힘껏 안수하고 죄의 고백을 한다. 그리하면 그를 위해 속죄가 되게 되었다. 제사 드리는 자가 제물에 안수를 하게되면, 그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된다. 이 제물은 제사 드리는 사람의 죄를 덮는 역할을 하였다.

  * 죽임(슈히타)(5)
  제사 드리는 사람은 제단에서(1:11), 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소의 오른쪽 앞다리와 뒷다리를 함께 매고, 그리고 왼쪽 앞다리와 뒷다리를 함께 매고(전설에 의하면 한번도 제물이 반항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소의 목을 찌른다. 이와 같이 제물이 사람 대신 피를 흘림으로써 제사 드리는 자를 대신하여 희생이 되었다. 이것은 동물이 희생됨으로 인간의 죄가 속함을 받게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군가 희생이 되어야 누군가 살아 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심으로 인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피 흘림이 없은 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

  * 피뿌림(체리카)(6)
  속죄의 완전성. "피를 단 사면에 뿌림". 이것은 제물의 생명이 제단에 드려진 것을 의미하며, 짐승이 제사 드리는 자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 각을 뜸(6)
  제사 드리는 사람은 그 다음에 그 짐승의 가죽을 벗겼다. 그리고 이렇게 벗긴 가죽은 불로 태우지 않고 제사장의 소유가 되었다(레7:8,고전9:13). 가죽을 벗기지 않으면 제물이 불이 붙기 어려우며 또한 역겨운 냄새를 낼 것이다. 가죽을 벗기는 것은 외식이나 형식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식과 형식적인 헌신은 하나님께 가증한 헌신이 된다. 그리고 나서 제물의 각을 뜬다. 각을 뜨는 순서는 먼저 머리를 자르고, 가슴→오른쪽 옆구리→엉덩이→네 다리→목→기관지→심장→왼쪽 옆구리→내장의 순으로 잘라낸다. 모든 부분을 각을 떠서 하나님께 드리는 순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할 때에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머리는 우리의 생각을, 내장은 우리의 마음과 정서를, 다리는 우리의 행위를, 기름은 우리의 에너지와 힘을 상징한다. 이 모든 것을 제단에 다 태워 드리는 것은 우리가 헌신할 때에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고기를 번제단에 올림(하크타라)(7-8)
  그 후에 제사장들은 그 각뜬 것들을 제단의 불에 올려놓고 태웠다. 번제는 제사 드리는 자가 자신의 생명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이 제사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어 태움(9)
  내장에 붙은 온갖 더러운 이 물질들과, 매일 걸어다니면서 흙이 뭍은 네 다리의 아래 부분은, 깨끗이 씻어야 단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의 죄의 동기와 생각들, 그리고 매일의 생활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까지 깨끗이 씻어야,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제사장이 재를 버리는 법"(6:10-11)
  번제를 드리고 탄 재는 제사장이 옷을 갈아 입고, 진 바깥의 재 버리는 곳에 버렸다.


  
나) 양이나 염소를 드리는 경우(1:10-13)-평민이 드리는 헌신-
  양은 순종의 짐승으로서 성경에서 연약한 죄인을 상징하기도 하며, 때로는 속죄양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사야는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사 53:6)고 하였다. 여기에서 양은 죄인 된 인류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양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우리는 창세기 22장에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대신한 수양을 발견한다. 그리고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을 죽음의 사자에게서 구하기 위한 유월절 양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양은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한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성경에서 제물인 경우에 양과 염소를 같은 것으로 취급한 것으로 보인다. 양이나 염소로 드리는 번제의 절차는 수송아지로 드리는 번제의 경우와 같으며, 안수하는 절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생략되었다. 그리고 제물을 잡을 때 단의 북편에서 잡도록 지시되어 있는 것만이 달랐다.


  
다) 비둘기를 드리는 경우(레 1:14-17)-가난한 자가 드리는 헌신-
  이 번제는 주로 가난한 자들에 의해 드려졌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도 제물을 준비해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빈부의 차이를 구별하지 아니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유한 자들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도 번제물도 되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누구보다 가난하게 사셨으며, 따라서 가난한 자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신다. 우리는 이와 같이 다양한 제물들의 모습들을 통해서 각자의 형편에 맞게 나타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부유한 자나, 중산층이나, 빈민층의 어느 누구에게라도 친근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사실 성경에서 비둘기는 순결 외에도 슬픔을 상징하는 데에 사용되었다(사 59:11, 38:14 참고). 많은 슬픔과 고난을 당하는 빈민들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질고와 고난을 당하셨다. 비둘기를 드리는 제사의 경우는 다른 짐승을 드릴 때와 몇 가지 점에 있어서 달랐다. 다른 짐승은 제사 드리는 자가 직접 잡게 되어 있으나, 비둘기만은 제사장이 직접 잡았고(머리를 자를 때 칼을 쓰지 않고 엄지손톱을 썼다), 가죽을 벗기지 않았으며, 모두 제단에 불태우지 않고, 더러운 멱통과 위와 내장들을 제해 버렸다.

  * 선택(14)
  이스라엘에서 제물로 드리는 비둘기는 조금 자라면 엷은 노란색이 되고, 또 조금 지나면 금색이 되었다. 집비둘기는 3개월 지나면 이런 색깔이 되었고, 야생 비둘기는 3년 정도 되어야 이런 색깔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가 하나님께 드리기에 가장 좋은 때였다.

  * 제사장에게 비둘기를 갖다 줌  

  * 단으로 가져감(15)
  제사장은 비둘기를 그로부터 받아 가지고 번제단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남동쪽 모서리에 비둘기를 가지고 선다.

  * 머리를 비틈(15)
  제사장은 번제단 위에 서서 비둘기를 잡는다. 오른손 등에 비둘기를 놓고, 넷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 사이에 그 다리를 끼우고, 둘째손가락과 셋째 손가락 사이에 그 날개를 끼우고,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사용하여 비둘기 목 뒷부분을 자른다. 이때 식도와 모든 목을 통과하는 기관지를 모두 자르되, 목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인간의 죄를 위해 희생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피가 없이는 죄의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

  * 피를 흘림(15)
  제사장은 비둘기를 빨래를 짜듯 눌러서 피를 빼고, 그 피를 번제단 곁에 뿌린다.

  * 더러운 것을 제함(15)
  제사장은 목과 위 사이를 찢어서 멱통과 위와 내장들을 꺼낸다. 그리고 그것을 번제단 동편에 있는 재 버리는 곳에(약 9미터 정도 떨어져 있음)던져 버린다.

  * 몸을 찢어서 단 위에 불사름(17)
  제사장은 손으로 비둘기의 등을 가르는데, 이 때에 비둘기의 앞부분이 찢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한 제물을 소금과 함께 번제단 위에서 태웠다. 이렇게 할 때에 이 제물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가 될 수 있었다. 제사장들은 비둘기로 제사를 드릴 때, 가난한 자의 제사라고 해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비둘기의 제사 경우에 제사장이 무척 주의를 기울여 제물을 준비해야 했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비둘기가 상하거나 찢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사장들에게는 비둘기의 제사가 가장 어렵고 신경이 쓰이는 제사였다. 우리는 이 모습 속에서 가난한 자의 제사를 열납받게 해 주시려는 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발에 기름을 붓고 눈물과 머리털로 그 발을 씻기던 가난한 여인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에 대하여 크게 칭찬하셨다. 성경 곳곳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용납해 주시는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주님은 "상한 심령을 가진 자"를 영접하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 이셨다. 가난한 자들이 바치는 정성스러운 헌신이 비록 비둘기같이 값싸고,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부유한 자들에게 아첨하고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는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1-3. 번제의 의의
  * 번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9-).
  * 번제는 제물의 전체가 태워지는 제사였다.
  * 번제는 짐승의 생명과 피를 통해서 속죄의 기능을 담당했다.
  * 번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는 제사였다.
  * 번제는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사...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 참고: 하나님은 번제보다 순종을 원하신다.
 - 제사보다 공의, 인자,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원하심(미 6:6-7) 
 - 제사보다 상한 심령을 원하심(시 50:16-17)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실천이 모든 제사보다 나음(막 12:33)


2. 소제(2:1-16)

 2-1. 소제의 의미(피 없는 곡식제사)
  소제(곡식 제사)는 히브리어로 '민하', 또는 '고르반 민하'(예물의 제물)라고 하는데, 이 '민하'는 '마나ㅎ'라는 어근에서 나온 여성 명사이다. '마나ㅎ'는 아랍어로 "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히브리어에서 "선물" 또는 "예물-조공, 공물-"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의 의미는 어떤 사람이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나, 은혜를 얻기 위해 드리는 선물이나 예물"을 말한다. 이 말은 히브리 종교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답례로 드리는 제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모세 율법에서는 이 말은 "피 없는 곡식 제사"를 의미하고 있다. 이 제물은 첫 열매를 드릴 때와 같이 단독으로 드려지기도 했지만(단독제사), 대부분 다른 제사와 함께 드려졌고(부속제사), "포도주의 전제"가 함께 드려졌다(민15:3-6).

* 참고: "단독으로 드려진 소제"(단독제사)
 1) 매 안식일마다 드리는 진설병
 2) 유월절 안식 후 첫 날(초실절)에 드리는 소제
 3) 오순절에 드리는 소제
 4) 의심의 소제-거친 보리 가루
  소제는 번제나 화목제와 함께 드려졌는데(민 15:3), 성경에서는 이 소제를 일명 "예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적으로 드린 소제는 매 안식일마다 제사장이 12개의 소제의 떡을 떡상에 진설하여 드린 것과, 유월절 다음 안식일에 첫 곡식 한 단을 드린 것, 그리고 오순절에 첫 이삭을 드린 것이다. 소제의 재료는 주로 좋은 밀가루나, 밀가루로 반죽하여 만든 떡, 또는 곡식을 볶은 것이 사용되었다(레2:1-16).

* 참고: "제사와 예물"(제바와 민하)
  성경에서는 "제사"와 "예물"이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다. 성경에서 "제사"(제바)는 주로 "피 있는 희생 제물"을 의미하고, "예물"(민하, 또는 고르반)은 주로 "피없는 곡식제사"를 의미하고 있다(단 9:27, 삼상 3:14).

  번제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제사라면, 소제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와 헌신이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소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헌신의 표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 중에서 첫 열매와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심으로써,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셨다.    


 
2-2. 소제의 종류와 규례

 
 가. 고운 가루를 드리는 소제(2:1-3)
  * 소제물을 준비하여 제사장에게 가져옴(1)  
  * 제사장이 기념물을 단 위에 불사름(2)
  * 그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돌아감(3)
 

* 참고: "소제의 재료들과 그 의미"(2:1-3) 

1. 고운 가루(밀가루, 보리 가루)(2:1-3)
  소제는 밀가루와 보리 가루를 사용하였다. 소제는 13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11가지는 밀가루로 드리고, 2가지는 보리 가루로 드렸다. 밀은 세 겹의 껍질로 싸여 있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추수를 한 후에 밀 이삭을 햇빛에 바싹 말렸다. 그리고 그 말린 이삭을 장대로 여러 번 두드려서 밀 알을 떨어냈다. 이렇게 되면 밀이 껍질과 함께 뒤범벅이 된 상태로 되는데, 이것을 키로 까불러서 첫 번째 껍질을 날려보낸다. 그리고 나서 손으로 문지르고 주먹으로 쳐서 그 밀의 껍질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밀을 , 껍질을 까는 맷돌에 넣고 돌려서 두 번째 껍질을 벗겨냈다. 그 후에 그 밀을 다시 굵은 채로 치고 나서, 또 다시 세밀한 맷돌에 넣어 갈아서 세 번째 껍질을 벗겨내었다. 그리고 나서 고운 채로 다시 한번 쳐내서 비로소 소제에 쓸 수 있는 고운 가루(소레스)르 만들었다. 소제에 쓰는 "소레스"(고운 가루)는 이와 같은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얻게 되는 최고급품으로서, 막대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만들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고급 밀가루로 소제를 드리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공정을 통해 곱게 갈아진 고운 가루인 "소레스"는 영적으로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과, "연단을 통해 연단된 온유한 성품"을 나타낸다.

  보리가루는 "오메르", "민하스 소타"의 두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보리를 추수하여 부드러운 갈대나 나무뿌리 같은 것으로 살살 두드려서 제 1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나서 구멍이 뚫린 철판에 놓고 볶은 후에 물에 넣고 불린 후에, 맷돌에 넣고 껍질 채 갈아서 다시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또 다시 채로 쳐서 소제에 쓰는 고운 보리 가루를 만들었다.
 

* 참고: "거친 보리 가루를 드린 경우"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할 경우에 하나님께 소제를 드리고 그 부정을 해결할 수 있게 하셨다. 이 경우 드리는 소제는 거친 보리 가루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순결한 헌신이 아니라 의심의 소제였기 때문이다.


2. 기름(2:1-2)
  소제에는 고운가루뿐 아니라 기름이 필요했다. 소제에 사용하는 기름은 다음과 같은 3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1) 1단계
  올리브 열매를 그릇에 담고 절구공이로 계속 친다. 그리고 구멍이 뚫린 채 같은 그릇에 넣으면 기름이 흘러내리는데, 이렇게 제일 먼저 나오는 기름이 제일 좋은 기름이었다.

 2) 2단계
  1차 기름을 뺀 올리브 열매를 다시 무거운 돌이나 무거운 나무 도구로 빻고, 그 기름을 빼면 그 다음 수준의 기름이 되었다.

 3) 3단계
  2번 기름을 뺀 올리브 열매를 맷돌에 넣고 간다. 그리고 압력을 가하여 눌러서 빼내서 만든 기름이 마지막 하질의 기름이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의 사역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으심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합당한 제물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성령충만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열납할 수 있는 제물이 될 수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행10:38)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1요 2:27)


3. 유향(2:1-2)
  유향은 레보나란 향료인데, 이 향료는 나무에 상처를 낸 후에 자연 그대로 받아 낸 가공하지 않은 향료이다. 나무에서 향이 흘러나오게 되면, 조금 후에 쌀알처럼 작은 고체가 되는데 이것을 코르틴 이라고 한다. 이 향료는 기도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선한 생활을 의미한다. 우리의 예배에는 기도의 제사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선한 삶이 동시에 요구된다(엡5:2).


4. 소금(2:13-)
  소제에는 소금이 필요했는데, 이 소금은 제물이 변하지 않게 하였다. 이것은 제사를 드리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에 신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소금은 부패방지와 조미료의 역할도 했는데, 이것은 우리의 삶이 세상의 부패를 막고 사회에 조미료와 같은 그리스도의 맛을 낼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신실하게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라."(민18장19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대하13:5)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만일 소금 이 그 맛을 잃으면..."  


 나. 화덕에 구운 것으로 드리는 소제(4-)
  고운가루(소레스)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전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렸으며, 그  절차는 위의 경우와 같았다.


 다. 번철에 부친 것으로 드리는 소제(5-6)


 라. 솥에 삶은 것으로 드리는 소제(7-10)
  제사의 순서는 고운 가루로 드리는 경우와 같음.


* 참고: 소제를 드릴 때에 넣어서는 안되는 것들(2:11-12)

1. 누룩(2:11)
  누룩은 소금과 반대의 성질을 갖고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데 반해 누룩은 부패하게 만들었다. 소금은 변질되지 않게 하는데 반해, 누룩은 물질을 부풀려서 변질시킨다. 성경에서 누룩은 소금과 반대되는 위장, 허풍, 그리고 위선과 부패를 상징한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누룩(눅 12:1), 사두개인들의 누룩(마 16:16), 그리고 헤롯의 누룩을(막 18:5)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적은 누룩이 온 세상에 퍼지게 된다(고전 5:6)"고 경고했다. 이와 같이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소제에 넣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헌신이 기만이나 외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 꿀(12)
  꿀도 소제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성경에서 꿀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꿀같이 달콤함 말씀을 상징 하며, 둘째로 꿀은 꿀같이 달콤한 음녀의 유혹이나 쾌락을 상징한다. 죄는 한번 맛보면 꿀처럼 달콤하여 또 먹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죄를 상징하는 꿀은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에 넣지 못하게 하셨다. 이것은 성도들이 이 세상의 쾌락과 죄악에 빠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잠 5:3)...."


 
2-3. 첫 이삭의 소제(14-16)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14-16)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누룩과 꿀)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12)


* 참고: 소제물과 제사장의 몫(레 7;8,9)
 "무릇 화덕에 구운 소제물과 솥에나 번철에 만든 소제물은 그 드린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무릇 소제물은 기름 섞은 것이나 마른 것이나 아론의 모든 자손이 평균히 분배할 것이니라"(레 7:9,10)

* 참고: "제사장의 소제"(레 6:19-23)
  "무릇 제사장의 소제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지니라."(레 19:23)


 
2-4. 소제의 특징과 의의

  가. 소제는 향기로운 냄새의 제사였다.(레 2:2,9)
  이 제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였다.

  나. 소제는 피와 생명이 없이 곡식가루와 기름과 유향과 소금으로 드리는 제사였다.

  다. 소제는 번제같이 완전히 제단에 불사르지 않고, 기념되는 부분만 드려졌다. 그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돌려졌다.

  라) 소제는 하나님께 드려졌다(레 2:1).
 

* 참고: "유월절 안식일에 드리는 첫 곡식과, 오순절에 드리는 첫 곡식"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두 번 첫 곡식의 소제를 하나님께 드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첫 번째로 유월절의 안식일 지난 후 그 다음 날에는 그 해에 거둔 첫 곡식의 한 단을 거두어 번제단에 불살라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 째인 오순절에 첫 곡식과 함께 누룩과 꿀을 드렸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유월절에 드린 곡식과 같이 번제단에 태워서 하나님께 드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예물은 죄를 상징하는 누룩과 꿀이 함께 드려졌기 때문이다. 유월절 다음 안식일에 드리는 누룩과 꿀이 없는 첫 열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다음 안식 후 첫 날에 부활하셨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죄가 전혀 없는 분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졌다. 그리고 오순절에 누룩과 꿀과 함께 드린 첫 열매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생겨난 교회를 상징한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태어난 교회는 이 세상에 성령께서 오셔서 거둔 첫 열매였다. 교회는 예수님과는 달리 바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교회는 아직도 죄와 죄의 요소들이 잠재해 있다(누룩과 꿀).

* 참고: "소제물의 분배"
 1) 하나님의 몫-"고운 기름, 가루 한줌"-이것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2) 제사장의 몫-"그 나머지 모두"-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3) 제사 드리는 자의 몫-아무 것도 없었다. 즉 헌신 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제사장에게 드    렸다. 그는 드려진 나머지 모든 것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었다.             


 
2-5. 적용: "소제와 성도의 삶"
  내가 주님께 받은 것 중에 일부를 드려서 그 모든 것이(시간, 재능, 물질)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소제의 정신이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드려지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온유하고 겸손한 인격과 하나님의 말씀(고운 밀가루), 항상 깨어 기도하는 자세(향), 성령 충만(기름), 그리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굳게 믿고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소금)가 필요하다. 그리고 온전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외식(누룩)이나 쾌락(꿀)등과 같은 죄의 요소를 삼가야 한다.

 가. 초대 교회의 성도들-영적 열매를 맺는 삶-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말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향)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성령)....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

 나. 믿음과 봉사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이 관제는 소제와 더불어 드려지던 것이었다)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다. 적은 형제에게 한 사랑(작은 사랑)
  "너희가 내 형제에게 한 그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마 25:35-40)

3. 화목제(3:1-17)

 3-1. 화목제의 의미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제바크 쉴라밈"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감사제로 번역되고 있다. "제바크"는 "제물을 도살하여 잡는 것"을 의미하는 데, 이것은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희생을 의미한다. 그리고 "쉴라밈"은 단수형인 "살렘", "쉴람", "쉴롬"등으로 쓰여졌는데, 이는 "완전한 은혜", "완전한 평화", "완전한 축복" 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제바크 쉴라밈"의 의미는 "평화(또는 은혜, 축복)의 제사"라고 할 수 있다. 화목 제사를 드리는 경우는 감사 제사와 서원의 제사, 그리고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였다. 화목제는 속죄제와 번제, 그리고 소제를 드린 후에 마지막으로 드려졌다. 그 이유는 이 제사가 죄 사함을 얻고, 온전히 헌신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뜻으로 드렸기 때문이다.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는 달리 하나님께 드리는 몫과 제사장의 몫,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분배될 몫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하나님과, 제사장, 그리고 제사 드린 사람들이 모두 기쁨에 참여하였다. 화목제사는 모든 제사의 클라이막스이며 완성이다.


 
3-2. 화목제의 종류와 순서(3:1-17)

  가. 제물의 종류(1,6,7,12)-소, 양, 어린 양, 염소.

  * 암 수 구별 없이 흠 없는 것으로 드림(1)
  화목제는 주로 기름을 드리는 제사였다. 그러므로 비교적 기름이 많은 소, 양, 염소들이 제물로 드려졌고, 기름이 적은 새(비둘기)는 제외되었다. 화목제에서는 번제의 경우와는 달리 암 수의 구별이 없었다.

  * 안수하고 죽임("그 머리의 예물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3)
  제사를 드리는 자는 제물과 동일시하기 위해 동물에게 안수했으며, 자신이 직접 회막 문 앞에서 죽였다.

  * 피 뿌림("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요...")(3)

  * 화목 제물로 드릴 것을 취함(3-4)
  화목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특별히 태워 드린 것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였다.
  1) 위에서부터 장까지 있는 내장을 둘러싸고 있는 큰 꺼풀-내장에 덮인 기름-
  2) 창자에 붙어있는 기름-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3) 두 콩팥과 콩팥 주위인 허리 근방에 있는 기름
  4) 간에 덮인 꺼풀-작은 기름으로 된 꺼풀-

  이것은 동물의 내부에서 취할 수 있는 기름의 전부로써, 간단히 '모든 기름', '기름', 또는 '기름부분'이라고 불렀다. 화목제에서 특별히 여호와께 드려진 것은 바로 이 기름이었는데(16,17), 기름은 에너지의 근원으로서 짐승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을 상징하였다. 기름과 함께 드린 피는 제물의 생명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피가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은 제물의 생명이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의 생명을 상징하는 피와, 그 제물에서 가장 귀한 부분을 상징하는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지시하셨다.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진  기름은 거룩하기 때문에 이것을 먹는 자는 죽임을 당하였다(레 7:25).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생명과 가장 귀한 것을 드려 헌신하시기를 원하신다.

  * 제물을 단 위에 불사름(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  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나. 양이나 염소를 드리는 경우: 소를 드리는 경우와 같은 순서로 진행(3:6-17).
  * 양을 드리는 경우(6-11)
  * 염소를 드리는 경우(12-17)


*
참고: "감사의 제사"(소제를 함께 드림)(7:11-14)
  여호와께 감사제로 드리는 화목제의 경우에는 소제가 함께 드려졌다. 화목제와 함께 드리는 소제에는 기름 섞은 무교병, 기름 바른 무교전병,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 그리고 유교병을 예물로 드렸다. 이 소제물들은 함께 드려진 후에 그 중에서 하나씩 대표로 하나님께 거제로 드렸으며, 그 나머지는 희생의 피를 뿌린 제사장에게 주었다. 감사제로 드리는 화목제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고 난 후에, 그 몫의 일부분이 제사장에게 돌아가고, 그 나머지는 제물을 드린 자가 차지하였다. 그러므로 화목제는 번제와는 달리 하나님, 제사장, 그리고 제사 드리는 자, 모두가 이 제물을 먹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 참고: "화목 제물의 분배"

1. 하나님의 몫-"기름과 피, 내장, 콩팥, 간"(레 3:16,17)
  성경에서 "기름진 것"은 가장 좋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만족할 만한 것을 의미한다(시 63:5,사 55:2, 겔 44:7). 또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피와 기름"은 자기의 생명과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한다.

2. 제사장의 몫-(7:28-34)-가슴과 우편 뒷다리
  화목제의 경우 제사를 집례한 제사장은 가슴을 요제로 삼고, 우편 뒷다리를 거제로 삼은 후에 제사장이 취했다. 이는 화목제의 기쁨에 제사장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7:28-32).

3. 드리는 자의 몫-"나머지 모두"
  하나님과 그것을 중보하는 제사장과의 몫을 제외한 후에 그 나머지는 드리는 자에게 돌려졌다. 이는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린 후에 우리에게 평화와 축복과 안식이 있음을 말해 준다.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과 사람이 모두 관계된다(롬 5:1, 눅 2;14, 요 14:27, 마 5:23-26).


* 참고: 제사드린 음식을 먹는 규례(7:15-21)

1. 감사제인 경우: 기름을 제외한 제물의 고기를 당일로 모두 먹어야 한다(15).

2. 서원제, 자원제: 제사 드린 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었다(16).
  이 제물은 어느 경우에든지 제 삼일까지 남기는 일은 금지되었다. 제 삼일까지 남는 화목제물을 먹는 자는 가증한 사람이 되었으며, 그 제물은 불에 태워졌다(17-18). 기쁘게 드린 제물을 빨리 먹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은 제사 드린 자의 성의를 보여준다. 화목제를 드린 자가 그 제물을 먹지 않고 며칠씩 제물을 방치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불 경건한 태도이다. 특히 더운 나라에서는 그 제물이 쉽게 부패되기 때문에 더욱 더 오래 둘 수 없었다. 제물이 부정한 것에 접촉하게 되는 경우에도 부정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에 불에 태웠으며, 이 제물은 부정하지 않은 정결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다. 만일 부정한 자가 이 제물을 먹으면 그는 죽임을 당했다. 이는 거룩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부정한 자들이 참석하여 죽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화목제물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정결한 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교제였다. 오늘날 우리도 성만찬에 죄 있는 사람을 참석시키지 않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19-21).

 
 2-3. 화목제의 특징

  가. 제물의 특성
  * 새가 제외되었다(새에게는 풍성한 기름이 없다).
  * 제물의 성이 구별되지 않았다(감사에 남녀의 구별이 없음).
  * 전부 다 단에 태워드리지 않고 가장 중요한 기름부분만 드렸다(가장 귀한 것을 드려 헌    신함. 구원을 체험한 성도들은 자연히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감사하게 된다).
  * 제사를 드리고 난 나머지는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화목의 결과가 하나님과의 관계만 온     전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제사장과 제사 드리는 사람 모두가 이 평화와 기쁨에     참여하게 하였다)

  나.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는 제사
  속죄제와 번제 그리고 소제를 모두 드린 후에 드리는 제사로서 성도들에게 구원과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제사였다.

  다. 화목제사를 드리는 경우: 감사제사, 특별한 서원제사, 자원 제사
  이러한 제사들은 화목제사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화목제사는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이며, 특별히 자신의 몸을 헌신하기 위해 서원할 때 드리는 제사였다. 또한 화목제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체험하거나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에 감사의 표시로 자원하여 드린 제사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체험한 성도들이 자신의 생명과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 헌신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라. 예수님은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셨다.
  주님께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들을 화목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다. 이 평화는 세상에서 누리는 평화와는 다르다. 이 평화는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누리는 데서 오는 평화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내주 하시면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요 14:27, 빌 4:6,7).

  "저는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1요 2:2)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1요 4:10)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롬 3;25)


 
2-4. 적용: 삶으로 나타내는 화목제사

  가. 전도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맺는 것은 이웃과의 화목과도 큰 관계가 있다. 우리가 주님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결과는 이웃과의 평화로 나타나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후에 우리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불신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나. 용서하는 삶
  또한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성도들은 다른 형제들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의 용서와 화평은 이웃과의 용서와 화목으로 나타나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용서를 받은 후에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 5:23-26).

  다. 화목을 추구함
  주님께서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우게 될 것이라고 하셨으며, 사도 바울도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고 하였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롬12:18)

  라. 찬양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구원받은 성도는 일평생 그 구원의 은총을 감사해야 한다-

  마. 선행과 구제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이것은 하나님께서 제물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제사이다-

  바. 화목제는 궁극적으로 거룩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즐기는 "천국의 만찬'을 나타낸다. 그것은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과의 평화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만찬이 될 것이다.(계 20:)


  


구약의 5대 제사 jesus christ is our king

구약의 5대 제사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제단에서 친히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셔서 사람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계시들은 이 일의 예표들로 완전하다.
  그러므로 구약은 십자가를 통하여 읽을 때에 성경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다.
  ① 제사 제도는 하나님 자신의 기뻐하신 뜻에 따라 발원된 것이다(창4;1-4, 히11;4).
  ② 제사 제도의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제정되었다.
  ③ 제사 제도의 언약은 상징과 예표로 영적 사실들을 대신하여 나타난 이름이다.
  ④ 제사 제도의 뜻이 신약의 실체로 들어 났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죄를 대신한 모든 제사의 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것들은“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마20:26)을 나타낸 것이다.   
제 1 장 번제(레1:1-17)
  가장 기본적인 제사가 번제이다.
  “번제”란 히브리어로 올라(הꗚוֹשׂ)인데 ‘단상(제단)에 올라온 물건’을 뜻한다. “번”이란 ‘굽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단위의 제물을 불태워 하나님께 올린다”는 뜻이다.
  Ⅰ. 번제의 의미
    1.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는 제사이다(레1:9, 13, 17).
    2. 예물을 드리는 자의 열납을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레1;3)
    3. 한 생명이 드려지는 제사이다(레1;5).
    4. 온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이다(레1:9).
  Ⅱ. 번제물
    1. 하나님께서 선정하신 것이어야 한다(레1:1-2).
      1) 소는 숱한 어려움과 고난을 참는 가축이다.
      2) 양은 온유하고 순종하는 짐승이다.
      3) 비둘기는 순결하고 겸손한 짐승이다.
    2. 모든 사람들이 구별할 수 있는 생축이어야 한다.
    3. 제물은 흠이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한다.
    4. 제물은 수컷으로 드려졌다(레1:3, 10).
    5. 제물은 피 먹는 짐승은 드리지 못하였다(호랑이, 개, 기타).
    6. 제물은 깨끗한 짐승 중에도 사람이 먹는 짐승이라야 한다.
   Ⅲ. 번제의 절차.
    1. 헌납자의 손에 의하여 드려진다(레1:3-5).
      1) 짐승을 끌고 와서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
      2) 속죄할 목적으로 끌고 와야 한다.
      3) 하나님이 작정하신 처소인 회막문 앞에 끌고 와야 한다.
      4) 주인이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였다(레1:4).
      5) 짐승을 잡아 죽였다(레1:5).
    2. 제사장의 손에 의하여 드려진다.
      1) 그 제물의 피가 뿌림이 되었다(레1:5).
      2) 그 희생 제물을 불태웠다(레1:8-9).
      3) 그 재는 진밖 정결한 곳으로 가져갔다(레6:11).
  Ⅳ. 번제의 목적.
    1. 영원한 속죄에 있다.
    2. 영원한 화목이다.
    3. 영원한 헌신이다.
  Ⅴ. 번제의 종류.
  1. 집단적 번제- 매일 조석(상번제)
  2..개인의 번제- 절기, 평소(임직식, 산후결려, 문둥병자가 정결케된 후, 나실인의 서원이 끝난 후).
  Ⅵ. 번제가 주는 영적 교훈.
    1.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2. 최상의 것을 드리는 제사이다.
    3.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제사이다.
    4. 하나님은 힘에 맞는 헌신을 요구하시고, 같은 효과로 받으신다.
제 2 장 소제(레2장, 6:14-23)
  소제를 히브리어로 민카(הꗏꘁꗬ)인데 이 뜻은 “선물, 증물, 헌물”등으로 일명 감사제 혹은 수은제이다.
  여호와께서 베푸신 모든 자연 은혜에 대하여 그 권능의 은혜를 기념하여 함께 응식하는 제이다. 옛날에는 동물 헌납이나 식물 헌납은 막론하고 모든 감사의 예물은 민카(הꗏꘁꗬ)였다(창32:21-22, 43:11. 15). 그러던 것이 모세의 율법 이후 피 흘리지 않는 제사(식물 제사)에만 쓰여졌는데 소제를 표시하는 말이 되었다.
  소제는 “피 없는 제사, 부속된 제사”라고 한다. 그 이유는 소제는 짐승을 잡지 않으며 또 짐승의 피를 뿌리지 않고 다른 피 제사를 드린 후에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32장 13절에서 야곱이 형 에서에게 드린 예물(선물)에 대하여 이 말을 (민카 הꗏꘁꗬ)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이 예물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드리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제사장들이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다.
  Ⅰ. 소제의 의미.
    1. 하나님의 받은바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2.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상 생활에 적당하게 공급하여 주신 은혜와 축복인 의식주에 대한 감사와 찬송
        과 경배라 할 수 있다.
    3. 주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기뻐하시는 일에 쓰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봉사할 것을 의미한다.
    4. 민카(הꗏꘁꗬ)는 “선물, 증물, 헌물”등으로 피없는 제물에 사용하게 되었다. 피 없는 곡물 제사이다.
    5. 소제는 제물을 받으시고 드리는 자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사도행전 10장 4절에 고넬료의
       기도, 구제 자체가 예물과 같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것,
       즉 제물, 헌금, 충성, 봉사, 구제, 선행 등이다.
  Ⅱ. 번제와 소제와의 구별.
    1. 번제는 안수함으로 자기 대신 내어 주는 제사(동물)이며, 소제는 감사하는 제사이다.
    2. 번제는 피 흘림의 제물(동물)이요, 소제는 피없는 제물(고운가루 예물)이다.
    3. 번제는 속죄의 뜻이 있으나 소제는 그렇지 않다.
    4. 번제는 모두 불 태웠지만 소제는 조금만 불 태웠다.
    5. 번제는 주인이 직접 가져 왔지만 소제는 제사장에게로 가져가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였다(레2:8)
  Ⅲ. 소제물.    
    1. 고운 가루(가는 밀가루)로 드렸다(레2:1).
    2. 화덕에 구운 떡으로 드렸다(레2:4).
    3. 번철에 부친 고운 가루로 드렸다(레 2:5).
    4. 솥에 삶은 고운 가루로 드렸다(레2:7).
    5. 첫 이삭을 쌓아 볶아 찧은 것으로(바싹 마른 첫열매) 드렸다(레2:14).
    6. 처음 익은 것(과실)은 요제로 드리고 제사장이 먹는다.
  Ⅳ. 소제의 절차.
    1. 고운 가루로 되어야 한다(레2:1-3).
    2. 그 위에 기름을 부어야 한다.
    3. 그 위에 유향을 두어야 한다.
    4. 소제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레2;13).
    5. 소제물에는 누룩과 꿀을 넣지 말아야 한다.(레2;11).
    6. 번철에 부쳐 드려야 한다(레2:5-6).
    7. 솥에 삶아 드려야 한다(레2:7).
    8. 소제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레2;13).
    9. 첫 이삭으로 불에 볶고 찧어서 소제물을 드린다(레2:14).
  Ⅴ. 소제의 목적.  
    1.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레1:15).
    2. 제사장의 몫이었다(레6:16).
    3. 소제는 예언적 의의가 있다.
      1) 소제의 요소 중에는 복음적 상징들이 풍부하다.
      2) 감람유의 기름은 성령의 상징들이다(고후7:1).
      3) 유향은 기도의 상징으로 성도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나타낸다(계5:8, 8:4).
      4) 소금을 섞어 부침으로 복음의 유독성(유일성)과 화목성과 그 진의를 나타낸다
          (민18:19, 대하13;5, 슥4:1).
      5) 항상 드려야 할 소제는 고운가루로 만든 떡을 기름과 향과 소금이 합심으로 복음앞에 일어나는
          신자들의 순백한 감사를 나타낸다.
      6) 이 소제를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온갖 성실하고 의로운 노력의 산물임을 뜻한다
제 3 장 화목제(레3; 1-17).
  번제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화목제는 하나님과 깊은 영교의 진리를 나타내는데 하나님과의 화평을 말하고 교통을 말하는 것이다.
  화목제란 히브리어 쉘렘(סꗞꚆ)인데 “평안제” 또는 “화평의 제사”란 뜻이다. 이것은 감사, 서원 등을 위한 것으로(시107:22).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지만 모든 다른 제사처럼 피를 제단에 뿌리는 속죄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 제사는 소, 양, 염소의 기름만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과 드리는 사람이 나누어 먹었다. 이러한 화목제는 아브라함 이전부터 있었다. 야곱과 라반이 이 제사를 언약의 표로 바쳤다(창31:54). 그 후에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이 제물로 대접하였다(출19:22).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 제사를 드리면서 잔치한 일이 있다(출32:6).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Ⅰ. 화목제의 의미.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 제사이다.
  ① 서원 제사 : 서원 예물.
  ② 자원 제사 :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낙헌제).
  ③ 감사 제사 ; 구원과 축복 감사.
  화목제물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했다(신12;6, 7, 11-12, 18).
그러므로 화목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평
                         ㉡인간과 인간과의 화평을 상징하는 제사이다.
  Ⅱ. 화목제물.
    1. 짐승 중에 소가 있다(레3:1).
    2. 짐승 중에 양이 있다(레3:6).
    3. 짐승 중에 염소가 있다(레3:12).
    4. 짐승들은 정결한 것이어야 한다(레3;1, 6).
    5. 짐승들의 성의 구별이 없었다.
  Ⅲ. 화목 제물의 절차.
  
    1. 그 제물을 헌제자인 주인이 끌고 와서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
    2. 그 예물을 헌제자가 머리에 안수하여야 한다.
    3. 그 예물을 회막문에서 잡아야 한다.
    4. 그 예물의 피를 단 사면에 뿌려야 한다.
    5. 그 예물을 헌제자는 가죽을 벗기고, 콩팥과 모든 기름으로 제사장에게 준다
    6. 그 예물의 기름을 여호와께 불살라 바쳐야 한다(레3;3-5, 9-10, 14-16).
    7. 그 예물의 헌제자는 짐승의 내장과 더러운 것을 회막 밖에 버리고 가죽과 앞,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드린다.
    8. 그 예물을 제사장은 가슴을 흔들어 온제로,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드린다.
    9. 그 예물을 제사장과 가족들은 제물을 먹는 순서가 있다(레3:3-5, 9-11, 14- 15 , 신12:6-7, 17-18).
    10. 그 예물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1) 고기는 신선할 때 먹었다(레7:15-17).
      2) 고기는 정결하게 먹었다(레7:1-21).
  Ⅳ. 화목제의 요의.
  화목하는 잔치이다. 그러므로 온 권속이 즐거워하며 기뻐한다. 그러므로 제물을 먹는 순서가 있다. 특별히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화목제의 목적이다.
  Ⅴ. 화목제의 종류.  
    1. 감사함으로 드리는 감사제(레7:15).
    2. 서원함으로 드리는 서원제(레7:16).
    3. 자원함으로 드리는 낙헌제(레7:15-16)이다.
  Ⅵ. 화목제가 주는 영적 교훈.
    1. 구약의 화목제와 같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과 더불어 성도 상호간의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상징한다.
    2. 그렇다면 성도 상호간의 깊은 사랑과 화평이 요구된다.
제 4 장 속죄제(레4; 1-35)
  속죄제는 히브리어 하타트(תאꖧꕗ)인데 하타(אꖧꕗ)에 유래된 말로서 “과녁을 못 맞추다” “빗나가다” “과오”란 뜻이다. 옛 죄는 모든 사함을 받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해 가는 도중에 허물을 사함받기 위하여 드려지는 제사에 해당된다(레4:20, 26, 31, 35). 말하자면 그릇 범죄함을 위한 제사이다(레4;2, 13, 22, 27). 다른 말로 부지중에 범죄한 죄를 위한 제사이다.
  요한일서 2장 1절에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였다.
  모든 죄는 그 경종을 막론하고 모두 피로 씻음을 받아야 한다.
  Ⅰ. 속죄제의 의미.
    1. 이 제사는 죄를 속하고 사함을 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2.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했을 때 죄사함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Ⅱ. 속죄제의 종류.
    1.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레4:1-12).
      1) 제물
      2) 제물을 드리는 절차.
        ⑴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고 온다.
        ⑵ 그 머리에 안수하고 그 곳에서 잡는다.
        ⑶ 제사장이 그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린다
           (레4:6),
        ⑷ 그 피를 회막안에 향단 뿔에 바른다(4:7).
        ⑸ 남은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는다(4:7).
        ⑹ 모든 기름 부분과 두 콩팥을 번제단 위에 불사른다(4:8-10).
        ⑺ 수송아지의 가죽, 고기, 머리, 다리, 내장과 똥 등, 기름과 콩팥을 제외한 송아지 전체를 정결한
            곳(재 버리는 곳)에서 불태운다(4;11-12)
    2. 회중을 위한 속죄제(레4:13-21).
      1) 제물.
      2) 제물을 드리는 절차.  
        ⑴ 온 회중이 죄를 범 하였을 경우, 죄를 깨달아야 한다(14절).
        ⑵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고 와야 한다(14절).
        ⑶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한다(15절).
        ⑷ 그 다음은 제사장이 범죄했을 경우와 같다.
    3. 족장을 위한 속죄제(레4:22-26).
      1) 제물.
      2) 제물을 드리는 절차.
        ⑴ 흠없는 숫염소를 끌고 온다(23절).
        ⑵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았다(24절).
        ⑶ 제사장은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른다(25절).
        ⑷ 그밖에는 앞선 제사와 동일하다.
    4. 평민을 위한 속죄제(레4:27 5:13).
        ⑴ 만일 재력이 있는 자라면 흠없는 암염소나 어린양을 가지고왔다.
        ⑵ 만일 어린양의 정도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가지고 왔다.
        ⑶ 이것마저 힘이 부치면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가져오는데 이것 역시 다른 짐승의 제물과
            함께 단위에 올려 불사른다. 이런 제물은 개인의 하루 양식이다.
      1) 제물.
        ① 흠없는 암염소(28절)와 암양(32절).
        ② 비둘기(레5;7).
        ③ 고운 가루 에바1/10(레5;11).
      2) 제물을 드리는 절차(번제와 화목제와 같다).
        ① 흠없는 암염소와 암양을 준비하여 헌제자가 끌고 온다(28절, 32절).
        ②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한다, 즉 죄를 고백하고 대속을 위임한다(29절, 33절).
        ③ 번제소(번제단의 북편을 말한다)에서 잡는다(29절, 33절).
        ④ 제사장은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성소 앞에 일곱 번 뿌리고, 제단 뿔에 바르고, 번제단에 바른다
            (30절, 34절).
        ⑤ 나머지 피 전부를 번제단 밑에 쏟는다(30절, 34절).
        ⑥ 제물의 모든 기름과 콩팥을 단 위에 놓고 불사른다(31절, 35절).
        ⑦ 고운 가루 에바(14-21ℓ의 용량) 1/10을 피없는 식물성 제물이므로 제사장은 여호와의 화제물,
            즉 피를 흘린 다른 제물 위에서 불사르도록 되어 있다(레5:12). 그렇게 하므로 피흘린 제물과
            같게 했다.
  Ⅲ. 속죄제의 목적.
  속죄제를 드리기 전에 먼저 죄를 깨달아야 한다(14, 23, 29절).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첫 단계이다(로마서 7장 24-25).
  Ⅳ. 거룩한 속죄 제물(레6:24-30).
    1. 그 피가 의복에 접촉되면 성전 안에서 빨 것이다(레6;27).
    2. 유기에 삶았으면 깨끗하게 닦을 것이다(레6:28).
    3. 질그릇에 삶았으면 깨뜨릴 것이다(레6:28).
  Ⅴ. 속죄제가 주는 영적 교훈.
    1. 이스라엘 백성은 택자로서 구원받은 성도을 말한다.
    2.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3.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제 5 장 속건제(레5;14-6:7)
  속건제란 히브리어 아샴(םꚂאָ)인데 “죄”와 “과오”란 말로 특히 재물을 사사로이 소비하는 불신 행위를 말할 때 쓰는 말이고, 그보다 “과오에 대한 견책” “과오에 대한 책임” “그 책임에 대한 보상 행위”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속건제란 말은 물질에 대하여 과오를 범했을 때 그 범과에 대한 배상물(레5;6, 민5:8, 삼상6:4), 또는 배상금(왕하12:16)을 뜻한다. 속건제는 엄숙히 말해서 제 2급의 속죄제라고 할 수 있다. 속죄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 때문에 드리는 것이다(4:1-5:13).
  그렇다면 속건제는 제물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나 또는 영역 그리고 사람의 제물에 대한 권리나 영역을 침해한 과실에 관계되는 것이다. 즉 제물에 대한 죄에 관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제물이다.
  사람에 제물에 대해서 그의 주권을 침해하여 죄가 되었을 때 그것을 보상, 즉 상환하는 것이다.  
  Ⅰ. 속건제의 의미.
    1. 하나님의 물건에 관계되는 죄(레5;14-19).
      1) 여호와께 바칠 물건을 도적함의 죄이다.
      2) 우상에게 제물을 드린 죄이다(대하28:22, 25, 29:6).
      3) 여호와께 드릴 십일조를 도적한 죄이다(레27:30-33, 말3:8-9).
      4) 제물에 관계되는 죄이다.
   2. 사람의 제물에 관계되는 죄(레6;1-7).
    ① 남의 물건을 맡았다가 돌려주지 않고 그 사실을 부인하는 자(2절).
    ② 전당 잡거나(2절),
    ③ 강도질(2절, 19:13),
    ④ 늑봉(강제적으로 탈취하는 죄)(2절, 19;13),
    ⑤ 유실물을 얻고도 돌려주지 않는 죄(3절),
    ⑥ 고용인에게 삯을 주지 않는 죄(레19:3, 말3;5),
    ⑦ 청지기가 주인의 물건을 팔아먹는 죄,
    ⑧ 장사꾼이 매매하는 중에 거짓말로서 사람의 돈을 속여 가지는 죄,
    ⑨ 과부나 고아나 나그네에게 가야 할 재물을 안 주는 죄(말3;4-6
    ⑩ 부지중에 죄를 범했을 때 등등이다.
  이런 범죄를 했을 경우에는 보상, 변상, 성별 그리고 성결케 하는 제사이다. 사람 앞에 대가를 지불하고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는 제사이다.
  Ⅱ. 속건제의 규례.
    1. 자복해야 한다.
    2. 보상이 따른다.
    3. 속죄이다.
  Ⅲ. 속건제에서 받는 교훈.
  
    1. 하나님은 재물 관리에 있어서도 주권자이시다.
    2. 죄를 뉘우쳐 자복함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물건을 본 주인에게 돌려주어야만 되는 것이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속건제이다.
  Ⅳ. 속건제가 주는 영적 교훈.
    1. 이 죄는 진리, 삼위일체가 되신 하나님을 배반한 죄가 아니다.
    2. 이 죄는 타락한 죄가 아니라 실수와 실족한 범죄이다.
    3. 이 죄는 하나님의 성물을 범한 죄(십일조, 첫 열매, 서원을 불이행, 하나님의 것을 탈취)와 이웃에게
        범한 죄(악행, 물질 손해, 심신)이다.
제 6 장 결 론
  히브리서 9장 11절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그림자로 오사”라고 하였다.
  1. 번제는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친다.
  2. 소제는 죄인이 그 옛 죄에서 구원 얻은 후 어떻게 감사해야 된다는 방도를 제시하였다.
  3. 화목제는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제사이다.
  4. 속죄제는 이미 구원얻은 사람일지라도 그릇 범하여(특히 계명) 실수했을 때 필요한 제사이다.
  5. 속건제는 엄격히 말해서 속죄제인데, 특별히 제물에 관한 범죄를 속함받는 제사이다.
  모든 제사의 중심은 사죄가 그 중심이다. 이 모든 제물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1;29).
 

출처: 개혁주의 신학연구소


화석과 성경(3/3): 진화론이 말하는 표준화석의 오류 jesus christ is our king

표준화석이란 대략 이런 겁니다.

 

어떤 지층의 대략의 연대를

그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을 보고 가늠하는 겁니다.

 

그 화석 동물의 특징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며, 짧은 기간 살다가 깔끔하게 멸종했다는 생물들로

 

고생대- 삼엽충, 필석류, 갑주어, 푸줄리나(방추충)

중생대-공룡, 시조새, 암모나이트

신생대- 매머드, 화폐석등(유공충)

학교에서 배우고 수능에도 나오는 '표준화석'이란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을 보고 그 지층의 연대를 가늠할 수 있다는 화석으로,

짧은 시기에 쫙 번성했다가 역시 짧은 시간 깔끔하게 멸종한 동물의 화석이라고 합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그 설명을 찾아보니,

표준화석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야 하며 짧은 기간 동안만 살았던 동, 식물 등의 화석이 적당하다. 반대로 좁은, 특정한 지역에서만 살고 긴 시간동안 살았던 동, 식물 등의 화석은 특정 환경을 알려주는 시상화석이 된다. 표준화석은 일정한 시기에만 번성했던 동, 식물 등의 화석이기에 퇴적암에서 발견될 경우 그 화석을 포함한 층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이러한 표준화석으로는 암모나이트, 삼엽충, 매머드, 공룡 등이 있다.

라고... 나오네요. ( http://100.naver.com/100.nhn?docid=182770 에서 직접 보셔도 됩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한번 봅니다.

판단은 여러분이 하시고, 교안은 시작됩니다.

 

 

 

 

 

 

 

 

 

 

 

 

 

 

 

 

 

고생대 표준화석으로 배우는 바다나리인데요.

식물처럼 생겼지만 동물로 분류된다는 말도 들었는데... anyway...

 

현재도 버젓이 살아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역시 고생대 표준화석이라는 암모나이트.

그 사촌 격인 앵무조개가 버젓이 지금도 잡히고 있습니다.

 

 

 

 

 

 

또한 유명한 고생대 표준화석인 삼엽충...

5억년 전 생물이라고 배웁니다만, 현재도 버젓이 잡히고 있으며,

심지어 사람 샌들에 눌린 삼엽충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역시 겁나게 유명한 표준화석인 실러캔스,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단계 생물이라고까지 가르치는데요.

 

요즘도 아프리카에서는

저녁 식탁에 오르고 있습니다.

 

 

 

 

 

 

고생대 표준화석이라는 투구게,

여전히 잡히고 있었습니다.

 

 

 

 

 

 

3억년 되었다는 석탄기 퇴적층에서

쇠로 만들어진 바가지가 발견되었답니다.

 

당시 발견자들은

이 사실을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봐 너무 걱정한 나머지

현장 작업부들에게 저런 맹세의 서명까지 받았다고 하네요.

(이해가 갑니다... 아마 여기 오신 몇몇 분들은 저럼에도 불구하고 안믿으실 거니까요)

 

 

 

 

 

 

 

 

 

 

 

 

 

 

조금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도 꺼내 봅니다.

 

 

 

 

 

 

1934년 텍사스,

중생대 백악기 지층이라는 곳에서 '망치'가 발견되었습니다.

 

누군가 조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전문기관에 망치의 성분분석을 의뢰했답니다.

사람에게 유전자가 있듯, 쇳덩이도 제조과정에 따라 성분과 구조가 다르다네요.

 

 

 

 

 

 

현재 알려진 제철방식은 철광석을 탄소로 태워 만들기 때문에

쇳덩이에 염소(Cl)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발견된 망치에서는 염소가 다량으로 검출되었답니다.

즉 오늘날 만들어지는 쇳덩이가 아니며 조작이 아니라는 겁니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어쩌면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썼던 망치로 추측해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제 블로그에 거듭 언급되는 사진입니다만,

 

공룡뼈들이 떼거지로 발견되어 국립기념관으로까지 만들어진 저 지층에서

현대인과 똑같은 인간 뼈 화석들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되었다는 손가락 화석과 이빨 화석.

(저 화석이 사실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라던 어떤 진화론자분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

 

 

 

 

 

 

 

 

 

 

 

 

 

 

예...

진화론이 옳다면 단 하나라도 존재해서는 안되는 표준화석들이

여기저기서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고,

심지어는... 저녁식탁에도 오르고 있습니다.

 

 

 

앵무조개와 암모나이트는 껍데기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거라고 하던 사람도 있었고,

은행나무도 껍데기만 똑같지 속은 계속 진화하고 있을 거라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근데 아시다시피 우리는... 내장기관을 논하자는 게 아닙니다.

화석에는 삼엽충의 내장기관 자국들은 안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화론자들은 주장합니다.

 

많은 지층에서 대체적으로 발견되는 화석들의 트렌드가

어류 → 양서류 → 파충류 → 포유류 & 조류인 점을

창조론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요. 

 

 

 

이에 대해 김명현 교수님은

아래와 같은 의견을 말씀하시네요.

 

 

 

 

 

 

많은 예외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체적인 트렌드가 저렇다면,

그건 저 동물들의 대략적인 서식지의 고도(高度, altitude)가 아니었겠냐는 말입니다.

 

노아의 대홍수가 모든 땅과 동물들을 빠르게 휩쓸어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물과 흙은 아랫쪽부터 쌓이고 매몰되기 마련이며,

 

아래 지층에는 좀 더 아랫쪽에 살던 생물들이

윗 지층에는 좀 더 윗쪽에 살던 생물들이

매장되어 화석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냐는 겁니다.

딱 지금과 같은 수준의 트렌드와 예외만큼 말이죠.

 

 

 

 

 

 

 

 

 

 

 

 

 

 

이 7강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하나.

화석은 시체가 죽어 흙이 느릿느릿 쌓여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산 채로 급격히 갑작스럽게 매몰되어 만들어진다.

 

둘.

화석이 만들어지는데는 몇십~몇백만년 따위는 필요 없다.

환경만 조성되면 며칠 ~ 몇달 만에도 만들어진다.

 

셋.

화석에서 발견되는 생물들은 현재의 생물과 생김새가 똑같다.

장동건과 정우성이 다른 만큼의 차이야 있겠지만, 장동건과 오랑우탄의 차이만큼은 아니다.

 

넷.

표준화석? 그런 건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진화론에서 주장했던 표준화석의 상당부분은 지금도 멀쩡히 살아 있다.

 

다섯.

수많은 예외가 있지만

지층의 높이에 따라 어류 → 포유류 & 조류 화석이 발견되는 대략적인 유형는

아마도 그 동물들의 서식지 고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음 교안 8강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측정한다는 방법에 대해 다루어봅니다.

 

탄소동위원소연대측정법, 방사성동위원소연대측정법...

일반 사람들은 이름도 외우기 버거운 단어들이죠.

 


제 7강. 화석은 말한다(1/3): 화석에 대해 잘못 배웠다. jesus christ is our king

성경의 창세기가 옳다면

지구는 약 4~5천년 전에 대홍수로 완전히 잠겼습니다.

그때, 방주에 탔던 동물들 제외하고 모두 죽었답니다.

 

이때, 대부분의 시체들은 파괴되지만,

일부는 남아서 화석으로 전해지게 됩니다.

 

 

 

 

 

 

화석은

변해왔다는 증거일까?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먼저 화석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다루고자 합니다.

 

 

 

많은 사진들과 부연설명들이

시작됩니다.

 

 

 

 

 

 

 

 

 

1. 화석들은 갑작스러운 급격한 매몰상황에서 만들어졌다.

 

일상조건에서 동물이 죽으면

화석화보다는 대개 부패와 분해가 일어납니다.

이는 다른 포식자들과 미생물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화석이 늦은 퇴적상황에서 만들어진다면

바다밑과 강밑에는 화석들로 넘쳐나야 할 텐데, 거의 없습니다.

 

강력한 압력에 의해 갑작스럽게 매몰되어야만

화석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먹이를 물고 삼키지도 못한 채 죽어버린 물고기

만약 심장마비로 죽었다면, 다른 물고기들의 밥이 되었을 겁니다.

이렇게 남아있는 이유는 급격한 매몰 외에는 답이 없겠지요.

 

이런 화석이 드물기는 하지만

하나가 아니라 도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얘는 그래도 먹고 죽은 물고기. 때깔이 곱습니다.

그래고 뱃속에 들은 생선이 소화되지 않고 화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육식공룡이 초식공룡의 앞다리를 물고 있는 상태의 화석

둘다 심장마비 걸린 게 아니라,

한참 실갱이 중이거나 막 뜯어먹거나 옮기는 도중에 파묻힌 겁니다.

 

 

 

 

어룡(魚龍)의 한 종류의 Ichthyosaurs의 화석.

우측 꼬랑지의 새끼 이미지는 어미를 따라 걷고 있는 화석이 아니라

어미가 분만하는 과정 중에 화석화된 것.

 

많은 동물들이 산모가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면

뱃속의 새끼를 빨리 내보내려 한다고 합니다.

 

 

 

 

같은 종류의 익룡입니다만,

뱃속에 5마리의 새끼를 가진 상태에서 그대로 화석화되어버렸습니다.

 

 

 

 

잠자리 화석.

보통 잠자리가 죽으면 개미떼부터 꼬이고,

미세한 날개가 저렇게 완벽하게 남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급격히 매몰되었을 경우에만 가능한 화석입니다.

 

 

 

 

화석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대개 대규모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네브라스카에 가면

9천여마리로 추정되는 낙타, 멧돼지, 코뿔소 등이

떼죽음을 당한 상태로 화석으로 발견됩니다.

 

서로 다른 동물들이 집단으로 매몰되었다는 것은

죽기 전에 각자 역할분담해서 매스게임이라고 했다기보다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이 동물들이 한꺼번에 휩쓸리고 매몰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고사리를 포함한 다양한 식물화석.

 

식물화석의 특징 중 하나는

잎이 싱싱하게 잘 펼쳐진 상태에서 화석화되었다는 겁니다.

 

만약 죽은 식물이라면 잎이 쪼그라들고 시들해야 하는데,

일부러라도 만든 듯 싱싱한 모습입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매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죽어서도 아니고, 서서히도 아니고요.

 

 

 

 

자주 발견되는 암모나이트화석. 사이즈가 각양각색인데요.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매우 깨끗하게 화석화되었다는 겁니다.

 

조개화석도 매우 많이 발견되는데요.

대부분의 조개화석들은 입을 다문 채로 화석화되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모두 죽은 상태에서 화석화된 것이 아니라

멀쩡히 잘 살아있다가 갑자기 매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의 요지는 뭐냐?

어떤 사건에 의해 어느날 갑자기 매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2. 화석은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매우 빠르게 만들어진다.

 

 

 

학교에서는

나무화석, 식물화석, 물고기화석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가르칩니다.

 

나무를 예로 들면,

일단 깊이 파묻힌 다음에

나무 조직 사이로 광물질이 스믈스믈 들어가게 되고,

완전히 화석화되는데는 최소 수천~수만년이 걸린다고요.

 

 

 

우리는 완전히 잘못 배워왔던 겁니다.

(도대체 우리는 20년간,

 학교에서 뭘 '사실이라고' 배우고 자라는 걸까요... 환장하겠습니다)

 

 

 

 

1886년, 뉴질랜드 북쪽 타레웨라 섬에서 화산이 폭발해서

화산폭발물들이 주변 원주민들의 마을을 덮어버렸습니다.

 

30년 뒤 이 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마을에 있던 한 선교원에서 화석화된 모자와 햄(Ham) 등을 발견하게 됩니다.

 

몇년만에요?

30년도 안걸려서요.

 

 

 

 

영국 요크 지방에서 서쪽으로 21km쯤 가면

이상한 우물이 하나 존재한답니다.

 

석화우물이라 불리는 이 곳에 뭔가를 매달아놓기만 하면

몇 달 안에 몽땅 화석이 되어버린답니다.

 

이 우물물에 포함된 다량의 광물질이

(우리의 예상보다 매우 빠르게) 조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기 때문이랍니다.

 

 

 

 

장화를 신은 채로 화석화된 뼈가 1980년 텍사스에서 발견됩니다.

 

수소문한 결과, 이 부츠는

1936년도에 설립된 가죽세공회사의 제품으로

1950년대쯤 만든 수제화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화석화된 나무를 '규화목'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규화목은 만들어지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믿어져 왔습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는 2억년 됐다는 규화목이 전시되어 있기도 합니다만,

 

호주에는

지어진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물레방아가

완전히 화석화된 곳도 있습니다.

 

무슨 구석기 물레방아가 아니라

지금부터 100년도 안된 물레방아입니다.

 

 

 

 

진화론자들이 매우 난감해하는 현상 중 하나가

다지층 나무화석들입니다.

 

다지층 화석이란

수평으로 착착 쌓인 지층 여러겹을

나무가 뻥 뚫고 있는 상태에서 화석화된 것을 말합니다.

 

진화론적 지질학에 의하면

퇴적층이 30cm쯤 쌓이려면 평균 5천년쯤 걸린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론으로는 이 나무화석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나무가 수십만년을 살았을 수도 없고,

수십만년 후에 날아와서 박힌 것도 아니고...

 

유일한 답은

이 지층이 쌓인 시간이 수십~수백만년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퇴적되는 와중에 나무가 파묻혔다고 봐야만 합니다.

 

 

 

 

지구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고 오해하게 하는

또 하나의 현상, 동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동굴들이 많은데,

거기 가 보면 팻말에 대개 이렇게 씌어져 있습니다.

"수백만년~수천만년 전에 생긴 동굴"

 

그 이유는 종유석, 석순, 석주 때문입니다.

현재 이들의 성장속도를 살펴 보니

저런 것들이 생기려면 수백만년 걸렸겠다는 계산이 나오게 되지요.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들이 발견됩니다.

 

 

 

 

위쪽 이미지는

링컨기념관 지하실에서 만들어진 종유석, 석순, 석주들입니다.

건물이 만들어진 지는 100~200년도 안되었는데,

기둥만한 규모의 석주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래쪽 이미지는

인디애나 주의 어느 기념관 지하실로, 생긴지 40년이 안된 건물입니다.

이 건물 지하실에서 4m가 넘게 자란 석주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건물 10km 옆에 어떤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이 이 건물과 지하수로 연결이 되어 있었답니다.

동굴에서 내려오는 지하수는 광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었고,

천정을 타고 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이런 석주를 만들게 되었답니다.

 

 

 

 

 

 

결국 이런 현상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입니다.

 

종유석이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느리게만 자란다면 수백만년이 맞겠지만,

조건만 갖추어지면, 수백만년이 아니라 몇달 만에도 가능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수백만년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홍수가 있었다면)

홍수가 끝날 때 엄청난 량의 물이 흘러내렸을텐데,

그 때 광물질을 다량 포함한 물이 흐르면서

순식간에 이런 석주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광물질을 함유하고 흐르는 물이 마냥 흐르는 건 아닐 테니,

현재는 간간히 물방울만 떨어질 만큼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그 물방울만 보고 수백만년~수천만년을 이야기해왔다는 겁니다.

 

 

 

마치 이렇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키가 170cm인 20대 젊은이가 1년 동안 키가 1mm만 자랐는데,

1년에 1mm 자라는 걸 본 외계인이

이 지구인은 태어난지 1700년 되었다고 잘못 계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07. 화석과 성경(2/3): 화석 속의 동물들은... 진화론의 주장과 달리... 전혀 진화하지 않았다. jesus christ is our king

당신이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초중고 과정을 나왔다면,

아마 당신은 이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화석은 동물들이 진화해왔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학교다닐 때는 진도 나가느라 그냥 생각 없이 외우고 말았지만,

이번 기회에... 진짜로 그런 것인지 제대로 살펴봅니다.

 

 

 

 

 

 

 

 

 

 

 

 

 

[Question]

화석으로 발견되는 동물들은

요즘 살고 있는 생명체들과 많이 다른가?

 

 

 

[Answer]

아니.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진화론에 대한 연구와 상상이 한참 나래를 펼치던 시절,

그들은 은행나무에 대한 엄청난 자료를 발견하게 됩니다.

 

현재와 똑같은 은행나무의 화석이 중생대 지층에서 발견된 거죠.

진화론자들은 이 일을 매우 기이하다고 해석했고,

너무나 특이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발표가 있은 이후

은행나무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수억년을 버텨왔구나... 라는 경탄과

'저거 갈아마시면 몸에 좋겠구나...'라는 생각에 의해

 

징코민, 기넥신... 이런 약품들이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아... 물론 은행나무에는 혈액순환개선을 돕는 성분이 들어있긴 합니다.

 하지만 마케팅컨셉은 분명 저러했습니다. 광고의 헤드카피가 '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로 시작했지요)

 

 

 

 

 

 

 

 

 

 

 

 

 

 

문제는...

은행나무만 좀 신기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한참 삽질하며 땅을 파면 팔수록

현재의 모든 생물들이... 죄대 살아있는 화석이더라는 겁니다.

(물론 교과서엔 이런 이야기 없습니다)

 

 

 

그 증거들인데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설명은 생략합니다.

 

 

 

 

 

 

모두 고생대와 중생대 지층에서 발견된 화석입니다.

생긴것만큼은 적어도 현대의 식물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저 모두가 '살아있는' 화석들입니다.

 

 

 

 

 

 

 

 

 

 

 

 

 

 

혹시... 식물만 좀 그런 건 아닐까요?

동물은 뭔가 변하지 않았겠냐고요?

 

 

 

 

 

 

호박(amber) 현재 보석 취급을 받는데

나무의 진액이 딱딱하게 굳어져서 만들어진 겁니다.

 

왜 이게 보석 취급을 받냐 하면,

진화론 연대에 의하면 현재 발견되는 호박은

대략 3000 ~ 9000만년 전부터 오랜 세월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곤충이 들어가 있다면 가격은 완전 점프했답니다.

만약 두 마리 이상이 동시에 들어있으면 천정부지로 뛰겠죠.

 

호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백과사전으로 대신합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8%B8%EB%B0%95_(%ED%99%94%EC%84%9D

(마지막에 괄호까지 모두 드래그해서 붙여야 되네요)

 

 

 

문제는,

호박에서 발견되는 오만 가지 동물들이

현대에 살고 있는 생물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수천만년 전에 들어갔을 호박 속 동물들이

지금의 동물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뭔가 변한 흔적이 없다는 거죠.

 

 

 

독일의 Joachim Scheven이라는 박사는

평생을 곤충호박에 대한 연구에 바쳐왔다고 하는데요,

 

그는 호박 속 곤충과 현재 곤충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열심히 알리고 있다네요.

 

아래가 그 사진들입니다.

 

 

 

 

 

수많은 호박과 화석들입니다.

개미, 나비, 벌, 벼룩, 모기, 대벌레, 파리, 나방, 바퀴벌레, 거미......

수천만년(?) 전에 살았다는 곤충들이 어떻게 현재와 똑같은지...

그것도 한두마리가 아니라 발견되는 족족 모든 종이 그렇습니다...

 

 

 

 

 

 

좀 신기하게 생겼다고 여겨진 올챙이새우는

화석이 발견된 당시, 2억년 전 생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멀쩡히 살아있는 올챙이새우가 잡혔습니다.

(그다지 먹음직스럽지는 않지만요)

 

 

 

 

 

 

이 민물새우의 화석 역시

고생대 페름기와 석탄기 지층이라고 주장되는 암석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재도 버젓이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똑같은 모습으로요.

 

 

 

 

 

 

 

 

 

 

 

 

 

 

이런 황당한 일이 어떻게 생긴 걸까요?

 

 

 

 

 

 

요즘이야 각종 통신시설과 매스미디어가 좋아지면서

전 세계 어디에서 뭔 일만 터져도 금방 전 세계인들에게 퍼질 수 있지만,

과거에 진화론을 연구하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구 한편에서는 생물은 없는데 화석만 발견하고,

2억년이네, 3억년이네,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그 새우로 국을 끓여먹고 있었던 겁니다.

 

 

 

그럼, 현재는 왜 이런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 걸까요?

그건...... 말을 못하겠습니다. 독자님의 추측에 맡깁니다.

 

 

 

 

 

 

 

 

 

 

 

 

 

 

 

혹시... 자잘한 곤충들만 그렇고,

좀 덩어리가 큰 동물들은... 뭔가 변하지 않았을까요?

 

 

 

 

 

해마, 박쥐, 뱀, 악어, 거북이, 도마뱀, 도롱뇽, 개구리 등등......

똑같은 생김새입니다. 전혀 다르지 않네요.

 

 

 


신, 구약 중간사 연대표-도표로 보는 구약 제사의 종류와 그 상징적 의미-도표로 보는 '성경의 절기들' jesus christ is our king

신, 구약 중간사 연대표

 

시대  구분

연 대

주 요 사 건

바사시대

B.C. 404-331

-알렉산더 대제에게 함락당함.

헬라
시대

알렉산더

336-323

-알렉산더 사후 4장군이 제국을 분할 점령함.
-숱한 앞서의 헬라 잔존 세력들 간의 정변끝에 B.C.201년 셀류크스 왕조의 안티오크스 3세가 팔레스틴을 차지함
-안티오크스 4세의 성전 모독 및 약탈.

프톨레미 왕조

301-201

셀류크스 왕조

198-167

독립유다
시대

마카비 혁명

166-143

-마카비 가문이 주도한 헬라화 반대 혁명 성공과 성전 재복원
-로마의 유대 독립권 인정
-다윗 시대의 영토 회복
-바리새인의 대 반란

하스몬 왕조

142-67

로마시대

B.C. 63-A.D. 4

-로마 장군 폼페이의 예루살렘 점령.
-이두매 출신 헤롯 가문의 유대 지배 시작.
-로마의 통치는 A.D.70년 예루살렘 함락, A.D.130년 경의 전 유대인 강제 추방 정책이 실시된 후 제국 말기까지 계속됨.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 활동 이후 신약시대가 도래하기까지에는 성경 기록이 없다. 따라서 이처럼 구약이 완료되었으나 신약이 개시되기 전인 400년 간의 시대를 소위 중간사 시대라 한다.
이 시대는 성경 기록이 없으나 결코 하나님의 구속사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그 옛날 애굽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400년의 침묵이 지난 후에야 구원해 주셨듯이 하나님은 이 400년의 침묵기 중에도 구약에서 그토록 자주 언급된 예수의 강림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쨌든 신약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동시에 비록 침묵의 시대이기는 하나 하나님의 선민 약속이 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스라엘이 숱한 파란을 겪었던 중간사 시대의 기본 개념을 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위에 제시된 시대 구분등은 팔레스틴의 입장에서 그 통치자의 흥망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도표로 보는 '구약 제사의 종류와 그 상징적 의미'

 

 

구약 제사(祭祀)의 종류 및 세부 절차와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다양한 그만큼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사항을 아래 도표의 각 부분이 밝혀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양성 이전에 우리는 구약의 각 제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근본적 본질(本質)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구약의 각 제사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조인인 인간이 원래 창조 상태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그 관계를 단절시킨 원인인 죄(罪)의 해결이 먼저 요청된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죄의 해결을 위해서 에덴 동산에서의 언약(言約)에 따라 원래는 죄의 책임을 지고, 그 죄를 범한 자가 그 생명의 근원이 되는 피를 흘려야 함을 보여 준다.(창 2:17)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의 죄는 한번 세우신 법대로 분명 죽음으로 처벌하시되, 그 죄를 지은 인간은 살려주시기 위한 새 법을 주셨다. 이는 인간 대신 그 죄를 전가(轉嫁)받은 동물이 죽는 동물 희생 죽음의 법인데, 그것을 공식 규정한 것이 제사법인 것이다.(창 3;21)
  2. 앞에서 밝힌 것과 같은 희대 대속(代贖)의 원리로 구성된 각종 제사법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인간보다 열등한 동물의 반복되는 희생 제사를 규정한 이 희생 제사법은 동일한 원리에 의하여 인간보다 우월한 아니 절대 완전한 유일자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청하신 희생 대속, 곧 1회이나 영원한 대속 효력을 갖는 예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예표(豫表)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즉, 구약 제사법은 그리스도의 희생 대속 사역의 원리를 미리 보여 주는 한시(限時)적으로 규정된 법인 것이다.
  3. 구약의 각 제사법은 피의 요구라는 하나님 측의 요구가 있어서 인간에게 의무라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 측의 자기고백 및 자원하는 감사와 찬양, 그리고 헌신의 요소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즉 제사드리는 원리와 방법은 희생 대속의 원리로서 규범적이나, 제사드리는 동기와 자세에는 제사드리는 자의 정성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제사를 통하여 선민(選民)은 자신의 간구도 아뢸 수 있었다. 결국 이는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사랑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사실을 본질로 하고 있는 구약의 제사는 비록 세부 내용에 대한 의식적 규정은 없으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신앙 고백을 그 원리로 하고 성도의 자원하는 감사와 찬양, 간구로 이뤄지는 신약의 예배와도 일맥 상통한다.

 

제사의 목적에 따른 구분

 

성격

목 적

특 징

의 미

그리스도와의 관계

관 련 성 구

번 제

자원 및
의무

일상의 신앙 고백과 경배

흠없는 제물을 준비, 가죽을 제외한 제물 전체를 불살라 드림

헌신자가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함

그리스도의 죽음은 완전한 헌신의 모범

레 1:3-17; 6:8-13; 롬 12:1,2; 빌 2:5-11

소 제

자원

하나님께 영광과 충성을 바치는 표
순수하고 온전한 순종

피가 없는 유일한 제사로서 고운 곡식 가루를 기름,유향,소금 등과 섞어 불살라 드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식함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심

레 2:1-16; 9:16,17; 히 4:15; 계 12:11

화목제

자원

하나님과의 특별한 친교를 위해

제사후 경배자도 제물을 분배받음, 드리는 동기에 따라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로 구분됨.

하나님과의 화평과 교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이 친교할 수 있는 유일한 길

레 3:1; 7:12,16; 롬 5:1; 골 1:20

속죄제

의무

무의식적인 범죄와 부정함과 허물을 사함 받기 위해

각 사람의 신분, 지위(제사장, 이스라엘 온 회중, 족장, 평민, 극빈자)에 따라 제물이 다름

*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됨

* 죄의 치명적 결과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방법임

레 4:1,13,22; 8:14-17; 요 1:29; 요일 1:7

속건제

의무

하나님과 이웃을 적대관계에 놓이게 한 죄의 해결 및 보상

범죄한 대상(하나님,사람)에 따라 제물이 다르며, 범한 물건의 1/5을 더 냄

불의하고 불공평한 일을 예방하고 보상함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의 치명적인 파괴성을 제거함

레 5:1-4, 15,16; 7:1-7; 사 53:4-6; 벧전 2:21-24

 

제사의 방법에 따른 구분

 

제사법

해당제물

해당제사

예표적 의미

화제

경배자가 가져와 안수하고 제사장이 잡고 다듬은 희생 제물을 단위에서 불사름 (레 1:6-9; 3:3-9). 단, 이때 그 피는 성막 기구 및 번제단 주위에 뿌림

흠없는 수소, 암소, 숫양, 암양, 숫염소, 암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 고운 곡식 가루, 기름, 유향 등의 모든 제물 (레 1:3, 10,14; 2:1,2; 3:1,6,12; 4:23,28)

  • 번제 (출 29:18,25; 레 1:9 ,13,17)
  • 소제 (레 2:1-16)
  • 화목제 (레 3:3,5,9)
  • 속죄제 (레 5:12)
  • 속건제 (레 6:17,18)
  •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심을 상징함 (요 1:29,36; 고후 5:21)
  •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속죄를 위해 피흘리심을 상징함 (마 26:28; 히 9:12-14)
  •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위하여 상신의 생명 전체를 바쳐 희생당하심을 상징함 (마 27:27-50)

요제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화목제물의 가슴 및 곡식단을 높이 들어 앞뒤로 흔들어 바침 (출 29:24,26)

화목 제물의 가슴, 첫 곡식 단(레 23:15), 첫 이삭의 떡 (레 23:20), 레위인(님 8:11-15)

  • 화목제 (레 7:30)
  • 속건제 (레 14: 12 ,14)
  • 땅의 처음 익은 곡식 바칠 때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제물로 바쳐짐을 의미함 (골 1:22; 히 9:24,25)
  •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성도에게 주어지심을 상징함 (요 6:33-58; 롬 8:32)

거제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서 화목제 희생 제물의 우편 뒷다리를 위아래로 흔듦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 타작 마당의 곡식, 십일조, 포도주, 기름 등 (레 7:32; 민 15:20)

  • 화목제 (레 7:14,22)
  • 땅의 첫 소산물을 드릴 때
  • 십일조를 드릴 때
  • 전리품을 드릴 때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제물로 바쳐짐을 의미함 (골 1:22; 히 9:24,25)
  •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성도에게 주어지심을 상징함 (요 6:33-58; 롬 8:32)

전제

포도주나 독주를 다른 제물과 함께 부어 드림 (민 28:7)

포도주, 독주 (레 23:13; 민 28:7)

  • 번제 (출 29:40,41)
  • 소제 (레 23:13)
  • 화목제 등 (레 23:19)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봉사하심을 상징 (마 26:38-44)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다 바쳐 충성하심을 상징 (마 27:46-51)

 

 

 

 

 

 

 

 

 

                    도표로 보는 '성경의 절기들'

 

 

무릇 절기란 정기적으로 과거의 특적 사건을 기념하여 그 뜻을 오늘에 되새기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성경의 절기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 원리에 근거한 일자 구분 및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특별한 구원 사역을 행하신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에게 의모 조항의 하나로 규정하셨다는 점에서 그 특수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비록 신약 성도가 히브리 절기를 문자적으로 지키지는 아니하나 구약 구속사적 의미가 깊은 것이므로 그 절기가 갖는 그 영적 의미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명칭

시기

목적 및 의미

관련규례

상징 및 교훈

역법정기절기

안식일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지기 전까지 (출 16:23-30)

  • 이스라엘의 성별 표 (레 19:3)
  • 안식은 창조 및 노예로부터의 해방 의미 (출 20:8-11;신 5:12-15)
  • 상번제보다 2배의 예물을 번제로 바침 (출 16:22,29; 민 28:9)
  • 안식일을 어기는 자는 죽음을 당함 (민 15:32-36)
  •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과 안식 예시 (고후 5:17)
  • 장차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예시(계 21:4)

월삭

매달 초하루

  • 절기를 정하신 여호와의 미쁘심과 계약의 영원함 기림 (민 10:10)
  • 안식일의 희생 제사보다 규모가 큰 희생제사 거행 (민 28:1-10)
  • 한 달의 첫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한달 전체를 하나님 앞에 드리겠다는 신앙 고백 행위

나팔절

제7월 즉 민간력으로는 새해의 월삭(레 23:24)

  • ‘7’이라는 숫자의 신성에 의한 민간력 새해 시작의 기념
  • 일반 월삭보다 더 큰 규모의 희생제사를 거행함 (민 29:6)
  • 나팔을 불어 알림 (민 29:1)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생활함을 암시함 (고후 5:17)

속죄일

일곱째 달의 제 10일

  • 온 백성의 죄를 정기적으로 속함 (히 9:7)
  • 성소의 성결 (히 9:12-14)
  • 노동을 금하고 두 염소 드림 (레 16:8-10; 23:28)-하나는속죄제
  • 번제를 드림 (민 29:7-11)
  • 대제사장이 1년 중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감 (히 9:7)
  • 그리스도 속죄의 피를 예표
  • 속죄일 제사는 매년 반복적으로 드렸으나 그리스도의 속죄는 단 일 회로 완성됨 (히 10:1-18)

안식년

7년을 1주기로 할 때의 그 마지막 해 곧 7년째 되는 해(레 25:4)

  • 토지의 휴식 (출 23:11)
  • 인권 해방 (출 21:2-6)
  • 1년간 땅에 경작이 없음(출 23:11)
  • 노예 해방 (출 21:2-6)
  • 채무자의 빚 탕감 (신 15:1-11)
  • 성도가 누릴 죄와 그 저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예시 (요 8:31,34)

희년

안식년 7번 지난 다음해 곧 50년째 되는 해(레 25:8-12)

  • 자유와 해방의 해 (레 25:8-55)
  • 팔렸던 토지를 환원해 줌 (레 25:25-38)
  • 노예 해방 (레 25:39-46)
  •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은혜 누림을 예시 (롬 3:24)

구원사건기념절기

유월절

니산월 14일 저녁(출 12:6; 레 23:5; 민 28:16)

  •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함 (신 16:1)
  •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살려 주심을 상기시키기 위함 (출 12:16-20)
  • 1월 10일에 준비한 흠없고 1년된 어린 숫양을 14일에 무교병, 쓴 나물과 함께 먹음 (출 12:8)
  •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 (출 12:7)
  • 유월절 희생양은 흠없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시 (요 1:29)
  • 성도들이 사망에서구원받음을 예시 (요 3:16)
  • 유월절은 성만찬을 암시해 줌 (마 26:17-29)

무교절

니산월 14일에 시작하여 1주일간 계속됨 (레 23:5,6)

  • 애굽으로부터 급히 빠져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의 고생을 기념하기 위한 것. 무교병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희생과 봉사를 의미함 (출 12:16-20)
  • 7일간 번제와 속죄제를 드림 (민 28:19-24)
  • 7일간 무교병을 먹고 첫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금함 (출 12:15-20)
  • 무교병은 구원받은 성도와 교회의 전적인 희생과 봉사를 암시 (고후 5:8)
  • 죄없으신 그리스도의 몸이 성도들을 위해 찢기심을 암시 (히 9:12-14)

수전절

아홉번째 달 25일부터 8일간

  • 유다 마카베오의 승리와 그의 지도력 아래 성전이 정화되고 재봉헌된 것을 기념
  •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갈 필요없이 각집에서 지켰으며, 첫날부터 매일 한 개의 촛불을 더해 8일째에는 8개의 촛불을 켬
  • 하나님의 성전된 성도 각자가 몸의 성결을 힘써야 함을 예시 (엡 1:21,22)

부림절

아달월(태양력 2,3월) 14,15일 (에 9:17)

  • 유대인이 에스더와 모르드개에 의해 하만으로부터 구출된 것을 기념 (에 9:31)
  • 유대인이 구원된 13일에는 축제 준비로 금식을 하고 14일 저녁부터 회당에 모여 에스더서를 낭독하는데,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회중은 ‘그의 이름은 말살될 지어다. 악인의 이름은 소멸될지어다’를 외침. 이튿날에도 낭독은 계속되며 오락을 하고 가난한 자에게 선물함(에 9:19,22)
  • 성도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구원됨을 암시
  •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늘 사단의 궤계로부터 지켜주시고, 궁극적으로 성도에게 구원과 상급을 내려주심을 예시 (시 19:11)

농경축제절기

초실절

유월절 후 첫 안식일 이튿날 (레 23:11) 1월 16일

  • 곡물(보리)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첫 곡식단을 봉헌함 (레 23;10; 롬 8:23; 고전 15:20-23)
  • 모든 필요의 공급이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인정함 (레 23:9-14)
  • 추수전 곡식의 첫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요제로 흔들어 바침(레 23:9,10)
  • 번제와 소제, 전제를 드림 (레 23:13)
  • 예물을 드리기 전에 사람이 먼저 먹어서는 안됨 (레 23:14)
  •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로서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심 (롬 8:23)
  • 하나님께 바쳐진 첫 이삭 단은 성도와 교회를 암시

칠칠절

무교절에 첫이삭 한단을 요제로 드린 날 곧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출 23:16; 34:22; 레 23:16) 3월 6일

  • 밀추수의 첫소산을 바치고 봉헌하기 위한 것. 성전 파괴 후에는 시내 산에서 율법받은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켜짐 (출 23:16)
  • 모든 수확물은 첫 열매를 제물로 바친 뒤에야 사용가능함 (민 28:26-31)
  • 떡 두덩이로 요제를 드림 (레 23:17) 번제 속죄제 화목제(레 23 :8~19) 어린양 두마리 요제(레 23:20
  • 남자들은 할렐(시 113-118)을 부르며 가무에 참가함,노동금지
  • 오순절 축복, 곧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강림하심을 예시 (행 2:1-4)
  • 오순절에 바치는 떡 두덩이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상징으로 봄

초막절

티쉬리월 15일부터 1주일간 계속됨 (레 23:34; 민 29:12)

  • 광야 생활 중 인도, 보호하신 은혜를 기념함 (신 16:13-17)
  • 토지 소산(과일)의 추수를 마칠 때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함
  • 새벽- 해맞이와 관련된 의식
  • 아침- 헌수의식
  • 밤- 축제의식
  • 이세상 인생 길이 초막에 거하는 나그네 길임을 보이며, 우리의 영원한 집은 오직 하늘 나라에 있음을 보여 줌 (스 3:4)
주) 1. 시각 부분중 유대력은 민간력이 아니라 종교력을 기준으로 하였다. 종교력 1월은 민간력 7월, 반대로 민간력 7월은 종교력 1월로 환산
        하면 된다.
     2. 현대 유대인들은 사실 구약에 언급된 많은 절기를 다 지키고 있지는 못하나 안식일과 유월절, 부림절, 수전절은 비교적 잘 지키는 경향
        이 있다.
     3. 유월절과 무교절은 서로 연이어지는 만 7일간의 절기이다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의 족보의 불일치 jesus christ is our king

성경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두 개가 나옵니다. 첫 번째가 마태복음 1장의 족보이고 그 다른 하나가 누가복음 3장의 족보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거쳐 예수님의 계부인 요셉으로 흐르는 족보이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에서 시작해서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로 그리고 솔로몬의 형인 나단을 거쳐 아담과 하나님에게까지 이르는 족보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의 족보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담으로부터 여자의 후손을 낳은 여자를 탄생케 하시는지 확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이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입니다.

 

성경은 이 두 사람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담으로부터 죄를 지어 저주받은 남자와 관계없는 여자의 후손을 준비하시는지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 성도들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잘 보시면 그 두 족보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솔로몬의 형인 나단에서 둘로 갈립니다.

 

마태복음의 요셉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은 솔로몬의 후예들이고 누가복음의 마리아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은 솔로몬의 형인 나단 왕자의 후예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창세기 3장15절에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태초부터 역사를 끌고 가시는지 잘 보세요.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원래 법적으로는 솔로몬의 형인 나단이 왕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나단이 솔로몬의 형이니까요. 그러니까 나단의 후손은 법적인 왕통인 것입니다. 만일 솔로몬이 자식이 없이 왕위를 물러나게 되고 그 형인 나단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법적으로 나단의 자식이 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법적인 왕통입니다. 그러니까 나단의 후손인 마리아는 법적인 왕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실제적으로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이어 받았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후손은 법적인 왕통은 아니지만 실제적 왕통이 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실제적 왕통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 할 뿐 아니라 사무엘하 7장의 다윗의 언약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다윗왕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영원히 망하지 않는 다윗의 위를 이으실 진정한 왕으로 오셔야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법적인 왕통과 실제적 왕통의 후손들 사이에서 탄생케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요셉의 족보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수님을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시는지 그 분의 지혜와 섭리가 놀랍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족보에는 왜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도 나타나 있습니다. 잘 보시면 그 마태복음의 족보 중간에 여고냐 라는 왕이 나옵니다. 그 여고냐라는 왕은 패역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 자손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다윗의 위에 앉을 수 없게 됩니다.

 

(렘22:28-30)

이 사람 고니야는(여고냐) 천한 파기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 자손이 쫒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실제로 여고냐의 일곱 아들 중에 누구도 왕좌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대상3:16-18)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 아들 여고냐, 그 아들 시드기야요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은 그 아들 스알디엘과 말기람과 브다야와 세낫살과 여가먀와 호사마와 느다뱌요

 

여고냐와 그 일곱아들은 모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아는 그렇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실제적 왕통인 솔로몬의 후손이기는 했지만 여고냐때에 저주를 받아 왕이 될 수 없는 족보에서 탄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셉의 아들로 오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고냐 이후로는 그 족보에서 왕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잉태 되셔서 요셉의 왕자가 되어야 실제적 왕통의 자격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 족보의 후손들은 왕위에 오를 수 없지만 실제적 왕통의 후손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족보의 육신적 후사가 되시면 안 되지만 양자로서 실제적 왕통을 계승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주님의 왕통 계승이 중요한가? 그 이유는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사무엘하 7장에서 우리 주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그 왕위를 (물론 상징적 의미지만) 영원토록 지속하는 분으로 약속이 되었기 때문에 그 분은 육신적으로도 왕으로서의 자격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셉의 육신적 자손으로 오시게 되면 주님은 저주받은 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 되셔서 요셉의 양자가 되심으로 다윗의 실제적 왕통의 자격만을 부여받게 되시는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솔로몬의 형인 나단으로부터 이어지는 법적인 왕통의 계승자인 헬리와 마리아의 후손 즉 여자의 후손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법적왕통의 자격도 갖게 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은 법적으로도 사무엘하 7장의 다윗의 언약을 만족시키신 분이셨고 영적으로도 창세기 3장 15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하나님의 언약을 만족시키신 진짜 왕이신 것입니다.


........


참고


예수그리스도의 가계


네 복음서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은 족보입니다. 예수의 족보가 나온 복음이 있습니다. 무슨 복음 입니까? 마태복음입니다.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예수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에게는 족보가 중요합니다. 이 세상 왕들도 족보가 있습니다. 족보가 없는 왕 보셨습니까? 족보가 없는 왕은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에도 족보가 나옵니다. 사람의 족보입니다. 성씨를 갖고 있다는 것은 족보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족보가 없는 자는 쌍놈이라 하여 사람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족보가 없습니다.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분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족보가 필요 없습니다. 일만 잘하면 됩니다. 주인이 죽으라면 죽는 것입니다. 목숨도 주인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족보가 필요 합니까? 족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에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족보가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는 하향식인데 비해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는 상향식입니다.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고 누가는 아담 및 만유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까지 소급해서 시작을 합니다. 그런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마태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다윗까지 누가의 족보는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다윗까지는 마태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 그 후손들은 서로 다른 이름이 나옵니다.


마태는 다윗 그 다음은 후손에 솔로몬 그 다음은 르호보암등 나열되어 나오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맛단이 나오고 그 다음은 야곱이 나오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누가는 다윗 다음 후손에 나단이 나오고 맛다다요가 나오고 그다음은 멘나요하고 이어져 나오다가 끝부분에 맛단이 나오고 그 다음은 헬리가 나오고 그 다음은 요셉으로 마무리를 짖습니다.


족보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다윗이후 후손들이 다르게 나오는데 잘못 기록 된 것 같지만 그 곳에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열쇠는 “역대상 3장 5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밧세바)의 소생이요”라고 기록되어 잇습니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다윗의 후손 솔로몬도 누가복음에 나오는 다윗의 후손 나단도 밧세바에서 낳은 한 형제였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로 부터 왕위를 물려 받으므로 솔로몬의 후손들은 왕들의 족보로 이어져 가고 누가복음에 나오는 나난은 다윗의 자식이지만 평민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 후손들도 평민으로 이어져 간 것입니다.

 

나단은 다윗이 밧세바를 통해 낳은 제3남이고(삼하 5장 14절, 대상 14장 4절) 솔로몬은 나단의 동생 됩니다.(대상 3장 5절)

 

한 가지 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왕의 족보 솔로몬 후손으로 이어가다가 마지막 후손은 요셉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도 나오는 평민의 족보 나단도 헬리 다음 마지막 후손으로 요셉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후손도 나단의 후손도 같이 요셉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 이유는 헬리는 마리아의 아버지가 맞기 때문입니다. 그럼 헬리 다음으로 마리아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 당시 여자는 계수하지 않고 남자만 계수하기 때문에 남자후손이 없고 여자후손만 있을 때에는 여자의 남편이 계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양쪽 집안 족보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헬리가 마리아의 아버지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왕의 뿌리인 솔로몬에게서 나왔고 마리아의 아버지 헬리는 평민인 나단의 줄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은 왕의 모습으로 오시기 위해 왕의 혈통인 요셉에게서 나오셔야 되고 또 예언대로 사람의 모습 종의 모습 평민의 모습으로 오시기 위해 평민인 나단의 줄기에서 헬리의 딸 마리아에게서 나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대로 다윗의 뿌리에서 왕의 모습으로 종의 모습으로 두 가지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아쉽게도 유대인들은 왕으로 오신 분만 찾았기 때문에 종으로도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영혼을 구원하시는 메시아가 아니라 번성했던 다윗왕국 건설을 이루어 주실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왕으로만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에 왕과 종으로 오신 메시아를 놓치고만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언대로 왕으로 종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분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뜻을 깨닫게 하신 성령께 감사할 뿐입니다.


출애굽 홍해지점-빅터호수 jesus christ is our king


출애굽의 경로 jesus christ is our king

 

 

 

 

 

 

 

 

 

 

 

 

 

 


성막의 구조와 비밀 jesus christ is our king


기적과 영혼 그리고 거듭난의 본질에 대해서 jesus christ is our king

이번 4/4 교안의 이야기는

검증된 내용도 아니며,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생각을 정리하는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렇게 올립니다.

 

 

 

 

 

 

 

 

 

영혼...

그리고, 거듭남이라는 것에 대하여......

 

 

 

영혼이 21그램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검증된 적은 없습니다.

영혼은 많은 사람이 있다고 믿는 비물리적 영역입니다.

 

 

 

'전설의 고향'과 '사랑과 영혼'같은 영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영혼을 이렇게 착각하기도 합니다.

 

 

 

 

 

 

예...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혼 치고는 트렌디한 패션감각을 가지고 있네요.

그러나, 영혼이 정말 저런 거라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영혼과는, 조금 괴리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에 가면 자주 듣게 되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같이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그것은

거듭남입니다.

 

 

 

 

 

친구 따라 교회다니면서,

예수님을 믿어보려고 하는데,

교회에 가면, 한가지 이상한 질문을 또 받게 됩니다.

 

 

 

'당신은 거듭났는가?'

 

 

 

여기부터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거듭났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지

기다, 아니다, 대답을 할 수 있을 텐데,

 

분위기상 '거듭났다'고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면서 그렇게 대답하면, 꼭 거짓말하는 느낌도 들기 때문입니다.

 

 

 

 

(멘트 치는 느낌이 약간 사이비종교스러운 감도 없지 않습니다만,

 이미지가 이것 뿐이니, 그냥 '아니려니~' 하고 봐 주세요. ㅡ,.ㅡ)

 

 

 

적어도 성경이 이야기하는 '거듭남'이란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갔거나,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에게 사랑고백을 받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을 때 느껴지는 알싸한 refresh의 느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저는 살면서

수십, 수백번도 더 그런 느낌을 느꼈을 테니까요.

 

 

 

 

(아... refresh~

 그래도, 이런 게 거듭남은 아닐 겁니다)

 

 

 

 

 

 

 

 

 

성경의 '거듭남'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예수를 찾아온 바리새인 관원,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이야기 씬입니다.

 

참고로 바리새인은 당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유태인 집단으로,

교리적으로 거의 빈틈이 없음을 스스로가 자부하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관원이라면,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진 계층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그리고 세상적으로도

꽤 출세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종교학자이자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었다고 하며,

훗날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신의 장지로 쓰려던 동굴에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은 그날의 대화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자신들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원수였기에,

니고데모는 대놓고는 만날 생각을 못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동해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경배의 찬양을 늘어놓는 니고데모에게

대뜸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최고의 종교학자 니고데모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사합시다.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못알아들었던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에서 '거듭났느냐'고 묻는 사람조차도

진정으로 알고 하는 말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다시 한번 설명을 하십니다.

근데, 그 부연설명도 좀...  어렵습니다.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시지만,

기이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니고데모, 또 못알아들어주시고,

결국 예수님에게 한 소리 듣고 맙니다.

 

'너는 선생이라는 놈이 이것도 모르냐!'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적어도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면

알고 있어야 되는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김명현박사님도 고민해 보셨던 모양입니다.

(저는 뭐... 일단 착실히 여러번 듣고 나서

 그게 제 생각의 정리에 도움이 되었기에,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이제,

영혼에 대해 한번 들여다 보겠습니다.

 

 

 

 

 

 

시편에 이런 말이 나오네요.

"소성"이란 말이 좀 어려운데, 사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오네요.

 

 

 

소성 [蘇醒]
[명사]
1 까무러쳤다가 다시 깨어남.
2 중병을 치르고 난 뒤에 다시 회복함.

 

 

 

여호와의 율법이 "완전"하여

"영혼"을 "깨어나게 하고 회복하게 한다"라고 이야기되어 있습니다.

 

 

성경대로라면,

영혼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영혼에 대해

좀 더 들여다 보겠습니다.

 

 

 

 

 

 

 

다들 아시는 내용입니다만,

무엇인가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같은 차원의 잣대가 있어야 합니다.

 

키는 길이(미터)로,

몸무게는 무게(그램)로,

부피는 부피(세제곱미터 정도)로 재야 합니다.

 

키가 60kg일 수 없으며, 몸무게가 180cm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영혼을 측정하거나,

성경의 이야기처럼 '소성'시키기 위해서는

영혼과 같은 차원의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그 잣대는 질서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170cm라는 것은 일정한 cm가 170번 반복됨을 의미해야 하는데,

cm가 일정하지 않다면, 측정에 문제가 있겠지요.

 

 

 

상대방의 영혼을 '다시 살리고자' 한다면,

그 도구는 우선 '살아있는 영혼'이어야 합니다.

 

 

 

 

 

 

 

질서만 있으면 될까요? 안됩니다.

 

정확한 영혼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표준'이 될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합니다.

왼쪽 하단의 잣대에는 일정한 '질서'는 존재하지만, 표준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현재 군에 입대하기 위한 신장의 기준은 165~195 cm 입니다.

왼쪽 하단의 줄자를 기준으로 저 신장을 구분한다면,

문제가 있겠지요.

 

 

 

그 표준을 맞추기 위해서 우리는

'표준 미터'를 사용합니다.

 

파리에 있는 만국도량형 중앙국에 있는 원기(原器)의 길이가 바로 그 표준입니다.

1889년에 90%의 백금과 10%의 이리듐을 사용하여 1m짜리 표준자를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지구자오선의 4천만분의 1을 1m로 정의했다가

1960년, 그리고 1983년 다시 개정되어

현재는 빛이 특정 시간동안 가는 거리를 기준으로 사용한다네요.

 

 

 

(모든 미터의 표준이 되었던 '미터원기'의 이미지입니다)

 

 

 

 

틀릴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매우 완전한 표준질서이기 때문에,

그 율법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달라지는 그 무엇,

 

그것이 영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이 아니라요.

 

 

 

비슷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나의 생각, 사상, 믿음, 인생관, 가치관... 같은 것이 아닌가 싶고,

 

 

 

조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내 몸이 죽어 없어지고, 내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도,

다른 차원에 남을 것 같은 나의 무엇.

 

그것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생겨서,

내가 죽을 때까지 살아가며 완성되는 그 무엇.

 

내 육체가 원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것과는 상관 없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사유들......

 

 

 

 

 

 

 

 

 

왜냐 하면, 주변을 둘러보고 경험을 해 보니,

성경을 믿게 된 사람이 점점 변하는 것,

(성경을 믿지 않는 자가 보더라도 종종) 바람직해 보이게 변하는 것들이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 거듭남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처음남"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일 겁니다.

 

 

아래는,

처음 나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관찰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저 과정을 겪어서 태어났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었던 난자는

1개월에 거쳐 만들어지고, 배란되어지고,

12시간에서 24시간 동안 살아 있다가

특별한 이벤트를 겪지 않으면, 그대로 죽어버립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난자세포는, 난자세포 자체로도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실험을 위한 정자기증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실험을 위한 난자기증은 법적인 이슈와 과학자의 윤리 이슈가 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것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현재의 생물에 대한 정의기준이 매우 광범위하고 모호해서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요.

 

(생명의 정의기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종종 올라와 있네요.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205&eid=OmiYWBKFxc6iHr4wLFzwN1qwzFBUo3KF&qb=u/247cDHILHiwdg=&pid=fdWKodoi5Twssa0clcdsss--375077&sid=SQtKaHEdC0kAAF0HQjg)

 

 

 

 

 

 

 

자.... 한번 봅시다.

 

난자는 배란되어 나온 이후로 12~24시간 동안을 살아갑니다.

그 난자의 일생 동안 특별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면, 그냥 그대로 살다가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정자라는 특별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면,

난자는, 난자로서는 비교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난자가 정자를 만나면 '수정란'으로 변하게 되는데,

난자와 갓 수정된 수정란이 당장은 비슷하게 보일 지 몰라도,

우리는 이것을 '생명'이라고 부를 만큼,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하지요.

 

수정란을 '생명'이라고 인식하고, 이야기하고,

엄마아빠들이 뛸 듯이 좋아하거나, (때로는 앞날이 캄캄해지거나) 하는 이유는,

수정란 자체 때문이 아니라, 수정란이 변하게 될 미래의 모습 때문일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처음 태어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인간은 길게 잡아 10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갑니다.

그 일생 동안 특별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면, 그냥 그대로 살다가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특별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면,

인간은, 인간으로서는 비교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자녀'로 변하게 되는데,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과 받아들인 사람이 당장은 비슷하게 보일 지 몰라도,

하나님은 이 사람을'자녀'라고 부를 만큼,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하신다고 하십니다.

 

받아들인 사람을 '자녀'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뛸 듯이 좋아하시는 이유는 (사람이 아니시니 캄캄하다고는 않으셨네요 ^^)

그 사람의 인생 때문이 아니라, 영원하다고 말씀하시는 '영혼'의 모습 때문일 겁니다.

 

 

 

 

 

 

말씀......

돌고래의 동물적 의사소통이 아닌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진'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지금 제가 드리는 것과 같은 이런 말씀...

 

성경에는 이 '말씀'을 거의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언급하는 대목들이 많습니다.

 

그 말씀과, 영혼,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가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 육신이 썩어 없어지면, 다시 말씀이 남겠지요.

 

우리도 언젠가는 썩어 없어지겠지만,

말씀과 관련된 그것, 영혼은 남는다고 성경은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 액션맨

 

 

 

 

 

<추신>

 

원래 5단계로 나누려고 했는데,

4단계만에 이번 교안이 끝나버렸습니다.

 

교안 제목이 (~/5)로 되어 있던 것을

(~/4)로 다시 정정하고자 합니다.

 

다음 교안에서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자바원인, 북경원인, 크로마뇽인...

고등학교 과학시간까지 열심히 배우고 믿었던 사실들이

 

생각처럼 올바른 정보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창조론을 지지해주는가장 중요한 근거 jesus christ is our king




캄브리아기의 대폭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삼엽충 화석. 삼엽충은 고대의 절지동물이다.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은 5억 4200만 년 전에 다양한 종류의 동물화석이 갑작스럽게 출현한 지질학적 사건을 일컫는다. 더하여 유사한 형태의 다양화가 식물성 플랑크톤이나 칼슘을 이용하는 다른 군집생물들에게서도 나타났다. 캄브리아기의 최하층의 또 다른 특징은 탄소 동위원소 등의 지화학적 교란이다.

[편집] 폭발의 중요성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은 과학계와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찰스 다윈은 이 현상이 자신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에 대한 주요한 반대 근거로 창조론자들이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현상이 그토록 갑작스럽게 일어났다는 것에 대하여 의아스럽게 생각해 왔다. 캄브리아기 생물의 선조뻘로 보이는 생물은 이전 지층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이 현상에 대한 의문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실제로 "폭발"이 일어났었는가?
  2. 이 현상은 동물의 기원과 진화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가?
  3. 왜 일어났는가

[편집] 역사

버클랜드(1784-1856)가 살았던 시기의 지질학자들은 현재 캄브리아기 지층이라고 불리는 지층의 최하부에서 화석 기록이 갑작스럽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찰스 다윈에게 있어 그 이전의 선조 형태가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동물들의 화석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고, 실제 그는 그의 책, 종의 기원에서 상당한 부분을 이 문제를 설명하는 데에 할애했다.

북미지역의 동물군을 연구하던 미국의 학자 찰스 왈콧은 "리팔리안"이라고 부르는 시기 동안은 화석이 없거나 화석으로 보존되지 않았는데, 이 기간 동안 캄브리아의 동물군들이 진화했다는 제안을 했었다.

보다 시간이 흘러서, 지구에서의 생명의 역사가 적어도 34억년전 이전에 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오스트레일리아의 와라우나의 암석들은 미생물에 의해 형성된 뭉툭한 기둥모양인 스트로마톨라이트들의 화석들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동물들, 식물들, 그리고 균류에게서 만들어진, 좀더 복잡한 진핵생물(Eukaryota)의 세포들의 화석들이 중국과 몬타나의 14억년전의 암석들에서 발견되었다. 5억6천5백년에서 5억6천4백년 사이의 암석들은, 요즘의 기관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너무 커서 다세포 생명체일 수 밖에 없는, 에디아카라 생물군의 화석을 포함하고 있다. P.E. 클라우드는 1948년에 캄브리아기 초기에 "폭발적"인 진화의 시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도 어떻게 상대적으로 현대의 모습을 지닌 생명체들이 캄브리아 시기의 중기와 후기에 나타나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

오파비니아는 현대의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현재의 이,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에 대한 문제의 관심은 핸리 B. 휘팅턴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 촉발되었는데, 그들은 북미의 버제스 셰일에 있는 동물군들을 새롭게 분석하여, 몇몇은 복잡하게 발전했지만 요즈음의 어떠한 살아있는 동물들하고는 다르다고 결론내렸다. 가장 흔한 기관인 마렐라는 확실히 절지동물이지만, 어떠한 현재 알려진 절지동물 에도 속해있지 않다. 눈이 다섯개인 오파비니아와 가시가 있는 달팽이모양의 위왁시아같은 생명들은 알려져있는 어떤 것과도 너무 달라서, 요즘 알려진 어떠한 과도 오직 멀리 떨어져서 관계가 있을 뿐인, 다른 을 제시해야만 했다. 이러한 작업에 대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유명한 1989년의 저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1]는 그 사실을 대중들에게 알려줬고, 이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대해 질문들을 만들어냈다. 세세한 부분에서는 명확하게 차이를 보이면서, 핸리 B. 휘팅턴스티븐 제이 굴드는 모든 현대적 동물문은 갑자기 출현했다고 보인다라고 제시했다. 이러한 관점은, 엘드릿지스티븐 제이 굴드가 1970년대에 개발한, 진화란 거의 정체에 가까운 긴 휴지기들 사이에 짧은 기간의 급격한 변화가 "끼어드는" 것이라는 시점의, 단속평형이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조금 더 최근의 혹은 1970년대의 다른 연구들에서는 현대의 형태들과 유사한 복잡한 동물들이 캄브리아기 이전에 잘 발달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대적 형태들로의 "폭발"이 진정으로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또한 더 나아가, 있었다면 어떻게 일어났으며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강도높은 논의가 있어왔다.

[편집] 연대

다른 대륙간의 층서를 같은 시간 척도에 맞게 배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며, 이것은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을 연구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에서 나타나는 캄브리아기의 절대 연대 중에서 대부분은 최근에 들어서야 방사능 연대측정법으로 측정되었으며, 특히 고생대 하부 지층에서는 대륙간의 자세한 생층서 대비에는 아직까지 공백이 많이 남아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뉴펀들랜드의 선캄브리아/캄브리아 경계에서부터도 그러하다. 중요한 경계와 동물군의 계승관계에 대한 기술에 사용되는 연대는 더 좋은 자료가 나타날 때까지는 어느 정도 주의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편집] 주석

  1. 원제는 Wonderful Life이다

.......

찰스다윈 조차도 저것이 진화론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으로 말했군요. 진화가 사실이라면 선캄브리아기에는 동물화석이 없다가 갑자기 캄브리아기 이후부터 동물화석이 발견될 수 없으니깐요.

이 부분에 대해서 창조론적으로는 이 부분의 설명이 오히려 더 쉽습니다.

관련 내용은 성경과학세미나 13강중에 제 3강 그랜드캐년의 비밀을 보시면 됩니다.

대용량 첨부파일 1개(1.78GB) 다운로드기간 : ~ 2012.04.04 08:10  (30일간보관, 100회 다운로드 가능)
강좌.창조과학세미나(13강)-김명현박사.zip 1.78GB PC저장 I 클라우드 저장

 


미쉬나 jesus christ is our king

서기관들 (the Scribes)

구 분

설                 명

율법사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피기로 결심하였던 에스라의 정신을 본받아 율법을 연구하는 자

랍비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피기로 결심하였던 에스라의 정신을 본받아 율법을 그대로 실행하며 백성에게 가르치는 자

모세의 율법을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발전시켰다.

탄나임

(tannaim)

구전율법을 발전시킨 자들

아모라임

(Amoraim, '말하는 자들‘이란 뜻)

랍비 여후다의 미쉬나를 주석하는 자들

 

 

할라카

(Halakah, ‘행위규범’)

소위 구전율법(Oral Torah, "유전“, 막 7:3)

성문 율법 (모세 율법)과 동등시

미쉬나

(Mishna, ‘반복’)

A.D. 200년경 랍비 여후다(Jehuda)에 의해 “미쉬나”로 성문화 되었다.

게마라

(Gemarah, '완성된 것‘이란 뜻)

미쉬나를 해석한 것

탈무드

(Talmud, ‘가르침’이란 뜻)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친 것

* 팔레스틴 탈무드 (A.D 4세기경)

* 바벨론 탈무드 (A.D 6세시경) - 팔레스틴 탈무드의 약 4배

토세프타

(Tosephta, '부록‘이란 뜻)

“미쉬나”에 들어가지 못한 할라카

역사적 가치로는 미쉬나와 동등하게 여김

미드라쉬

(Midrash, '해설‘이란 뜻)

할라카를 주석하는 일

‘할라카’적인 것만 아니라 “학가다”(Haggadah, '해설‘이란 뜻)도 포함

학가다

실제적이고 설교적인 예화집으로서, 일반 성경 주석

메킬타

(Mekilta) - 출애굽기 12-23장에 대한 주석

시프라

(Sifra) - 레위기 주석

시프레

(Sifre) - 민수기 5-35장과 신명기의 주석

미드라쉬 자바

(Midrash Rabbah) - 5경과 5축(아가, 룻, 애가, 전도서, 에스더서) 주석



※ 서기관들은 또한 백성 사이에 율법 문제가 생겼을 때 율법을 가지고 법적인 판결을 하였으며, 유대인의 최고 재판 기관인 “산헤드린”의 한 구성원이었다.


진화론은 언어를 설명할 수 없다. jesus christ is our king

진화론은 언어를 설명할 수 없다.
(Evolutionary Theory Can’t Handle Language)

 Headlines



   한 유전자가 언어(speech)의 스위치를 켰는가? 5년 전, 진화 유전학자들은 Foxp2 라 불려진 유전자에서의 돌연변이가 인간의 언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고 주장했었다 (08/15/2002, 05/26/2004를 보라). 이것은 2 가지의 관측 사실에 기초하고 있었다 : 1)침팬지들은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2)Foxp2의 변이가 일어나 있는 사람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MIT의 컴퓨터 언어학 교수인 로버트 버위크(Robert Berwick)는 이 생각은 옳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주장하였다. Science Daily 지(2008. 2. 21)에 실린 한 기사는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었다 :

“이러한 종류의 직접적인(언어가 한 유전자와 연관되어 있다는) 연관은 유기체들이 함께 움직이는 방식이 전혀 아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언어만큼 복잡한 어떤 것이 (진화로) 생겨나게 될 때 “진화론 연구에 대해 비난을 적게 받을 수 있는 예를 제안해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Foxp2 유전자와의 연관성은 여러 사건들의 전체적인 연속선상에서 기초되어야 한다. 각각의 사건들은 추정적인 것이다. 따라서 전체 이야기가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잡음들이 신호를 압도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오히려 언어는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한 여러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가 거의 확실하다고 버위크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특정한 유전학적 변화와 연관되어 생겨났을 가능성은 결코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과학에는 매우 흥미로운 어떤 것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들을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흥미로운 무언가가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낭만적인 견해이다.”

심지어 언어를 정의하는 것마저도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새의 노래는 일종의 언어인가? 고래의 노래는? “만일 당신이 언어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다면, 왜 진화론적 관점으로 그것을 연구하는가?” 만일 그렇다 해도, 마치 프린터가 컴퓨터 시스템에서 주변 장치인 것처럼, Foxp2 유전자는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에 있어서 주변적인 것일 수 있다고, 버위크는 말했다.

 

그러면 이것은 언어의 진화에 대한 연구를 어디에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버위크는 더 깊고 더 내적인 메커니즘을 찾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시(詩)에서의 리듬과 새들의 노래 패턴에서 어떤 유사성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인과적(因果的)인 메커니즘 없이 어떤 유사성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 기사는 언어를 본질상 마음의 비언어적 기능이라고 묘사하면서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언어란 어떤 특별한 소리나 모양이나 동작과는 무관한, 인간 마음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내면의 정신적 구조는 그것의 기본적인 본질을 변경하지 않고, 말과 쓰기와 신호 언어(손짓, 몸짓, 표정 등)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고 버위크는 말한다. “그것은 당신이 듣고 있는 외부적인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머리 안쪽에서의 표현에 관한 것이다”.

실험실에 있는 버위크의 사진은 MIT에서 보도한 최초의 보도 자료에 게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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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설계 이론가들과 인식 신경과학자들은 이것과 함께 야외활동의 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언어의 핵심이 육체적 표현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개념이라면, 그것은 진화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적설계 과학자들은 지식의 산물인 정보(information)는 그것을 전달하는 기질(substrate)과는 독립적인 여러 방법으로 표현되어질 수 있다는 상식적인 개념을 여러 해 동안 설명하여 왔다. “존은 메리를 사랑한다” 라는 문장은 모래에 써서, 공중에 써서, 전자(e-mail, TV)로, 음파로, 종이와 잉크로, 손짓(몸짓) 언어로, 로프에 매듭으로, 다른 방법들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언어의 진화”는 의미 있는 정보의 진화에 관한 이론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당신은 무의미함에서 의미를, 무목적에서 목적을 얻을 수 없다. 당신은 버위크가 비합리적인 도약을 하는 것을 보았는가? 진화론적인 접근은 결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그는 통찰력을 위해 새의 노래와 시에 대한 연구로 돌아갔다. 그는 모든 유물론적 세계관이 빠트리고 있는 기본적인 단어인 ‘정보(information)’를 추가할 때까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어떻게 대중들을 속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주목하라. 그들은 사람들이 보도록  Foxp2 유전자 깃발을 흔들어대면서, “또 다시 다윈이 승리했다”(example)라는 노래를 부르며 칭송했었다.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들의 설명은 아마도 틀렸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존은 메리를 사랑할지 모른다. 그러나 찰리(?)는 진리(tRuth)를 경멸하고 있다.

 

출처 : Creation-Evolution Headlines, 2008. 2. 21.
URL :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2.htm#20080221a
번역자 : IT 사역위원회

관련 자료 링크:

1. FOXP2와 인간 언어의 비진화 (FOXP2 and the non-evolution of human language)
2. 언어와 말 (Language and Speech) : 최초의 사람은 언어 능력을 부여 받아야만 한다
3. 언어의 변화 (Towering Change)
4. 원숭이는 말하는 것을 배웠는가? (Has an ape learned to talk?)
5. 언어, 창조, 그리고 속사람 (Language, Creation And The Inner Man)
6. 민족과 언어의 기원 - 창세기의 과학적이해
7. 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The Tower of Babel : Legend or History?)
8. 고대인 - 3 (Ancient Man - 3) : 고대인들의 지능, 언어, 그리고 문화
9. Yeast DNA에서 언어 구조의 존재
10.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On the Origin of Language)
11. 중국의 ‘알려지지 않은’ 신에 대한 기원 : 고대 상형문자인 한자 속에 나타나있는 성경 (The Original 'Unknown' God of China : An Ancient pictogram script points to the Bible)
12. 원숭이가 셰익스피어의 글을 우연히 타이핑할 수 있는가? (Monkey madness)
13. 창조주(The Creator) : 언어학, 창세기, 그리고 진화론 제 5부
14. [창조의 신비⑧] 인류·동식물 언어 어디서 왔나
15. 원숭이들의 돌을 두드리는 행동이 사람의 문화로 진화했는가? (Monkeys Bang Rocks, Invent Culture)
16. 사람의 긴 유아기는 언제 진화하였는가? (Immature Kid? Blame Evolution)
17. 원숭이는 도구를 사용함으로서 사람으로 진화하였는가? (Apes Evolved into Humans by using Tools?)
18. 인간 진화 이야기는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가? (How Coherent Is the Human Evolution Story?)
19. 원숭이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지 않다 (Monkeys Have No Ear for Music)

 


유대달력과 구약의 절기 jesus christ is our king

노아의 홍수는, 얼마 동안 일어난 일이었을까요?

 

 

 

 

 

 

(비가 40일 동안 왔다는 구절 때문에

 40일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성경을 잘 보면, 실제로는 정확히 1년간 일어난 일들입니다.

 

 히브리력(구약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음)에 의하면

 홍수 1주일 전에 노아의 가족과 기타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갔고,

 정확하게 노아가 600살 되던 해의 2월 17일

 비와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홍수가 시작됩니다.

 

 주야로 비가 온게 초기 40일이며,

 150일동안 전지구가 물에 잠겨 있다가

 7월 17일 방주가 아라랏산에 닿았으며,

 그 물이 다 빠지는데 또 150일,

 땅이 굳는 등에 2개월,

 그리고 다음해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유대 달력(Jewish Calendar)

 

유대력의 특징은 일몰을 기준으로 하여 하루를 일몰 직후부터 다음 날의 일몰 직전까지를 하루로 계수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쓰는 달력은 달을 주기를 따르면서도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독특한 계산법을 사용한다. 19년을 주기로

 

3,6,8,14,17,19번째 해의 12월(아달월)을 13번째 달에 윤달로 넣어 '아달 쉐니'(AdarSheni)라 한다.

 

그래서 윤달이 낀 해는 1년이 383~385일이 된다. 이렇게 함으로 각 절기들을 일정한 계절에 지키도록 조절한다. 

 

 

 

 

종교력

 

 

민간력

 

 

양력

 

 

바벨론식 명칭

 

 

가나안식 명칭

 

 

제1월

 

제2월

 

제3월

 

제4월

 

제5월

 

제6월

 

제7월

 

제8월

 

제9월

 

제10월

 

제11월

 

제12월

 

(제13월)

 

 

 

 

 

제7월

 

제8월

 

제9월

 

제10월

 

제11월

 

제12월

 

제1월

 

제2월

 

제3월

 

제4월

 

제5월

 

제6월

 

 

 

 

 

 

 

3∼4월

 

4∼5월

 

5∼6월

 

6∼7월

 

7∼8월

 

8∼9월

 

9∼10월

 

10∼11월

 

11∼12월

 

12∼1월

 

1∼2월

 

2∼3월

 

 

 

 

 

 

 

니 산 월

 

이야르월

 

시 완 월

 

담무스월

 

압    월

 

엘 룰 월

 

티쉬리월

 

헤스완월

 

기술르월

 

데 벳 월

 

스 밧 월

 

아 달 월

 

(아달 쉐니월)

 

 

 

 

 

아 빕 월

 

시 브 월

 

 

 

 

 

 

 

 

 

에다님월

 

불    월

 

 

 

 

 

 

 

 

 

 

 

 

 

 

 

 

 

 

2. 구약의 절기와 성일(聖日)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절기와 성일들이 제시되어 있다. 물론이 절기들은 구약의 율법 아래서 주어진

 

 

것으로, 신약교회가 지켜야 할 것들이 아니지만, 각 명절들은 예표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명   칭

 

구약의 참조

 

성구

 

 

구약

 

 

 

 

시대

내      용

목      적

 

신약의 참조

 

성구

 

안 식 일

 

출20:8-11,12-17;

 

 

레23:3;

 

신5:12-15

 

 

 

제7일

 

 

동일

 

안식의 날로서

 

 

하지 아니함

 

사람과 짐승들을

 

 

위한 안식

 

마12:1-14,28:1

 

눅4:16;

 

요5:9;

 

행13:42;

 

골2:16;

 

히4:1-11

 

 

안 식 년

 

출23:10,11;

 

25:1-7

 

제7년

 

동일

 

 

안식의 해로서 땅을

 

 

휴경함

 

 

 

땅을 위한 안식

 

 

회    년

 

레25:8-55,

 

27:17-24;

 

민36:4

 

제50년

 

동일

 

 

빚을 탕감함.

 

 

예를 해방함.

 

 

땅은 원래의 소유

 

 

자에게 되돌려 줌

 

 

 

가난한 자를 돕고

 

 

사회를 안정시킴

 

 

 

유 월 절

 

<페사흐>

 

출12:1-4;

 

23:5;

 

민9:1-14:28;

 

신16:1-7

 

 

 

첫째달

 

 

(아빕월)

 

(14일)

 

3~4

 

 

양을 잡아서, 쓴

 

 

나물과 누룩을 넣

 

 

지 않은 떡과 함

 

 

께 먹음

 

이스라엘이 애굽

 

 

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억함

 

마26:17;

 

14:12-26;

 

2:13;11:55;

 

전5:7;

 

히11:28

 

무 교 절

 

<마초트>

 

출12:15-20,

 

13:3-10;23;

 

레23:6-8;

 

민28:17-25;

 

16:3,4,8

 

 

 

첫째달

 

(아빕월)

 

15~21

 

 

3~4

 

 

누룩없는 떡을 먹음

 

 

몇몇 성회를 열고

 

 

지정된 제물을 드림

 

 

 

여호와께서 이스

 

 

라엘을 급히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심을 기억함

 

 

막14:1,12;

 

12:3;

 

고전5:6-8

 

초 실 절

 

<비쿠림>

 

레23:9-14

 

첫째달

 

(아법월)

 

 

16일

 

3~4

 

 

보리 추수의 첫

 

 

수확을 거제로 드림

 

 

번제와 소제를 드림

 

 

 

 

 

 

그 땅에서 여호

 

 

와의 은급을 감

 

 

사함

 

 

롬8:23;

 

고전15:20-23

 

칠 칠 절

 

(오순절)

 

<샤부트>

 

23:16;34:22;

 

레23:15-21;

 

28:26-31;

 

16:9-12

 

 

 

셋째달

 

(시완월)

 

6일

 

 

 

5~6

 

 

 

기쁨의 축제,

 

 

무제와 자원제를

 

 

드림. 밀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림

 

 

 

 

수확의 축복을

 

 

주신 여호와께

 

 

기쁨과

 

 

감사를 드림

 

 

 

행2:1-4,20:16;

 

 

 

고전16:8

 

나 팔 절

 

(신년절)

 

<로쉬하

 

사나>

 

 

레23:23-25;

 

민29:1-6

 

일곱째달

 

(티스리

 

월)

 

1일

 

9~10

 

 

나팔과 제사로 기념

 

 

되는 휴식의 날에

 

 

성회로 모임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은혜로

 

 

그 앞에 나아감

 

 

 

 

속 죄 일

 

 

<욤 키푸

 

림>

 

 

레16장,23:26-32;

 

 

 

민29:7-11

 

일곱째

 

(티스리

 

월)

 

10

 

 

 

9~10

 

 

 

휴식과 금식의 날

 

 

제사장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

 

 

드려지고, 성막

 

 

제단이 속죄

 

 

 

제사장과 백성의

 

 

죄를 씻고,

 

 

성소를 정결케 함

 

 

 

 

롬3:24-26;

 

9:7;

 

10:3,19-22

 

 

 

초 막 절

 

(수장절)

 

<수코드>

 

23:16,34:22;

 

레23:33-36,39

 

-43;

 

민29:12-34;

 

신16:13-15;

 

14:16-19

 

 

일곱째

 

(티스리

 

월)

 

15~21

 

 

 

9~10

 

 

 

 

추수를 기념하는

 

 

주간.

 

 

초막에 거하면서

 

 

제사를 드림

 

 

애굽으로부터 가

 

 

나안까지의 여행

 

 

을 기념. 가나안

 

 

땅의 풍요함을

 

 

감사함

 

 

요7:2,37

 

성    회

 

 

레23:36;

 

민29:35-38

 

일곱째달

 

(티스리

 

월)

 

22일

 

 

9~10

 

 

 

집회와 휴식의 날

 

 

로서 제사를 드림

 

 

 

 

절기의 마감을

 

 

기념

 

 

부 림 절

 

에9:18-32

 

열두번

 

째달

 

(아달월)

 

14,15일

 

 

2~3

 

 

 

기쁨과 축제의 날

 

 

로서 선물을

 

 

주고 받음

 

에스더 때에 이

 

 

스라엘

 

 

민족이 구원받은

 

 

것을 회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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